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과 말씀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거듭난 삶 2017. 6. 3.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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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뱃사람들을 위로

[로마로 향하는 바울]

 

 

: [ 27:21-38]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22)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23) 나의 속한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곁에 서서 말하되

24)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25)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26) 그러나 우리가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

27) 열나흘째 되는 밤에 우리가 아드리아 바다에 이리저리 쫓겨 가더니 밤중쯤 되어 사공들이 어느 육지에 가까워지는 줄을 짐작하고

28) 물을 재어보니 이십 길이 되고 조금 가다가 다시 재니 열다섯 길이라

29) 암초에 걸릴까 하여 고물로 넷을 주고 날이 새기를 고대하더니

30) 사공들이 도망하고자 하여 이물에서 닻을 주려는 체하고 거루를 바다에 내려놓거늘

31) 바울이 백부장과 군사들에게 이르되 사람들이 배에 있지 아니하면 너희가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32) 이에 군사들이 거룻 줄을 끊어 떼어 버리니라

33) 날이 새어 가매 바울이 여러 사람을 음식 먹으라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기다리고 기다리며 먹지 못하고 주린 지가 오늘까지 열나흘인즉

34) 음식 먹으라 권하노니 이것이 너희 구원을 위하는 것이요 너희 머리터럭 하나라도 잃을 자가 없느니라 하고

35)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떼어 먹기를 시작하매

36) 저희도 안심하고 받아 먹으니

37) 배에 있는 우리의 수는 전부 이백칠십육 인이러라

38) 배부르게 먹고 밀을 바다에 버려 배를 가볍게 하였더니

 

 

[ 27:21]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 배에 사람들은 갑작스럽게 불어 닥친 태풍 때문에 음식을 먹을 겨를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높은 파도와 바람으로 심하게 흔들리는 속에서 지독한 멀미를 했을 것이기 때문에, 오래도록 음식을 먹지 못하였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바울이 가운데 서서 - 절망과 허기 속에 있던 무리들 가운데 바울은 지난날 자기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아 불행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음을 지적하고 나서며 절망에 빠진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통한 구원의 길을 기대할 있게 한다.

 

바울이 절망과 낙담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과거 잘못을 들추어내는 까닭은 결코 그들을 책망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잘못된 판단과 자신의 옳은 판단을 다시 한번 확인시키기 위함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지금부터 자기가 하나님을 힘입어 판단하고 지시하는 일에 대해 사람들이 믿고 따라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 27:22]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안심하라 너희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뿐이리라 - 드디어 바울은 희망적인 발언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장 무서운 적은 풍랑이나 허기짐보다 오히려 삶의 희망을 갖지 못하고 절망 가운데 빠져드는 것이다.

 

그리하여 바울은 먼저 그들의 불안을 제거시키기 위해 배는 잃게 되더라도 생명은 잃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바울은 사실을 자신있게 말하고 있는데, 이는 하나님의 사자가 바울에게 계시해 주었기 때문이다.

 

(23-24 나의 속한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곁에 서서 말하되

24)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나 배에 사람들은 바울의 말을 들은 즉시는 안심하지 못했고 구체적인 징후들이 보인 뒤에야 안심할 있었다.(27-36).

 

 

 

[ 27:23] 나의 속한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곁에 서서 말하되

 

하나님의 사자 - 바울은 자기의 이야기가 주관적 판단이 아니라 자기가 섬기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자가 계시해준 것임을 밝히고 있다.

 

배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유대인이 아닌 이교도들이었을 것이므로 이들도 알아들을 있는 '천사' 의미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많다.

 

바울은 이전에도 여러 차례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나 계시를 해주었던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18:9-10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성중에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22:17-21 후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18) 보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되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저희는 네가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하시거늘

19) 내가 말하기를 주여 내가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 회당에서 때리고

20) 주의 증인 스데반의 피를 흘릴 적에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킨 저희도 아나이다

21) 나더러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

 

23:11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그러나 바울은 자기에게 나타난 천사가 이방인들도 알고 있는 동화적인 존재가 아니라 자기가 섬기고 있는 '하나님' 천사임을 분명히 밝힘으로써 은연중 사람들에게 선교를 하고 있다.

 

 

 

[ 27:24]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 본래부터 바울은 로마에서 복음을 증거하도록 예정되어 있었다.

 

(23:11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본절은 상황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하나님의 뜻은 끝까지 관철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하나님의 천사가 바울에게 '죽지 않고 살리라' 하지 않고 '가이사 앞에 서야 한다' 말한 것은 그의 삶이 사역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말해준다. 바울의 삶은 오직 복음 선포로 인하여 의미가 있는 것이다.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네게 주셨다 - 이는 바울에게 두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그와 함께 이백 칠십 명의 생명도 살려 주신다는 것을 말해준다.

 

여기서 '주셨다' 바울과 함께 배에 사람들을 바울에게 선물로 주셨다는 뜻이 된다. 아마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바울을 통하여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았을 것이다.

 

 

 

[ 27:25]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 바울은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에 의거해서 사람들을 안심시키려고 애쓰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얼마나 바울의 말을 믿고 안심하였는지는 없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바울의 믿음은 매우 확고한 것으로 보여 지는데 바울의 이런 확실한 신앙의 모습은 다른 사람들이 보여주고 있는 절망적인 모습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사람들은 이러한 바울의 모습을 보면서, 바울 신앙의 독특함에 대해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바울이 섬기는 하나님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바울은 재판을 받으러 끌려가는 죄인 이상의 어떤 고상한 인물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주었을 것이다.

 

 

 

[ 27:26] 그러나 우리가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

 

섬에 걸리리라 - 바울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확신을 표현하는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장래 사건을 예언하고 있다.

 

'배가 어느 섬에 걸릴 것이고 그러면 배는 잃게 것이나 사람들의 생명은 하나도 상하지 않을 것이다'(22).

 

앞으로 일어날 결과는 바울의 믿음과 하나님의 신실성을 사실로 드러낼 것이다.

 

 

 

[ 27:27] 나흘째 되는 밤에 우리가 아드리아 바다에 이리저리 쫓겨 가더니 밤중쯤 되어 사공들이 어느 육지에 가까워지는 줄을 짐작하고

 

나흘째 되는 - 바울 일행을 태운 배는 미항에서 멜리데 섬까지 800Km 이르는 거리를 14일간 유라굴로라는 태풍에 떠밀려 것이다. 일반적으로 지역에서는 수일간 계속되는 태풍 때문에 11-3 사이에는 항해가 중단된다.

 

아드리아 바다 - 오늘날에는 이탈리아와 유고 슬라비아 사이의 바다를 이렇게 부르는데 당시에는 이탈리아, 아프리카, 그레비 , 헬라사이의 바다를 가리켰다.

 

역사가 요세푸스는 자신이 배가 팔레스틴에서 로마로 항해하다가 아드리아해 가운데서 난파당했던 일을 기록에 남겨놓았다(Jos., Vita 15).

 

육지에 가까와지는 줄을 짐작하고 - 배가 육지에 가까와지는 것을 어떻게 있었을까에 대해서는 가지 견해가 있다.

 

(1) 밑에 있는 방류묘가 밑바닥에 부딪히는 것으로 알았다.(Breusing).

(2) 배가 동쪽에서 () 바울(St. Paul)만으로 들어갈 경우 반드시 쿠라곶을 지나게 되는데, 이곳을 지날 쿠라곶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를 듣고 알았을 것이다.(Smith, Beg, Lenski).

 

* 참조 : 구글지도로 성 바울(St. Paul)만을 찾아보았으나 에덴골 돌쇠의 얕은 지리지식으로는 발견 할 수가 없었으나 학자들의 주장을 존중해서 기재하였슴.


견해가 정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으나 전자의 견해는 방류묘의 길이가 36m이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필요하므로(28 참조 물을 재어보니 이십 길이 되고 조금 가다가 다시 재니 열다섯 길이라, Haenchen),

 

후자의 견해가 타당할 것이다.

 

만약 쿠라 곶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를 배에 사람들이 들었다면 사람들은 그것을 삶에의 희망을 보여주는 기쁨의 소리로 들었을 것이고 그를 통해 바울의 예언이 사실로 다가옴을 서서히 느낄 있었을 것이다.

 

(2 아시아 해변 각처로 가려 하는 아드라뭇데노 배에 우리가 올라 행선할새 마게도냐의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도 함께 하니라).

 

 

 

[ 27:28] 물을 재어보니 이십 길이 되고 조금 가다가 다시 재니 열다섯 길이라

 

이십 길이 되고 조금 가다가 다시 재니 열다섯 - 여기서의 '' 팔을 벌려서 폈을 한손의 중지 끝에서부터 다른 손의 중지 끝까지의 길이를 나타낸다. 길이는 대략 1.8m 본다.

 

그러니까 본문의 '이십 ' 수심이 36m였다는 뜻이고 다음에 '열다섯 ' 수심이 27m였다는 뜻이다. 이것은 수심이 빠른 속도로 얕아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따라서 암초에 걸릴 있는 가능성이 많아짐을 나타낸다.

 

 

 

[ 27:29] 암초에 걸릴까 하여 고물로 넷을 주고 날이 새기를 고대하더니

 

고물로 넷을 주고 - 닻은 배를 곳에 머물러 있게 하기 위하여, 밧줄이나 쇠줄에 매어 물에 던지는, 쇠나 나무 따위로 만든 무거운 물건이다. 고물은 배의 뒷꼬리 부분을 가리킨다.

 

닻을 배의 뒷부분 고물에서 내리는 것은 보통의 일상적인 방법은 아니었다. 본래 닻은 이물 배의 앞머리 부분에서 내리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지금 닻을 고물에서 내린 것은, 배가 해변 가까이 접근해 있고 폭풍이 몹시 불어대는 특수한 상황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만약 이물에서 닻을 내려 배의 앞부분이 고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바람과 파도가 배를 해변 쪽으로 밀어 붙이면 배의 뒷부분이 180 앞으로 돌아갈 수가 있고 과정에서 배가 암초에 부딪히는 일이 발생할 있기 때문이다.

닻을 개나 내린 것은 가능한 배를 움직이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 27:30] 사공들이 도망하고자 하여 이물에서 닻을 주려는 체하고 거루를 바다에 내려놓거늘

 

사공들이 도망하고자 하여 - 닻을 내려 배의 전진을 억제시킨 지금의 상황에서 밤만 무사히 지낸다면 날이 후에 육지에 상륙 있는 가능성은 매우 높다.

 

그리고 바울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히 말해 주었었다.

 

(22-25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23) 나의 속한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곁에 서서 말하되

24)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25)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그러나 선원들이 밤사이에 있을 있는 위험에 대한 염려와 바울의 말을 믿지 못하여 자기들끼리 도망가려고 했다. 이들은 이물에서 닻을 내리려는 체하며 거룻배를 내려 타고가려고 했다.

 

 

 

[ 27:31] 바울이 백부장과 군사들에게 이르되 사람들이 배에 있지 아니하면 너희가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바울이 백부장과 군사들에게 이르되 사람들이 배에 있지 아니하면 너희가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 이물에서 닻을 내리지 않아야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닻을 내리려는 선원들의 행동은 어딘가 미심쩍은 데가 있었으며 바울은 그들의 의도를 간파했다.

 

그리하여 바울은 백부장과 군사들에게 그들의 도망을 저지시키도록 충고했다.

 

지금과 같이 어려운 상황에서 선원들이 없어져 버린다면 배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치명적인 결과를 맞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다음날 상륙할 때에도 경험이 많고 노련한 선원들은 필요한 존재들이었다.

 

 

 

[ 27:32] 이에 군사들이 거룻 줄을 끊어 떼어 버리니라

 

거룻 줄을 끊어 떼어 버리니라 - 바울은 사공들의 도주를 저지 시키라고만 했을 거룻배를 버리라고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군사들이 거룻배의 줄을 끊어버림으로써 거룻배는 바다에 버려졌다.

 

이것이 백부장의 명령에 의한 것이라면, 충분히 심사숙고하지 못한 판단이었다고 있다. 왜냐하면 거룻배는 다음날 육지에 상륙할 필요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급기야 그들은 다음날 배를 해안에 갖다 대는 모험을 감행해야 했고 그것은 실패로 돌아간다.

 

(39-41 날이 새매 어느 땅인지 알지 못하나 경사 해안으로 항만이 눈에 띄거늘 배를 거기에 들여다 있는가 의논한

40) 닻을 끊어 바다에 버리는 동시에 킷줄을 늦추고 돛을 달고 바람을 맞추어 해안을 향하여 들어가다가

41) 물이 합하여 흐르는 곳을 당하여 배를 걸매 이물은 부딪혀 움직일 없이 붙고 고물은 물결에 깨어져가니).

 

 

 

[ 27:33] 날이 새어 가매 바울이 여러 사람을 음식 먹으라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기다리고 기다리며 먹지 못하고 주린 지가 오늘까지 열나흘인즉

 

음식 먹으라 권하여 - 날이 새려고 무렵 바울은 우선 배에 있는 사람들이 음식을 먹고 기운을 차려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그것은 사람들을 안심시킬 있는 방법이기도 했겠지만 날이 새면 상륙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있을 있는 비상사태에 대비한다는 의미에서도 매우 현명한 판단이었다.

 

(43-44 백부장이 바울을 구원하려 하여 저희의 뜻을 막고 헤엄칠 아는 사람들을 명하여 물에 뛰어 내려 먼저 육지에 나가게 하고

44) 남은 사람들은 널조각 혹은 물건에 의지하여 나가게 하니 마침내 사람들이 상륙하여 구원을 얻으니라)

 

바울은 그들이 열나흘 동안이나 음식을 먹지 못하고 주렸음을 상기시킴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먹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느끼게 하려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이 열나흘을 주렸다는 것이 아무것도 먹지 않고 기간을 지내왔다는 것을 뜻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만약 문자 그대로 아무것도 먹지 않고 14일을 폭풍에 시달려 왔다면 상당수의 희생자가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는 제대로 식사를 하지 못하고 겨우 목숨을 연명할 있는 만큼의 음식만 섭취하였다는 의미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Bruce, Haenchen,Robertson, Lenski).

 

 

 

[ 27:34] 음식 먹으라 권하노니 이것이 너희 구원을 위하는 것이요 너희 머리터럭 하나라도 잃을 자가 없느니라 하고

 

너희 구원을 위하는 - 이제 먹는 것은 단지 주림을 해소하거나 기운을 차리게 하는 차원을 넘어 생명의 보존과 관계된다.

 

여기서 '구원' 육체적인 구원을 뜻하는 것으로 쓰였는데 11:7에도 같은 용법이 발견된다.

 

( 11: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

 

바울이 날이 밝은 상륙을 시도할 어려움이 있을 것을 예견했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결과론적으로 지금 음식을 먹는 것은 다음날 육신의 생명을 구하는 있어 결정적으로 중요한 요소가 된다.

 

(43-44 백부장이 바울을 구원하려 하여 저희의 뜻을 막고 헤엄칠 아는 사람들을 명하여 물에 뛰어 내려 먼저 육지에 나가게 하고

44) 남은 사람들은 널조각 혹은 물건에 의지하여 나가게 하니 마침내 사람들이 상륙하여 구원을 얻으니라).

 

머리터럭 하나라도 - 문구는 구약 시대 부터 전해져 왔던 격언 형식의 문구로

 

(삼상 14:45 백성이 사울에게 말하되 이스라엘에 구원을 이룬 요나단이 죽겠나이까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옵나니 그의 머리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할 것은 그가 오늘 하나님과 동사하였음이니이다 하여 요나단을 구원하여 죽지 않게 하니라;

 

왕상 1:52 솔로몬이 가로되 저가 만일 선한 사람이 될진대 머리카락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려니와 저의 가운데 악한 것이 보이면 죽으리라 하고),

 

하나님의 완벽한 보호를 표현하는 것이다. 말씀은 예수에 의해 인용되기도 했는데,

본서에서 바울이 다시 인용하고 있다.

 

( 12:7 너희에게는 오히려 머리털까지도 세신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이와같은 바울의 자신있는 안전 보장은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의 불안을 제거하는데 결정적인 작용을 하였음에 틀림없다.

 

 

 

[ 27:35]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떼어 먹기를 시작하매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 바울이 떡을 가져다가 축사 하고 떼어 먹은 식사 행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의 해석이 있다.

 

(1) 기독교인의 성만찬의 의미를 지닌 것이다.(Belser, Olshausen, Ewald).

(2) 유대인의 가정에서 식사할 가장이 축사하는 것에 따른 것이다(Meyer, Hackett). (3) 기독교인이나 유대인이나 구별없이 누구나 알고 있었던 식사 때의 감사기도였다(Haenchen, Wendt1).

 

이상의 견해 가운데 첫번째 견해는, 본문의 표현이 예수께서 하셨던 축사와 유사한 점은 있으나

 

( 24:30 저희와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매)

 

그것이 성만찬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는 점과 지금 바울과 함께 있는 절대 다수가 이교도들이라는 점에서 타당성이 희박하다고 있다.

 

또한 둘째 견해는 지금 바울이 유대교인으로서가 아니라 기독교인으로서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고 있다는 점에서 타당하다고 수는 없다.

 

결국 세번째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고 있는데, 당시 유대교 뿐만 아니라, 모든 헬라 세계에 일반적으로 식사에 대한 기도가 있었다. 다만, 여기서 바울이 축사를 하였을 때는, 명백하게 바울의 방식대로 축사의 내용이 말하여졌을 것이다.

 

 

 

[27:36] 저희도 안심하고 받아 먹으니 - 바울의 식사하는 모습이 너무도 담대하고 평안해 보였으므로 다른 모든 사람들도 용기를 얻어 식사를 시작하였다.

 

이제 사람들은 바울의 말을 신뢰하기 시작 하였고 절망에서 벗어나 안심하기 시작한 것이다.

 

(22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25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27:37] 배에 있는 우리의 수는 전부 이백칠십육 인이러라

 

이백 칠십 - 음식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알게 것인지 아니면 음식을 먹은 후에 상륙할 것을 계획하는 과정에서 인원 점검이 필요했기 때문에 세어본 것인지 분명치 않다.

 

B사본에는 76명이 배에 타고 있었던 것으로 되어 있고 당시 선박의 취약성으로 인해 숫자가 적다는 점에서 B사본을 지지하는 학자도 있으나(Weiss) 숫자가 적은 것이 타당성을 갖는다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요세푸스가타고 가다가 난파 당했던 배에는 600 가량이 타고 있었다는 기록을 (Jos.,Vita 15) 276명은 결코 많은 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 27:38] 배부르게 먹고 밀을 바다에 버려 배를 가볍게 하였더니

 

배부르게 먹고 밀을 바다에 버려 - 모두가 배부르게 먹어 기운을 차린 뒤에는 밀을 바다에 던져버려 배의 무게를 가볍게 하였다.

 

지금의 시점에서 가장 소중한 곡물까지도 버려야하는 것은 조금이라도 해변 가까이에 접근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이는 거룻배도 버린 상황에서 어쩔 없이 헤엄을 치거나 물에 뜨는 물체에 의지해서 상륙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바울의 예언이 점점 실현되어가고 있음을 보게 된다.

 

(22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