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를 판단하지 말라
성 경: [롬 14:5-9] 혹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지니라
6)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9)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니라.
[롬 14:5] 혹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지니라
본절에서는 날에 대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인식을 다루었다.
바울은 사람들이 날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일반적인 성향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는 특별히 종교적 의무와 관련하여 안식일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모든 인류 사회가 길일(吉日)과 흉일(凶日)을 구분하여 날들에 의미를 두고 있기 때문에, 복음이 전하여졌을 때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분명히 있고, 비록 복음이 전해진 사회에서도 성도의 자유 문제와 연관지어서 안식일 문제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
(갈 4:9 그러나 이제 너희가 하나님을 안 뒤에 혹은 하나님께 알려진 뒤에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 원리로 돌아가 다시 그것에 종노릇 하려 하느냐?;
골 2:16 그러므로 아무도 먹는 것이나 마시는 것으로 인하여 또 거룩한 날이나 월삭이나 안식일에 관하여 너희를 판단하지 못하게 하라)
▶ 혹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 본 구절은 사람들이 날에 대해 일반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성향을 말하고 있는데, 어떤 날들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여 다른 날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말한다.
▶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 헬라어 본문에는 '같게'(alike)라는 말이 없다.
모든 날을 같게 여긴다는 것은 모든 날들이 똑같이 하나님을 섬기는 데 사용되어야 할 것으로 여긴다는 것이다(Bruce).
이에 바울의 가르침대로 따른 자도 있었지만, 종교적 양심으로 인하여 따르지 못하는 자들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바울은 날들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시키면서 '날'에 대한 논쟁을 마무리 짓고자 하였다.
▶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지니라 - 이는 다른 사람이나 종교적인 규례로부터 영향을 받지 말고 주체적인 신앙으로 판단하고 결정하라는 것이다.
이처럼 사도 바울이 모든 날이 주의 것이라고 가르치고, 날들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음으로써 어떤 자들은 이러한 자유 함을 육체의 기회로 삼거나,
(갈 5:13 형제들아, 너희가 부르심을 받아 자유함에 이르렀으나 오직 자유를 육신의 기회로 쓰지 말고 사랑으로 서로를 섬기라),
또 어떤 이들은 이로 인해 걸림돌이 되었고,
(고전 8:9 오직 너희의 이 자유가 약한 자들에게 결코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어떤 이들은 약한 자들을 업신여기기까지 하였다.
그럼에도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하라고 하는 것은, 신앙은 먼저 자신과 하나님과의 사이에서 결단할 것을 중요하게 여겨 무엇보다도 그 관계가 우선되어야지 다른 사람과의 결단이 그보다 우선되거나 중요하게 여겨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롬 14:6]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 흠정역(KJV)에는 '날을 중히 여기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해 중히 여기지 않으며’
(and he that regardeth not the day, to the Lord he doth not regard it)라는
문구가 첨가되어 문맥에 어울리도록 했지만, 헬라어 본문에는 나와 있지 않다.
이처럼 바울이 이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이유를 추정해 보면,
(1) 문맥상 생략해도 뜻이 통하는 것으로 여기고 구차하게 언급하지 않았거나,
(2) 날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야 한다는 논지는 앞에서 언급하였기 때문에 생략했거나,
(3) 독자들이 날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상태를 지적하여 날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주를 위해서라면 가능하다는 것을 교훈하기 위한 것으로 보여진다.
▶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 여기서 '주를 위하여'(퀴리오;'주에게')와 '하나님께 감사한다'(유카리스 테이 토 데오)라는 문구가 반복되는데,
이는 사람들의 눈에 '약한 자'가 됐든지, '강한 자'가 됐든지 간에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인정하심과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의식하면서 자신의 주체적인 삶을 영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가리킨다(Harrison).
사도 바울은 먹는 것에 대해 자유로울 것을 가르치면서,
(딤전 4:3 이들이 혼인을 금하고 음식물을 삼가라고 명령할 터이나 음식물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사 진리를 믿고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게 하셨느니라),
이러한 문제로 교회가 나누어지거나, 헛된 논쟁에 빠지지 않기를 바랐던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지금까지 언급하였던 음식과 날에 대한 로마 성도들의 태도를 일단 정리한다.
[롬 14: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
바울은 앞에서 음식 문제와 종교적으로 날짜를 지키는 문제 등, 구체적으로 로마 교회 성도들의 두 가지 생활 영역에서 일어난 문제들을 언급하였다.
(1-6절 믿음이 약한 자를 너희가 받아들이되 의심에 찬 논쟁은 하지 말라.
2) 어떤 사람은 자기가 모든 것을 먹을 수 있다고 믿고 다른 사람은 약하여 채소를 먹느니라.
3) 먹는 자는 먹지 아니하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아니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그를 받으셨느니라.
4) 다른 사람의 종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냐? 그의 서거나 넘어짐이 그의 주인에게 달려 있은즉 참으로 그가 세워지리니 하나님은 능히 그를 서게 하실 수 있느니라.
5) 어떤 사람은 한 날을 다른 날보다 귀히 여기고 다른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 사람은 자기 마음에서 완전히 확신할지니라.
6)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해 중히 여기고 날을 중히 여기지 아니하는 자도 주를 위해 중히 여기지 아니하며 먹는 자도 주를 위해 먹나니 이는 그가 하나님께 감사드리기 때문이라. 먹지 아니하는 자도 주를 위해 먹지 아니하며 또한 하나님께 감사드리느니라).
바울은 교회 생활 영역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하여 성도들이 취해야 할, 생활 원리들을 소극적인 면과 적극적인 면으로 구분해서 종합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먼저 성도들이 취해야 할 소극적인 생활 원리 중
첫 번째는, 성도는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자기를 위하여'란 말은 하나님의 법과 반대되고,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리와 대조되는 것으로서 현세의 연락(宴樂)과 육체적인 즐거움을 취하는 '자기'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 구절은 바울의 신앙고백이며,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노라. 그러나 내가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느니라. 나는 지금 내가 육체 안에서 사는 삶을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사노라)
다메섹 도상에서의 회심 사건 이후 바울의 일관된 삶의 원리였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자기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사는 불신자의 삶과는 정반대의 삶이다.
아담의 타락 이후 인간의 역사는 자신의 욕심으로 점철(點綴)된 역사였다.
이러한 불신자의 삶의 세계와 대조를 이루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의 삶은 값으로 사신 바 되었고,
(고전 6:19-20 도대체 무슨 말이냐? 너희 몸이 너희가 하나님에게서 받은바 너희 안에 계신 성령님의 전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니
20) 주께서 값을 치르고 너희를 사셨느니라. 그런즉 하나님의 것인 너희 몸과 너희 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자신의 유익을 위한 삶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기 때문이다(Calvin).
성도의 소극적인 생활 원리 중
두 번째는, 성도는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다'는 것이다.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우데이스 헤아우토 아포드네스케이'로, 성도의 삶은 죽음도 자신에 의하여 주관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손에 예속된 것임을 나타낸다(Olshausen).
바울은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 10:39)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서 그의 생명을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는
'주를 위해서 죽는 것도 유익하다'(빌 1:20, 21)고 고백하고 있다.
바울은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이러한 삶의 원리들을 권면하기에 앞서 자신이 먼저 주를 위한 일관된 일사각오(一死覺悟)의 삶을 살고 있었으며, 따라서 자신이 말씀에 순종하므로 얻는 확신에 근거하여 다른 성도들을 향한 권면에서도 성도의 삶의 원리를 근본적인 모든 문제의 해결점으로 선언한 것이다.
[롬 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 바울은 본절에서 좀 더 본질적이고 적극적인 의미에서 성도의 내적인 삶의 원리들을 제시하고 있다.
성도의 삶의 중심은 그리스도이다(Tholuck).
그리스도는 성도들의 생(生)과 사(死)에 있어서 궁극적인 표준이 되신다(Hendriksen).
이 말씀은 앞절 '자기를 위하여 사는'(헤아우토 제)과 대조되어 '투 퀴리우'('주의 것')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 흘린 값으로 산 것이 되었음을 가리킨다.
따라서 성도가 자기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사용되거나 자신을 스스로 주장할 수 없으며, 하나님께로 부터 받은 몸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고전 6:19-20 도대체 무슨 말이냐? 너희 몸이 너희가 하나님에게서 받은바 너희 안에 계신 성령님의 전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니
20) 주께서 값을 치르고 너희를 사셨느니라. 그런즉 하나님의 것인 너희 몸과 너희 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여기서 우리는 바울이 왜, 음식과 절기의 사소한 문제를 가지고 생사(生死)의 문제까지 끌어올려 말하려고 하는지 그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Lenski).
그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일상의 사소한 문제일지라도, 그것은 궁극적으로 주께 대한 믿음과 청지기적 사명으로부터 출발하여야 함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도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주를 위해서 하여야 한다.
(고전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롬 14:9]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니라
▶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 이 말씀은 앞절에 대한 확증적 표현으로서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죽은 자의 주가 되시고, 다시 살으심은 산 자의 주가 되기 위해서임을 말하는 것이다(Bruce).
서두에 '이를 위하여'(에이스 투토)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구속의 목적이 의미하는 바를 설명해 준다.
예수께서 산 자와 죽은 자의 주(主)가 되시기 위하여 친히 죽으시고 부활하심은, 우주적인 만물에 대한 통치권과(Kasemann) 신자에게 있어서 모든 인생의 주권자가 되심을 주장하는 근거가 된다(Calvin).
(고전 15:3-4 내가 또한 받은 것을 무엇보다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그것은 곧 성경 기록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죽으시고
4) 묻히셨다가 성경 기록대로 셋째 날에 다시 살아나시고;
고후 5:15 그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은 살아 있는 자들이 이제부터는 자기를 위하여 살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를 위하여 죽었다가 다시 일어나신 분을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한편 '다시 살으셨으니'로 번역된 헬라어 '카이 에제센'은 '그가 소생하셨다'란 뜻으로, 죽음에서 일어나신 역사적 사실을 가리키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의 신성(神性)과 구세주(救世主)로서의 예수님과 만물에 대한 그의 주권을 입증하는 것이다(Harrison).
또한 그것은 새로운 삶이 주를 위해서 예비되었으며 그의 성도에 대한 주권과 능력이 영원함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Calv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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