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로 영화를 보다│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
자전거로 영화를 보자는 발칙한 생각이 누군가에 의해 제안됐다. 두 발과 두 바퀴로 다니는 떼거리, ‘발바리’의 몇몇 젊은이들이 자전거 발전기 제작을 맡았다. 생명과 평화를 함께 생각하는 에코토피아 캠프에서 선보일 계획을 세우고 만들기 시작한지 한 달만에 멋진 작품을 완성했다.
자전거 페달을 밟으면 운동에너지가 생겨 자전거가 앞으로 나간다. 자전거를 공회전 시키면 운동에너지가 따로 쓰이지는 않으면서 계속 생겨나는 원리다. 이 때 생기는 운동에너지를 전기로 바꿔 쓸 수 있다면? 상상은 바로 날개 돋친 듯 여러 가지 즐거운 일상을 생각해 본다. 헬스장에서 열심히 운동하는 사람들의 자전거 공회전은 자전거도 여럿이니 그 헬스장의 불을 켜고도 남겠지. 전기를 잡아두고 전압을 안정시켜 세밀하게 흘려보낼 수만 있다면 집안에서 운동도 하면서 자가발전기로 손전화, 엠피쓰리, 노트북 같은 기기를 충전시켜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들을 말이다. 실제로 외국에서는 이렇게 쓸 수 있는 축전 연결 장치를 다양한 형태로 응용해서 쓰이고 있다.
내가 만들어내는 동력발전기. 섬이나 산장에서 비상전원으로 쓸 수 있다면 멀리서부터 전기를 끌어오지 않아도 되고, 가정이나 공동체에서 자급하는 에너지로 쓸 수 있다. 텔레비전 동력을 이렇게 연결해놓으면 텔레비전 중독도 고칠 수 있지 않을까.
페달을 밟아 회전력이 생기면 자전거 전체가 발전기다. 자전거 바퀴가 돌아가면 교류전기가 생기는데 이를 직류로 바꿔야 전기를 모을 수가 있다. 이때 12볼트 수준으로 전압을 안정화시키는 정류장치를 거치면 배터리에 평균 100와트 정도가 축전 된다. 이렇게 축전된 전기를 실생활에 쓰이는 전압인 220볼트로 바꿔주는 인버터를 거치면 영화가 상영되는 원리다.
낮부터 알아서들 다른 일 보다가 돌아가며 자전거로 축전을 시켜두었다. 한쪽에서는 열심히 자전거를 탄다. 타다가 힘 빠지면 다른 사람이 돌리고. 그렇게 여러 사람이 저축하듯 모은 동력이 드디어 벽면에 영화로 변해 나타나는 순간, 다들 소리없는 탄성을 질렀다. 그런데 아쉽게도 영화가 시작된지 오래지 않아 갑자기 영상이 끊기고 소리만 나왔다. 아무래도 몇해전 유럽 에코토피아 바이크투어에서처럼 자전거 여러대를 연결해야 영화 한편을 온전히 볼 수 있겠다 싶었다. 30시간은 축전해야 2시간을 볼 수 있다는데, 천천히 쉬어가며 돌린 거라 자연방전 된 탓도 있을 것이다. 결국 음향만 자전거 발전기로 연결했다. 그래도 지금 보는 영화 소리는 땀흘려 만든 전기로 듣고 있다는데 만족해야 했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원리를 이해하고 하나씩 조립하듯 회로를 연결해나갔다. 샀는데 맞지 않는 부품들 빼고, 순수 제작비만 20만원 정도. 거의 도맡아서 하다시피 한 고철의 이야기다. “원리는 간단한데 막상 만들려니 쉽지 않더라구요. 어떻게 만드는지, 부품은 어디서 구해야 하는지 몰라 애먹었어요. 생각보다는 효율이 떨어졌어요. 좀더 연구가 필요한 거 같아요. 한달 꼬박 몸바쳤더니 한동안은 꼴도 보기 싫을 것 같아요. 일단 만들었으니 필요한 곳에 빌려주려고요.”
누군가 적정기술로 취재를 한다고 했을 때 “자전거야 말로 진정한 적정기술이지”라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자전거 축전기 때문이 아니라 자전거의 원리가 사람의 건강한 노동력을 만들어내고 그 에너지만을 사용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단순하고 건강한 원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양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더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어느 농사꾼의 적정기술│양주의 농사꾼 김준권 님
귀농지기들이 언젠가부터 재미있는 이름의 물건들을 이야기 했다. 이름하야 풀밀어, 딸깍이, 긁쟁이. 세 가지 다 주로 김맬 때 쓰는데 조금씩 용도가 다르다. 풀밀어는 앞바퀴가 굴러가면 뒤따라 작은 호미처럼 생긴 긁쇠가 고랑을 만들기도 하고 작은 풀뿌리를 캐내기도 한다. 용도에 따라 뾰족한 것도 있고 볼이 넓은 게 있어서 갈아 끼울 수 있게 되어 있다. 자갈밭에는 날을 좁은 걸로 달았다. 앞부리에 돌이 걸리면 딸깍딸깍하면서 움직여준다. 쇠가 갖은 유연성이다. 이래야 돌부리에 걸려도 부러지지 않는다.
이름은 귀농운동본부에서 붙였지만, 양주 농사꾼 김준권 님이 소개했다. 1991년 도농교환프로그램으로 스위스에서 1년간 농장에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이 농기구가 우리의 호미처럼 널리 보급되어 있었다. 그곳 사람들은 쭈그려 앉지를 못하니 농기구들이 모두 서서 쓰게 되어있다. 호미는 쭈그려서 하루종일 밭 매려해도 오랫동안 작업할 수가 없어 한계가 있는데, 서서 한번씩 밀면 쉽게 일을 할 수가 있다.
이 세 가지 도구를 그대로 가지고 들어왔다. 오자마자 백 개를 만들어서 농사짓는 사람들한테 나눠줬다. 그 때 돈으로 한개 만드는데 십 만원씩 들었던 셈이니 돈 천 만원이 들었다. 돈 벌려고 한 것도 아니고 대량으로 쓰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그렇게 나누는 것이 좋았다.
그이의 적정기술은 바퀴 하나에도 베어있다. 속이 비고 가벼운 플라스틱으로 만들었는데 무거운 고무보다 잘 나가고 펑크가 날 염려도 없다. 바퀴 가운데가 튀어올라온 것도 잘 굴러가게 하는 장치다. 크기도 그렇다, 너무 작으면 꺼떡거려서 잘 나가지를 않고 너무 크면 세밀한 작업이 안된다. 오랫동안 햇빛도 받고 비도 맞는 농기구의 나무자루도 틀어지지 않게 오래 쓸 수 있도록 맞춰 끼웠고, 이 도구를 끄는 사람의 키에 맞춰 날의 높이를 조정할 수 있게 되어있다. 이모저모 볼수록 사람을 배려한 인간적인 도구이다.
“우리나라가 기술이 없어서 못 만드는 건 아니잖아요. 보면 다 만들 수 있지. 그렇다고 농사꾼들이 바로 이런 생각을 해내기는 쉽지 않거든요. 아, 이게 보기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렇게 손잡이나 쇠끝 구부러진 각도에 다 지혜가 있어요. 처음 만든 사람은 쉽게 나온 게 아닐 거예요. 알맞은 작업자세로 오랫동안 피곤하지 않게 일할 수 있도록 고안된 거거든요.” 이것만 잘 써도 김매는 건 일도 아니란다. 제 때에 쓰기만 하면 열사람 몫을 한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적정도구도 사람의 몸과 맘에 맞아야 그 쓰임을 다할 수 있다. 요즘 유기농한다는 사람들도 삐딱빼딱 아무렇게나 심는다면 이걸 쓸 수가 없다. 풀매기도 파종 때부터 어떻게 할지 염두해두고 해야 한다.
풀이 뾰쭉하게 내밀 때가 가장 좋다. 풀밀어나 딸깍이로 밀면 여린 뿌리가 드러나 풀이 아예 나지를 못한다. 어느 정도 자랐을 때는 긁쟁이로도 하지만 일단 5센티미터 정도 났다면 이미 뿌리도 그만큼 여러가닥이 난 셈이다. 자연과 사람에 대한 오랜 경험이 함께 어울려야 비로소 이 도구가 적정도구가 되어 안성맞춤 쓰이는 것이다. 그래서 김중권님은 이걸 쓸 사람들이 많으면 좋지만 이걸 쓸 사람들이 별로 없다는 게 아쉽다.
그는 어려서부터 쭈욱 농사를 지어온 농사꾼이다. 7천평이나 되는 넓은 농장을 전부 유기농으로 지으면서 일을 돕는 이는 한 사람 뿐이라기에 걱정의 말씀을 드렸더니 이 정도는 몸에 맞게 일을 하신단다. 늘 일이 많지만 일의 적정한 양을 몸과 자연의 때에 맞춰 아는 지혜로 살아오셨기 때문이리라.
농장 한쪽에는 작은 동물농장이 있다. 농장에서 타고 다니곤 하는 말잘듣는 당나귀와 염소와 양이 한곳에 모여있다. 이 양들은 1년에 한번씩 털을 깎아 실을 내곤 해왔다. 1997년 일본에 갔을 때 처음 양털로 실을 잣는 뉴질랜드 발물레를 보고는 가지고 들어와 요즘 기술을 더해 작은 모타로 돌아가는 물레도 만들었다. 모양새는 그만큼 안 돼도 이틀만 실을 꼬면 웃옷 한 벌 정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또한 요즘에 누가 물레를 돌려 실을 만드냔 말이죠. 적정기술이란 건 필요가 있어야 만들어지고, 쓰여야 가치가 있는 건데 편리한 일상 속에 사는 사람들이 필요를 느낄까. 다 만든 실체가 있긴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는 거라는 거지. 어디 이렇게 묻혀버린 좋은기술들이 어디 한 두개겠어요?” 부인 되시는 분이 말씀을 돕는다. “속도와 돈 외에는 가치가 없는 세상이잖아요. 그래서 <귀농>이며 <작아>며 이런 것에 가치를 생각하자는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게 고맙고 그런 거예요.”
간디의 물레가 생각났다. 인도의 전통 면화산업을 위협해오는 영국의 산업기술에 인간의 노동력으로 생산성을 높이면서도 기계에 종속되지 않는 적정기술이 물레라고 생각했던 간디. 일상에서 평화의 물레를 돌리고자 하는 좋은 벗들과 다음 양털을 깎을 때 쯤 되면 함께 다시 오기로 했다.
개자리와 토굴은 지금도 만들 수 있어요│포천 권오혁 님
권오혁 님은 오랫동안 살아온 포천에 문중마을에서 화목보일러를 만들고 자급자족을 위해 농사도 조금 짓고 있는 소기업 소농민이다. 그는 옛부터 내려오던 생태건축의 지혜에 현대적인 기술을 더한 아이디어로 다양한 적정기술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의 화목보일러 이름인 ‘개자리’는 본래 불길을 빨아들이고 연기를 머무르게 하기 위해 방구들 윗목 속에 깊게 파놓은 고랑을 말한다. 작은 공장에 들어서니 벽난로도 되고 보일러도 되면서 요리도 할 수 있는 다목적 개자리가 눈에 들어온다. 필요할 때 용도에 맞게 쓸 수 있게 거푸집을 개조했다. 그러고 보니, 옛날 아궁이는 밥할 때와 물 데울 때 따로 쓰는 게 아니라 솥도 걸고 방도 데우고 때로는 고구마를 구워먹는 오븐역할도 하지 않았던가.
도시에서는 잘 모르지만 공장이나 농촌에서는 아이엠에프 때부터 다시 화목난방을 찾는 곳이 많아졌다. 아궁이와는 옛날의 구들난방과 온수를 이용한 배관난방이라는 점만 다르고 나무와 농업 부산물(나무, 숯, 소똥, 말똥, 볏짚 보릿짚, 콩대, 옥수수대, 고추줄기, 과수의 가지)을 활용한다는 점에서는 옛날과 똑같은 방법이다. 화석연료와 달리 지구의 생태계에 순환하는 탄소량에 변화가 없기 때문에 나무와 식물이 다시 자라는 것보다 더 빨리 베어내지 않고 대규모의 벌목이나 시설물만 아니라면 이러한 바이오매스는 재생에너지원이다. 특히 바이오메스의 직접연소는 오늘날 세계 연간 에너지 공급량의 1/6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대안 난방에 지원은 커녕 수입제 전자동 보일러를 장려하는 에너지관리공단에 ‘약간 힘들더라도 보일러에 땔감을 트렉타가 아닌 사람이 넣게 하면서 농촌에서도 충분히 먹고 살만한 일거리를 제공하는 게 올바른 농정이 아닐까요?’ 라며 진정서를 올리기도 했다.
1996년 고향에 내려와 농사를 짓다보니 저장해놓을 것이 마땅치 않더란다. 그 때 어렸을 때 토굴이 생각났다. 탄광에서 일해 본 일이 있어 굴 파는 원리는 알았다. 그런데 계속 무너지더라는 것이다. 무너지지 않는 강철로 된 틀을 넣어 별다른 전기시설 없이 오래 저장할 수 있는 황토굴 설비를 개발했다. 아무리 김치 냉장고 같은 게 발달 됐어도 땅기운이 있는 곳에서 흙냄새를 맡아야 오래 저장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만들고 보니 사람이 들어가도 되겠더란다. 그래서 집 옆에는 ‘황토굴건강마을’이라는 이름으로 그의 다양한 아이디어의 실험장을 꾸며놓았다. 아내가 당뇨가 있어 처갓집에서 보내오는 유기농 콩에 관심을 갖게 됐는데 지금은 집에서 두부와 청국장을 만들어 팔며 건강한 음식을 나누고 있다.
그의 집은 하나의 생태건축의 실험장 같다. 옥상녹화가 아니라 아예 벽전체까지 흙과 돌과 풀이 뒤덮여있다. 한 쪽 방은 요즘 그가 실험하고 있는 EM효소 방이다. 방안 가득 구수한 효소 냄새가 난다. 장마철 문을 닫아놓아 벽에 곰팡이가 낫다는데 메주에 생기는 몸에 좋은 흰 곰팡이다. 집 옆에는 두부 만들고 나오는 비지를 퇴비와 재래식 화장실에서 나오는 똥으로 유기농 순환농법을 짓고 있다. 지금 고모 1리의 문중산에 골프장 문제를 지역 청년회와 함께 막는 활동을 하면서 더 적극적으로 환경생태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게 됐다는 그는 요즘도 이동식 좌변기와 재활용품 분리함 같은 작은 도구도 만들어 지인들에게 보내면서 생활의 적정기술들을 나누고 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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