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과 말씀

체포된 베드로와 요한

거듭난 삶 2014. 5. 17.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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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포된 베드로와 요한

 

 

 

[사도행전 4:1-4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2 백성을 가르침과 예수를 들어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하는 도 전함을 싫어하여

3 저희를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문고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

4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행4:1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

 

사도들이... 말할 때에 - '그들이 아직도 말하고 있는데'라는 뜻이다.

 

따라서 사도의 설교가 행해지고 있는 동안에 성전 가운데서 사태가 급변한 것을 소개하고 있다. 한편 본절에서 누가는 복음 전파에 대한 최초의 반대 세력이 누구였던가를 밝히고 있다.

 

 

제사장들 - 그들은 산헤드린에 속한 권력자들로서 성전에서 모든 예배 의식을 집행하는 성직자들이었다.

 

이들은 이날 오후 예배를 맡은 자들이었을 것이다. 그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 당시 종교 체제로부터 아무런 합법적 권위도 받지 않은 자들이 성전에서 많은 군중을 모아 놓고 연설을 한다는 것은 그들의 권한을 침해하는 행위였다.

 

이들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일에 앞장섰으며, 복음에 대하여 언제나 적대자 노릇을 하였다.

 

(마 26:3-4 그 때에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가야바라 하는 대제사장의 아문에 모여

4 예수를 궤계로 잡아 죽이려고 의논하되)

 

이때도 사도들의 복음 전파를 방해하고자 나타난 것이다.

당시 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은 로마 정부와의 협력하에 정치적, 경제적 권력을 쥐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현상 유지에 급급하였고 그들의 기득권을 침해할 것같은 사람들이 나타나면 거침없이 대적하였다.

 

 

성전 맡은 자 - 이는 문자적으로 '성전의 장'(Captain of the temple)이란 뜻이며 성전 수비대(守備隊)의 우두머리를 가리킨다.

 

어떤 학자 Lenski는 성전수비대가 레위인들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렌스키의 견해를 따르면, 그 우두머리인 '성전 맡은 자'도 레위인이었을 것이고, 이는 율법에 어긋나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들은 사두개파 출신인 레위인들로 구성되었을 것이고, 로마 정부의 영향력을 크게 받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 당시 '성전 맡은 자'(수비대장)는 대제사장 다음가는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눅 22:4 이에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군관들에게 가서 예수를 넘겨 줄 방책을 의논하매, 52 예수께서 그 잡으러 온 대제사장들과 성전의 군관들과 장로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왔느냐 )

 

 

사두개인들 - 하스몬 왕가의 후예들이었다. 하스몬 왕가의 사람들은 맛다디아와 유다와 요나단및 시므온(B.C. 168-134)을 메시야 시대의 개척자들로 보아왔으며, 그 열조들이 시작했던 바를 자신들이 이어가고 있다고 여겼다.

 

따라서 사두개파 사람들은 레위 지파 출신의 제사장들을 포함한 부유하고 지위가 높은 사람으로서 고대의 정통성을 주장하였고, 초자연적인 것을 부인하는 종교 합리주의자들이었으며 세속적이고 현세주의적인 경향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율법에 대한 발전적인 견해나 천사나 마귀에 대한 사색적(思索的)인 고찰 또는 부활 교회에 대한 것들은 반대했다.

 

(23:8 이는 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 하고 바리새인은 다 있다 함이라;

 

막 12:18-27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예수께 와서 물어 가로되

19 선생님이여 모세가 우리에게 써 주기를 사람의 형이 자식이 없이 아내를 두고 죽거든 그 동생 이 그 아내를 취하여 형을 위하여 후사를 세울찌니라 하였나이다

20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 아내를 취하였다가 후사가 없이 죽고

21 둘째도 그 여자를 취하였다가 후사가 없이 죽고 세째도 그렇게 하여

22 일곱이 다 후사가 없었고 최후에 여자도 죽었나이다

23 일곱 사람이 다 그를 아내로 취하였으니 부활을 당하여 저희가 살아날 때에 그 중에 뉘 아내 가 되리이까

24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함이 아니냐

25 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 들과 같으니라

26 죽은 자의 살아난다는 것을 의논할찐대 너희가 모세의 책 중 가시나무떨기에 관한 글에 하나 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 라 하신 말씀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27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도다 하시니라)

 

 

그리고 그들은 나라의 운명에 대한 하나님의 신성한 간섭을 바라는 것과 장차 오실 메시야를 기대하는것은 헛된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이를 배척하였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야시대가 이미 마카비 시대의 영웅들에 의하여 시작되었으며, 또한 그 시대는 자기들의 감독하에서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는 중이라고 그들은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곧 사두개인들에게 있어서 메시야란 하나의 이상(idea)이었을 뿐이며 어떤 인격적 존재 자체는 아니었다.

 

게다가 그들은 정치적인 지도자들과 지배적인 지주들로서 마카비 통치 시대의 모든 정치적 경제적인 권력을 이양 받았던 자들이었고, 또한 실세를 잡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 로마와의 협력과 현상 유지를 강조했다.

 

그리고 당시 대부분의 제사장들은 사두개인적인 관념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성전을 지키는 경비력은 완전히 레위 지파 사람들이 담당하고 있었다. 사두개파 사람들의 강세로 인해 대제사장이나 성전 수비대장은 언제나 고위 직급의 사두개인이 맡고 있었다.

 

 

이르러 - 이 말은 어떤 사태를 진압하기 위하여 적의에 찬 마음을 가지고 급작스럽게 몰려왔다는 것을 뜻한다. 외견상으로는 이러한 그들의 행동이 아무런 잘못이 없는 것처럼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의도는 매우 종교적인 것이었고 악하였다.

 

(눅 20:1-2 하루는 예수께서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시며 복음을 전하실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장로들과 함께 가까이 와서

2 말하여 가로되 당신이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세를 준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행4:2 백성을 가르침과 예수를 들어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하는 도 전함을 싫어하여]

 

 

백성을 가르침과...싫어하여 - '싫어하여'는 '심히 격노하고 크게 불안해 하였다'는 뜻이다. 종교 지도자들이 이러한 태도를 보인 이유는

 

(1) 사도들이 자기들의 교리와는 반대되는 혁신적인 가르침을 공공연하게 백성들에게 전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르침은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던 당시 종교 지도자들에게 위협적이었다.

 

(2) 부활 교리를 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예수를 들어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하는 도'를 전했다고 했는데 이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지 3일만에 부활한 역사적 사건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고, 예수께서 죽은 자들의 첫 열매로서 부활하셨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러한 증거는 부활을 믿지않는 사두개인들과 예수를 계획적으로 죽인 제사장들에게 도전적이고 충격적인 선언이 아닐 수 없었다.

 

 

 

 

[행4:3 저희를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문고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 ]

 

 

저희를 잡으매 - 당시 산헤드린 공회는 로마의 지배하에 있었기에 사회적으로 범죄한 사람에 대해서는 형을 집행할 권리를 갖고 있지 않았지만, 성전의 거룩함을 더럽히는 등의 종교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최고형까지 언도할 수 있었다.

 

 

날이 이미 저문 고로 - 당시 랍비의 법에는 해가 지면 어떠한 심문이나 재판을 못하게 되어있었다. 그런고로 의회가 모일 수 없었고 어떤 송사도 제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재판에 회부(回附)하지 않고 감금시켜 놓은 것이다.

 

 

 

 

[행4:4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 '남자의 수' 는 엄격히 말해서 여자와 구분하기 위해서 사용되었다. 따라서 그때 개심한 사람 가운데 여자와 어린아이를 제외한 남자의 수만을 가리킨다고 이해된다.

 

(마 14:21 먹은 사람은 여자와 아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오천명이 되었더라'는 숫자에 대한 그 견해들을 살펴보면

 

 

(1) 바로 그때 믿게 된 수효를 가리킨다(Jerome).

 

(2) 지금까지 믿게 된 예루살렘 신자들의 총수라 본다(Lenski, Joseph H. Mayfield).

 

여기서 (2)의 견해를 택하는것이 더욱 자연스러운 것은 '되었더라'의 원어 '에게네데'가 부정 과거로서 단지 역사적인 사실만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2:41에서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그날 믿은 수가 '삼천이나 더 하더라' 했는데 거기서 '더하더라'는 베드로의 설교 결과로서 일어나는 어떤 과정을 나타내준다. 따라서 삼천 명의 군중이 반드시 한꺼번에 믿었다고 보기가 쉽지 않다.

 

그러므로 본절의 오천 명이란 숫자도 2:41에 나타난 삼천 명을 포함한 지금까지의 예루살렘 신자의 총수라고 보는 견해가 더 자연스럽다.

 

(6:7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16:5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어지고 수가 날마다 더하니라)

 

 

아무튼 본문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박해 속에서도 계속 확장(擴張)되어가는 복음의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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