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생활

거름생산

거듭난 삶 2010. 1. 30.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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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1.29 09:00

 


민간의 뒷간


뒷간은 인간의 대소변을 해결하는 장소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거름으로 재탄생시키는 중요한 곳이다. 우리말에 ‘똥간’이라는 말이 있다. 똥간은 말 그대로 똥을 모아두는 곳인데, 부돌만 놓은 뒷간은 그러한 경향이 강하다. 부돌도 없이 맨바닥에 배설을 한 뒷간은 더욱 그러하다. 이런 유형의 뒷간의 특징은 한쪽에 재와 부삽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즉, 부삽으로 똥과 재를 섞어 한쪽에 쌓아두는 것이다. 큰 옹기로 똥독을 만들어 땅에 박아 놓은 뒷간도 많았다. 그런데 이러한 뒷간도 대소변을 걷어내기 편하게 하기 위해 독의 한쪽을 드러내었고, 한쪽에는 똥바가지와 장군을 비치해두었다. 소변만을 모으는 뒷간도 따로 있었다. 보통 남자들이 기거하는 공간과 가까운 곳에 웅덩이를 파서 독을 묻거나 물이 세지 않게 웅덩이를 파두었다. 서유구가 쓴 『임원경제지』(1827)에는 오줌 웅덩이 만드는 법과 오줌이 오래 썩혀야 좋음을 적고 있다. 오줌독에 오줌이 쌓이면 언제든지 나를 수 있게 오줌바가지와 장군이 한편에 놓여 있다. 한편, 조선시대 반가에는 안채에 안뒷간, 사랑채에 바깥뒷간이 있어 남녀가 따로 사용하였는데, 안뒷간의 거름은 열매가 많이 열리는 오이 등의 채소밭에 뿌리면 열매가 잘 열린다고 여기었다. 여성의 생산성에 기인한 유감주술이다. 전통 뒷간은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지만, 척박한 산촌에서는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고, 전북 장수 하늘소마을과 같이 유기농법이 행해지는 곳에서는 친환경 뒷간에 의한 농사가 행해지고 있다.


 

 


거름생산을 위한 똥돼지간의 비밀


『삼국지三國志·위지魏志』동이전 읍루조에 ‘사람들이 더럽게도 집 한가운데 뒷간을 만들고 그 주위에 모여 산다.’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뒷간을 나타내는 한자 ‘(환·혼)’자는 돼지豕를 사방에서 에워싼 모습口으로, 뒷간을 겸한 전통적 돼지우리를 표현한 글자이다. 즉 오늘날 제주도 집안에서 똥돼지를 키우는 통시를 나타낸다. 그런데 똥돼지는 제주도뿐만 아니라 과거 전남 진도·완도·신안·곡성, 경남 충무·거창·함양, 함북 회령, 강원도 양구 등 연안지역과 산간지역에서도 키운 사실을 보면, 우리나라 전 지역에서 성행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위에서 언급한 『삼국지三國志』의 기록은 중국인들이 우리 민족을 더러운 야만민족으로 표현하기 위한 의도가 깔려 있는데, 중국 산뚱성의 똥돼지 우리는 안채 앞쪽에 설치되어 있어 오히려 기록과 더욱 일치한다. 그러나 똥돼지를 집안에 키우는 숨은 지혜를 모르고 한 말이다. 똥돼지의 그 역사는 길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똥을 가지고 돼지의 먹이로 주었을까? 그것에 대한 해답은 몇 가지 측면에서 찾고자 한다.


 

 


첫째, 똥돼지를 키운 가장 큰 이유는 거름생산을 위함이다. 이때 똥돼지는 거름을 만드는 매개체이자 주체자이다. 사람의 똥을 받아먹기 위해 돼지는 돼지우리를 여기저기 다니면서 자신이 누운 똥과 주인이 넣어 준 짚을 발로 뭉개고, 시간이 지나면서 뭉갠 똥과 짚은 어우러지면서 양질의 퇴비로 뒤바뀐다. 주인은 돼지발에 밟히면서 자연스레 섞인 ‘돼지두엄’을 걷어내고, 우리 안에 새로운 짚을 넣고 또다시 일정한 기간이 지나 ‘돼지두엄’을 꺼내고 새로운 짚을 넣어주는 행위를 되풀이한다. 돼지우리에서 걷어낸 ‘돼지두엄’은 밭 한쪽에 모아놓고 필요할 때마다 거름으로 쓴다. 그래서 똥돼지를 키우는 돼지우리는 고기를 만들기 위해 기르는 돼지우리 보다 크며, 돼지가 머무르는 우리와 뒷간의 거리를 가장 멀리 둔 것도 그 때문이다.


둘째, 근래까지 섬이나 산간의 밭농사 지역과 중국 북방의 건조한 밭농사 지역에서 똥돼지를 키운 이유는 그들 지역의 토양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화학비료의 등장으로 똥돼지의 역할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나, 섬이나 산간의 땅들은 대부분 척박하기에 화학비료는 오히려 시간이 경과되면 땅의 지력을 떨어뜨려 작물을 재배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똥거름은 땅을 거름지게 만들고 지력을 향상시키어 지속적으로 작물의 재배가 가능하게 만들어주기에 주민들은 양질의 거름을 얻기 위해 똥돼지를 계속해서 키운 것이다. 제주도처럼 바람에 날리는 푸석푸석한 화산재의 보리밭에는 똥이야말로 최상의 거름이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소똥, 개똥, 닭똥, 말똥 가릴 것 없이 주워 퇴비를 만든 것도 그 때문이며, 말똥을 얻기 위해 자신의 밭에 말들을 가두어 하룻밤 지내기도 하였다.


 

 


셋째, 똥돼지를 키운 이유는 아무것이나 잘 먹는 잡식성인 돼지를 똥을 먹여 키우는 방법을 이용한 것이다. 똥은 개들도 잘 먹어 그 개를 ‘똥개’라고 불렀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똥’이라는 놈이다. 사람이 섭취한 음식의 30%는 인체에 흡수되고, 70%는 몸 밖으로 배설되는데, 그 배설물은 영양덩어리이다. 그러나 똥은 바로 거름으로 쓸 수 없고, 일정기간 재, 쌀겨 등과 섞어 발효한 이후에야 거름이 된다. 또한 미생물의 왕성한 번식을 위해서는 충분한 산소가 공급되어야 하는데, 지붕이나 문을 달지 않아 뒷간에 통풍시설이 잘 되게 하였다. 부잣집 뒷간에 지붕이나 대문을 달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결국 인류는 영양덩어리를 바로 거름으로 쓸 수 없는 상황에서 그것을 돼지에게 먹이고, 돼지의 배설물을 다시 거름으로 쓰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고안해 낸 것이다.


넷째, 똥돼지를 집 안에 키운 이유를 뱀의 피해로부터 방어하기 위해서라고 보기도 한다. 산간지역이나 뱀을 신성시하는 제주도에서는 상대적으로 뱀의 피해가 많아, 잡식성인 돼지를 키워 뱀의 접근을 막은 것이다. ‘뱀’을 신으로 섬기는 민간에서 제물로 돼지고기를 쓰지 않으며, 뱀과 돼지를 상극相剋으로 여긴다.

똥돼지 사육은 잡식성인 돼지의 특징을 안 인류가 영양덩어리인 똥을 먹여 키우는 방법을 고안해낸 것이고, 또한 똥돼지를 키움으로써 거름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경제적인 효과가 부합되어 오랜 세월동안 존재한 것이다. 결국, 똥돼지는 하나의 돼지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거름을 생산하여 작물 재배가 가능하게 해주고, 수확한 작물은 인간의 양식이 되고 그 양식의 일부는 똥이 되어 돼지의 먹이가 되는 하나의 순환고리를 생성한 것이다.


 

만인의 오곡이 윤회하는 사찰의 해우소


필자는 한국적인 것을 뽑으라고 하면 사찰의 뒷간을 손꼽는다. 다행이 전남 순천의 ‘순천선암사측간’(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14호)과 강원도 영월의 ‘영월보덕사해우소’(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32호)의 뒷간이 전통 사찰 해우소의 양식을 잘 보존하여 문화재로 지정되었지만, 서구의 화장실에 밀려 사라진 수많은 사찰의 전통 해우소가 지금도 아쉽다. 선암사 화장실은 우리나라 사찰 가운데 아름답고 가장 오래되어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맞배지붕에 마루바닥을 댄 목조건물은 T자형 모습을 하고, 아랫층의 큰 주춧돌은 큰 뒷간을 버티고 있다. 일반인이 생각하는 뒷간의 모습이 아닌지라 선암사를 찾은 사람들이 ‘뒤ㅅ간’이라는 글자를 보지 않는다면 뒷간으로 인식하지 못할 정도이다. 뒷간 내부로 들어가면 남녀용으로 구분되는 문이 있고, 각각 문 안으로 들어가면 벽이 있을 뿐 문이 없는 뒷간이 앞뒤로 정렬되어 있다.


사찰의 해우소에는 변의 냄새를 막기 위해 낙엽이 비치된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선암사의 경우도 그러한데, 떨어진 낙엽은 인분과 뒤섞여 인간 배설물의 냄새를 막아주고 퇴비로 거듭난다. 일반 도로변의 낙엽이 모아져 쓰레기 매립지나 화훼단지로 나가는 것과는 달리 자연으로 되돌아가고 중요한 거름으로 다시 되살아나는 것이다. 특히 변을 누고 뿌리는 은행잎은 더러운 인간의 배설물에 향을 돋아나게 하고 여름철에도 냄새를 막아주었다. 선암사 뒷간에서 나온 똥거름은 사찰의 채소밭이나 민간에서 이용하였다. 한편, 전남 순천 송광사의 해우소도 연못 안에 있는 건물로, 외부인이 보아서는 뒷간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자연 환경이 아름답다. 그런데 1993년 뒷간을 다시 지으면서 내부를 8칸에서 12칸으로 늘렸고, 또한 칸마다 문을 달아 해우소의 원형이 변형되었다. 강원도 영월 보덕사의 해우소는 상량문을 통해 고종 19년(1882년)에 지은 건물임을 알 수 있다. 보덕사는 의상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한때 단종이 영월로 유배되자 ‘노릉사’라고 불리다가 보덕사로 개칭한 월정사의 말사이다. 해우소 내부는 총 12칸으로, 남녀 각각 6칸의 변기가 배치되어 있다. 보덕사 해우소 층계 옆에는 톱밥을 모아두어 똥오줌을 버무리는데 사용하고, 벽의 널판에는 구멍을 내어 냄새를 빼는 환기통을 만들었다. 대소변이 모아지는 일층은 판벽을 두르고, 문을 달아 필요시 배설물을 운반하도록 하였다.


 

우리나라의 어느 환경운동가에 따르면 우리나라 4천만 중 수세식을 쓰는 사람을 1천만 잡아서 셈을 해도 그 사용한 물이 547억ℓ가 넘는다고 한다. 그 양은 헤아릴 수 없는 엄청난 양이다. 근래에 대소변에 따른 물의 양을 조절하는 손잡이가 나타나기도 하였지만 그것으로도 물의 낭비는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전통방식에 따른 선조들의 지혜가 새삼 존경스러워지는 때이다.   



글·사진 | 정연학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  
사진·선암사, 연합콘텐츠, 들녘출판(골똥 서울똥, 저 안철환)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