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거듭난 삶 2017. 8. 18.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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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배가전략

 

 

( 17:14-26)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

15)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16)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17)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19)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20) 내가 비옵는 것은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23)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25)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사옵고 그들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알았사옵나이다

26)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예수님께서 훈련시킨 제자삼기는 결과적으로 성공하였습니다.

이미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있으며

우리나라만 헤도 전체 인구의 4분의 1 크리스쳔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제자삼기는 분명히 성공한 전략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전도방법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분명히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제자훈련을 통한

배가 전략을 가르쳤으며 이것은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적용될 있는 귀한 원리가 됩니다.

 

특별히 오늘날 교회처럼 교회의 성장과 빛과 소금이 되는 크리스쳔을 이루기 위해서는

더욱 필요한 전략이 예수님의 제자훈련을 통한 배가전략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세우시고 실행하신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1.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신 이유는 분명합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17:14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

 

주셨다 함은 헬라어로 <데도카>로서 자발적으로 주다, 부여하다라는 의미가 있지만

위임하다, 위탁하다라는 뜻도 가지고 있는 단어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위임받아

말씀을 전하고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이상 세상에 속하지 않고 하나님의 권속이 되었기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미움과 박해를 당하게 되는 것이다.

 

 

2. 예수님이 제자를 세상에 파송하신 제자사역과 관련해서 먼저 모범이 되는 분은 누구십니까?

 

( 17: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그리스도의 사역 - 33 동안 우리들에게 나타내신 사역을 살펴봅시다.

 

 

3. 예수님의 사역을 하는 우리에게 주어진 능력에 대하여 요한은 어떻게 표현합니까?

 

( 17: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성도들에게는 주님께서 많은 사랑과 힘과 주셨습니다.

결국 성도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성장하여야합니다.

 

 

4. 예수님이 우리를 향한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입니까?

 

( 17: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게 하려는 >

 

오늘 성경 본문인 요한복음 17장은 십자가를 지실 일을 앞두신 예수님의 유명한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셨다는 것은 많이 기록되어 있지만

이처럼 기도의 내용이 자세하게 알려진 것은 드뭅니다.

 

아마 제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하나님께 드린 기도였던 같습니다.

기도의 부분인 본문은 보통 예수님 자신을 위한 기도라고 설명되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기도임을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기도에서

과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보려는 것입니다.

 

 

첫째, 우리 인간에게서 하나님의 형상을 입게 ,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6장에 보면 이사야가 성전에서 기도하던 중에, 영의 눈이 열려 하나님의 영광이 땅에 충만하심을 보는 놀라운 체험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때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죽을 같은 경외감에 사로 잡혀서 떱니다.

 

그것은 하나님만이 가지신 영광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영광은 놀랍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나님의 모습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사야 6 1-13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2)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둘로는 날며

3)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4) 이같이 화답하는 자의 소리로 말미암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5)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6) 때에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7) 그것을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입에 닿았으니 악이 제하여졌고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8) 내가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10)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11) 내가 이르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하였더니 주께서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토지는 황폐하게 되며

12)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3)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같이 거룩한 씨가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은 하늘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이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이고, 당연히 하나님의 솜씨가 속에 나타나 있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도 저와 여러분,

우리 자신의 모습 그대로가 본래 하나님의 영광을 가장 놀랍게 드러내는 존재였습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유일한 존재라고 성경은 증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것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사라지고 말았다는 사실입니다.

그중에서 사람들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사라졌습니다.

 

이유는 때문입니다.

창세기 6:3에서 성경은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 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죄를 지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것입니다.

게다가 심각한 문제는 사람들의 죄가 많아지면서

자연도 오염되기 시작하여 자연 속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위에서 이제는 하나님의 솜씨를 찾아보기 어려워 졌습니다.

사람들에게서 하나님의 형상을 찾아보기 어려워졌습니다.

 

그것은 태양은 여전히 비취지만 먹구름이 잔뜩 끼여서 햇빛을 차단하므로 태양이 없는 같아 보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아직 완전히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것은 아닙니다. 흔적은 남아 있습니다.

만일 사람에게서도 자연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이 완전히 사라진다면 그곳은 바로 지옥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몸은 죽은 몸입니다.

지금 세상은 살았다 하지만 죽은 자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소돔과 고모라 같은 곳과 죄로 물든 삶을 살면서도 태연한 자들이 있습니다.

 

바로 이와같은 우리의 현실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분명해 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죄를 제거하고

본래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을 회복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다'하셨는데

 

애통하는 것이 어째서 복이 되겠습니까?

이유는 회개의 눈물이 죄를 씻기 때문이고

죄가 씻길 때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둘째,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놀랍게 드러내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17:1에서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여기서 '때가 이르렀다'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가 이르렀다는 말씀입니다.

 

아니, 하나님의 아들이 치욕과 고난의 십자가에 달리시는 것이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 되는 것입니까?

 

모순도 이만저만 모순이 아닙니다.

그러나 여기에 우리들이 분명히 알아야

하나님의 영광의 깊은 뜻이 있음을 알아야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는

모든 인류의 죄를 속죄하는 하나님의 가장 크신 은혜가 담겨 있습니다.

 

바로 십자가에 우리 인간은 심판을 피할 없는 죄인에서

영광스런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죄인된 사람이

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

하나님의 영광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십자가는 하나님의 본성이신

사랑과 공의와 능력을 가장 극적이면서도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하나님의 가장 영광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수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세상에서 성공자가 되는 것입니까?

그것 만으로는 단정지어 말할 없습니다.

 

세상에서 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과는 상관없이

사람의 영광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기준은,

우리의 삶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어떻게 널리 전하여

영혼 구원하는 일에 쓰였느냐 하는 것입니다.

영혼구원에 쓰임 받지 못하는 삶은 하나님의 영광과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그가 세상에서는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었을 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 책망 받는 자가 뿐입니다.

 

 

* 문둥이의 성자로 널리 알려진 다미엔 신부가 있습니다.

그는 하와이 몰로카이 섬의 문둥병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문둥병자들이 다미엔 신부의 호소를 거부했습니다.

이유는 그가 정상적인 사람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다미엔 신부는 자신이 문둥병자가 되기를 기도 했습니다.

결국 그는 문둥병에 걸렸고 그로인해 문둥병자들의 마음이 열리고

그들이 구원받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다미엔 신부를 세상적인 기준으로 , 인생의 성공자입니까?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정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를 원하는 것입니까?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모든 것들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쓰여 지도록 힘쓰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영광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째,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십자가의 복음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는 일에

우리는 온전히 순종하여야 것입니다.

 

예수님은 17:4에서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신 것은

예수님이 받으실 모든 영광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뜻에 죽기까지 복종하신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인생이

정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었는지 아니었는지 평가 받을 때가 분명히 옵니다.

 

그것은 우리가 세상에서 얼마나 잘되었는지로 평가받지 않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세상에서 잘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 되겠다고 여겨지지만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사람이 될수록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크게 가리우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결정하는 것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멋잇고 화려하고 높아져도

자체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없습니다.

사람의 영광만 돋보일 뿐입니다.

 

당신이 세상에서 잘된 것을 통하여 얼마나 주의 복음이 널리 전파되었습니까?

 

바로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서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께 영광 돌린 삶이냐

아니면 하나님과는 상관없는 삶이냐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겐 복음전도, 영혼구원의 문제가 별로 매력 없는 주제일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것까지는 요구하지 않으셨으면 하고 생각합니다.

 

그저 혼자서는 열심히 교회 빠지지 않고 헌금도 내고 테니까

그렇지 않아도 많은 세상에

정도로 내버려두셨으면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어떤 삶도 하나님 앞에서는

실패의 인생임을 알아야 합니다.

 

달란트를 묻어 종이 어떤 책망을 받았습니까?

악하고 게으른 종아 어두운 데로 쫓겨나 이를 갈며 울게 된다고 했습니다.

 

영혼구원을 대신할 아무 것도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일에 바쁜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향한

하나님의 부름에 순종하기가 너무나도 어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나의 우선 관심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순종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순종은 하기 어려운 일을 했다는 의미가 있는 말인 것을 이해 하시겠씁니까?

 

복음 전하는 ,

십자가를 지는 ,

십자가를 증거하는 일이 쉽다면,

하나님께서 순종을 요구 하셨겠으며,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겠습니까?

 

형편과 여건이 어려운 ,

생활이 바쁜 ,

자신이 없다는 것이 모두가 이제는

이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못하는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나폴레옹은 이집트 원정길에 많은 학자들을 데리고 갔는

어느 , 하늘의 별을 보며

 

" 웅려(雄麗) 밤하늘은 도대체 누가 지었는가?"하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하나님이 지으셨다" 말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만약 그가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있었다면

개인과 세계 역사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는 한때 천하를 얻었으나 마지막은 너무나도 쓸쓸했습니다.

 

세상 사람은 나폴레온을 영웅이라고 말하지만 아닙니다.

그는 바보 천치입니다.

 

지금도 우리가 이따금 이라도 밤하늘의 별을 있다면,

눈을 높이 들고, 우주를 보고,

우주보다 크신 하나님을 생각할 있다면 우리는 훨씬 지혜로울 것입니다.

 

 

마음을 새롭게 합시다.

 

선교 사역은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파송하셨고

예수님은 제자들을 훈련시켜 세상으로 파송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제자를 삼아 파송하여 오늘 우리에게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도 역시 훈련시켜 파송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자신만 예수님을 믿음으로 끝을 맺고 있는 사람입니까?

 

바울은 딤후2:2에서

주님의 제자 훈련을 통한 배가전략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딤후 2:2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있으리라)

 

배가 전략의 초점은 내가 먼저 예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제자입니까? 아니면 교회 터만 밟는 회원입니까?

양이 양을 낳고, 말이 말을 낳듯이 제자가 제자를 낳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