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과 말씀

베드로의 답변

거듭난 삶 2014. 5. 15.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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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드로의 답변

 

 

 

[사도행전 3:11-16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칭하는 행각에 모이거늘

12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13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저를 넘겨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안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부인하였으니

14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자를 부인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15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라

16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행3:11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칭하는 행각에 모이거늘]

 

 

나은 사람이... 붙잡으니 - '붙잡으니'는 어깨에 매달렸다는 뜻이며 이는

 

(1)많은 사람들에게 베드로와 요한을 통해서 이런 기적이 일어났음을 알리기 위한 것이고

(2)사도를 향한 애착과 고마움을 표시한 것이고

(3)사도들이 자기를 그냥 떠나지 못하게 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솔로몬의 행각이라... 모이거늘 - 솔로몬 행각은

 

(1)성전 바깥 뜰 동편 끝에 있는 기다란 집채 곧 회랑(回廊)으로 교사들이 자유롭게 강론하던 곳이었다.

 

(2)대중 집회를 할 만한 장소로서 초대 교인들이 이곳에서 자주 집회를 가졌음을 알 수있다(5:12).

 

(3)예수께서 이곳에서 설교하신 일도 있었다(요 10:23).

 

아무튼 기적으로 인하여 많은 군중이 사도들 주위에 몰려들었다는 것은 기적이,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그 자체에 목적이 있지않고 사도들로 하여금 기적을 베풀어 주신 분에 대해 증거케 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음을 보게 한다.

 

왜냐하면 기적 때문에 크게 놀라서 모인 군중들은 이제 하나님 나라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하여 생생하게 듣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바클레이(Barclay)는, '기적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모이게 하기 위해서 종을 치는 것과 같은 역활을 하는데 의미가 있다'고 했다.

 

 

 

[행3:12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백성에게 말하되 - 걸인이 고침받게 된 기적은

 

(1)사람들을 놀라게 하여

(2) 그들을 사도들 앞에 모이게 했고

(3)이제 사도들로 하여금 기적의 실체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여기서 '말하되'는 어떤 일에 대한 답변으로 경위(經緯)를 설명할 때 쓰는 표현이다. 이는 기이한 일을 보고서 그 일에 대한 설명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베드로가 설교할 기회를 얻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본절 이하는 2:14에 나타난 오순절 이후의 베드로의 설교에 이어 두번째 설교로서 본절은 그 서론에 해당한다.

 

(2:14 베드로가 열 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이스라엘사람들아 - 설교를 듣는 대상을 호칭하는 표현으로서 의미심장하고 중대한 선포를 할 때 베드로가 자주 쓰는 표현이며

 

(1:16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예수 잡는 자들을 지로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2:14 베드로가 열 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

 

22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

 

그들이 율법과 약속을 받은 선민임을 상기시킨다.

 

 

왜 기이히 여기느냐... 사람들의 잘못된 관심을 책망하면서 설교의 서론으로 주의를 환기시키는 질문이다. 즉

 

(1)사도 자신들의 어떤 특별한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고친 것이 아니라는 선언이며 그러므로 자기들을 눈여겨 보지 말라는 것이다.

 

(2)과거에 하나님의 수많은 능력을 체험한 이스라엘 사람들로서 왜 이 일을 기이히 여기느냐는 것이다. 이는 곧 그 이적의 동인(動因)이 하나님께 있음을 상기시키는 말이다.

 

(3)결국 사람들의 관심과 주의를 오직 하나님의 하시는 일과 예수 그리스도에게 돌리는 표현이다. 자기들은 단지 예수 그리스도의 심부름꾼인 도구들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는 자기가 믿음이 좋고 대단한 영력(靈力)이 있어서 이적적 권능을 행사하는 것처럼 은근히 자신을 강조하여 모든 존경과 영광을 다 받으며 기적과 그로 인해 모든 군중들을 지극히 인간적으로 이용하는 종교적 영웅주의자들, 즉 거짓 선지자들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다.

 

이처럼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인기주의로 자기를 나타내는 일에는 흥미가 없는 사도들은 오직 어떻게 하면 사람들로 하여금 이 기적의 실체가 되시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며 또한 그로 인해 자기들의 죄를 깨닫게하여 이들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할 수 있을까에만 관심을 집중하였다.

 

이것이 기적의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 절에서 사도들이 어떻게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가를 구체적으로 목도한다.

 

 

 

[행3:13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저를 넘겨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안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부인하였으니]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 이는 본래 출애굽기에서 최초로 사용된 표현이며

 

(출 3:16 너는 가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실로 너희를 권고하여 너희가 애굽에서 당한 일을 보았노라,

 

15:4-5 그(여호와)가 바로의 병거와 그 군대를 바다에 던지시니 그 택한 장관이 홍해에 잠겼고

5 큰 물이 그들을 덮으니 그들이 돌처럼 깊음에 내렸도다)

 

 

이 표현을 사용한 의도는 25, 26절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25-26 너희는 선지자들의 자손이요 또 하나님이 너희 조상으로 더불어 세우신 언약의 자손이라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땅 위의 모든 족속이 너의 씨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셨으니

26 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

 

즉 이 말은 유대사람들에게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 있는 자들이라는 실감을 가지게 하는 표현이며 이 같은 표현은 신약성경에서도 많이 사용되었다.

 

(마 22: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막 12:36).

 

더 나아가 자신들이 율법과 예언에서 멀리 떨어진 새로운 종교를 말하고 있는것이 아니라 구약의 바탕 위에서 구약의 완성자이신 예수에 관한 복음을 전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 여기서 ‘종’의 의미는 일찍이 이사야가 예언했던 고난의 종을 말한다.

 

(사 42:1-9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신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

2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로 거리에 들리게 아니하며

3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며

4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공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5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베푸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신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6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7 네가 소경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처한 자를 간에서 나오게 하리라

8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9 보라 전에 예언한 일이 이미 이루었느니라 이제 내가 새 일을 고하노라 그 일이 시작되기 전이라도 너희에게 이르노라; 49:1-13; 53:1-12).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영광스러운 모습이 아니라 구속자로 오셔서 세상으로부터 배척과 수욕을 당하시며 십자가에 죽기까지 고난을 당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한 마디의 항변도 없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으로서 즉 하나님의 종으로서 이 모든 일을 감당하는 예수의 낮아지신 신분과 그 직무를 말한 것이다.

 

(2:7 다 놀라 기이히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예수와 종을 직접 함께 언급한 곳은 4:27,30 등이며,

고난받은 종에 관한 암시적 언급은 8:32, 33; 막 10:45; 14:24; 벧전 2:22-24등에도 나온다.

 

그런데 이 종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이제 영화롭게 하셨다는 것이다.

 

여기서 '영화롭게 했다'는 말은 부정 과거로서 온 세상의 죄를 짊어지고 그가 종으로서 죽었지만 하나님이 3일 만에 부활시키고 승천케 하셔서 이제 하나님 우편에 앉히기까기 그를 높이신 사실을 말한다(F. F. Bruce, Lenski).

 

이로써 베드로는 예수가 구약에서부터 예언된 메시야이며 하나님의 아들임을 구약성경 인용하여 증거하고 있다.

 

사도는 이어서 유대인들의 죄악을, 즉 그들이 이 예수를 어떻게 배척했는가를 담대하게 지적한다.

 

 

넘겨주고 - 이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도록 로마인, 즉 이방 통치자 빌라도에게 넘겨주었던 것을 말한다.

 

(사 53 :12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

 

 

부인하였으니 - 이는 빌라도가 예수의 무죄함을 발견하고 놓아주고자 했으나 저희가 바라바를 택하고 예수를 부인하여 오히려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쳤던 사실에 대한 지적이다.(눅 23:13-23).

 

사도는 그들의 죄를 깨우치기 위해 통렬하게 책망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 죄의 무서움과 심각성을 아는 자만이 하나님의 자비 앞에 두 손 들고 나올수 있기 때문이다.

 

 

 

[행3:14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자를 부인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거룩하고 의로운자 - 사도는 계속하여 예수가 어떤 분이었던가를 증거하면서 동시에 그들이 저지른 죄가 얼마나 흉악했던가를 대조용법을 통해서 신랄하게 지적한다.

 

여기서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을 가리키는 용어이다.(막 1:24; 눅 1 :35; 요일 2:20).

 

그리고 '의로운 자'란 모든 블의에서 완전히 떠나서 절대 공의로우신 분이라는 뜻이다.(7:52; 22:14; 사 53:11; 렘 33:15; 요일 2: 1).

 

따라서 '거룩하고 의로운 자'란 구약에서 말하는 메시야의 칭호이다.

 

 

살인한 사람 - 이는 거룩하고 의로운 자와 대조적으로 묘사되어 그들의 사악한 성격을 더욱 뚜렷이 부각시키고 있다.

 

이 사람은 바라바를 가리킨다. 그는, 유월절 사면(赦免)의 관례에 따라 총독 빌라도가 예수와 바라바 둘 중 하나를 석방해 주겠다고 유대인에게 제의했을 때 유대인들의 선택에 의해 풀려난 죄수였다.

 

(마 27:15-16 명절을 당하면 총독이 무리의 소원대로 죄수 하나를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

16 그 때에 바라바라 하는 유명한 죄수가 있는데)

 

 

이 사람에 대해서

 

(1)마27:16에는 유명한 죄수로,

(2) 막15:7에는 민란(民亂) 중에 살인하여 포박된 자들 중 하나로,

(3)요18:40에는 강도로 각각 언급되어 있다.

 

 

 

 

[행3:15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라]

 

 

생명의 주 - 본절은 베드로 설교의 절정으로서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을 강조하여 사람들의 관심을 예수께 집중시키고 있다.

 

 

'생명의 주'란

 

'생명을 주관하는자', '생명의 근원', '구원의 원천' 등을 뜻하는 말로서 살인자 바라바와 절대적으로 대조됨과 동시에 그들이 저지른 죄의 극악성을 계속하며 강조한다.

 

(요 5: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10:28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죽였도다 - 살인자는 놓아주고 오혀려 생명의 주는 죽였으니 이 얼마나 통탄할 만한 일인가 !

 

특히 원문상으로는 '너희들이'라는 '휘메이스'(*)를 강조하여(14절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자를 부인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그들의 죄를 정면으로 지적하고 공격하고 있다.

 

즉 '너희들이 예수를 죽인 죄인들이요 살인자다'라는 뜻이다. 이것은 부인할 수없는 역사적 사실이었다. 오순절 전까지만 해도 두려워 숨어 지내던 비겁한 사도들의 이 담대한 증거를 보라!

 

 

하나님이... 살리셨으니 - 유대인들은 '거룩하고 의로운 자'를 죽였지만 하나님이 사흘만에 다시 살리셨으니 이는

 

(1)유대인들이 저지른 모든 불의와 그 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예고이며

 

(2) 예수가 거룩하고 의로운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거하는 표었다. 따라서 구약에서 부터 예언된 메시야임을 온 천하에 선포한것이다. (요 16: 20; 롬 1:4).

 

(3)죄의 세력과 그로 인한 모든 결과들에 대한 승리, 즉 구속 사역의 완성을 의미하므로 예수께서 죄와 사망을 이기신 생명의 주이심을 입증하신 것이다.

 

(4)하나님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만유의 주로 그리스도를 높이시고 영화롭게 하셨다는 표현이다(빌 2:5 - 11).

 

 

우리가 이일에 증인이로라 - 사도들의 담대한 증거와 무엇보다도 사도들 곁에 온전한 사람으로 서 있는 고침받은 그 사람이 부인할수 없는 생생한 증인이 된것이다.

 

따라서 그 기적 사건은 하나님이 그 종 예수를 영화롭게 했다(부활)는 표가 될뿐만 아니라 사도들이 지금 증거하는 그 내용이 참이라는 점을 입증하는 것이다.

 

 

 

[행3:16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그 이름을 믿으므로...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 이제까지 유대인들 앞에서 예수를 증거한 사도는 이제 결론적으로 앉은뱅이가 고침받게 된 그 능력의 근원을 대구법으로 표현된 삼중적 묘사로서 엄숙하게 되풀이해서 강조하고있다.

 

 

사도는 이 표현에서 무엇을 전달하고 있는가?

 

(1)자신들이 이 사람을 고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거듭 밝히고 있다(12절).

 

(2) ‘그 이름’ 곧 저희들이 죽인 그 예수께서 지금 무덤에 묻혀 있는 것이 아니고 다시 살아나셔서 이 사람을 낫게 했다는 선언이다.

 

왜냐하면 이름이란 그 사람의 인격과 그 사람 자신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는 하늘에 앉으셔서 지금도 살아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그리스도의 활동의 계속성을 진술한 말이다.

 

(3)예수께서 하늘에서 계속 역사하시되 성도들의 믿음을 통하여 일을 하시는 것을 말한다. 즉 그의 몸된 교회와 지체된 믿는 자를 통하여 친히 능력을 베푸시는 것을 아울러 강조한 것이다.

 

여기서 '믿으므로'는 믿음의 기초 위에서 역사함을 말했으며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에서의 믿음은 그 믿음이 예수를 통하여 얻어지는 믿음임을 말했다.

 

따라서 이는 믿음의 근원적 출처 또한 주님이라는 사실, 즉 믿는 자를 통한 그리스도의 직접적인 행위를 강조하고 있다하겠다. 그러므로 그 이름을 믿으므로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고침을 받게 했다는 것과, 예수께서 낫게 하셨다는 말은 서로 상충되는 말이 아닌 것이다. 한편 여기서 말한 믿음이 누구의 믿음을 가리키느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

 

(1) 앉은뱅이의 믿음을 말한다(Stanley D. Toussaint).

(2)베드로와 앉은뱅이의 믿음이다(Meyer, Lenski, Matthew Henry)

(3) 베드로와 앉은뱅이의 믿음이다(Lighfoot, Cavin).

 

이 중 한 견해만 배타적으로 선택하기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이 치유 사건에는 먼저 두 사도의 믿음이 주도적으로 작용했으며, 이 앉은뱅이가 치유받은 후에 하나님을 찬양한 것으로 보아 그의 믿음 또한 전혀 배제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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