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그 생물들이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돌릴 때에

거듭난 삶 2023. 4. 17.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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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좌에 계신 하나님과 그 영광 4

 

성 경: [4:7-11]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8)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하고

9) 그 생물들이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돌릴 때에

10)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4:7]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

 

사도 요한이 본 네 생물의 형상은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1:4,6,10,14에서 언급된 것과 유사하다.

 

(1:4 내가 보니, 보라, 북쪽에서 회오리바람과 큰 구름과 스스로를 감싸고 있는 불이 왔는데 그것의 주변에 광채가 있었으며 그것의 한가운데 곧 그 불의 한가운데로부터 호박색을 띤 것 같은 것이 나오고,

 

6 그들이 각각 네 얼굴을 가졌고 각각 네 날개를 가졌더라,

 

10 그들의 얼굴 모습으로 말하건대 그들 넷이 사람의 얼굴과 오른쪽으로 사자의 얼굴을 가졌으며 또 왼쪽으로 소의 얼굴을 가졌고 또 독수리의 얼굴을 가졌더라,

 

14 또 그 살아 있는 창조물들이 달려갔다 돌아오는 것은 마치 번개가 번쩍이며 나타나는 것 같더라)

 

여기서 네 생물의 모습에 대한 해석은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다.

 

(1) 이 네 생물들이 피조물의 대표자로서 사자는 용기를, 송아지는 힘을,

사람은 지혜를, 독수리는 속도를 나타낸다고 주장한다(Swete).

 

(2) 네 생물의 신분이 하나님의 속성을 암시하는 것으로

 

사자는 '왕권'

 

(왕상 7:29 가로대들 사이의 테두리들 위에는 사자와 소와 그룹들이 있었고 또 가로대들 위에 받침대가 있었으며 사자와 소들 밑에는 얇게 만들어 단 어떤 것이 있었더라;

 

10:20 또 거기에 사자 열두 마리가 그 여섯 계단의 이쪽과 저쪽에 섰는데 어떤 왕국에도 이같이 만든 것이 없었더라;

 

대하 9:18-19 그 왕좌에는 여섯 계단이 있었고 왕좌에 고정된 금 발받침이 있었으며 앉는 곳의 양쪽에는 팔걸이가 있었고 팔걸이들 옆에는 사자 두 마리가 서 있었더라.

19) 또 거기에 사자 열두 마리가 그 여섯 계단 위에 이쪽과 저쪽에 섰는데 어떤 왕국에도 이같이 만든 것이 없었더라),

 

송아지는 ''

 

(왕상 7:25 그것은 열두 마리 소 위에 서 있었는데 세 마리는 북쪽을 향하고 세 마리는 서쪽을 향하며 세 마리는 남쪽을 향하고 세 마리는 동쪽을 향하였더라. 그 소들 위에 바다를 놓았고 그 소들의 뒷부분은 다 안으로 향하게 하였더라),

 

사람은 '영성'

 

(1:27 이처럼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하나님의 형상으로 그를 창조하시고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창조하시니라),

 

독수리는 '신속한 행동'을 나타낸다고 주장한다(Johnson).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한 듯하다.

 

피조물의 대표적인 네 생물들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주권과

피조물의 섬김과 경배를 시사한다(Ford, Mounce).

 

 

 

[4:8]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하고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6:2에서처럼

 

네 생물들이 여섯 날개를 가졌다는 것은

본래 '날개'는 속도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아(Ford)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신속하게 성취함을 상징한다(Mounce, Lenski).

 

(18:10 그분께서 그룹을 타고 나셨으니 참으로 바람의 날개들을 타고 나셨도다;

 

10:16 그룹들이 갈 때에는 그 바퀴들도 그들 곁에서 갔고 그룹들이 자기 날개들을 들어 올리고 땅을 떠나 올라갈 때에는 그 동일한 바퀴들도 그들 곁에서 돌이키지 아니하였으며)

 

한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계속해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지혜와 통찰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

 

네 생물들은 쉬지 않고 찬양하고 있다.

여기서 '거룩하다'라고 세 번 언급하는 것은 히브리식 최상급을 표현하는 것이며

 

(6:3 하나가 다른 하나에게 크게 외쳐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주여, 그분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유대교와 초대 교회에서는 삼위일체와 관련하여

예배에서 의식상의 표현으로 나타났다(Mounce, Ford).

 

이러한 거룩에 대한 최상의 표현은 어떤 것에도 존재의 기반을 갖지 않으시고

자신에게만 절대적으로 의존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함의 속성을 시사한다(Johnson, Ford, Lenski).

 

(3:14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곧 스스로 있는 자니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스스로 계신 이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느니라, 하라),

 

한편 '전능하신 이여'1:8에서 이미 언급된 하나님의 칭호로

하나님의 완전한 능력을 시사한다(R.Martin).

 

(18:14 주에게 너무 어려운 일이 있느냐? 생명의 때를 따라 내가 정한 때에 네게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한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라,

 

32:27 보라, 나는 주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니라. 내게 너무 어려운 일이 있느냐?;

 

19:26 예수님께서 그들을 보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불가능하나 하나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니라, 하시니라),

 

또한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란 칭호도 이미 언급된 것으로

 

(1:8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앞으로 오실 주 곧 전능자께서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과 끝마침이라, 하시더라)

 

하나님의 영원한 속성을 나타낸다.

이러한 하나님 칭호의 찬양은 하나님께서

피조물처럼 시,공의 제한을 초월한 분임을 강조하며 섭리하시고

보호하시며 인도하시는 자이심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러한 찬양의 내용들은 피조물들이 영원토록 본질적으로 찬양해야 할 것임을

나타냄과 동시에 피조물의 사명을 암시한다.

 

(148:1-14 너희는 주를 찬양하라. 너희는 하늘들에서부터 주를 찬양하며 높은 곳에서 그분을 찬양할지어다.

(2) 그분의 모든 천사들아, 너희는 그분을 찬양하라. 그분의 모든 군대들아, 너희는 그분을 찬양할지어다.

3) 해와 달아, 너희는 그분을 찬양하라. 빛을 내는 모든 별들아, 너희는 그분을 찬양할지어다.

4) 하늘들의 하늘들아, 또 하늘들 위에 있는 물들아, 너희는 그분을 찬양할지어다.

5) 그것들이 주의 이름을 찬양할지니 그분께서 명령하시매 그것들이 창조되었도다.

6) 또한 그분께서 그것들을 영원무궁토록 확정하셨으며 또 없어지지 아니할 칙령을 만드셨도다.

7) 용들과 모든 깊음들아, 너희는 땅에서부터 주를 찬양하라.

8) 불과 우박과 눈과 수증기와 그분의 말씀을 성취하는 폭풍과

9) 산들과 모든 작은 산과 열매 맺는 나무와 모든 백향목과

10) 짐승과 모든 가축과 기는 것들과 날아다니는 날짐승과

11) 땅의 왕들과 모든 백성들과 통치자들과 땅의 모든 재판관들과

12) 청년들과 처녀들과 노인들과 아이들

13) 곧 그들은 주의 이름을 찬양할지어다. 그분의 이름은 홀로 뛰어나시며 그분의 영광은 땅과 하늘보다 높도다.

14) 그분께서 또한 자신의 백성의 뿔 곧 자신의 모든 성도들의 찬양을 높이시나니 자신에게 가까이 있는 백성 이스라엘 자손의 찬양을 높이시는도다. 너희는 주를 찬양하라).

 

 

 

[4:9] 그 생물들이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돌릴 때에

 

그 생물들이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돌릴 때에 - 본절은 앞절에서 네 생물들이 찬양한 내용의 반복이다.

 

'영광과 존귀와 감사'는 하나님의 신적 속성에 대한 찬양이며,

'세세토록 사시는 이'8절의 하나님의 영원한 속성을 나타내는 칭호 중

'장차 오실 자'에 대한 강조와는 달리 하나님 자체의 본질적 영원성을 나타낸다.

 

한편 '돌릴 때에'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탄 도수신'

연속적인 반복의 개념보다는 '그들이 돌릴 때마다'라는 간헐적인 때를 의미한다.

이는 영적 존재인 네 생물의 주요 임무가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것임을 암시한다.

 

 

 

[4:10]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이십 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

 

본문은 네 생물들이 찬양할 때에 하늘의 영적 존재들인 장로들도

함께 찬양함을 묘사한다.

여기서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위엄 앞에 드리는

절대적 경외와 존경을 나타낸다.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 본문 역시

절대적 권위와 위엄을 가지신 이에게 복종과 경배를 묘사하는 표현이다.

 

본문의 '면류관'은 영적 존재인 이십 사 장로들이 승리하여 받은 화관으로

영광과 승리와 존귀를 나타낸다.

 

(4절 또 그 왕좌 둘레에 스물네 자리가 있고 내가 보니 그 자리들 위에 스물네 장로가 흰옷을 입고 앉아 있는데 그들이 머리에 금관을 썼더라;

 

2:10 네가 장차 당할 그것들 가운데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마귀가 너희 중에서 몇 사람을 감옥에 던져 넣어 너희를 시험하리니 너희가 열흘 동안 환난을 당하리라. 너는 죽기까지 신실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따라서 본문은 이십 사 장로들이 소유한 모든 영광과 승리도

모두 하나님께 돌려져야 함을 시사한다(Johnson).

 

(33:6-9 주의 말씀으로 하늘들이 만들어지고 하늘들의 모든 군대가 그분의 입의 호흡으로 만들어졌도다.

7) 그분께서 바닷물을 함께 모아 무더기같이 쌓으시며 깊음을 곳간들에 두시는도다.

8) 온 땅은 주를 두려워하고 세상의 모든 거주민은 그분을 두려워하며 설지어다.

9) 그분께서 말씀하시매 그것이 이루어졌으며 그분께서 명령하시매 그것이 굳게 섰도다;

 

102:25 주께서 옛적에 땅의 기초를 놓으셨사오며 하늘들은 주의 손이 이루신 작품이니이다;

 

2:10-11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과 땅 아래 있는 것들의 모든 무릎이 예수라는 이름에 굴복하게 하시고

11) 또 모든 혀가 예수 그리스도는 주시라고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4: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우리 주 하나님이여 - 본문의 찬양 칭호는 당시의 황제에 대한

절대권을 표시하던 것이었다.

그러나 요한은 환상 속에서 이십 사 장로들이 드리는 찬양 호칭을 통해서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주가 되심을 명백히 한다.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 이십 사 장로들의 두번째 찬양 내용은

9절에서와 같이 영광과 존귀를 받기에 합당하신 것에 대한 찬양이다.

 

(9절 보라, 사탄의 회당에 속한 자들 곧 스스로 유대인이라 하나 유대인이 아니고 거짓말을 하는 자들이 있는데, 보라, 내가 그들이 와서 네 발 앞에 경배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한 줄을 알게 하리라)

 

단지 9절에서의 '감사''능력'으로 바뀌어 나타날 뿐이다.

이는 모든 피조물들이 증거하는 창조의 능력을 가리킨다.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 헬라어 본문에는 원인이나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 '호티'('때문에')가 있어 본문이

하나님께서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이유를 나타낸다.

 

여기서 '지으신지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크티사스'

히브리어 '바라'('창조하다')에 해당하는 동사로

 

(1:1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

 

()에서 유()로의 창조를 나타낸다. 이는 본문이 하나님의 천지 창조에 대한

이십 사 장로의 찬양임을 나타낸다.(Mounce, Lenski)

 

(1:16 이는 그분에 의해 모든 것이 창조되었기 때문이라.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왕좌들이나 통치들이나 정사들이나 권능들이나 모든 것이 그분에 의해 창조되고 그분을 위하여 창조되었노라;

 

148:5 그것들이 주의 이름을 찬양할지니 그분께서 명령하시매 그것들이 창조되었도다),

 

이처럼 창조는 하나님의 모든 역사 가운데서 가장 기본적인 것이며

모든 피조물들의 감사의 기초가 된다(Bengel).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

 

'주의 뜻대로 있었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 토 델레마 수 에산'은 문자적으로

'당신의 뜻을 위해 있었고'라는 의미로 이는 창조 목적을 나타낸다.

,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창조되었음을 시사한다.

 

여기서 '있었고'의 헬라어 '에산'은 미완료 시제로

만물의 창조 방법을 말하는 것으로 만물의 현상이

하나님께 그 존재 기반을 두고 있음을 시사한다(Alford, Johnson).

 

한편 '지으심을 받았나이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크티스데산'

부정 과거 시상으로 만물의 존재가 하나님에게서 시작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따라서 본절은 '하나님의 뜻을 위해 만물이 존재하고 창조되었음'

나타내는 이십 사 장로의 찬양이다(Johnson)

 

(고전 8:6 우리에게는 오직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나니 모든 것이 그분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분 안에 있노라. 또 한 주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나니 모든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재하고 우리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재하느니라;

 

1:16 이는 그분에 의해 모든 것이 창조되었기 때문이라.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왕좌들이나 통치들이나 정사들이나 권능들이나 모든 것이 그분에 의해 창조되고 그분을 위하여 창조되었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