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과 말씀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거듭난 삶 2016. 12. 20.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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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을 위한 간구 2

 

: [ 17:12-19]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13)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말을 하옵는 것은 그들로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14)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

15)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16)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17)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19)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 17:12]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와 지키었나이다 - 지상에 계셨을 '' 언급하신 것은 그의 사역이 완성 단계에 있음을 시사한다.

 

예수는 지난날을 회상하면서 그의 사역이 아버지의 이름에 의존되어 있었음을 고백하며 이를 이후에도 아버지께서 보전해 주시기를 간구하는 근거로 삼고 있다.

 

한편 본절에서 '보전하다' '지키었나이다' 나란히 언급되었다.

 

전자는 6, 11 등에서 두루 사용되었으나

 

(6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11 나는 세상에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후자는 본절과 12:25에서만 나온다.

 

(12:25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후자는 외부로부터의 공격에 대한 방어라는 의미를 강하게 내포한다.

 

그러나 단어는 '보전' '보호' 강조하는 의미에서 동의적으로 반복되었으므로 서로의 위치가 바뀐다 해도 별다른 의미 차이를 드러내지 않는다.

 

오직 멸망의 자식 뿐이오니 - 말은 명백히 가룟 유다를 지칭한다.

 

'멸망하다' 일반적으로 종말론적인 완전한 파멸 또는 저주를 의미한다.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2:12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고전 8:11 그러면 지식으로 믿음이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살후 2:3에서 단어는 예수 재림 전에 일어나는 불법의 사람 멸망의 아들을 칭할 사용되었다.

 

(살후 2:3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불법의 사람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

 

유다를 '멸망의 자식'이라고 부른 것은 그의 종국적 운명이 멸망에 처하게 되어 있다는 의미보다는 그의 인격 자체가 멸망에 이를 밖에 없을 정도로 타락되어 있다는 의미에 가깝다. (L. Morris).

 

유다는 엄연히 자신의 주관적 결정에 따라 멸망의 길을 걸어갔을 뿐이다. 따라서 유다의 반역은 예언을 통해 이미 결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유다의 책임이 아니라 하나님의 책임이라고 보는 것은 전혀 타당하지 않다.(Calvin).

 

성경을 응하게 - 유다는 자신의 독자적 의사에 따라 행동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성경의 예언을 성취시켰다.

 

예언된 말씀은 예수께서 직접 인용하신 있는(13:18), 41:9 가리킨다.

 

(13:18 내가 너희 모두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나는 내가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 41:9 내가 신뢰하여 떡을 나눠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나이다)

 

또한 57:12 같은 적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을 유다에게 적용한다 할지라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 57:12 공의를 내가 보이리라 네가 행한 일이 네게 무익하니라)

 

 

[ 17:13]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말을 하옵는 것은 그들로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 예수는 지금 제자들을 남겨 놓는 시점에 있다.

 

이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11절에 이어 예수는 아버지에게로 간다는 것을 다시한번 강조하고자 표현을 사용하셨다.

 

(11 나는 세상에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그렇게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지상의 사역 가운데서 제자들을 보호하셨던 (12 상반절) 떠나가시는 사이의 대비를 더욱 분명하게 나타내 보여주셨다.

 

말을 하옵는 것은 - ' ' 단순히 1-12절까지의 기도 내용을 지칭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기쁨을 저희 안에 충만히 가지게 - 표현은 고별 설교(15:11;16:22, 24)에서도 언급되었다.

 

(15: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16:22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24 지금까지는 너희가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설교에서 '기쁨' 하나님의 보호에 따른 기쁨이다.

예수가 잠시 제자들과 이별하지만 하나님의 보호는 영원하며,

성령의 강림으로 제자들은 영적으로나 지식적으로 충만하게 것이므로

하나님의 임재와 보호를 확실히 체험하게 된다.

 

이것이 고별 설교에 있어서 기쁨의 근거다.

본절에서도 역시 같은 차원의 기쁨을 이야기하고 있다.

 

 

 

[ 17:14]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 '아버지의 말씀' 예수를 통하여 계시된 메시지 전체를 의미한다고 있다.

 

'말씀' 예수가 성부로부터 받은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예수가 여러 자신을 성부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로 표현할 이미 암시되었다.

 

한편 '주었다' '위임하다', '위탁하다' 등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므로

 

( 25:15 각각 재능대로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사람에게는 달란트를, 사람에게는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12:9 도원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냐 와서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제자들이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17) 위임받게 됨을 암시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그러나 본절에서 '주었다' 제자들이 이미 받은 말씀과 연관된다.

따라서 구절은 제자들에게 그동안 예수가 가르치신 내용들에 대한 것이다.

 

세상이 저희를 미워 하였사오니 - 제자들이 미움을 받을 것을 대화식(對話式)으로 말씀하실 때와는 달리

 

(15:18-19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기도 가운데서 제자들의 고난을 위해 기도하심은 자기에게 소간 자들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다.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 구절을 혹자는

 

'(내가 세상적이지 않음 같이) 저희도 세상적이지 않습니다'라고 번역했다(Berkley).

 

그런데 구절을 헬라어 본문대로 번역한다면

 

'(내가 세상에 기원을 두지 않았듯이) 저희도 세상에 기원을 두지 않습니다' 해석된다.

 

말은 출신이나 소속과 밀접한 연관이 있으므로 개역 성경처럼 번역되어야 한다.

 

여기서 예수는 제자들도 자신과 동일한 출신과 소속을 지니고 있음을 가르치신다.

제자들이 이러한 신분을 소유하게 근거는 어떤 인간적인 방식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1: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자들이니라)

 

또한 영으로 거듭났다는데 있다.

 

(3:3-8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없느니라

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있사옵나이까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있사옵나이까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없느니라

6) 육으로 것은 육이요 영으로 것은 영이니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사람도 그러하니라)

 

이런 의미에서 그들은 예수에 의하여 세상에서 택함을 입은 자들이며

 

(15: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예수에게 접붙임을 받은 자들로서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들이다.

 

 

 

[ 17:15]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 예수 자신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으나 자신의 사역을 완성하실 때까지는 세상에 머물러 계셨다.

 

이와 같이 제자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았지만 자기들에게 위임된 사명을 완수하기까지 여전히 세상 안에(in the world) 있어야 한다.

 

(11 나는 세상에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그래서 제자들은 그리스도와 연합하였으나 예수와 함께 하늘로 올라갈 수는 없다.

 

요한이 본서를 당시의 이단(異端) 영지주의자들에 대해 복음을 변증하기 위해 기록했으며 또한 본절이 세상과 엄격한 분리를 반대하는 의미를 암시하고 있으므로 견해는 어느 정도 타당성을 지니고 있다.

 

아무튼 고전 5:10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성도가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는 것이 세상과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은 아니다.

 

(고전 5:10 말은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속여 빼앗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것이라)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 - 말은 제자들을 위한 예수의 간구로서 하나님의 보호와 구속이 있을 것에 대한 기도를 의미한다.

 

구절 전체를 헬라어 본문에 따라 번역하면 '( )에게서 보호하시기 위함' 된다.

 

 

[ 17:16]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14절에 언급된 말씀이 어순만 바뀌어서 반복되고 있다.

 

14절은 세상에서 미움을 받는 이유로 서술되었지만 본절은 악으로부터 보전되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언급되었다는 점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 17:17]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 '거룩하게 하다' 것은 성별'(consecration) 대한 것으로 세상과 분리(分離) 삶을 의미한다.

 

제자들은 이미 예수의 말씀에 의하여 깨끗함(purification) 받았다.

 

(15: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물론 그들이 깨끗함을 받은 것이 거룩하게 되었다는 의미를 지니지만 세상에 속해 있으나 세상과 분리된 삶을 의미하는 '성별'과는 다르다.

 

이미 깨끗하게 제자들은 진리 안에서 깨끗게 신분을 유지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예수는 지금 제자들이 그러한 삶을 있도록 달라고 성부께 간구하신 것이다. 한편으로 예수는 제자들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으므로(16)

 

자신과 같은 거룩함이 은혜로 그들에게 주어지기를 원한다.

 

구약에서는 선지자를 불러 세상과 구별하여 세울 사용되었으며

 

( 1:5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제사장으로 세울 때에 '거룩하게 하여 제사장 직분을 맡겼다'.

 

( 28:41 너는 그것들로 아론과 그와 함께 그의 아들들에게 입히고 그들에게 기름을 부어 위임하고 거룩하게 하여 그들이 제사장 직분을 내게 행하게 할지며).

 

따라서 예수는 자신이 성부에 의해 거룩하게 되어 세상에 보냄을 받으심 같이

 

(10:36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신성모독이라 하느냐)

 

제자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은 자로 파송하실 때에 하나님에 의해 성별되기를 간구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진리' 제자들을 거룩하게 하는 매개체이며

 

( 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거룩하게 하는 실행자는 '진리의 '이신 성령(16:13)이시다.

 

(16: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예수가 지상 사역동안 선포하셨던 것이며 성령은 선포된 말씀을 근거로 활동하신다.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 본절은 거룩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과 필연적인 관계를 맺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계시만이 성별을 가능케 한다(L. Morris).

하나님은 존재 자체가 진리이며

생각하시는 ,

행하는 ,

모두가 동질(同質) 진리이다.

 

아버지의 말씀은 예수에 의하여 선포되어 현실 가운데서 '진리' 나타나신다. (Reynolds).

 

한편 본절에서 '진리' 헬라어 본문에서 관사 없이 사용되었다. 이는 앞의 '진리' 구별시키기 위함이다.

 

상반절의 '진리' 구별시키기 위함이다.

 

상반절의 '진리'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여기서는 말씀이 '참되심' 의미한다.

 

 

 

[17: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 제자들의 사역은 그리스도의 사역에 근거한다.

 

강조법으로 사용된 '나를' '나도' '보내심' 상관관계를 명확히 밝혀주고 있다.

예수가 성부로부터 사명을 부여받아 세상에 오심같이 자신도 역시 제자들에게 서명을 주어 세상에 보내신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가 성부에게서 받은 사명을 제자들도 수행하게 된다.

그렇지만 제자들 스스로 사명을 수행할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말씀을 근거로 활동하시는 성령에 이끌림을 받을 때에야 제자들은 사명을 온전히 수행할 있다.

 

따라서 '보내신 것같이' 사명을 주는 방법에서 아니라 보내시는 자의 인격이 동일함을 가리킨다.

 

따라서 본절은 과거에 제자들에게 부여하신 사도적 임무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고 나아가서 제자들이 후에 사명에 따른 삶을 살게 것을 암시한다.

 

구약의 예로 다윗은 왕으로서 인정되는 기름 부음을 받았으나 실제로 왕으로서의 임무를 시작한 것은 년이 지나서야 가능했다.

 

(삼상 16:13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삼하 2:7 이제 너희는 손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할지어다 너희 사울이 죽었고 유다 족속이 내게 기름을 부어 그들의 왕으로 삼았음이니라 하니라).

 

세상에 - 예수는 자신 아니라 제자들이 사명을 부여받은 사역의 장소를 지칭하여 '세상'이라는 말을 언급하셨다.

 

요한에게 있어서 '세상' 하나님의 나라와 대립(對立) 영역을 뜻하며

 

(8:2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아래에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18: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라는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나라가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어떤 때에는 사단에 의해 대표되는 집합적인 인격체로 묘사되기도 한다.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이처럼 요한은 '세상' 주로 그리스도와 대립된 것으로 설명한다.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일 4:4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5:4-5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5)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19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세상은 악한 안에 처한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세상' 사랑하시어 독생자를 보내셨다(3:16).

 

이런 점에서 예수는 사랑의 계명을 수행하기 위해 세상에 오셨으며 또한 자기 제자들에게도 동일한 계명을 주셔서 세상에 보내셨다.

 

그래서 예수는 제자들이 서로 하나가 되고 또한 안에서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명령하시고,

 

(13:34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15:12-13 계명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사랑이 없나니)

 

기도에서도 제자들과 그들의 말을 통해서 예수를 믿게 사람들을 위해 간구하신다.

 

이와 같은 말씀들은 자기에게 속한 사람들에게 대한 사랑을 강조한 것이지만

 

(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제자들이 세상으로 가야 한다는 사명도 함께 강조되고 있다.

사명에 따라 세상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룩하는 사랑의 공동체로 초대되어야 한다.

 

따라서 세상을 향한 제자들의 파송은 모든 성도들에게도 세상을 그리스도에게로 초대하는 동일한 사명을 갖게 하는 의미를 지닌다.

 

 

 

[ 17:19]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 예수는 10:36에서 자신이 성부에 의해 거룩하게 되심을 언급하셨으나 구절에서는 자기 스스로 거룩하게 하신다는 표현을 사용하신다.

 

본절에서 예수의 거룩하게 하심은 개의 의미를 모두 가졌는데,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는 희생 제물이 되심과 동시에

예식을 집행하는 대제사장이 되신다는 뜻이다.

 

따라서 예수의 거룩하게 하심은 갈보리의 언덕을 바라보는 것이며

그의 죽음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L. Morris).

 

예수의 거룩하게 함은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사랑과 같은(15:13) 자의적인 대속적 죽음이다.

 

(15: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사랑이 없나니)

 

혹자는 이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그리스도의 '자아성화'(自我聖化) 비밀이라고 설명했다. (Luthi, L. Morris).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 예수의 죽음은 제자들의 죄를 씻는 일차적인 목적에 머물지 않고 하나의 목적을 제시한다.

 

목적은 제자들의 복음 사역을 위해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의 거룩은 예수와 같은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제자들의 성결은 아버지의 은사에(17)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수는 제자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살후 1:12 우리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고 너희도 안에서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자신의 사역을 계승하여 지상에서 사역을 감당할 있도록 거룩하게 되기를 간구하면서 그들을 위해 죽음을 맞는다.

 

한편 구절에서 '진리' 결국 제자들은 예수가 자신을 거룩하게 하시는 것과는 다른 방법, 예수에 의해 선포된 아버지의 말씀으로 거룩하게 되는 것을 의미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