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rling Clementine - 로저 와그너 합창단
My Darling Clementine - Mitch Miller 합창단
깊은 계곡 광산마을 동굴집이 있었네.
늙은 아빠 어여쁜 딸 사랑으로 살았네.
오 내사랑 , 오 내사랑, 귀여운 나의 클레멘타인.
너는 영영 가버리고 나만 홀로 남았네.
이젠 다시 볼수없네, 요정같던 그 모습.
네가 신던 작은 신발 내 마음이 아프다.
오 내사랑 ,오 내사랑 ,귀여운 내 클레멘타인.
너의 모습 늘 그리며 나만 슬피 남았네.
[원곡 가사]
어릴 적에 많이 부르고 부를 때 마다 늘 애잔한 감동을 느꼈던 위의 노래 잘 아시지요.
여기서 고기 잡는 아버지는 당연히 어부라고 생각이 드시겠지만
그런데 클레맨타인의 아버지는 원래 광부라는 사실을 알고 계시는지요.
원래 클레맨타인은 미국 서부 개척시대의 "포티-나이너(forty-niner)" 들이 고단한 삶을 잠시 잊고 슬픔을 달래기 위해 불렀던 노래였다고 그래요.
"포티나이너(Forty-niner)"는 골드러쉬의 꿈을 안고 캘리포니아로 몰려든 사람을 이르는 말로, 가진 것 없이 초라해져만 가는 자신을 자조하며 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고 해요.
1849년 '새크라멘토'에 가까운 '아메리칸강'의 지류 강바닥에서 '제임스 마셜'이란 목수로부터 금이 발견되고, 그 주변에서 많은 금이 나오자 ,수많은 미국인들이 자신들도 금을 캐어 부자가 되고자 이 지역에 모여 들었는데,
이 소문이 퍼지자 1849년에는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중남미, 하와이, 중국등, 너나 할것 없이 금을 캐기 위해 몰려 든 이들이 무려 10만 여명에 달하게 되었다고 해요.
“캘리포니아에서 금이 나왔대!”
캘리포니아에 가서 금만 찾으면, 내 인생 피는 거야!”
“인생 한방이야!”
“남들보다 한발이라도 더 빨리 서부로 가야 한다!"
"딴 놈들이 좋은 자리 차지해 금을 다 캐가기 전에!”
국가와 인종을 불문하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황금을 찾아서 북부 아메리카의 강변으로 몰려들기 시작하였고 모두가 자신의 직장을 팽개치며 '노다지'를 캐기 위해 광산으로 향했다고 해요.
그중에는 공무원도 있었고 신문기자도 있었으며, 군인, 의사, 판사 등의 상류층 사람들을 비롯해 노동자와 가난한 하층민들 또한 부지기수 였구요.
때문에 공장과 사무실은 휴업을 하고, 선원들이 모조리 빠져나가는 바람에 선원들을 구하지 못한 선주들은 배마저 운항을 중지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동 경로는 범선을 타고 남아메리카의 남단을 돌거나, 뉴욕으로부터 파나마로 가서 지협을 횡단하여 태평양 연안에 나와 배를 타거나 ,육로로 대륙을 횡단하기도 했다고 그래요..
어느 길이나 어려움이 많고 도중에 죽는 사람도 많았구요.
이들은 스스로 광부가 되어 1848년부터 1858년까지 10년동안 금을 캐어 부자가 되고자 고된 노동을 하였으나 이 '포티나이너'들 중 거부의 꿈을 이룬자들은 극히 소수에 불과했다고 해요.
대부분의 '포티나이너'들은 열악한 조건속에서 가혹한 노동과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으며 부실한 식사로 인한 영양실조와 인디언들의 습격으로 죽어가는 사람도 수없이 많았구요.
힘들게 일을하고 집에 들어가면 구멍뚫린 지붕에서는 비가 새고 편안히 쉬어야 할 방안에는 독사가 또아리를 틀고 있기가 일쑤였으며 옷은 제대로 입을수도 없었다고 합니다.
'포티나이너'들은 처음에 황금을 꿈꾸며 몰려 들었지만 실제로는 이처럼 대부분의 '포티나이너'들이 정상적인 생활조차 힘들 정도로 살아야 했습니다.
더구나 실제로 돈을 번 사람들은 '포티나이너'가 아니라 무수한 '포티나이너'들을 대상으로 무기와 의류, 식량, 채굴도구(곡괭이,삽,)등을 팔았던 장사꾼들 이였구요.
결국 허탈감에 사로잡힌 '포티나이너'들 사이에서는 자조적인 노랫가락이 흘러나오기 시작하였고 '동굴에서, 계곡에서 금을 찾는 한 포티나이너에게 클레멘타인이라는 딸이 있었네..'라며 시작되는 미국민요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은 이러한 '포티나이너'의 허탈감과 자조를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지요.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이라는 노래는 '포티나이너'들의 슬픔과 눈물의 애환이 담긴 상실의 노래였던 것이였지요.
이 노래가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은 3.1운동 직후 부터라고 하는데요.
소설가 박태원님에 의해 우리의 정서에 맞게 개사를 하여 바뀐 이 애조띤
노래는 당시 나라 잃은 슬픔에 절망하고 있던 우리 민초들에 의해 퍼져 지금까지 애창되고 있지요.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채
고기잡는 아버지와 철 모르는 딸 있네
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사랑 클레멘타인
늙은 애비 혼자 두고 영영 어디 갔느냐
바람부는 하루날에 아버지를 찾으러
바닷가에 나가더니 해가 져도 않오네
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사랑 클레멘타인
늙은 애비 혼자 두고 영영 어디 갔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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