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떡 2
성 경: [요 6:37-59]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
38)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41) 자기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라 하시므로 유대인들이 예수께 대하여 수군거려
42) 가로되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제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로서 내려왔다 하느냐
4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서로 수군거리지 말라
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45) 선지자의 글에 저희가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46) 이는 아버지를 본 자가 다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47)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48)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50)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51)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52) 이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가로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제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58) 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59) 이 말씀은 예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하셨느니라.
[요 6:37-40]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
38)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이 구절들은
(1)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들의 이유가,
그리스도의 말씀이나 권위가 부족한 탓이 아니고 다만 그들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지 못한 까닭이라는 것,
(2) 믿는 자들은 그들의 의지력(意志力)으로 믿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인도로 말미암아 되어진 것이니 만큼, 그 구원이 확고 불변하다는 것이다.
신앙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소유한 자는, 그것을 소유한 것이 벌써 확실한 구원 소유인 줄 알고 위로를 받는다.
딤후 1:12에 말하기를,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하였고,
빌 1:6에도 말하기를,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고 하였다.
위대한 신앙가요 과학자인 미카엘 파라디(Sir Michael Faraday)는, 임종시에 어떤 사람들이
"당신의 영혼이 장차 어떻게 되겠다고 추측합니까?"하고 물을 때에 그는 대답하기를,
"추측? 나는 추측에서 살지 않는다. 나는 확신에서 살고 있노라"고 하였다.
어떤 성도는 늘 기쁘게 노래하기를,
"나는 가련한 죄인이고 그 밖에 아무 것도 아니로라. 그러나 그리스도는 나의 모든 것이로다"라고 하였다.
우리의 신령한 체험이나, 혹은 도덕 생활에는 굴곡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언제나 죄인인 사실은 변치 않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주이신 사실도 변치 않는다.
혹시 우리의 도덕 수준이 올라갔다 해도 죄인임을 면치는 못한다.
우리의 소망은 예수님 밖에 없다.
히 13:8에 말하기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고 하였다.
진실한 성도들은, 끝까지 구원해 주시기로 약속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생명을 건다.
해버갈(Havergal)이란 성도는, 임종시에 자기 친구더러 사 42장을 읽어 달라고 하였다. 그 친구가 읽을 때 그는 6절 말씀에서 주의를 시켰다. 곧,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라고 한 말씀이다.
그는 이 말씀에서
"불렀다"는 말씀,
"손을 잡았다"는 말씀,
"보호한다"는 말씀을 믿고 세상을 떠난다고 고백하였다.
[요 6:41-42] 자기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라 하시므로 유대인들이 예수께 대하여 수군거려
42) 가로되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제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로서 내려왔다 하느냐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인간으로만 알았기 때문에, 그가 자기를 가리켜,
"하늘로서 내려 온 떡"이라고 말씀하심을 듣고 원망하였다.
사람들은 이렇게 그리스도의 위대(偉大)를 그의 인간성 때문에 의심한다.
그러나 그가 인성을 취하신 것은, 인간들에게 나타내신 그의 지극한 사랑이다.
[요 6: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
유대인이 그리스도를 믿지못한 이유는,
그 실상 그리스도에게 하늘로서 오신 증표가 없는 까닭이 아니었다.
다만 그들만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게로 이끌지 않으신 까닭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동시에, 그의 백성도 이끌어 그에게(그리스도에게)로 모으신다.
(호 11:4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저희를 이끌었고 저희에게 대하여 그 목에서 멍에를 벗기는 자 같이 되었으며 저희 앞에서 먹을 것을 두었었노라)
이끈다 함은, 성령으로 말미암은 중생의 역사를 가리킨다.
(롬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고전 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요일 3:24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그 때는 아직 성령이 강림하시기 전이었음으로 여기서는 성령의 인도에 관한 말이 사용되진 않았다.
[요 6:45] 선지자의 글에 저희가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
"선지자의 글"은 사 54:13을 가리킨 것이다.
(사 54:13 네 모든 자녀는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니 네 자녀는 크게 평강할 것이며)
다른 버나드(Bernard)도 이 귀절에 대하여
"사람이 그리스도의 신자가 되려면 진리를 배워야 되고, 한번 듣기만 해서는 신자가 되기 어렵다. 예정의 도리가 요한복음에 있으나 이렇게 인간편의 책임있는 노력을 무시하지 않았다"라는 의미로 말하였다.
[요6:46] 이는 아버지를 본 자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
윗절에,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로 한 말씀이 있었다.
그것은, 사람이 직접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이 예수님과 그 사자들로 말미암은 전도의 말씀을 들음으로 하나님에게로 오게 된다는 뜻이다).
"하나님에게서 온 자"는, 오직 하나님과 함께 계시다가 이 세상에 오신 자 곧, 예수님 뿐이시다.
"하나님에게서"란 문구의 "에게서"란 말은 본래의 근원으로 부터 관계된 사실을 보여준다. 그것은, 하나님과 함께 계시다가 세상에 오신 예수님에게만 사용될 말이다.
"보았느니라." 이 말의 헬라 원어는, 보았고 또 그 본 결과를 계속해서 보존하고 있는 사실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시기 전에 하나님을 보셨고, 또 그 보신 사실이 그에게 계속해 있음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예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을 알 자가 없다.
(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14:9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마 11: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하나님은 먼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의 말씀을 전하신 것이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만이 하나님 아버지를 보셨고,
또 그의 말씀을 들으셨기 때문이다.
[요 6:47-48]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48)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 "믿는 자"란 말은 예수님을 믿는 자란 뜻이다.
크로솨이데(Grosheide)는, 이 문구의 짧은 것을 가리켜 사상의 표현을 강력하게 하려는 문체라고 하였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다."이 문구에 대하여는 35절의 해석을 참조하시라.
[요 6: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
예수님도 인간 편으로는 유대인이고, 그들의 조상이 예수님의 조상도 된다.
그러나 영적으로 말할 때에, 그들과 그들의 조상은 불신앙에 속하였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는, 물질적인 만나와 달라서 영적인 하늘 떡이시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그를 영접하는 자들은 영생한다.
[요 6:50-51]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51)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이 귀절들은, 33, 35절에 있는 말씀을 거듭한 셈이다.
(33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3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중언체(重言體)는 역설체(力說體)이다.
"내 살"이란 말은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을 가리킨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 위에서 죽임이 되시므로 그를 믿는 자들은 영생을 얻는다.
[요 6:52] 이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가로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제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
유대인들이 서로 다툰 원인은, 그들의 의견이 서로 다른데 있었다.
그들 중 어떤 자들은 예수님의 속죄 교훈을 믿었으나, 어떤 자들은 믿지 않았다.
믿지 않은 자들은 예수님의 살이 세상 사람의 생명이 된다는 말씀(51절 끝)에 걸렸다.
(51절 끝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그들은, 메시야가 죽어서 속죄하시는 진리를 왜 믿지 못했던가?
그 진리는 이사야서 53장에 명백히 예언되지 않았는가?
[요 6: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세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
여기서는, "인자의 살"이란 말에 "인자의 피"란 말을 더하여 말씀하신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1) 그것은, 살과 피는 인간성을 모두 가리키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인간성 전체가 우리의 속죄 제물이 되셨으니, 그것은 우리 구원의 완성을 위하신 것이다.
(2) 피를 첨부하여 말씀하신 또 한가지 이유는,
피는 특별히 생명을 의미하는데
(창 9:4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채 먹지 말 것이니라;
레 17: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14 모든 생물은 그 피가 생명과 일체라 그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어느 육체의 피든지 먹지 말라 하였나니 모든 육체의 생명은 그 피인즉 무릇 피를 먹는 자는 끊쳐지리라),
그것을 흘리셔서 속죄 제물을 성립시키기 때문이다.
(출 12:7-8 그 피로 양을 먹을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8)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레 1:5 그는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가져다가 회막문 앞 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
히 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20 이르되 이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라 하고).
살을 먹으며 피를 마신다는 말씀은 문자적 의미보다 비유적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생활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믿는 것은, 곧, 그의 살과 피를 먹으며 마시는 행위와 같이, 예수님을 영접하여 나 자신의 분깃으로 만드는 실제적 행위이다.
신앙은 이론 뿐이 아니다.
이 말씀에 근거한 기독교 성찬 교리에 대하여,
불트만(Bultmann)은, 그것이 헬라 신비 종교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Theology of the New Testamant I, p.148).
그러나 헬라 신비 종교에서 그 의식에 참여한 자들이 신(神)을 먹는다고 한것(그들의 신으로 표상된 소위 고기 같은 것을 먹는 것)은, 범신론 사상과 마술적 사상에 근거한 것이다.
따라서 그 먹음에 참여하는 자가 신(神)이 된다는 그릇된 주장도 거기 있다.
그러나 기독교의 성찬은 그와 정반대로서 유신론적인 속죄의 역사적 사실을 기념하는 것이다.
그 뿐 아니라, 기독교의 성찬은, 구약에 있는 유월절 잔치의 후신(後身)이다.
예수님께서 성찬을 제정하실 때에 바로 유월절 만찬을 잡수시면서 그것을 성찬으로 변전시키신 것 뿐이다.
* 참조 : (눅 22:7-23).
요 6장에서 신자들이 그의 살을 먹으며 그의 피를 마실 필요성에 대하여, 그가 강조하신 때도 유월절이 가까운 시기였다(4절).
그 뿐 아니라, 유월절 잔치의 영적 의미가 성찬의 그것과 같다.
(1) 유월절 잔치를 먹는 것이 이스라엘에게 구속을 준 것처럼,
(출 12:13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성찬을 먹는 것이 기독 신자에게 그런 의미를 가지며,
(2) 유월절의 만찬이 애굽을 떠나 먼 길을 가는 이스라엘에게 양식이 된 것처럼,
성찬은 기독자에게 영적 양식이 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사실들을 보면, 성찬과 헬라의 신비 종교와는 전연 관계가 없다.
헬라의 신비 종교들 중 다요니시스(Dionysys)란 신을 예배하는 제사에서는, 거기 참여하는 자들이 그들의 신을 상징하는 소의 고기를 생으로 먹었다.
그들은 그렇게 하므로 그들 자신이 신화(神化)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Machen, The Origin of Paul's Religion, pp. 281-282).
이런 사상은 범신론(汎神論)으로서, 유신론(有神論)인 기독교와 반대된다.
[요 6: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
헬라 원어에 의하면, 여기 "먹고"란 말이 이때까지 사용된 먹는다는 말과 다르다.
여기 사용된 말은 맛있게 먹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속죄를 받아 누림에 대한 적합한 술어이다.
이 귀절 말씀은, 기독 신자가 이 세상에서부터 영생을 얻고 내세에는 몸의 부활까지 받는, 구원의 복락 전부를 가리킨다.
[요 6: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
여기 "참된"이란 말이 사용된 목적은 이렇다.
곧, 만나와 같은 물질적 양식에 비교하여, 예수님의 살과 피(속죄의 은혜)는 참되다는 것을 표시하려는 것이다.
곧, 물질적 양식은 그림자와 같고 불완전하나,
예수님의 속죄의 은혜는 실물이요 영원히 살리는 효과를 가진 것이다.
[요 6: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 이것은, 그리스도의 속죄를 받은 자가 주님과 연합하게 됨을 가리킨다.
요한의 신학 사상대로 보아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1) 주님의 계명을 지킴,
(요일 3:24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2)주님을 본받음,
(요일 2:6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3) 열매를 맺음.
(요 15:2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4) 죄를 범치 아니함.
(요일 3:6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5) 기도 응답을 받음.
(요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6) 생명을 가졌음.
(요 6: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7) 주님의 재림에 대하여 담력을 가진다.
(요일 2:28 자녀들아 이제 그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Bernard, the International Critical Commentary on the Gospel of St. Jhon, p. 212)
[요 6: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58) 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59) 이 말씀은 예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하셨느니라.
▶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 "아버지로 인하여 산다"는 말은, 예수님에게서는 영원 자존의 생명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 말씀은, 다만 중보자(中保者)로서의 그의 처지를 가리킨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위치에 계신 것 만큼, 그의 생명 주시는 역사는 아버지로 말미암는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영원 자존하신 것 만큼, 그도 그러하시다.
신자들은 그리스도를 먹는 것과 같이 실제적으로 믿어야 그의 생명을 받아 누린다.
고뎉(Godet)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곧,
"자연계의 생명의 열매가 떡덩이로 나타날 때에 사람에게 섭취됨과 같이, 신적 생명(神的生命)도 그리스도로 화육(化肉)되어 나타났으므로 우리에게 접촉되어 받아진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생명 떡이시다.
그러나 우리가 떡도 먹어야 우리의 생명 영양이 되는 것처럼,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어야 그가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다"고 하였다.
[요 6:58] 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이 귀절은, 32-33 절 말씀 내용이 거듭 나온 셈이다.
같은 말씀을 거듭 하는 것은, 그 말씀을 힘 있게 하려는 목적으로 그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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