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후서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먹지 말게 하려 함이라

거듭난 삶 2025. 9. 30.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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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함에 대한 책망

 

성 경: [고전 4:6-7]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가지고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한 말씀 밖에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먹지 말게 하려 함이라

7)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뇨.

 

 

[고전 4:6]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가지고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한 말씀 밖에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먹지 말게 하려 함이라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가지고 본을 보였으니 - 바울과 아볼로의 모범은 단순히 개인의 영광과 칭찬만을 기대하는 행위가 아니다.

 

여기서 '본을 보였으니''적용하다', '변형시키다',

 

(3:21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또는 '변장하다'의 뜻으로,

 

(고후 11:13-14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14)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사용된 'μετασχηματίζω 메타스케마티조'의 능동태로서 '의지를 가지고 자신에게 적용시켰다'는 의미를 가진다.

 

다시 말해서 바울은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는 규범을 자신과 아볼로의 관계에 적용(適用)시켰다는 것이다.

 

바울이 앞에서 사용한 여러 비유들에 의하면 그들은 때로 심는 자와 물주는 자,

 

(3:5-9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7)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

8) 심는 이와 물 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터 닦는 자와 건축자, 등과 같은 협력자로서의 공동체적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이 서로를 판단하지 않는 것은 자신들에게 주어질 칭찬을 의식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지켜보며 살아가는 수많은 성도들과, 무엇보다도 모든 것을 판단하실 분은 주님 자신이라는 것을 의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의 지도자적 자질을 더욱 빛내준다.

 

또한 규범을 자신들에게 적용시켰다는 바울의 변호는 고린도 교회에 나타난 분쟁이 선한 사도들(예를 들면 구체적인 언급이 생략됨 베드로와 같은 자)에 의한 것이 아님을 지적함과 동시에 그들의 당파 싸움을 부추기는 거짓 교사들이 있음을 고발하고 있다.(J. Calvin).

 

기록한 말씀밖에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먹지 말게 하려 함이라 -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파당과 분쟁이 그들의 자화자찬(自畵自讚)과 교만에 기인한 것이라고 파악한다.

 

특히 '교만해지다'는 다른 곳에서 오직 한 번만 사용되고 있는 것에 비하여,

 

(2:18 누구든지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 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저가 그 본 것을 의지하여 그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하고)

 

본 서신에서는 여러번 반복되어 나타나고 있다.

 

(18-19 어떤 이들은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지 아니할 것 같이 스스로 교만하여졌으나

19) 그러나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의 말을 알아 볼 것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 보겠노니;

 

5:2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물리치지 아니하였느냐;

 

8:1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13: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여기서 교만은 스스로 '자랑한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들은 자기가 따르는 지도자(바울이나 아볼로)를 자랑함으로써 서로 속에서 도무지 발견할 수 없는 분쟁을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다.

 

하나를 자랑함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또 하나에 대한 시기와 멸시는 스스로도 해결할 수없는 파벌 싸움에 휘말리게 하였다. 이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분쟁과 파벌을 초래한 교만을 말씀 안에서 잘라내는 일뿐이다.

 

그런데 위에서 '기록한 말씀'이란 무엇을 가리키는가?

고린도 교회 내의 분쟁에 관하여 바울 자신이 본 서신 1장에서부터 지금까지 기록해 모든 교훈들을 의미하는가?

 

(1:1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30-31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31)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

 

3:16-21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18) 아무도 자기를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미련한 자가 되어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19)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니 기록된 바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궤휼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20) 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

21)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아니면 교만하지 말며 겸손할 것에 대하여 교훈하고 있는 구약성경 말씀을 의미하는가?

 

(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22:4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57:15 지존무상하며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

 

이에 대해서는 전자의 견해를 취함이 타당하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교훈한 것 중에 인용한 말씀이 많고,

 

(1:19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31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

 

2:9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3:19-20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니 기록된 바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궤휼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20) 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

 

뿐만 아니라 본절에서는 '우리에게 배워'라는 말까지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록한 말씀'이란 바울이 본 서신 1장에서부터 지금까지 기록해 온 모든 교훈을 의미한다.

 

 

[고전 4:7]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뇨

 

바울은 세 가지의 질문을 통하여 고린도 교회의 교만을 지적하며 왜 교만하지 말아야 하는가 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제시한다.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 - 본절에서 '구별하다'는 말은 '추려내다' 또는 '다르게 하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Lenski, Barrett).

 

첫 번째 질문은 그들 가운데서 다르게 나타나려 하는 자들이 있음을 시사한다.

바울은 이 질문 가운데서 두 가지의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1) 그는 고린도 교인들이 모두 같은 죄인들이기 때문에 교만할 수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근신할 것을 요구한다.

 

(2) 또 하나는 그들이 하나님의 은사와 은혜를 동일하게 입었기 때문에 어느 누구라도 하나님 앞에서 특혜(特惠)를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을 지적한다.

 

그들은 하나님으로 부터 받은 은사를 우월감의 근거로 삼음으로 인하여 마치 자신들에게 주어진 은사들 조차도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듯 한 착각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나 인간들의 욕심을 자랑하는 거짓 은사와는 달리 하나님의 은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평등한 것이다. 설령 구별된다 할지라도 그 판단의 기준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사도는 첫 번째 질문을 통해서 '누가 너희를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 등으로 구분지었느냐(1:12)'는 반문을 한 것이다.

 

사도의 이 같은 질문에는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1:13)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동일한 자들이 아니냐'(1:2)라는 책망이 담겨 있는 것이다.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 인간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기 때문에 자랑할 만한 아무런 정당성도 가질 수가 없다.

 

그들이 가진 지식, 혈통, 재산, 생명, 심지어 신앙까지라도 아무 공로 없이 하나님께로부터 선물로 받은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자랑은 무익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같이 자랑하느뇨 - 세 번째 질문은 두 번째 질문과 유사한 것으로서 '모든것이 하나님께로 부터 받은 것인데 어찌하여 스스로가 잘나서 그와 같은 것을 누리고 있는 양 자랑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바울은 점진적인 질문의 방법을 통하여 그들의 교만이 남들과 비교하는 것에서 출발하여 스스로 하나님의 영광을 탈취(奪取)하는 오만한 자리에까지 이르게 되었음을 지적한다.

 

그들은 은사를 포함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권리와 공로를 자랑함으로써 자신뿐만 아니라 이웃들 조차 함께 판단하는 악행을 저질렀다.

 

그리스도인의 참된 겸손은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졌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칼빈(Calvin)은 타락한 인간의 본성 속에서 겸손할 수 있는 선한 의지를 발견한다면 그것조차도 하나님의 은혜 덕분임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