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과 말씀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거듭난 삶 2017. 3. 23. 23:46
728x90

 

비시디아 안디옥 전도 2

 

: [ 13:24-41] 오시는 앞에 요한이 먼저 회개의 침례를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전파하니라

25) 요한이 달려 길을 마칠 때에 말하되 너희가 나를 누구로 생각하느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뒤에 오시는 이가 있으니 나는 발의 풀기도 감당치 못하리라 하였으니

26) 형제들, 아브라함의 후예와 너희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

27)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저희 관원들이 예수와 안식일마다 외우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

28) 죽일 죄를 하나도 찾지 못하였으나 빌라도에게 죽여 달라 하였으니

29) 성경에 저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응하게 것이라 후에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

30) 하나님이 죽은 가운데서 저를 살리신지라

31)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에게 여러 보이셨으니 저희가 이제 백성 앞에 그의 증인이라

32) 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

33)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34) 하나님께서 죽은 가운데서 저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가라사대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35) 그러므로 다른 편에 일렀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셨느니라

36)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섬기다가 잠들어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37) 하나님의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

38)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것은 사람을 힘입어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39)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40) 그런즉 너희는 선지자들로 말씀하신 것이 너희에게 미칠까 삼가라

41) 일렀으되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이를지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 13:24] 오시는 앞에 요한이 먼저 회개의 침례를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전파하니라

 

요한이 먼저 회개의 침례를 - 바울은 예수의 메시야됨에 대한 권위를 강조하기 위해 침례요한을 언급하고 있다. 바울이 침례요한을 예수의 권위를 보증하는 이용한 것은 당시 사람들이 침례요한을 선지자로 믿고 있었으며 이러한 침례 요한의 회개의 침례가 유대인들 사이에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다.

 

(18:25 그가 일찍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침례만 따름이라;

 

3:7-15 요한이 침례 받으러 나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장차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9)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10) 무리가 물어 가로되 그러하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11) 대답하여 가로되 있는 자는 없는 자에게 나눠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것이니라 하고

12) 세리들도 침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13) 가로되 정한 외에는 늑징치 말라 하고

14) 군병들도 물어 가로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가로되 사람에게 강포하지 말며 무소하지 말고 받는 요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

15)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의논하니).

 

따라서 바울은 침례 요한이 예수에 대해 증거했다는 사실을 근거로 청중들에게 이러한 침례 요한의 활동을 회상시켜 그의 말에서 예수의 권위를 찾고자 했다.

 

그러나 그는 예수가 침례 요한으로부터 침례를 받은 사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아마 그는 사실이 예수의 권위를 높이는 도움이 것이라고 판단하였을 것이다.

 

 

 

[ 13:25] 요한이 달려 길을 마칠 때에 말하되 너희가 나를 누구로 생각하느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뒤에 오시는 이가 있으니 나는 발의 풀기도 감당치 못하리라 하였으니

 

달려갈 길을 마칠 때에 - 말은 딤후 4:7에서도 나오는데 헬라적 어투로서 바울의 독특한 어법이다.

 

(딤후 4:7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구절은 요한이 예수에 대한 증거 사역을 다하였을 때를 의미한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 바울이 침례요한의 이야기를 언급한 의도는 표현 속에 함축되어 있다. 요한 자신이 메시야임을 직접적으로 거부했다는 사실을 밝히는 본문은 3:15, 16 1:19-27 내용으로 당시 침례요한을 메시야로 믿었던 유대인들이 많았음을 반증함과 동시에 요한이 대중들로부터 대단한 신뢰와 인기를 얻었음을 있다.

 

( 3:15-16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의논하니

16)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침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침례를 주실 것이요;

 

1:19-27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거가 이러하니라

20)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대

21) 묻되 그러면 무엇 네가 엘리야냐 가로되 나는 아니라 묻되 네가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22) 말하되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23) 가로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24) 저희는 바리새인들에게서 보낸자라

25) 물어 가로되 네가 만일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선지자도 아닐진대 어찌하여 침례를 주느냐

26) 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침례를 주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사람이 섰으니

27)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하더라)

 

따라서 바울은 유대인들이 신뢰하는 요한이 직접 자신이 메시야가 아니라 예수가 메시야이며 따라서 침례요한 자신은 증언을 위한 사명자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혔다고 주장함으로써 예수를 메시야로 확증하고자 한다.

 

 

 

[ 13:26] 형제들, 아브라함의 후예와 너희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

 

형제들 - 청중들을 부르는 말은 회당 안에 모인 유대인들과 개종한 이방인들 회당 예배에 참석한 이방인들 모두를 포함하는 말로 이해되어야 한다. 바울은 청중을 다시 부름으로써 주위를 환기시키면서 자신의 설교를 본론으로 이끌었다.

 

아브라함의 후예 - 말은 혈통적인 유대인들을 제한적으로 지칭하는 표현이지만 여기서는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도 의미한다.

 

너희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 - 구절은 개종하지는 않았으나 회당 예배에 참석하는 이방인들로 이해된다.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 - 구절을 헬라어 본문에 따라 직역하면 ' 구원의 말씀이 우리에게 보내졌거늘'이란 의미가 된다. 개역성경은 주어를 하나님으로 전제해서 보내신 주체(主體) 하나님을 강조했으나 헬라어 본문에는 '구원의 말씀' 강조되었다.

 

절부터가 바울의 설교에 있어서 본론 부분에 해당하므로 당연히 구원의 말씀이 강조되어야 한다.

 

 

 

[ 13:27]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저희 관원들이 예수와 안식일마다 외우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저희 관원들 - 바울은 예수를 처형했던 주범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것은 누가의 견해와 동일하다. 왜냐하면 누가는 그의 복음서에서 예수를 처형한 장본인들이 이스라엘 종교. 정치 지도자들임을 진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 23:1-25 무리가 일어나 예수를 빌라도에게 끌고 가서

2) 고소하여 가로되 우리가 사람을 보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그리스도라 하더이다 하니

3) 빌라도가 예수께 물어 가로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대답하여 가라사대 말이 옳도다

4)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무리에게 이르되 내가 보니 사람에게 죄가 없도다 하니

5) 무리가 더욱 굳세게 말하되 저가 유대에서 가르치고 갈릴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여기까지 와서 백성을 소동케 하나이다

6) 빌라도가 듣고 묻되 저가 갈릴리 사람이냐 하여

7) 헤롯의 관할에 속한 줄을 알고 헤롯에게 보내니 때에 헤롯이 예루살렘에 있더라

8) 헤롯이 예수를 보고 심히 기뻐하니 이는 그의 소문을 들었으므로 보고자 오래였고 또한 무엇이나 이적 행하심을 볼까 바랐던 연고러라

9) 여러 말로 물으나 아무 말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10)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서서 힘써 고소하더라

11) 헤롯이 군병들과 함께 예수를 업신여기며 희롱하고 빛난 옷을 입혀 빌라도에게 도로 보내니

12)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이었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니라

13)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관원들과 백성을 불러 모으고

14) 이르되 너희가 사람을 백성을 미혹하는 자라 하여 내게 끌어왔도다 보라 내가 너희 앞에서 사실하였으되 너희의 고소하는 일에 대하여 사람에게 죄를 찾지 못하였고

15) 헤롯이 또한 그렇게 하여 저를 우리에게 도로 보내었도다 보라 저의 행한 것은 죽일 일이 없느니라

16) 그러므로 때려서 놓겠노라

17) (없음)

18) 무리가 일제히 소리질러 가로되 사람을 없이하고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 주소서 하니

19) 바라바는 성중에서 일어난 민란과 살인을 인하여 옥에 갇힌 자러라

20) 빌라도는 예수를 놓고자 하여 다시 저희에게 말하되

21) 저희는 소리질러 가로되 저를 십자가에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22) 빌라도가 번째 말하되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리라 한대

23) 저희가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박기를 구하니 저희의 소리가 이긴지라

24) 이에 빌라도가 저희의 구하는 대로 하기를 언도하고

25) 저희의 구하는 민란과 살인을 인하여 옥에 갇힌 자를 놓고 예수를 넘겨주어 저희 뜻대로 하게 하니라).

 

예수와 안식일마다 외우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 15절에서 언급한 있듯이 그들은 예배 때마다 예언서를 읽지만 예언서의 올바른 뜻을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예수를 구세주로 이해하지 못하였다. 같은 바울의 지적은 유대 지도자들의 무지함을 강조하며 또한 예수의 처형에 대한 책임이 그들에게 있음을 밝히는 것이다.

 

응하게 하였도다 - 결국 예수의 불법적인 처형도 선지자들의 예언에서 이미 제시된 하나님의 뜻이었음을 밝히는 바울의 설교는 3:18에서 언급되는 베드로의 설교와 일치되고있다. 이렇게 베드로와 바울은 신학적으로 동일성을 갖고 있었던 듯하다.

 

(3:18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사 자기의 그리스도의 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느니라)

 

그렇지만 설교가 누가에 의해 기록되었다는 점에서 누가 자신의 신학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Haenchen).

 

누가는 베드로의 설교에서나 바울의 설교에서 같은 내용을 언급하여 초대 교회 시대에 있어서 케리그마가 어느 지역에서나 동일했음을 보여준다.

 

 

 

[ 13:28] 죽일 죄를 하나도 찾지 못하였으나 빌라도에게 죽여 달라 하였으니

 

죽일 죄를 하나도 찾지 못하였으나 - 구절은 예수의 무죄함을 강조한다. 이는 23:14, 15에서 언급된 빌라도의 무죄 선언을 연상하게 한다.

 

( 23:14-15 이르되 너희가 사람을 백성을 미혹하는 자라 하여 내게 끌어왔도다 보라 내가 너희 앞에서 사실하였으되 너희의 고소하는 일에 대하여 사람에게 죄를 찾지 못하였고

15) 헤롯이 또한 그렇게 하여 저를 우리에게 도로 보내었도다 보라 저의 행한 것은 죽일 일이 없느니라)

 

그런데 혹자는 본절의 무죄 선언과 23:14, 15에서의 무죄 선언의 주체를 구분하고 있다. (Haenchen).

 

그는 23:14, 15에서는 빌라도가 무죄를 선언한 것이고 절에서는 유대인들이 예수의 무죄함을 입증한 것이라고 본다.

 

이처럼 죄가 없으신 예수에 대한 무죄 선언은 재판 과정에서나 신학적으로나 정당한 것으로 인정될 수밖에 없었다.

 

 

 

[ 13:29] 성경에 저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응하게 것이라 후에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

 

말씀을 응하게 것이라 - 바울은 예수의 재판과 처형을 이미 성경에 예언된 바의 성취로 이해하며 예수 사건을 전체 구속사의 핵심으로 바라보고 있다.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 - 예수의 십자가상의 죽음을 재확인하면서 부활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다. 장사지내고 무덤에 돌어갔다는 점이 예수의 죽음을 분명하게 증명해 주는 것이라고 바울은 믿는 듯하다.

 

여기서 '십자가'라는 대신 '나무'라고 언급한 것은 21:23에서 언급된 예언과 일치시키려는 바울의 의도로 보여진다.

 

( 21:23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당일에 장사하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한편 바울은 십자가 사건을 복음서처럼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이는 바울의 관심이 예수의 완전한 죽음 그리고 죽음의 구속사적 의의를 간략하게 설명하는 있음을 보여준다.

 

 

 

[ 13:30] 하나님이 죽은 가운데서 저를 살리신지라

 

하나님이 죽은 가운데서 저를 살리신지라 - 부활신앙에 대한 고백은 초대 교회에서 이미 공통된 교리로 고정된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3:15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일에 증인이로라;

 

4:10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박고 하나님이 죽은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그리고 예수를 부활하게 주체가 하나님이라는 고백은 예수에 대한 유대인들의 정죄와 처형을 하나님께서 불법적이고 부당한 것으로 보증하셨음을 의미한다. 나아가서 예수의 말과 행동이 하나님에게 정당한 것으로 용납되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 13:31]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에게 여러 보이셨으니 저희가 이제 백성 앞에 그의 증인이라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 - 구절은 갈릴리에서부터 예수와 동행했던 사람들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는 불명확하다. 복음서에서도 증언하는 부활 목격자는 매우 다양하다.

 

마태는 예수의 부활 현현(顯現) 장소를 갈릴리로 제한시켜 언급하고 있으며 마가 역시 마태와 동일하다.

 

( 28:7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10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가서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16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의 명하시던 산에 이르러)

 

요한은 예루살렘과 갈릴리에 각각 부활 현현이 있었던 것으로 언급하고 있다.

 

( 21:2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14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또한 누가는 엠마오 도상에서 제자가 예수의 부활 현현을 목격했으며

 

( 24:18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당신이 예루살렘에 우거하면서 근일 거기서 일을 홀로 알지 못하느뇨)

 

예루살렘에 있던 한사도와 외의 추종자들도 목격했다고 기록했다.

 

( 24:33 시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사도와 그와 함께 자들이 모여 있어).

 

이와 같이 복음서마다 부활 현현의 장소와 대상이 다양하게 언급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바울도 고전 15:6에서는 두사도와 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예수의 부활을 목격했다고 언급하고 있다.

 

(고전 15:6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

 

따라서 성경 전반에 걸친 부활 현현에 대한 증언을 토대로 본문의 의미는 불특정한 갈릴리 출신인들을 지칭한다고 있다.

 

한편으로는 10:39-41 나타난 베드로의 설교처럼 사도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할 있다. (Haenchen, Bruce).

 

(10:39-41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의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저희가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40) 하나님이 사흘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41)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죽은 가운데서 일어나신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그러나 본문에서 바울이 자신의 다메섹 경험을(9:1-8) 언급하고 있지 않으며

 

(9:1-8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 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3)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5)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6) 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7)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섰더라

8)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고전 15:6에서 언급한 500명의 목격에 관한 언급도 없다는 점에서 본문의 내용은 저자인 누가의 관점에서 묘사 것이라고 있을 것이다.

 

(고전 15:6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

 

그렇다면 누가복음에서 언급된 바처럼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을 중심으로 갈릴리 출신의 예수 추종자들이라고 보아야 것이다.

 

여러 - 여기서 언급한 부활 현현의 기간은 1:3에서 언급된 400일간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된다. (Haenchen, Robertson, Beyer).

 

(1:3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백성 앞에 그의 증인이라 - 부활한 예수를 목격한 사람들이 부활의 산증인임을 언급하는데 바울 자신이 증언자에 포함되는 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32절에서 본절의 증인들과 구분하여 '우리도'라고 바울 자신과 바나바를 언급한 점으로 보아 사도들을 중심으로 최초의 목격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10:39-41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의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저희가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40) 하나님이 사흘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41)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죽은 가운데서 일어나신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 13:32] 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 - 약속은 23절에서 언급한 하나님의 약속을 의미한다. 바울은 4:13 3:16에서도 같은 형태의 진술을 하여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오셔서 사역했음을 밝혔다.

 

( 4:13 아브라함이나 후손에게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3:16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자손이라 하셨으니 그리스도라)

 

따라서 바울은 자신의 복음이 유대인들에게 이단적인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믿는 하나님의 약속이며 약속이 성취된 소식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예수에 대한 유대인들의 오해와 무지를 벗겨주고자 노력했다.

 

 

 

[ 13:33]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우리 자녀들에게 - 절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된 세대에 대한 것이므로 '우리 자녀들에게' 표현은 적합하지 않다. 바울은 지금 예수께서 활동하시던 당대의 세대를 지칭하고 있다.

 

따라서 구절은 대부분의 영역처럼 '그들의 자녀된 우리에게' 해석되는 것이 무난하다.

 

너는 아들이라 - 2:7 인용한 본문은 본래 이스라엘 사회에서 왕의 대관식(戴冠式) 사용되던 시로서 이스라엘 왕이 기름부음을 받을 왕이 하나님으로부터 다시 태어나 하나님과 부자(父子) 관계를 맺는다는 의미이다.

 

( 2:7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바울이 시편의 말씀을 예수에게 적용시킨 것은 바울의 독특한 인용이 아니다.

 

사실 복음서에서도( 1:11; 3:22) 예수가 메시야로서 성령의 능력을 받을 본문과 갈은 내용을 인용하고 있다. (Bruce).

 

( 1:1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3:22 성령이 형체로 비둘기 같이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그리고 히브리서에서도 2:7 예수에 대해 적용시켜 인용하였다.

 

( 1:5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누구에게 네가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뇨).

 

이는 2:7 비록 왕의 대관식에서 많이 사용된 구절일지라도 유대인의 전통에서 구절을 메시야와 연관시켰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초대 교회는 예수께서 다윗의 가문에서 나온 왕권적인 권리를 가진 메시야로서 하나님께 세움을 받았다고 믿었던 것이다.

 

 

 

[ 13:34] 하나님께서 죽은 가운데서 저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가라사대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 - 바울은 예수가 죽어서 썩지 않고 부활할 것이라는 구약적 근거를 다시 한번 강조하면서 다윗의 가문에서 부활할 메시야가 나올 것이라는 구약적 증거로 칠십인(LXX)역의 이사야 55:3 들고 있다.

 

(이사야 55:3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

 

이러한 신학적 의도는 베드로의 설교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2:27 놀라 기이히 여겨 이르되 보라 말하는 사람이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여기서 바울은 기독교를 유대교 전통과 분리된 이단이 아니라 유대교가 필연적으로 가야 길임을 강변하고 있다. 절은 당시 전통적인 유대교 앞에 소수종교로서 기독교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는 바울의 끈질긴 설득이다.

 

 

 

[ 13:35] 그러므로 다른 편에 일렀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셨느니라

 

다른 편에 - 말은 33절에서 언급한 둘째 ( 2:7) 구분되는 시편을 뜻한다.

 

( 2:7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여기서 바울은 16:10 근거로 구약적인 부활 사상을 다시 언급하여 예수의 부활에 대한 증거를 더욱 심도있게 진술하고 있다.

 

( 16:10 이는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 13:36]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섬기다가 잠들어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섬기다가 - 바울은 22절에서 언급했던 다윗을 다시 언급하여 예수의 부활과 다윗의 죽음을 대조시켜 예수의 부활 사건을 강조했다. 먼저 바울은 유대인들이 갖고 있는 다윗에 대한 인상을 재확인하고 있다.

 

22절에서는 다윗을,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세움을 받았으며 또한 하나님에게 용납된 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사람으로 언급하였는데 여기서도 역시 다윗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았던 인물임을 말하여 다윗을 높이고 있다.

 

그렇지만 바울은 곧이어 다윗의 죽움과 썩어짐을 예수의 부활과 대조시켜 썩지 않음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계속 유효했음을 강조한다.

 

한편 '섬기다' 동사의 목적어로 사용된 구절은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라고 번역될 있다(Robertson, Alford, Haenchen). 해석을 취할 경우 구절은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다윗이 시대에 자기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일을 수행했던 사람'임을 의미한다.

 

여기서 바울은 다윗의 업적과 죽음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었음을 22절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비록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썩음을 당하지 않으리라는 약속을 받았으며 하나님에 의해 맡겨진 사명을 수행했을지라도 죽었다.

 

그렇다면 그에게 주어진 약속은 성취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바울은 사실을 예수와 연관지어 35절에 이어 다시 한번 언급함으로써 예수가 구약에 약속된 대로 부활하셨음을 강조했다.

 

 

 

[ 13:37] 하나님의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

 

하나님의 살리신 - 부활하신 예수를 가리키는 구절은 죽음으로부터 예수를 부활시킨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다윗의 유한한 생명과 예수의 영원한 생명을 대조시켜 하나님의 궁극적 뜻이 예수를 통해서 성취됨을 주장한다.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으나 - 말은 36절의 '썩음을 당하였으되'라는 말과 반대되는 표현으로 다윗과 예수를 극명하게 구분시키는 것이다. 바울은 유대교 전통에 붙잡혀 있는 유대인들에게 다윗보다 예수가 위대함을 논증해 보임으로써 예수에 대한 유대인들의 선입관이나 잘못된 의식을 바꾸고자 했던 것같다.

 

 

 

[ 13:38]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것은 사람을 힘입어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사람을 입어 - 말은 문자적으로 ' 사람으로 말미암아' 의미하여 어떤 결과의 유래(由來) 나타낸다. 그것은 '죄사함의 선언' 이가 예수임을 의미한다.

 

사함 - 바울이 예수의 부활을 ' 사함' 곧바로 연결시킨 것은 약간 논리의 비약이라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예수의 부활이 어떻게 해서 사함의 근거가 되는 지에 대해서 전혀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가가 자세한 설명을 생략한 같다. 한편 바울이 ' 사함' 복음의 핵심으로 선포한 것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정죄' 문제가 신앙의 억압적 요소로 크게 작용하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유대인들은 장로들의 유전(遺傳)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여야 했으며 하나라도 범하게 되면 죄인으로 판명되므로 문제로 인해 항상 억압당하는 신앙생활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의 예수에 의한 사함의 선포는 바리새인이었던 자신이 예수를 만남으로써 체험했던 사실에 대한 것임과 동시에 초대교회의 교리의 핵심이었다.

 

 

 

[ 13:39]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 구절은 바울 서신과 일치된 사상을 전달하고 있으므로 본장에 언급된 바울의 설교를 본서의 저자인 누가의 작품으로 평가할 없음을 의미한다.

 

설교가 누가의 필치에 의해 다듬어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으나 '부활' '의의 선포'같은 내용은 바울의 독특한 신학을 형성하는 골격이 되므로 전체적인 내용은 분명히 설교자 바울의 것임에 틀림없다.

 

바울은 의롭게 되는 일에 온갖 정성을 바쳤던 유대인들의 삶을 지적하면서 의롭게 되는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바울의 설교에는

 

(1) 사람이 율법으로는 결코 의롭게 없다는 사실과

(2) 예수를 통해서만 의롭게 있다는 사실이 강하게 암시되어 있다.

 

 

 

[ 13:40] 그런즉 너희는 선지자들로 말씀하신 것이 너희에게 미칠까 삼가라

 

너희에게 미칠까 삼가라 - 바울은 자신의 설교를 마무리 지으면서 마지막 경고를 주기위해 41절에서 1:5 인용하였다.

 

( 1:5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열국을 보고 보고 놀라고 놀랄지어다 너희 생전에 내가 일을 행할 것이라 혹이 너희에게 고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리라)

 

 

 

[ 13:41] 일렀으되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이를지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일렀으되 - 말은 절에서 언급했듯이 '선지자들' 말을 다시 상기시키는 것으로 예언서에서 발췌된 것임을 암시해 주고 있다. 여기서 인용되는 구절은 1:5로서 70인역을 약간 변형시켜 사용되었다.

 

히브리 본문에서 구절은 갈대아 사람의 등장에 대한 예언과 관련되어 있다. (Haenchen).

 

그러나 바울은 문구를 인용하여 유대인들이 배타적으로 우월감에 빠진 선민의식(選民意識)으로 인해 버림받고 오히려 이방인들이 구원의 길로 인도될 것임을 예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