오늘의 말씀

나의 동역자 디모데와 나의 친척 누기오와 야손과

거듭난 삶 2019. 4. 21.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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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안과 송영(送迎)

 

: [ 16:21-24] 나의 동역자 디모데와 나의 친척 누기오와 야손과 소시바더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22) 편지를 기록하는 더디오도 안에서 너희에게 문안하노라

23) 나와 교회를 돌보아 주는 가이오도 너희에게 문안하고 성의 재무관 에라스도와 형제 구아도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24) (없음).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모두와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킹제임스흠정역)

 

 

 

[ 16:21] 나의 동역자 디모데와 나의 친척 누기오와 야손과 소시바더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나의 동역자 디모데 - 바울은 디모데를 다른 서신서에서도 자주 언급하고 있다.

 

( 16:1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모친은 믿는 유대 여자요 부친은 헬라인이라;

 

17:14-15 형제들이 바울을 내어 보내어 바다까지 가게 하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거기 유하더라

15) 바울을 인도하는 사람들이 데리고 아덴까지 이르러 바울에게서 실라와 디모데를 자기에게로 속히 오게 하라는 명을 받고 떠나니라;

 

고전 4:17 이를 인하여 내가 안에서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노니 저가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행사 내가 각처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16:10 디모데가 이르거든 너희는 조심하여 저로 두려움이 없이 너희 가운데 있게 하라 이는 저도 나와 같이 주의 일을 힘쓰는 자임이니라;

 

고후 1:19 우리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였으니 저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2:19 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기를 안에서 바람은 너희 사정을 앎으로 안위를 받으려 함이니;

 

살전 3:2 우리 형제 그리스도 복음의 하나님의 일꾼인 디모데를 보내노니 이는 너희를 굳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

6 지금은 디모데가 너희에게로부터 와서 너희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우리에게 전하고 너희가 항상 우리를 생각하여 우리가 너희를 간절히 보고자 함과 같이 너희도 우리를 간절히 보고자 한다 하니).

 

이와 같은 언급은 그가 사도 자신과 얼마나 가까운 동역자 중의 한사람인가를 보여준다. (Dunn).

 

( 2:22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비에게 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

 

딤후 1:2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디모데는 고린도 교회의 교인이 아니고 오히려 바울의 복음 전도 사역에 협력한 전도자이며 바울의 동역자로 수고하였다.

 

그는 경건한 가정에서 성장한 믿음의 아들로서,

 

(딤후 1:5 이는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믿음은 먼저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3:15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바울의 2 전도 여행시 마게도냐와 아가야 전도 여행에 동행하였고,

*참조 : ( 17, 18)

 

고린도 교회 내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일을 도운 있다,

 

(고전 4:17 이를 인하여 내가 안에서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노니 저가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행사 내가 각처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16:10 디모데가 이르거든 너희는 조심하여 저로 두려움이 없이 너희 가운데 있게 하라 이는 저도 나와 같이 주의 일을 힘쓰는 자임이니라).

 

또한 바울은 때때로 디모데를 서신의 공동 집필자(執筆者) 대우하기도 하였다.

 

(고후 1: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

 

1: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살전 1: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살후 1: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바울이 여기서 디모데를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그의 동역자로 가장 먼저 소개하는 영광을 허락한 것은 그가 믿음의 아들로서 남다른 사랑을 받고 있었으며 사도와 함께 복음을 위해 헌신적으로 수고하였음을 암시한다.

 

 

나의 친척 - 누기오, 야손, 소시바더 이들 사람을 바울은 '나의 친척'이라고 지칭하고 있는데 앞절에서 처럼 헬라어로 '슁게네이스' 사용했다.

 

(7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저희는 사도에게 유명히 여김을 받고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

 

11 친척 헤로디온에게 문안하라 나깃수의 권속 안에 있는 자들에게 문안하라)

 

이것은 문자 그대로 피를 나눈 친척을 의미하기보다는 '골육'이라는 말로 한정되어 동족인 유대 민족을 지칭한다.

 

(9:3 나의 형제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그러나 같은 유대인 성도라 하더라도 아무나 친척이라 부르지 않는 것을 보면 친척이라 호칭된 사람들은 남달리 바울과 보다 긴밀한 관계에 있었던 사람으로 보인다.

 

본장에서 바울이 '나의 친척'이라고 언급한 사람은 모두 여섯 명이다.

 

(7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저희는 사도에게 유명히 여김을 받고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

11 친척 헤로디온에게 문안하라 나깃수의 권속 안에 있는 자들에게 문안하라,

21 나의 동역자 디모데와 나의 친척 누기오와 야손과 소시바더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누기오 - 로마식 이름으로서 그를 보는 견해가 학자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

 

(1) 그를 '누가' 동일인물로 보는 견해이다(A. Deissmann).

(2) 그를 누가와 다른 인물로 보는 견해이다(Lenski, Harrison, Dunn, Godet).

(3) 누기오가 누구인지 자세히 언급되어 있지 않으므로 불확실한 인물로 보는 견해이다(Bruce).

 

여기서 (2) 견해를 취함이 무난하다.

물론 누기오에 대한 이상의 자세한 언급이 없으므로 추측만으로 누구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운 문제이지만 누기오를 가리켜 바울이 '나의 친척'이라고 언급한 것으로 보아

그가 유대인 출신의 그리스도인임에 분명하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같은 견해를 지지하여 누기오가 안디옥 교회에서

선지자나 교사(敎師)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사람으로

'구레네인 누기오' 알려진 자라고 말하고 있다. (Hendriksen, Dunn, Godet).

 

또한 누가는 이방인 의사였으므로 누기오와는 구별되는 인물임이 분명하다.

 

( 4:14 사랑을 받는 의원 누가와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야손 - 이것은 헬라식 이름으로 바울이 2 전도 여행 데살로니가를 처음 방문했을 바울과 바울의 동행인들을 대접한 주인과 동일 인물일 것이다.(Liddon).

 

( 17:5-7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괴악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케 하여 야손의 집에 달려들어 저희를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

6) 발견치 못하매 야손과 형제를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질러 가로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7) 야손이 들였도다 사람들이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하니,

9 야손과 나머지 사람들에게 보를 받고 놓으니라)

 

그러나 그는 구제 헌금을 전달하기 위해 예루살렘 교회로 가는 데살로니가 교회의 대표자 명단 가운데 들어 있지는 않았다.

 

( 20:4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오와 드로비모라).

 

 

소시바더 -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 동일 인물일 것으로 추정된다. (Meyer).

 

( 20:4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오와 드로비모라)

 

그는 당시 이방 교회들이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돕기 위해 연보한 구제 헌금을 전달하는 일을 맡은 사람들 가운데 사람이었다.

 

(15:25-27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26)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동정하였음이라

27)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신령한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신의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고후 8:18 저와 함께 형제를 보내었으니 사람은 복음으로서 모든 교회에서 칭찬을 받는 자요).

 

 

 

[ 16:22] 편지를 기록하는 더디오도 안에서 너희에게 문안하노라

 

편지를 대서하는 더디오 - '더디오'(테르티오스) '셋째' 의미하는 로마식 이름이다.

 

그는 로마 독자들에게 알려진 인물로서 고린도에서 바울과 함께 있으면서 바울의 편지를 대필해 주었다(Meyer).

 

그는 신약성경 다른 곳에서는 언급되지 않다가 갑자기 여기서 1인칭으로써 자기 자신이 직접 로마 교인들에게 문안하는 표현을 취함으로써 로마의 독자들을 놀라게 하지만 이것은 바울의 권면으로 필기자 더디오 자신의 인사말을 직접 기록한 것일 것이다.

 

여기서 있는 점은 '더디오' 대한 바울의 특별한 호의와 동시에 그를 한낱 대필하는 기계로 여기지 않았다는 것이다(Dunn, Godet).

 

바울은 보통 서신의 끝부분을 제외하고는 서신을 남에게 대서시키는 것이 습관이었는데,

 

(고전 16:21 바울은 친필로 너희에게 문안하노니;

 

6:11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글자로 것을 보라;

 

4:18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나의 매인 것을 생각하라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살후 3:17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이는 편지마다 표적이기로 이렇게 쓰노라)

 

대필자의 이름이 그의 서신에 직접 기록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Meyer).

서신의 대필자 더디오에 관해서 자세한 언급은 없어서 그에 대해서 이상 수는 없지만 짐작하건대 그는 필사에 능하여서 바울의 구술을 필기하는 일을 담당하였을 것이다.

 

 

 

[ 16:23] 나와 교회를 돌보아 주는 가이오도 너희에게 문안하고 성의 재무관 에라스도와 형제 구아도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교회 식주인 가이오 - 여기서 '가이오'(가이오스) 마게도니아의 가이오가 아니며,

 

( 19:29 성이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잡아가지고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들어 가는지라),

 

더베 사람 가이오도,

 

( 20:4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오와 드로비모라),

 

요한 삼서에 언급되어 있는 가이오도 아니다.

 

(요삼 1:1 장로는 사랑하는 가이오 나의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

 

본절의 '가이오' 대부분의 학자들이 18:7 '디도 유스도' 동일 인물일 것으로

 

( 18:7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공경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집이 회당 옆이라)

 

추정하여 고린도에서 바울에게 침례를 받은 인물로 본다. (Godet, Meyer, Lenski, Bruce).

 

 

(고전 1:14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주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가이오는 바울의 고린도 전도 사역에서 번째 회심자 사람이었다(Dunn). 그리고 그는 바울이 고린도에서 겨울을 보내는 동안 머물러 있었던 주인이기도 하다.

 

본절에서 그를 가리켜 ' 교회 식주인(食主人)'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에게 당시 어느 정도 재산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며

또한 그의 집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집회 장소로 개방되었음을 암시하며

아울러 가이오의 집이 고린도를 방문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개방되고 있음을

말해 주기도 한다(J. Murray, Meyer, Godet).

 

여기서 '식주인'이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크세노스'

처음에는 '객우'(客禹), '초청된 친구'라는 뜻이었다가

후에는 '나그네',

 

( 25: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외국인' 또는 본절과 같이 나그네다.

 

( 2: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다른 사람을 친절하게 환대하거나 영접하는 사람으로' 주인' 의미로 바뀌었다(Dunn).

특히 여기서 바울이 가이오를 자기가 머물렀던 주인으로 언급한 것은

서신을 겐그레아나 또는 마게도냐의 어떤 지역에서 것이 아니라

고린도에서 쓰고 있었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뒷받침 하고 있다(Harrison).

 

 

에라스도 - '에라스도'(에라스토스) 고린도 시의 '재무관'으로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오이코노모스' '극장 지배인', '관리인'( 12;42) 뜻을 지니고 있으며,

 

( 12;42 주께서 가라사대 지혜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자가 누구냐)

 

여기서는 '도시의 재산 관리인'이라는 뜻으로 쓰여졌다.

이것을 통해서 있는 것은 그가 고린도에서 영향력을 끼치는 인물이었음에 틀림없다는 사실이다(Murray).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고린도교회가 사회적 저명인사들을 포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본절에서의 에라스도가 다른 신약성경에서 언급되어 있는 에라스도와 같은 인물이라는 근거는 없다. (Bruce, Lenski, Murray, Harrison, Godet, Meyer).

 

( 19:22 자기를 돕는 사람 중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사람을 마게도냐로 보내고 자기는 아시아에 얼마간 있으니라;

 

딤후 4:20 에라스도는 고린도에 머물렀고 드로비모는 병듦으로 밀레도에 두었노니)

 

당시 이름은 아주 흔한 이름이었다.

 

형제 구아도 - 이의 헬라어 '쿠아르토스' '네번째'라는 의미를 가진 로마식 이름이다.

 

바울은 그를 '형제'(아델포스)라고 부르고 있다.

 

아마도 이것은 에라스도나 더디오의 형제라기보다는 그리스도 안의 형제를 의미하는 것이다.

(Godet, Dunn).

 

(1:13 형제들아 내가 여러 너희에게 가고자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고전 1:1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

 

고후 1: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

 

1:2 함께 있는 모든 형제로 더불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1:12 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1: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살전 1:4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살후 1:3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며)

 

구아도에 대해서는 절에 기술된 이외에 자세한 것은 없다.

왜냐하면 성경 어디에서도 그에 대한 기록이 이상 없기 때문이다.

 

한편 바울이 여기서 그를 언급한 것을 통해 그가 로마교인들과 관계를 갖고 있었던 사람으로서 로마교인들이 이미 그를 알고 있었음을 있다(Meyer).

 

이상과 같은 본절에 언급된 사람들은 모두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로서

특별히 고린도시에서 영향력이 있었음을 있다.

 

이러한 사실은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고전 1:26)라고 일반적으로 알고 있었던 고린도 교회에 대해서 예외를 보여 주는 것이다.

 

이는 복음이 신분의 고하(高下) 초월하여 역사한다는 사실을 입증해 준다.

 

( 24:14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 16:24] (없음).

 

(킹제임스 흠정역)에는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모두와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본절의 내용이 한글 개역성경 본문에 실려있지 않고 다만 난하주(爛下主)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모든 이에게 있을 지어다 아멘'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영역성경에서도 본문의 축도가 RSV, NIV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KJV, Living Bible에는 나타나 있다.

 

이것은 어떤 사본을 인용했느냐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난다.

 

사본 중에서 체스터 베티 파피루스 II(P46), 알렉산드리아 사본(Codex Alexandrinus),

시내 사본(Codex Sinaiticus), 바티칸 사본(Codex Vaticanus),

에브라임 수리아어 사본(Codex Ephraemi Syricirca)등을 위시한

대표적인 사본들에는 본절이 나와 있지 않다.

 

그러나 베자 사본(Codex Bezae),

보엘네라안 사본(G) 개의 사본에는 축도가 나타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