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예산으로도 품위 있는 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입력 : 2016.09.17 08:06
[Top Class: 문화체육관광부 올해의 '젊은 건축가상' 김현석 준아키텍츠 대표]
“건강이 좋지 않은 아버지와 어머니, 장모님을 모시고 사는 형네 가족, 신혼부부인 저와 아내까지 모두 함께 살 수 있는 집을 지을 수 있을까요?”
20대 회사원이 어느 날 젊은 건축가를 찾아왔다. 대전에 사는 부모님 건강이 나빠지자 함께 살면서 모실 방법을 찾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예산이 문제였다. 세 집의 전세보증금을 모두 합해봤자 토지 매입도 만만치 않은 금액이었다. 형제는 용감했다. 일단 경기도 파주시에서 땅부터 매입했다. 건축비는 담보대출로 해결할 요량이었다.
예산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면
'이게 꼭 필요할까?'
모든 것을 의심하게 돼
재료와 구조, 건축 요소들에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고
현실적인 해법을 찾다보면
완전히 새로운 시도
할 수 있어김현석 준아키텍츠 대표
일반적인 건축비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가족들이 모두 만족하는 집을 설계하는 게 건축가의 몫이 되었다. 이 집을 설계한 건축가 김현석 준아키텍처 대표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는 ‘젊은 건축가상’의 올해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서울 연남동 경의선숲길이 내려다보이는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소통과 사생활이 모두 보장되는 집
“1층과 2층을 합해 총면적 154.67㎡(47평 정도)의 집을 지으면서 가족 간의 소통과 사생활이 모두 보장되는 집을 구상했습니다. 1층에 넓고 높은 공용 공간을 배치하면서 부엌과 식당, 거실이 이어지게 했습니다. 박공지붕이라 천장이 높아도 아늑한 느낌이 들지요. 부모님과 둘째 아들 부부의 방은 1층, 맏아들 부부와 장모님 방은 2층에 두었습니다.”
부모 자식이 함께 살기도 어려운 시대에 사돈까지 모여 사는 집은 이렇게 완성됐다. 1층의 방들과 공용 공간 사이에는 붙박이장으로 활용되는 벽체를 세워 복도를 만들었다. 문을 열자마자 바로 공용 공간이 나타나지 않도록 사생활을 배려한 설계다. 2층 맏아들 부부의 방과 장모님 방 사이에는 가족실을 두어 아기가 생기면 놀이방으로 활용할 수 있게 했다.
많은 식구의 짐을 보관하기 위해 마당에 따로 창고도 마련했다. 대지를 포함해 3억원 정도의 예산으로 이 모두를 해결했다. 김현석 대표는 건축비를 줄이기 위해 집의 형태를 최대한 단순하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박공지붕 형태의 집이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해 내력벽이 필요없었고, 창의 크기도 최소화했다.
“창 넓은 집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럴 경우 공사비가 많이 듭니다. 춥고 내부 공간 활용도도 떨어지지요. 창의 크기는 최소화하되 모든 공간에 창을 두 개 이상 뚫어 다양한 각도에서 햇빛이 들어오고 바람이 잘 통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건축가가 ‘파주 용감한 주택’이라고 이름붙인 그 집은 장욱진 그림에 등장하는 집처럼 단순하고 소박한 형태지만 간결한 세련미가 돋보인다. “집의 비례감이 좋으면 다른 요소를 덧붙이지 않아도 세련되게 보인다”고 김 대표는 말한다. 공사비를 줄이기 위해 콘크리트에 흰 시멘트를 칠한 외벽이 오히려 단순미를 더한다. ‘용감한 주택’이 완공되자마자 그는 같은 동네에서 새로운 주택을 의뢰받았다.
“방송작가라 거의 하루 종일 집에서 생활하는 분들이었습니다. 일렬로 늘어놓으면 76.5m에 달하는 책들을 제대로 수납하고 싶다면서 ‘우리가 좋아하는 책들을 제대로 대우해주고 싶은 게 집을 짓는 목적 중 하나’라고 했습니다.”
김 대표는 4개의 철골 기둥으로 16.8m×12.5m의 툭 트인 공간을 만들면서 집을 빙 둘러 수평 띠처럼 창을 설치했다. 벽의 위와 아래에 창이 달린 독특한 구조다. 가운데에 있는 벽에 책장을 짜 넣으니 묵직한 책장이 공중에 떠 있는 듯해 무거움과 가벼움, 내부와 외부가 교차하는 독특한 분위기다. 바닥에서 50~180cm 위치에 책을 수납해 언제든 쉽게 꺼내 읽을 수 있는 실용성도 갖췄다.
“집에서 주로 작업하는 분들이라 계속 실내에서 지내도 갑갑하지 않도록 개방감을 주고 싶었습니다. 가운데 벽이 사생활을 보호하면서 번잡한 주변 풍경을 차단하고, 위에 달린 창문은 푸른 하늘과 산을, 아래에 달린 창문은 땅에서 자라는 풀의 모습을 집안으로 끌어들입니다.”
이 집도 최소한의 공사비로 지을 수 있도록 설계했다. 집 안에는 벽이 따로 없다. 공간을 벽으로 구획하는 대신 경사가 있는 대지를 활용해 바닥 높이를 달리하면서 자연스럽게 공간을 나누고 변화를 주었다.
“창문 높이는 고정되어 있지만 바닥 높이가 다르기 때문에 어디에서 보느냐에 따라 바깥 풍경이 달라집니다. 바닥 높이의 차이와 가구 배치로 다양한 공간감을 만들어낼 수 있죠.”
압도하지 않지만 위엄이 있는 건축
부족한 예산과 경사가 있는 대지, 많은 식구 혹은 하루 종일 집에서 생활하는 건축주 등 까다로운 조건이 그에게는 건축적인 해법을 찾아내야 할 도전 과제가 되었고, 이게 더욱 독창적인 집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될 수 있었다.
김현석 대표는 연세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2013년부터 자신의 건축사사무소를 열고 활동하는 젊은 건축가다.
“대학 졸업 후 한국에서 1년 정도 일하다 프랑스 건축학교인 파리 라빌레트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각자의 개성을 개발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곳이었죠. 그곳에서 프랑스 건축사 자격을 취득한 후 건축사 사무소인 아틀리에 리옹 파리에서 일하다 2010년 귀국해 아틀리에 리옹의 서울 사무실에서 일했습니다. 서울 사무실에 있을 때 윤동주 문학관 설계에 참여했죠.”
젊은 건축가로서 그는 저예산의 주택 설계를 많이 맡아왔다. 대학교수와 고등학교 교사 부부는 은퇴 후 생활할 집을 의뢰하면서 ‘주말이면 제자들이 찾아와 머물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서재 맞은편에 사랑방을 배치하면서 사랑방과 식당, 거실 앞에 널찍한 데크를 깔았다. 산 중턱에 자리 잡은 이 집은 단순한 형태의 단층집이다.
주변 산세보다 낮은 자세를 취하도록 만들면서 그는 “단순하지만 품위 있고 낮지만 위엄 있는 집을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두 자녀를 둔 직장인 부부가 의뢰한 집을 디자인할 때는 가장 경치가 좋은 자리를 비워 중정을 만들었다. 내부와 외부의 경계가 모호한 공간으로 최고의 경치를 끌어들였고, 비움으로써 채울 수 있었다.
“독립한 지 오래되지 않은 젊은 건축가에게는 저예산에 까다로운 조건의 일이 들어오기 쉽습니다. 그런데 그게 디자인의 힘을 극대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됩니다. 예산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면 ‘이게 꼭 필요할까?’ 모든 것을 의심하게 됩니다. 재료와 구조, 건축 요소들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고 현실적인 해법을 찾다보면 완전히 새로운 시도를 할 수도 있습니다. 예산은 부족하지만 아이들을 주택에서 키우고 싶은 젊은 건축주와 새로운 실험을 할 자세가 되어 있는 젊은 건축가는 그런 면에서 좋은 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대지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극대화하면서 어느 한 군데는 가슴을 파고드는 감동이 있는 집을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단순하지만 풍요롭고, 강하지만 섬세하고, 압도하지 않지만 위엄이 있는 건축, 사람과 좋은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건축’이 그가 지향하는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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