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과 믿음으로 사는 삶
계12:10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가로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었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자가 쫓겨났고
고후 2:10-11 너희가 무슨 일이든지 뉘게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 11 이는 우리로 사단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그 궤계를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
고후 7: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슥 3:1-5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섰고 사단은 그의 우편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2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때에
3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섰는지라.
4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5 내가 말하되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사자는 곁에 섰더라.
우리는 구약에서 사탄과 직접 대결했었던 네사람의 체험을 통하여 다음 몇가지를 배우고 있다.
1. 사탄이 당신의 삶에서 목표로 하는 과녁들:
2. 사탄이 당신을 공격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무기들:
3. 사탄이 이룩하려고 하는 목적들
4.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하여 마련하신 방어수단들:
이 세상에 사는 사람은 누구든지 믿음으로 산다. 기독교인과 회개하지 못한 사람들의 차이점은 믿음의 사실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이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자기 자신과 다른 인간들, 그리고 세상의 물질을 믿고 산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하나님을 믿고 산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당신 신앙의 비결이다.
(히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과 더불어 가지는 큰 문제들 중에 하나는 저들의 신앙을 개발하는 일이다.
사탄은 이것을 알며 그러기 때문에 그는 믿는 사람들의 믿음을 공격한다.
데살로니가에 사는 젊은 기독교인들에게 준 바울의 말이 이를 잘 설명한다.
(살전3:1-10) 이러므로 우리가 참다 못하여 우리만 아덴에 머물기를 좋게 여겨 2) 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 복음의 하나님의 일군인 디모데를 보내노니 이는 너희를 굳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
(살전3:5-7) 이러므로 나도 참다 못하여 너희 믿음을 알기 위하여 보내었노니 이는 혹 시험하는 자가 너희를 시험하여 우리 수고를 헛되게 할까 함일러니 6) 지금은 디모데가 너희에게로부터 와서 너희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우리에게 전하고 또 너희가 항상 우리를 잘 생각하여 우리가 너희를 간절히 보고자 함과 같이 너희도 우리를 간절히 보고자 한다 하니 7) 이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위로를 받았노라.
(살전3:10) 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 믿음의 부족함을 온전케 하려 함이라.
기독교인은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는 것을 기대된다.
(롬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아브라함의 생애(창세기 12:-25)를 읽을 때 당신은 하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은 그가 아브라함의 믿음을 온전하게 하시기 위하여 행한 일인 것을 알 것이다. 이것이 영적인 원리이다.
(마9:29) 이에 예수께서 저희 눈을 만지시며 가라사대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신대
언제나 하나님께서 당신의 삶 속에서 또 당신의 삶을 통하여 역사하실 때 이것은 항상 믿음에 대한 응답이다.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 부족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의 믿음의 부족이다.
(마13:58)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인하여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치 아니하시니라.
(막6:6)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이에 모든 촌에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더라.
이것은 중요한 문제를 일으킨다.
“믿는 사람이 어떻게 그가 믿음으로 산다는 것을 알 수 있는가?”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감정에 속기가 대단히 쉽다. 아니면 자기 주변의 상황에 속기 쉽고, 그렇지 않으면 사탄과 그의 악한 세력에 의하여 속기가 아주 쉽다.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의 결정이나 행위가 그의 믿음으로 행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결정하는데 적용할 어떤 시금석(試金石)이 있는가?
다음 4가지의 실제적인 시험이 있다.
시험1
“나는 이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는가? 아니면 단지 나 자신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하는가?”
1) 아브라함은 끝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의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더욱 굳게 믿으며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롬4: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 아브라함과 그 아내 사라는 둘 다 자식을 가지기에는 나이가 들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저들에게 아들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아브라함을 통하여 사라가 아들을 가진다는 것을 하나님 밖에는 사실 불가능한 것이었다.
(눅1:37)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마19:26)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
3)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되리라는 믿음이 이적을 행한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신앙심이 이적을 행하였다.
이것은 “믿음을 가지라 - 모든 것이 이루어질 것이다”라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믿음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이 중요한 것이다. 따라서
믿음은 “신뢰”(信賴)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을 믿었으며, 하나님은 그가 약속하신 것을 이행하셨다.
(롬4: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4) 그러나 이 모든 것에서 아브라함의 동기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믿음은 항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왜냐하면 믿음은 사람은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으며 하나님만이 이 일을 하실 수 있다고 고백하기 때문이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저들이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으로 믿었을 때 육체적으로 송장과 같았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에게 영광을 가져왔다.
5) 이처럼 언제나 당신이 결정을 하려든가 아니면 당신의 기독교인적 삶, 혹은 사역에서 어떤 조치를 취할 때마다 당신은 자신에게 물으라.
“나는 이 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는가?”
만일 당신의 마음속에 자기 영광이 내포됐다는 어떤 기미라도 보일 땐 즉시 중단하고 주님께서 지시를 주실 때까지 그를 바라라. 참 믿음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는 마음만으로 유도된다.
시험2
“나는 성급하게 앞서 달리는가 아니면 나는 기다릴 용의가 있는가?”
우리들은 벌써 ‘믿음과 인내는 항상 동행’한다는 것을 배웠다.
(롬10:11)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사28:16)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이라 그것을 믿는 자는 급절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 (급절-문자적으로는 “서두르지 아니하리라”는 뜻)
1) 하나님의 인도를 기다리는 기독교인,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기다리는 기독교인은 실망하거나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참된 신앙은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실 때까지 서두르지 않는다.
만약 당신 자신이 주님보다 참을성 없이 앞서 달리는 것을 당신 자신이 발견한다면 주의하라! 당신은 참된 영적인 신앙대신 육적인 불신으로 행하는 것이 확실하다.
(롬14:23)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한 연고라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
시험3
“나는 내가 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변호할 수 있는가?”
참된 믿음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 성경에 기초한다.
(롬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1) 행위가 얼마나 합리적이냐에 상관없이 그것이 만일 하나님의 말씀과 배치되는 행동이라면 당신은 이것을 믿음으로 할 수 없다.
성경은 우리들에게 복종할 교훈, 주장할 약속, 따를 원리들을 준다. 그러나 우리가 만일 우리들이 이것들 중에 그 어느 것이라도 어기면 우리들은 불신을 행하는 것이지 믿음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다.
2) 우리 친구들이 우리들을 격려할지 모른다. 또한 상황이 우리들에게 유리하게 전개될지 모른다.(요나의 다시스행 배처럼) 그러나 만약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복종하면 우리들은 믿음에서 행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축복하실 수 없거나 그의 이름에 영광이 되도록 우리들을 사용하실 수 없다는 뜻이다.
시험4
“내가 이 행동을 숙고(熟考)할 때 내 속에 기쁨과 평안이 있는가?”
(롬15:13)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1) 참된 믿음이 있는 곳에는 성령의 역사하심이 있다. 그리고 성령의 역사하시는 곳에서 그는 소망. 기쁨 그리고 평안의 열매를 맺게 하신다. 당신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평강을 가지는 것은 당신이 하나님의 뜻 안에 있다는 한 가지 증거이다.
(골3: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주장하게 한다”는 말은 문자적으로 “심판이 된다”는 뜻이다.
당신이 당신 속에 하나님의 평화를 잃어버렸을 때 당신은 당신이 하나님의 뜻으로부터 어딘가로 벗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2) 기독교인은 그의 삶의 이 영역에서 그 자신의 인간적인 감정과 하나님의 깊은 사역과를 구별하는 것을 배워야만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감정을 부인하시는 법이 없다. 그는 이를 이용하셔서 그의 목적을 성취하심이 분명하다. 그러나 종종 우리들이 믿음에서 벗어날 때 우리들은 인간적인 두려움과 불안을 체험하게 된다.
그러나 만약 우리들이 믿음으로 행한다면 이러한 두려움은 결국 보다 깊은 기쁨과 평강으로 극복이 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우리들의 신앙에 대한 하나님의 영의 역사하시는 응답이다.
구약의 설명 - 창세기 16장
1) 아브라함은 사라를 통하여 아들을 낳는데 참을성 있게 기다리지 못했다. 그래서 사라는 자기의 몸 종 하갈과 아브라함을 결혼시킨다. 이것은 완벽하게 합법적인 것이기는 하였지만 이것은
“하나님을 기다리는 믿음의 행위는 아니었다”
2) 위에서 말한 네가지 시험에 적용해 보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했나? 아니다.
아브라함은 아들 낳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그 아내 사라를 기쁘게 해주려고 했다. 그는 하나님을 “도우려”했다.
3) “아브라함과 사라는 기다릴 용의가 있었는가? 믿음은 하나님의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보다 “앞서 행한” 것이었다. 이것은 곧 엉망으로 문제를 발생시켰다.
4) 저들의 결정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거한 것이었는가? 아니다.
아브라함의 생애를 통하여 볼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때 그를 의롭다고 인정하셨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서 행했다. 하나님의 말씀과는 차이가 있었다.
(창15:4)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창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5) “저들의 결정 때문에 내적인 기쁨과 평안이 있었는가? 없었다.
하갈과 사라는 다툼이 일어났으며, 아브라함에게는 고통이 생겼다. 이 실수는 지금도 중동전쟁으로 이어지고 있다.(유대교와 이슬람교)
위의 내용을 우리에게 적용시켜 보자. 우리 생활은 어떤가? 믿음의 네가지 원칙을 항상 마음에 두고 신중히 믿음으로 행하라!
신약의 설명 - 사도행전 27장
우리는 여기서 율리오라는 사람이 결정한 사항을 “네가지 시험”과 연관시켜 보자.
1)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구했나?” 아니다.
그는 다만 죄수들을 로마로 가능하면 빨리 이송시키려고만 했음을 본다.
2) “그는 기다릴 용의가 있었는가?” 아니다.
오히려 로마에 늦게 도착할까봐 염려하는 마음이 있었다.
(행27:9)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행선하기가 위태한지라 바울이 저희를 권하여
3) “그의 결정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것이었는가?” 아니다.
그는 바울을 통하여 주신 말씀을 거절했다.
(행27:11-12)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12) 그 항구가 과동하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과동하자 하는 자가 더 많으니 뵈닉스는 그레데 항구라 한편은 동북을,한편은 동남을 향하였더라.
율리오는 ‘전문가의 의견(선장과 선주)’을 하나님의 뜻보다 더 귀 기울였다. 대다수의 의견을 쫓았다. 때마침 순풍이 불어왔다. 그러나 결과는 씁쓸한 것이었다.
(행27:13 남풍이 순하게 불매 저희가 득의한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가까이 하고 행선하더니)
4) “그는 그가 하고자 하는 결정에 기쁨과 평안이 있었는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사나운 풍랑과 배의 파선과 화물을 통째로 잃어버리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실이 되었다.
사탄과 ‘믿음의 네 가지 시험’
당신은 ‘믿음의 네 가지 시험’이 우리들이 이미 공부한 사탄과 대결했던 네 사람의 체험과 병행하는 것을 주의해 보았는지 모르겠다.
1) 다윗은 그가 인구조사를 할 때 믿음으로 행동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이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지 않고 그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했기 때문이다. 교만은 믿음의 원수이다.
2) 욥은 시험을 당할 때 하나님에게 참을성이 없었다.
주님을 기다리려는 용의는 참된 믿음의 증거이다. 참을성이 없는 것은 믿음이 없다는 뜻이다.
3) 하와는 그녀가 선악과를 따 먹을 때 하나님의 말씀에 불복종했다.
참된 믿음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순종에 있다.
4) 여호수아는 그의 마음속에 기쁨과 평안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사탄의 비난으로 고난을 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참된 믿음은 성령을 통하여 기쁨과 평안을 가져 온다.
결 어
이것은 당신과 내가 마땅히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방어 수단을 조심스럽게 써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탄은 우리들의 믿음을 약화시키고 낙담시켜 우리들이
하나님 믿기를 멈추도록 우리들을 유혹할 것이다.
만일 우리들이 하나님을 참을성 있게 기다린다면,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른다면,
우리들이 우리속의 하나님의 기쁨과 평안을 즐긴다면,
우리들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만을 원하며 행한다면
우리들은 믿음으로 살며, 사탄을 격퇴시키는 것을 자신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