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 효과, 물은 누가 만드나
배극인 산업부장
동아일보
입력 2017-08-19 03:00
LG필립스LCD 파주 공장.
11년 전인 2006년 준공식에 참석한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축사에서 “한국의 미래를 상징하는 축복의 자리”라며 감격해했다.
지금은 LG디스플레이로 이름을 바꿨지만 임직원들은 당시 감동을 잊지 못한다.
2003년 투자의향서를 체결할 때만 해도 휴전선에서 불과 10km 거리인 데다 온갖 수도권 규제가 겹친 이 지역에 50만 평 부지의 공장을 설립하는 일은 꿈만 같았다.
15개 정부 부처와 자치단체로 구성된 태스크포스(TF)의 ‘원스톱’ 행정서비스는 3년 만에 꿈을 현실화하면서 한국 액정표시장치(LCD)를 세계 1위로 견인했다.
11년이 지나 파주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공장 근무 인원의 65%가 현지에 거주하는 가운데 2003년 24만 명이던 파주 인구는 지난해 44만 명으로 배로 늘었다. 계열사와 협력업체가 줄줄이 입주했고 상업시설이 조성되면서 지역경제 전체에 2, 3차 파급 효과가 이어졌다.
회사가 지난해 시에 납부한 세금만 370억 원으로 전체 세수의 12%였다.
기업 투자가 지역경제 활성화로 이어진 사례는 얼마든지 더 있다.
SK하이닉스 이천 공장도 대표 사례다.
이천상공회의소는 작년에만 지방세와 지역 기업에 대한 공사 발주, 사회공헌 활동 등으로 3000억 원이 지역 경제에 유입됐다고 발표했다. 지역 대표 농산물인 임금님표 이천쌀은 연간 600t이 사원식당에 납품됐다.
국가 전체로도 한국 대표 기업의 기여도는 엄청나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두 회사가 2015년 국내 전체 법인세의 10.2%를 부담했다. 상위 10대 기업의 부담률은 전체의 4분의 1 수준이다.
2015년 국내 전체 세수 중 법인세 비중은 12.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9%)보다 높았다. 기업의 역할이 돈을 벌어 세금도 내고 일자리도 만드는 것이라면 한국 기업들은 합격점 이상이다.
취임 100일을 맞은 현 정부의 기업정책은 그런 면에서 유감이다.
법인세 인상,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통신요금 인하 등 기업 사정은 아랑곳 않는 정책이 쏟아지고 있다.
기업들이 현금을 쌓아두고 있다는 오해를 받지만 삼성전자는 지난해 한 해 영업이익의 87%인 25조5000억 원을 시설투자에 쏟아 부었다.
SK하이닉스의 지난해 시설투자비는 영업이익의 2배였고 LG디스플레이는 3배였다. 이들 투자는 한국이 기간산업 세계 1위를 유지하기 위한 생명선이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은 ‘분수 효과’를 기조로 하고 있다.
한계소비성향이 높은 저소득층 소득을 늘리면 경기도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내수 비중이 높아 자체로 돌아가는 경제라면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대외의존도가 높아 부의 원천을 거의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국가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적어도 일본처럼 해외 자본을 축적해 여기서 발생하는 이자와 배당 소득만으로도 내수 경제를 돌릴 수 있을 때까지는, 수출 대기업 주도의 성장이 불가피하다는 의미다. 지난해 국민총소득(GNI) 대비 한국의 수출입 비중은 80%였다.
수출 대기업이 잘나간다고, 내 살림살이가 좋아지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지금의 반(反)기업 정서를 낳았다.
그러나 대한민국 부의 원천을 창출한 기업들이 없었다면 내 살림살이가 더 나아졌을까.
양극화 대책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도 중요하지만 분수가 뿜어내는 물의 원천을 놓치면 우리는 머지않은 미래에 크게 후회할지 모른다.
배극인 산업부장 bae2150@donga.com
원문보기:
http://news.donga.com/Main/3/all/20170819/85889090/1#csidx8a739a815bf7427a6ae1e034e8ec8e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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