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골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들

거듭난 삶 2012. 10. 17.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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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들        

                 



 갈 6:6-10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10)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찌니라.



 조나단 에드워즈는  젊었을 때 '가치 있는 삶을 위한 다섯 가지 결의'를 작성하고 죽을 때까지 이를 실천한 사람입니다.


 *사는 동안 최선을 다한다.

 *할 수 있는 한, 가장 유익한 방법으로 살고 이 방법이 아니면 한 순간이라도 낭비하지 않는다.

 *경멸하는 것이나 비천하게 생각되는 것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복수심 때문에 어떤 일을 하지 않는다.

 *생명이 끝나더라도 해서는 안될 일은 하지 않는다.



믿음의 모본

 

 아이들은 하나님이 보내주신 간첩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느 날 귀찮은 손님이 찾아와서


 "주인 양반 계십니까?" 하고 묻습니다. 나는

 “ 아침에 일찍 나가셨다.”고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합니다.


 이 광경을 아이가 봤습니다. 그 아이가 어떤 생각을 하겠습니까?


 '아, 저럴 땐 저렇게 거짓말을 하시는구나. 아버지가 집에 계시는데도 안 계시다고 하는구나. 거짓말을 해도 되는구나.' 그래서 거짓말을 배웁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전화로 옆집 부인 흉을 봅니다.


 "우리 옆집 새댁은 어른을 봐도 인사는 커녕 본 척도 안 해요." 아이가 옆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그 말을 들었습니다.


 '아, 전화로는 저렇게 남을 흉보는 것이구나.'


 부모의 사소한 행동을 모두 배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아이에게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들려주면 아이는


 '아니 어떻게 된 일이지? 아빠, 엄마는 안 그러시면서 흉보는 것이 사랑하는 건가 뭐'라고 속으로 헷갈리는 생각합니다.


 결국 우리들이 자녀 앞에서 위선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지만 그러나 다 알고 있습니다. 그저 아무 소리 안 하고 가만히 있으니까 모른다고 생각되겠지만 그러나 속지 마십시오. 아이들은 똑똑합니다. 아주 작은 것까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가르칠 때


 첫째는 우리가 실천함으로써 가르쳐야 됩니다. 아이들에게 기도하는 모습을 원하시면 기도하는 모본을 보이십시오.

 아이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해서 순종하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고 싶으시면 당신이 먼저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많은 아버지들은


 "교회에 가서 여러 가지 교훈적인 것들을 배워서 손해 볼 것 없으니까 애들이나 데리고 가. 나는 안 갈래."합니다.


 그것이 무슨 본입니까. 우리는 아이들에게 본을 보임으로써 가르쳐야 됩니다.


  미국에 ‘조나단 에드워드’라는 경건한 목사님의 5대 후손(後孫) 400명을 조사해 보니까,

 대학 총장이 14명이 나왔고 교수가 100명, 복음 사역자와 선교사가 100명, 판사 변호사가 100여 명이 나왔고 그리고 박사가 60여 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한편 뉴욕에서 살롱 술집을 하여 거부(巨富)가 된


 ‘마르크 슐츠’의 5대손들은 정신병자, 알콜 중독자 58명, 창녀 65명, 정부보조를 받고 사는 극빈자 286명, 불학무식한 자 46명이 나왔다고 하는 조사 기록이 (뉴욕시 교육조사위원회) 있습니다.


그러니 부모가 어떤 복 받을 씨를 심으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매일매일 미래를 위한 씨를 심으며 산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악(惡)한 씨를 심으면 고통과 저주의 열매를 거두고,

 선(善)한 씨, 복 받을 씨를 심으면 우리 자신과 후손들이 축복의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악한 씨를 심고 좋은 열매를 거두리라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또 심지도 않고 거두려는 욕망을 가진다면 그것도 큰 바보입니다.


 여러분은 매일매일 자신을 위해서 후손을 위해서 축복의 씨앗을 심으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본문 갈라디아서 6장 7-9절을 다시 봅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하였습니다.


 잠언 11장 18절 말씀에도


 '악인의 삯은 허무하되 의를 뿌린 자의 상은 확실하니라.' 또 시편 126편 5절에서 6절에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하였습니다.


호세아 10장 12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또 야고보서 3장 18절에 보면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우리가 발견하는 하나의 진리는 사람은 무슨 일을 하던지, 무슨 직업에 종사하든지 신령한 의미에서 씨를 뿌리는 사람입니다. 곡식을 심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좋은 씨든 나쁜 씨든 씨를 뿌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매일의 생활은 무엇을 심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는 생각, 우리의 하는 말, 우리의 행동, 그것이 어떤 것이든지 간에 어느 하나 빼놓을 것 없이 모두 다 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매일 매시 무엇을 뿌리고 심느냐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뿌리고 심은 그대로 거두기 때문입니다.


 말 한 마디 하는 것도 씨를 뿌리는 것과 같아서 언젠가는 그 열매를 거두는 날이 옵니다. 예수님도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마12:36)라고 하셨습니다.


말은 씨앗이다”라는 말은 진리입니다. 그 사람이 평상시에 복 받을 말을 하느냐, 악한 말을 하느냐에 따라서 복을 받으며 살수도 있고 불행의 삶을 살수도 있습니다.


  딸과 아들을 둔 어떤 어머니가 자녀들을 방문하기 위하여 미국엘 갔읍니다.


 먼저 딸집에 들렀읍니다.  어머니는 깜짝 놀랐읍니다.

 그 이유는 딸이 일어나기도 전에 사위가 먼저 일어나 아침을 만들어 먹고, 샌드위치를 싸가지고 출근하는 모습 때문이었읍니다. 자기 딸을 그토록 아끼고 사랑해주는 사위가 한없이 고맙고, 자랑스럽게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들집엘 가게 되었습니다.

 이른 아침 며느리는 일어나지도 않고 아들 혼자서 아침을 해 먹고, 샌드위치를 싸 가지고 출근을 하는 것이었읍니다.

 자기 아들이 너무나 불쌍해 보이는 동시에, 며느리의 행동이 얼마나 괘씸한지 참을 수 없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자기 딸의 행동이나 며느리의 행위가 다를 것이 없었는데, 어째서 하나는 그토록 사랑스럽게 보였고, 다른 하나는 그토록 밉게만 보였을까요?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어 주는 것이라고 했는데  나에게 미운 사람이 있는 이유는 사랑의 폭이 편견적이고 부족한 때문 일 것입니다.

 가정이나 학교, 직장에서 괜히 싫어지고 사람 미운 사람이 있다면, 그들의 문제라기보다는, 사실 나에게 그에 대한 사랑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잠언 18장 20절에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하여 배가 부르게 되나니 곧 그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하여 만족하게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 10-12절에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낯은 악행하는 자들을 향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남에게 속아서 손해 보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남에게 속아서 손해를 보는 것보다도 스스로 속아서 손해를 보는 경우가 더 많이 있습니다.


 가령 만 원짜리 물건인 데 만원을 주고 사면 괜찮은데 5천 원 한다니까 싼값에 매력을 느껴서 삽니다. 이것이 스스로 속는 일입니다. 어떻게 만원 상당의 물건이 5천 원 할 수 있습니까? 도둑 물건 아니면 가짜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더구나 지나치게 비싼 것만 찾는 사람도 스스로 속는 일입니다. 마음속에 있는 허영심 때문에 속는 경우가 많습니다.


 언젠가 있었던 일이지만 고급 보석만을 찾아다니며 사들이는 별난 여자들이 있었는데 물론 어떻게 모은 돈일는지 모르지만 돈이 많으니까 보석 사들이는 것을 취미가 되었나봅니다. 그저 좋은 것이다, 귀한 것이다, 비싼 것이다고 하면 무조건 사들였습니다. 이것이 법에 벌려 나중에 조사를 다 해 봤더니 물론 진짜도 있었지만 대개는 가짜였다고 합니다. 자신의 허영심 때문에 스스로 속은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미쁘십니다. 신실하십니다. 하나님은 거짓말하실 수 없으신 분이십니다. 반면에 마귀는 속이는 존재입니다. 거짓말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이 진실하면 마귀도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속에 거짓된 생각을 품고 있으면 마귀는 그것을 이용해서 우리를 속입니다. 그러니까 스스로 속는 것입니다. 더구나 사람이 남을 속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을 속일 줄로 아는 사람은 스스로를 속이는 일입니다.


 예수님 친히 말씀하시기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하셨습니다.


 말로만 주여, 주여 하면서도 주를 믿는 사람이 마땅히 행하여야 할 생활이 따르지 아니한다면 스스로 속이는 일이요 결국은 하나님을 속이려는 일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둘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으로서 누구에게나 심는 그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의 공의를 나타내지만 이 인과(因果)의 원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내는 것을 우리는 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을 심느냐 하는 것을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심지 않고는 거둘 수 가 없습니다.



성 ‘프란시스’는 유난히 나병환자를 기피했는데 어느 날 좁은 길로 여행을 하던 중 나병 환자와 마주치게 되었읍니다. 순간 그는 뒤로 물러섰습니다.


그때 마음속에서 질책하는 주의 음성이 들립니다. 그는 다시 나병 환자에게로 가서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춘 후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그러면서 뒤를 돌아보았는데 길엔 아무도 없었고, 햇빛만 내리쬐고 있었습니다. 프란시스는 중얼거리며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는 순간


 '아, 그리스도셨구나!'를 깨닫게 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아무런 씨도 뿌리지 않은데서 무엇을 좀 거둬 보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그것은 어딘가 좀 잘못된 사람일 것입니다.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있는 것입니다.


 배우지 않고 알 수 있습니까? 힘써 공부하지 않고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한 가지 꼭 기억할 것은 기도만 해서는 안됩니다. 기도하면서 아울러 열심히 공부했어야 합니다. 실력을 배양했어야 합니다. 실력은 기르지 아니하고, 공부하는 데는 게을리 하고 좋은 학교에만 가겠다고 하는 것은 스스로 속이는 일입니다.


심어야 거둡니다. 그리고 심는 대로 거둡니다. 여러분들은 대개 농촌 생활을 해보신 분이 계시리라 믿습니다. 그러니까 이 평범한 진리를 잘 이해하시리라 생각합니다.

 가령 벼를 심으면 벼를 거둡니다. 배추씨를 심으면 배추를 거둡니다.


 무우씨를 심고 상추를 먹으려고 기대할 수 없습니다. 심은 대로 거둡니다. 하나님은 정확하십니다.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두고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게 하십니다. 따라서 그 거두는 시기도 종류에 따라 다릅니다.


 어떤 것은 일찍 거두는 것이 있고 어떤 것은 늦게 거두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꼭 기억할 것은 언제나 심었으면 거둘 때가 반드시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인 세계에서 볼 때, 우리 사람들은 다 무엇을 심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매일매일 심는 것은 반드시 거둘 때가옵니다.


 가령 여기 어떤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그저 매일매일 말하는 것이 나쁜 말을 씁니다. 생각하는 것은 못된 생각만 합니다. 생활하는 것을 보아도 좋지 못한 생활을 합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의 성품은 자연히 좋지 못하게 될 것은 당연합니다.


 개인의 성품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는 사업도 그렇고, 우리 가정도 그렇고, 학교도 그렇고,  교회도 그렇고, 국가도 그렇습니다.


 오늘에 심은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을 언젠가는 거둘 수밖에 없습니다. 좋은 것 심으면 좋은 것을 거두고, 나쁜 것 심으면 나쁜 것을 거둘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잠언 29장 2절에 보면


 ‘의인이 많아지면 백성이 즐거워하고, 악인이 권세를 잡으면 백성이 탄식 하느니라.’ 하였습니다.


 의(義)로운 씨를 뿌려 놓으면 평안과 즐거움을 거둘 것입니다.


 그러나 악(惡)한 씨를 심어 놓으면 불안과 싸움, 원망과 탄식을 거둘 수밖에 없습니다.


 일에 따라서 어떤 것은 오늘 심고 내일 거두는 것도 있습니다. 현재에 심은 것을 장래에 거둡니다. 봄에 심은 것을 가을에 거둡니다. 모든 곡식이 대개 그렇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보면 부모가 심은 그것을 그 당대에 거두는 경우도 있고 자식대에 가서 거두는 것도 있습니다. 또 이 세상에서 심은 것을 현세에서는 거두지 못하고 내세에 가서 거두게 되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심으면 언제 거두든지 반드시 거두고야 맙니다.


 그런데 성경대로 보면 사람은 대개 의(義)와 악(惡)의 두 가지 종류의 씨를 심는다고 하였습니다.


 義人과 惡人,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지혜로운 사람과 미련한 사람 등....


 본문 말씀에서

 ‘육체를 따라 심는 사람과 성령을 따라 심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육체를 위하여 심는 사람은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둔다.’고 하였습니다.


사실 육체를 위하여 정욕(情慾)을 심으면 음란과 부패를 거둘 수밖에 없습니다. 악(惡)을 심으면 무자비와 포악을 거둘 수밖에 없습니다. 미움을 심으면 싸움을 거두게 됩니다. 무엇이든지 심는 대로 거둡니다.


 여러분, 구약 창세에 등장하는 ‘야곱’이라는 인물을 생각하면 얼른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아주 간사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를 속여서 형이 받을 축복을 빼앗았습니다. 형을 속여서 장자의 명분을 가로챘습니다. 외숙이요 장인을 속여서 자기 양의 수를 늘였습니다. 얼마 나 간사한 사람입니까? 그런데 야곱이 자녀를 낳아 키울 때 그 자식들에게서 그도 속임을 당했습니다. 요셉의 일로 얼마나 가슴아파했습니까? 그러니까 이 ‘심는대로 거둔다’는 원리(原理)는 어김이 없습니다.


 매일 태양이 어김없이 뜨는 것을 우리가 ale고 있는 것처럼 심는 대로 거두는 것은 너무 분명한 사실입니다.


 혹 자녀된 사람이 부모에게 효도하면 효도를 심은 사람은 그가 자녀를 키워서 효도를 받게 될 것입니다. 내가 부모에게 효도를 하지 못하고 불효의 씨를 심고 자녀에게서 효도를 거두겠다고 하는 것은 천리(天理)에 어그러지는 일입니다. 행한 대로, 심은 대로 거둡니다.


 구약 열왕기에 보면 아합왕의 왕후 '이세벨'이 얼마나 악독한 女人이었습니까? 바알신을 신봉하는 이방 여인으로서 여호와를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바알신을 섬기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를 핍박하고 학살하였습니다. 더구나 '나봇'이라는 무고한 사람의 포도원 하나를 빼앗기 위해서 모략중상하여 누명을 씌워 무참히 죽였습니다. 그런데 그 후 어떻게 되었습니까?  무고한 사람 나봇의 피를 흘리게 한  이세벨이 어떻게 되었어요? 자기도 종래는 무참하게 피를 흘리고 말았습니다.


 멀리 갈 것 없이 우리나라 이조 500년 역사를 여러분이 어느 정도 알고 계시지요? 한 마디로 말해서 당파 싸움의 역사 아니었습니까? 서로 모함하여 죽이고, 권세를 차지하고, 또 모함 당해 죽고, 권세를 빼앗기고... 이런 악순환의 반복된 역사를  볼 수 있습니다.


 심으면 그대로 거두는 것이 사실입니다. 다른 사람을 천대하면 내가 또한 천대를 받습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 아프게 하면 반드시 내 마음이 아플 때 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일찍이 말씀하셨습니다.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고 하셨습니다.


  구약 성경 에스더 書의 ‘하만’의 모략과 그 결과를 우리가 잘 기억하거니와 너무나 분명한 사실이요 교훈적인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런 역사적사건들을 기억해서 나쁜 씨를 심지 말아야 합니다.


 나쁜 씨, 악한 종자를 심으면 반드시 악한 열매를 거둡니다. 반면에 성령으로 심으면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둔다고 하였습니다.


 義를 뿌리면 상이 확실합니다. 선과 덕(德)과 의(義)를 거둡니다.

 사랑을 심으면 친절을 거둡니다.

자비를 심으면 화평을 거둡니다.

 선을 행하는 자는 선으로 갚음을 받습니다. 심는 대로 거둡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 는 말이 있지요?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있어도 사랑과 친절과 웃음으로 대해 줄 줄 아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써 악을 이기는 힘을 키우도록 노력합시다. 그리고 분량에 따라 심은 대로 거둔다고 했는데 영적인 세계에도 꼭 그렇습니다.


고린도후서 9장 6절에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고 하였습니다.


 누가복음 6장 38 절에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우리가 선한 일을 조금하여도 하나님은 많은 것으로 우리에게 갚아 주십니다. 열매는 더 많이 얻게 됩니다. 잠언 19장 17절에 보아도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 꾸어 드리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꾸인 것만큼 갚아 주실까요? 아닙니다. 그보다 몇 10배, 30배, 백배로 갚아 주십니다. 이것이 성경의 원리입니다.


 보잘 것 없는 우리 인간도 子女에게 꾸었던 것을 그대로 줍니까? 더 보태서 줍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자녀에게 꾸신 것을 그대로 갚아 주시겠습니까? 풍성(豊盛)한 것으로 갚아 주십니다. 그래서 잠언 11장 24절에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 아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 지리라.'


  어떤 사람이 구제를 너무 많이 해서 패가망신(敗家亡身)했다 하는 말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고래(古來)로 욕심부리다가 망한 사람은 많아도 남을 도와주고 구제하다가 망한 법은 없습니다. 선을 심으면 선을 많이 거두는 것처럼, 악을 심으면 악을 많이 거둡니다. 호세아 8장 7절에


 '저희가 바람을 심고 광풍을 거둔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심은 것을 언제 거둡니까? 곡식은 대개 봄에 심어 가을에 거둡니다. 그러나 영적인 세계는 우리 주님 오실 때를 말하는데 그 때를 누구도 분명히 모르지마는 거둘 때가 있는 것만은 사실이요 분명합니다. 물론 현세에서 거두는 것이 있습니다. 또는 후손대에 가서 거두는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내세에 가서는 반드시 거두게 될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0절에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면서 행하는 모든 일은 반드시 거둘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매일매일 무엇을 심습니까? 육신의 씨를 뿌립니까? 성령의 씨를 뿌립니까? 악의 씨를 뿌립니까? 의의 씨를 뿌립니까?


 義의 씨, 善의 씨, 聖靈의 씨를 뿌리는데 열매가 없습니까?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우리는 平生을 살아가는 동안 의의 씨를 뿌리십시다. 얼른 열매가 안 맺는다고 낙심하지 말고 계속 의의 씨를 뿌려야만 합니다. 때가 올 것입니다.


 어린 子女를 둔 부모들에게 있어서 교육문제는 가장 큰 걱정거리이며 나아가 한국 사회 전체의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학교교육만으로는 앞날을 보장받지 못한다는 불신(不信) 속에 부모와 아이들은 흔들리고 있으며 외국이민의 주요한 목적 중에 자녀교육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선망하는 미국의 교육도 완전한 것이 아닙니다. 교내에서 총기사고가 일어나는가 하면, 학생들의 약물중독도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학교를 보내지 않고 집에서 자녀를 교육시키는 Home-Schooling 교육제도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교육은 전세계의 문제가 되어 가는 시점에서 우리나라의 교육 문제를 치료할 수 있는 답은 학생들을 그리스도의 품안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창조자를 바라보는 믿음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아이들 가슴속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먼저 채워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교육에도 씨를 뿌리는 출발이 중요하고 교회는 이러한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첫째, 우리나라의 초기 선교사들은 의료선교와 교육선교에 씨를 뿌렸습니다. 불치의 병에 걸려 절망과 허무함으로 일생을 포기하려 할 때에 치료해주고 주님에게 인도하는 선교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또한 경신학교, 배재학당, 이화학당, 숭실대학, 연세대학과 같은 Mission School을 설립하고 수많은 분야에 인재를 길러내어 사회 각 부분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였습니다.


 현재의 교육은 힘있는 기업과 정부가 맡고 있지만 학교의 위기, 청소년의 방황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나는 학교로 만들어 다시 생명력 있는 학교로 소생되고 회복시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둘째, 인생은 시작과 출발이 중요합니다. 교육이 중요한 이유는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어려서 주님을 만나는 것은 어려서 먹는 보약과 같이 일생동안 복되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됩니다.


 코미디언 ‘이주일’씨는 죽으면서 '1년 전에만 담배를 끊었으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라 말했습니다. 그러나 여학생의 경우, 담배는 3개월만 피워도 벌써 중독이 된다고 합니다. 처음 시작하는 담배 한 대가 인생을 좌우하게 됩니다. 현대의 사람들은 쉽게 시작하지만 그 시작은 바로 멸망으로 나아갑니다.


그러나 주님의 복음으로 시작하는 사람은 멸망당하지 않고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 기독교는 심는 종교입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이 땅에 보내어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하시고 땅에 심기우는 한 알의 밀알처럼 죽음으로 심게 하심으로 많은 생명을 살리셨습니다.


 하나님은 심는 것을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바울이 말한 대로


 ‘바울은 심고 아볼로가 물을 주고 하나님이 자라나게 하시는 원리를 우리는 모든 그리스도인들과 더불어 이 사회에 실현해 내는 것이 크리스챤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햇볕을 통하여 자라나게 하시기 때문에 농부는 열심히 심고 가꾸듯이 우리는 좋은 일을 믿음으로 심는 것이 중요합니다.

 

 넷째,  좋은 것, 거룩한 것을 심어야 합니다.

악을 뿌리는 자는 재앙을 거두리니 그 분노의 기세가 쇠하리라.” (잠 22:8)


 미국의 험준한 산 속에서 金을 캐는 일을 생업으로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홀로 산 속에 들어가서 몇 주일 동안 금을 캐는 일에 열중하던 중에 주위를 둘러보니 나무는 물론이고 꽃도 볼 수 없자 삭막함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따금씩 꽃씨를 사 주머니에 넣고는 산길을 오고 갈 때마다 길가 여기저기에 뿌렸습니다. 겨울이 되어 집으로 돌아와 쉬다가 이듬해 봄에 그 길을 지나다 보니 길 곳곳에 꽃들이 만개하여 별세계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잠시 번성하는 듯해도 그 악이 자라서 재앙의 열매를 맺으면 모든 기세는 쇠하여집니다.


우리가 하는 말 한마디, 행동 하나 하나, 마음 씀씀이는 모두 하나님 나라에 심는 보이지 않는 씨입니다. 좋은 씨는 좋은 열매를 맺지만, 악한 씨는 악한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좋은 말, 선한 행동 착한 마음으로 심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거룩한 것을 심는 사람은 거룩한 것을 거두고 永遠한 것을 심는 사람은 영원한 것을 거두게 됩니다.


 농촌에서 사는 사람은 자연의 법칙, 하나님의 법칙을 배우는데, 그것은 심는 대로 거둔다는 법칙입니다.


 성도의 삶은 거룩한 삶을 심는 것인데 이것은 예배를 통하여 주어지는 것입니다.

 예배의 씨, 감사의 씨, 기도의 씨, 사랑의 씨, 복음의 씨, 전도의 씨를 뿌림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드러내게 하는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씨를 뿌리는 사람은 기쁨으로 단을 거두는 것입니다.


 우리의 남은 생애 전체를 통해서 좋은 씨를 뿌리고 살다가 천국의 열매를 거두시는 여러분 되시기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