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생활

[스크랩] "햇빛 전기로 불을 밝히다" (정현숙/문화저널)

거듭난 삶 2009. 4. 16.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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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숙의 잘 사는 이야기] "햇빛 전기로 불을 밝히다"


등록일: 2007-02-14 16:42


오래된_가게.jpg (125.9 KB)

“햇빛 전기로 불을 밝히다”
글_정현숙


요즘 우리 집은 상당히 문화수준이 높아졌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반자연적인 부분의 비중이 커졌다. 전기 때문이다. 동네에서 살다가 흙집을 짓고 웃동네인 산으로 온 것이 2004년 초. 동네에서 1키로 정도 떨어진 이 집에는 전기가 닿지 않았다. 원래부터 전기 없는 생활을 꿈꾸어 온 건 아니지만, 없은들 어떠랴 이참에 잘 됐네 하는 심정으로 집을 지었다.

겨우 문을 달고 좀체 안 마르는 흙바닥을 말리려고 한 이틀 불을 땠을 때였다. 도무지 집 같지 않던 덩치가 드디어 집과 방의 느낌을 주기 시작했다. 도배도 안 한 바닥이 뜨뜻해지면서 덜 마른 흙에서 김이 나고 있었다. 집 짓느라 고달팠던 몸을 내려놓으니 축축하긴 해도 온돌의 그 뜨뜻한 느낌이 너무 좋았다. 내친 김에 집에 가서 이불 한 채를 가지고 왔는데, 바닥이 덜 말라서 이불이든 신문지든 놓기만 하면 습기가 올라와 축축해지는데도 몸이 편하고 기분이 좋았다. 야, 우리 오늘 여기서 한번 자 보자!

그날 이후 우리는 아랫동네 집에서 하룻밤도 더 자지 않았다. 그대로 웃동네 산에 깃들어 버렸다. 때로 혼자 집을 지키는 일이 있더라도 어진이 조차 한 번도 내려가지 않았다. 집을 지으면서 워낙 고생을 해서인지 아직 젖은 흙바닥에 신문지 깔고 몸을 뉘어도 그지없이 편했고, 뜨끈뜨끈한 온돌에서 지지고 있으면 그 열기는 보일러방의 얕은 뜨거움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두꺼운 온돌바닥 속에서 올라오는 은근한 뜨끈함은 뼈 속 깊숙이 닿아 온 몸을 덥히고 찌든 피로를 풀어 주었다.

아무튼 그날부터 우리는 전기가 없는 집에서, 하느님이 불을 켜면 일어나 움직이고 하나님이 불을 끄면 눈감고 자는 산속 생활을 시작했다. 산이라 겨울 해는 참으로 짧았다. 달랑 촛불 하나에 의지하고 전화도 전기도 없이 그 흔한 011도 안 터지는 곳에서, 눈이라도 내리면 그대로 갇혀서 긴긴 겨울을 났지만, 첫해는 동네에 쓰던 집이 그대로 있어서인지 몰라도 불편하다는 느낌도 없이 지나갔다.

그러기를 2년 반. 빌려 쓰던 집을 돌려주고 살림살이를 챙겨보니 전기가 없으면 못 쓰는 무용지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전기밥솥, TV, 전자레인지, 에어컨, 선풍기, 다리미, 드라이기, 전기장판 등은 우리가 애초에 쓰지도 않고 아예 없으니 문제가 아닌데, 일상생활에서 전기는 공기처럼 이미 우리 삶에 깊이 스며 있었다. 당장 냉장고, 세탁기에서부터 핸드폰(외출했을 때만 쓰더라도), 노트북, 가스오븐, 믹서기, 오디오, 청소기 등등. 그리고 남편이 쓰는 드릴 등의 연장들, 농사에 쓰이는 여러 가지들이 충전을 해야 하거나 전기를 꽂아 쓰는 것들이 많았다. 집 지을 때 산 발전기를 가끔씩 돌려 정 아쉬운 순간을 해결하긴 했지만 그 마구 들어가는 경유에다 온 산을 흔드는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며칠에 한 번 쓰기도 어려웠다.

그 세월을 한 삼 년 살았다. 남편은 전기 없음에 전혀 구애받지 않고 늠름했지만 적어도 된장 팔아 먹고살겠다고 사업자등록까지 한 마당에 팩스나 이메일은 고사하고 전화 한 통 못 받는 시스템은 도무지 말이 안 되었다.

요즘 세상에 전화와 전기가 없다는 걸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사람들은 전기가 없다고 일찌감치 정보를 주어도 그 상황을 잘 이해하질 못했고, 전기가 없으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안 되는지도 이해하지 못했다. 전기가 없다고 하면 제일 많이 하는 질문이 텔레비전을 못 봐서 어떡하냐는 거였다. 그래서 나는 아 그것이 우리 시대 문화구나 짐작했다. 우리 집 사정을 뻔히 아는 사람들마저도 자칫 방심하면, 청소기 한번 돌리자거나 그거 냉장고에 넣어 두라거나 일 많은데 밥은 전기밥솥에 하라는 소리가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온다. 머리 말리게 드라이기 없느냐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 달리 할 말이 없는 나는 ‘콧구멍에다 코드를 꽂을까요?’하고는 웃는다.

도시 사람들이 우리 집에 와서 느끼는 간극이 무척 크듯이, 우리가 도시에 갔을 때, 또는 도시생활을 하는 주부들을 볼 때 느끼는 거리도 엄청 크다. 시골 온 지 불과 10년밖에 안 되는 시간이고, 큰 길에서 1키로밖에 안 들어가는 깊지도 않은 산언저리에 전기 없이 산 것이 겨우 한 3년 지났을 뿐인데, 게다가 같은 시대에 살고 있고 공간적으로 그저 약간 비켜 서 있는 정도일 것 같은데, 전주시든 정읍시든 하다못해 칠보면 사람들까지도 만나면 우리와는 사뭇 다른 세상에 산다는 느낌을 서로 주고받는다.

한동안은 도시에 사는 주부들을 만났을 때 어떤 수준에서 얘길 해야 내가 외계인같이 보이지 않을까 그 수위를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었다. 시청율 높은 드라마도 히트곡도 나라를 흔드는 뉴스도 우리에게는 별로 의미가 없었다. 도대체 접할 기회가 있었어야지. 오늘 정읍에서 온 형이 어진이에게 야, 이 노래 너 몰라? 알지? 하고 몇 번 채근을 하니 이어진 웃으며 왈, ‘형 나는 그런 노래가 이 세상에 있는지도 몰라.’ 한다. 그렇지.  

우리 집 밤이 아직 깜깜하던 그 시절, 어쩌다가 밤길을 나서 정읍이라도 가면, 낮인 듯 밝은 길거리가 너무 낯설어 지금 밤이 아닌가? 잠시 헛갈리다가 아, 전깃불! 하고 생각이 미치면 밤인데도 낮같이 환한 그 세상이 너무 낯설어 갑자기 현기증이 느껴지기도 했었다.

한전은 수익자부담이 원칙이라서 200미터 넘는 거리는 미터당 3만원 가까운 비용을 우리가 물어야 하니 동네에서 우리 집까지 거의 3천만 원이 들어야 했고, 햇빛전기를 쓴다 해도 그와 비슷한 정도로 비용이 들었다. 에너지관리공단에서 주관하는 태양광 10만호 보급 지원사업은 70%를 보조해 주지만 계속 신청해도 탈락되었다. 그래서 한전과 전화국을 드나들면서 왜 안 넣어 주나 어떻게 하면 전기가 오나 한동안 궁리했다. 사실은 전기보다 전화가 더 긴급했다. 전기는 그래도 크게 아쉽지 않았지만 전화는 정말 필요했다.

어떻게 어떻게 우리 집을 방문한 정읍시장님도 전기와 길은 시에서 해 줘야 한다 했지만 그건 그냥 의견일 뿐, 외지에서 달랑 귀농한 일개 농사꾼에게 시에서 예산까지 들여가며 전기를 넣어 줄 리는 없었고, 한전은 어떻든 돈을 줘야 전기를 넣는다고만 했다. 그렇다면 농업용 전기라도 끌어 보자 했는데 이번에는 동네 사람들이 자기네 땅에 전봇대 박고 지나가는 것은 곤란하다고 반대했다. 그 와중에 미리 돈을 받은 업자는 요리조리 눙치다가 끝내는 일부 돈을 떼어먹고 아직도 입 싹 닦고 있다. 나쁜 사람! 2006년도 내게 주어진 최대의 과제, 내 수행의 주제는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말자였지만 아직도 그 숙제를 다 한 것 같지는 않다. 못난 나!


아무튼 전기 없는 우리 집은 불편함과 수입이 발생할 수 없는 치명적인 장애를 주긴 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의미 있는 경험 또한 하게 했고 본질적인 사고를 하는데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무엇보다 깜깜한 밤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귀중한 체험이었다(사실 도시사람들은 우리 집에 와서 많은 체험들을 한다고 하지만 우리에게는 생존과 생활 그 자체이므로 체험이라는 말은 솔직히 맞지 않다).

우리 집의 밤은 정말 어둡고 고요했다. 새까맣게 어두운 밤 속에서 우리 가족은 매일 밤 깊은 잠을 푹 잤고 전날의 피로는 자고나면 풀렸다. 겨울이면 온 식구가 일곱 시경부터 잠자리에 들 때도 있을 정도로 밤은 그냥 잠자는 시간이었다.

어쩌다가 지인들이 찾아오면, 어두운 방에서 촛불 하나 밝히고 차를 마시며 얘기를 나눴는데, 오래 알았던 사람이든 어제 본 사람이든 심지어 처음 보는 사람까지도 뜻이 잘 통하고 마음이 잘 모아지는, 그리고 속 깊은 정이 오가는 흐뭇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오래 차를 마시다가 누구 한 사람 소변이라도 보러 나갔다 오면 하늘에서 주먹만한 별이 쏟아진다고 얼른 나가보라는 말을 꼭 달고 들어오곤 했다.

그랬다. 깜깜한 밤에 따라오는 그 다음 선물은 밤하늘의 쏟아지는 별과 반딧불 무리, 그리고 아름다운 촛불의 향연이었다. 생각하면 다른 방법이 있기도 했으련만 그냥 전기 없으면 촛불 켜야 하는 줄만 알고 우리는 마냥 촛불만 켜고 살았다. 가끔 촛불을 밝히는 멋에 대학 때부터 몇 자루씩 사다놓고 쓰던 갈멜수녀원의 양초를 아예 한 박스 사다놓고 빨간 색 파란 색 골라가면서 촛불을 켰는데, 돈으로 계산하면 밝기와 관계없이 꽤 비싼 불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색깔도 아름다운 큼직한 양초를 기다란 탁자 위에 몇 자루씩 늘어놓고 켜는 호사를 마음껏 누리며 전기없는 불편함을 달랬다. - 나중에는 액체파라핀을 넣어서 호롱불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다가 올 여름 뜻하지 않게 우리 나름의 頻岵奐綬?마련하게 되었는데, 갑자기 오시게 된 친정 어머니 때문(덕분?)이었다. 눈도 잘 안 보이고 귀도 잘 안 들리시는 어머니는 재작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상태가 급격히 안 좋아져서 혼자서 챙겨 드실 수도 없는 지경이 되어 결국 멀고 먼 우리 집에까지 오시게 되었다. 흐린 날이면 더 잘 안 보여서 우울해지시는 어머니 때문에 미국에 사는 큰 언니가 국제전화를 엄청 해가면서 나한테 정보를 묻고 머리 터질 정도로 공부해서 1차는 포터블 세트를, 2차는 70와트짜리 태양광 패널 4개와 인버터, 콘트롤러까지, 게다가 덤으로 열여덟 개짜리 정원등 세트까지 비행기편으로 우송해 줬다.

인터넷 뒤져가며 어렵게 전기 저장용으로 딥싸이클 배터리를 사고, 설명서 들여다보며 여러 날 걸려 어렵게 어렵게 설치를 마치고 불을 켜던 날, 시끄러운 발전기 소리 없이 사방이 조용한데 환하게 켜진 불은 정말 감동스러웠다. 겨우 등 하나밖에 켤 수 없어, 그것만 되면 냉장고도 돌아가고 선풍기도 돌아가는 줄 아신 어머니께는 참으로 실망스러운 결과였지만, 촛불을 아무리 많이 켜도 이를 수 없는 밝기의 불이 밤마다 환하게 켜지는 현실은 참으로 꿈만 같았다. 물론 흐린 날이 이어지면 전기도 굶어야 하는 날이 다시 오기도 했고, 지금은 겨울이라 일조량이 워낙 모자라 등 하나만 밝혀도 몇 시간 안 되어 불이 꺼져 버리기도 한다.

다리가 시려 여름에도 방에 불을 때야 주무시던 어머니는 아무리 해도 전기장판 하나 못 쓰는 전기를 아쉬워하시다가 끝내 추석을 핑계대고 집으로 돌아가셨다. 방이 더우면 가슴이 답답하고 방이 추우면 다리가 시리니 전기장판이 아니면 해결 못할 상황이었던 셈이다. 친정도 외딴 집인데다 혼자서 밥을 못해 드시니 여동생이 매일 한 시간 넘는 거리를 달려가서 밥과 국을 챙겨드리고 돌아간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에 돌이 얹힌 것 같이 마음이 무겁지만, 그래도 어둠을 벗어나 밝은 밤을 갖게 된 그 환희는 우리 귀농역사에서 굉장히 의미 있는 한 시점이 되었다. 전기로 환해지는 것도 놀라왔지만, 라이터로 불을 붙여야 켤 수 있었던 가스레인지가 스위치만 돌려도 켜질 때, 볶은 깨를 갈려고 조심스레 믹서기를 돌렸는데 윙- 하고 돌아갈 때, 마치 그런 기계를 처음 써 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정말 놀랍고 신기했다.

남의 집에 갈 때면 으레 휴대폰이며 노트북을 가져가서 염치 불구하고 충전부터 시키던 동냥전기 생활에서도 드디어 해방되었다. 지금도 어디 가면 습관적으로 콘센트 위치를 살핀다. 배터리가 다 되어 쓸 수 없던 기계들을 콘센트에 꽂으면 마치 기절이라도 했다가 깨어나는 것처럼, 신기하게 다시 살아나 불이 켜지고 윙 소리가 나면서 제구실들을 하곤 했는데, 그런 걸 보면 꼭 만화 같은 데서 로봇이 연료를 공급받고 힘이 살아나 상황을 역전시키곤 하던 장면들이 떠올랐다. 그렇게 해서 빵빵하게 충전된 휴대폰을 가지면 이젠 됐구나 하고 마음이 든든해졌다.

아무튼 그렇게 우리는 전기를 갖게 되었고, 밤에도 빙 안이 환한 세상에 다시 살게 되었다. 우리가 돈을 많이 벌거나 세상이 좋아져서 태양광 패널의 값이 많이 싸지면 우리도 냉장고와 세탁기를 쓰고, 방 두 개와 부엌, 마당까지 그리고 멀리 화장실까지 동시에 불을 켜도 마음이 조마조마하지 않는 날이 올 수 있을 것이다. 태양열로 물을 덥혀 쓰는 목욕탕도 만들어 쓸 생각이다.

대한민국 인구의 99.999퍼센트가 펑펑 쓰는 전기를 달랑 불하나 켜면서, 또 전화도 없이 도시에서는 숨 쉬듯이 쉽게 쓰는 그 흔해빠진 인터넷조차 닿지 않는 채 그토록 어렵게 사는 것이 뭐 잘하는 거냐고 반문할 지도 모른다. 글쎄 무슨 의미가 있을까. 선문답 잘 하는 우리 남편이라면, 세상은 원래 그렇게 거꾸로 사는 겁니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 2,30년 후면 석유가 고갈되고 조만간 유가가 100달러를 갈 것이라는 불안한 예측에다, 물과 전기가 문제되는 날이면 순식간에 지옥이 될 도시의 고층건물이나 아파트들을 보면, 지구가 태양과 함께 있는 한 영원히(?) 그것도 거의 공짜로 밤을 밝힐 수 있는 우리 집의 햇빛전기는 얼마나 든든하고 마음편한 시스템인지 모른다. 풍력전기기술이 더 나아지면 바람전기로 보완해 볼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본질적으로, 우리의 그 편리한 전기에너지의 근원이 무엇인가 생각하면, 그리고 앞으로 그 에너지가 얼마나 오래 갈까 생각하면, 더 중요하게는 그 편리해진 에너지로 인해 지구가 얼마나 병들어 있고 우리 삶이 얼마나 자연을 거슬러 있는지를 생각하면, 깜깜한 밤의 세상을 다시 경험하고 겨우 한 등 밝힌 불로 문명의 의미를 되짚어 보는 것이 단연코 의미 없는 일은 아닐 것이다.

출처 : 오두막 마을
글쓴이 : 나무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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