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거듭난 삶 2019. 10. 26.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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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 많은 도마

 

: [ 20:24-29] 열두 제자 중에 하나인 디두모라 하는 도마는 예수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가로되 내가 손의 못자국을 보며 손가락을 못자국에 넣으며 손을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27) 도마에게 이르시되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손을 보고 손을 내밀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8)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9)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 20:24] 열두 제자 중에 하나인 디두모라 하는 도마는 예수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다두모라 하는 도마 - '도마'(Thoma) '쌍둥이' 뜻하는 아랍어인데, '디두모' 이에 대한 헬라어 번역이다.

 

본래 사람의 이름이 그의 생의 행적을 결정짓는다고 수는 없지만 '디두모' 원래 의미가 '둘의', '이중적인' 뜻인 것과 과거에 그가 보여준 대단한 열정에 비해,

 

(11:16 디두모라고도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

 

너무도 나약한 현재의 대조적인 모습은 우연의 일치치고는 의미심장하다.

 

요한은 도마가 어떤 사정 때문에 주님이 현현했을 함께 있지 못했는지는 전혀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도마가 제자들의 증거를 대하는 태도 등으로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가로되 내가 손의 못자국을 보며 손가락을 못자국에 넣으며 손을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미루어 보아 그는 예수의 십자가 처형으로 인해 낙담과 좌절에 빠져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 20: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가로되 내가 손의 못자국을 보며 손가락을 못자국에 넣으며 손을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 마리아도 그랬던 것처럼 '주를 보았다' 진술은 '주께서 부활하셨다' 의미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18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손의 못자국을 보며 손가락을 못자국에 넣으며 손을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 도마는 다른 제자들이 여인의 말을 믿지 않았던 것보다 강한 의혹을 나타내 보이고 있다.

 

그는 살아나신 주를 눈으로 뿐만 아니라 손으로 몸의 상처 자국을 만져봐야 믿을 있다고 증거를 요구한다.

 

도마가 보인 강한 의혹 때문에 그는 많은 주석가들에 의해 '비관론자', 또는 '회의주의자'라는 혹평을 받아왔다.

 

그가 그토록 강한 의혹을 나타내 보인 것은 예전의 충성스러운 모습(예수께서 눈에 보이고 만져질 , 11:16) 떠올려 다소 이해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언정 보지 않고 믿지 못하기는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였다는 ( 16:11) 고려한다면 도마만을 '회의주의자' 매도하는 것은 공평하지 못하다고 있다.

 

( 16:11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도마가 주님의 손의 못자국과 옆구리의 창자국을 만져보지 않고는 믿을 없다고 했을 , 그것은 예수의 부활이 유령의 출현을 것에 근거한다는 일부 적대자들의 이의 제기를 반영한다고도 있다.

 

그러나 결국 도마는 예수의 부활하신 몸을 보고 그분이 바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분임을 확인했으며 끝내 믿음에 이르게 되었고 일부 적대자들의 문제 제기는 이유없는 것으로 기각된 것이다.

 

한편 어떤 학자들은 못이 사람의 체증을 지탱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내세워 십자가 처형 시에 밧줄이 사용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나 확실한 근거가 없는 추측일 뿐이다.

 

 

[ 20: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여드레를 지나서 - 23절과 24 사이에 시간적 간격이 길지 않았다면 '여드레' 지난 지금은 주님께서 처음 현현하신 날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다음 일요일이었을 것이다. (Barrett, Buitmann, Tenney, Robertson).

 

예수께서 부활하신 갈릴리로 가서 제자들을 만나실 것을 약속하셨고

 

( 26:32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또한 천사들을 통해 사실이 재차 통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 16:7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제자들이 여전히 유대에 머물고 있었던 것은, 그들의 믿음이 부족한 탓도 있었지만 도마를 기다리기 위함이 었으리 라고도 짐작할 수있다.

 

본절에 보면 이제는 도마를 포함한 모든 제자들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전과 같이 문은 닫혀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문을 닫아놓은 이유로 유대인에 대한 두려움이 언급되지 않고 있다. 혹자는 이것에 대해, 지금은 성령이 주어진 다음이기 때문에

 

(22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그런 어려움이 문제로 등장할 없었다고 본다.(Hwenton).

 

이번에도 예수는 '평강' 기원하는 것으로 말씀을 시작하고 있다.

 

그의 죽음은 제자들에게 깊은 좌절과 슬픔을 가져다주었지만

그의 부활은 제자들에게 기쁨과 평강을 가져다주었다.

 

슬픔은 잠깐이었지만 평강온 영원할 것이다.

 

비록 주님은 그들 곁을 떠나지만 성령께서는 그들을 강하고 담대하게 붙들어 것이기 때문이다.

 

(22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 20:27] 도마에게 이르시되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손을 보고 손을 내밀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손을 보고 - 주님의 이번 현현은 마치 도마 사람을 위함이었던 것처럼 도마와의 대화만이 언급되고 있다.

 

주님께서는 단도직입적으로, 도마가 믿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제시한 사항들에 대해 증명해 보일 용의(用意) 있음을 밝히고 있다.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의심을 나타내었을 예수는 자리에 계시지 않았으므로, 도마는 예수께서 자신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는 것을 듣고 놀라움에 사로잡혔을 것이다.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되라 - 여기서의 강조점은 예수의 부활에 대한 믿음은 기독교의 핵심이라 만큼 중요한 내용이라는 사실에 있다.

 

주님의 분명한 요구는 '믿는 ' 되라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요청이 아니라 명령이다.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명령은 그가 보여준 회의에 대한 책망이 아니라 아직 온전한 믿음에 이르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가 굳건한 믿음을 갖게 되기를 간곡히 원하는 주님의 애정에 근거한 것임에 분명하다.

 

이러한 주님의 태도는 마침내 도마를 감화시켰고 그로부터 위대한 신앙 고백을 이끌어 내었다.

 

(28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한편 본문에서 '되다' 해당하는 헬라어 '기누' 대해서 몇몇 학자들은, 가끔 사용되는 용법

 

'자신을 보이다' 의미로 해석한다.(Lenski, Barrett).

 

(고전 15:58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안에서 헛되지 않은 앎이라;

 

3: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살전 1:5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확신으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2:7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히 권위를 주장할 있으나 도리어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이럴 경우 믿는 자가 되라는 말은 ' 믿음을 보이라' 바꿀 있다. 이런 해석도 의미는 있다.

 

참다운 믿음을 가진 자는 믿음의 참됨을 내보여 있어야 하기 매문이다.

 

 

 

[ 20:28]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 - 도마가 주님이 허락한대로 그분의 손과 옆구리의 상흔(傷痕) 확인해 보았는지에 대해서는 언급됨이 없이 바로 감격에 겨운 신앙 고백이 서술되고 있다.

 

아마 도마는 너무나 분명하고 확연한 현실을 보는 것으로 충분했을지도 모른다.

 

한때 도마가 증거를 요구하며 믿음이 없는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지금 그의 입을 통해서 나온 신앙 고백은 과거의 실수를 만회할 만하며,

 

'나의 선생님'이라고 고백한 마리아의 신앙 고백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다.

 

(16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의 모습 속에서 생전의 주님을 재발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한 것인데,

 

* 참조 : (16-17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아버지 너희 아버지, 하나님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이는 예수의 부활의 의미를 진정으로 이해했다는 의미이다.

 

본서 마지막 부분에 기록된 결정적인 고백은, 처음 예수의 본원적(本源的) 정체가 하나님이심을 밝혀는 것으로 시작했던 것과 병행되면서,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말씀은 하나님이시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진면모를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십자가에 박혀 죽은 예수는 인간이기 이전에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영원한 말씀 로고스였고 지금은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가졌던 영광으로 다시 영화롭게 되신 분이다.

 

(17:5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 20:29]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 주님의 말씀은 도마의 믿음의 동기에 대해 지적하지만, 그것은 책망이 아니라 교훈적인 의미에서 이해해야 것이다.

 

주님의 말씀에서 일단은 도마의 믿음이 인정되고 있다. 그러나 그의 믿음은 것에 근거해 있다. 주님이 바라는 바는 믿음이지만

 

믿음에 이르는 과정은 크게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보아야 믿는 형태이며 믿음은 현상적으로 증명될 있는 모종의 이적을 요구하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고 있다.

 

다른 하나는 보지 않고, 어떠한 이적적인 사건에 의하지 않고도 믿음을 갖는 것이다.

 

물론 도마를 비롯하여 제자들은 전자의 경우라고 있다.

그러나 바람직한 것은 후자의 경우이다.

 

이것은 요한의 독자들 그리고 이어지는 세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주는 것이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올 직접 목격하였고 결과로 믿음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제자들에게만 주어진 특정한 상황에 기인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부활하신 예수를 직접 보지 않고서도 성도들은 제자들이 가졌던 믿음과 동일한 믿음을 가질 있다. 왜냐하면 믿음에 있어서 '보는 ' 불가결의 조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완성된 .구약 성경이 예수를 증거하고 또한 성령께서 친히 예수를 증거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의 모습을 직접보지 않아도 '믿고 말할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한다. (벧전 1:8).

 

 

 

*주여,

예수님의 부활을 보지 않았음에도 우리들에게 믿음을 갖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복음의 축복 속에 살게 하심도 감사하고

더구나 주님을 만날 있는 소망의 축복도 주심을 감사하옵니다.

그리고 베드로, 바울, 등등의 제자들도....

오늘 1025 광화문광장의 축복 주심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