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정보

신체적으로 타고난 사람보다 훈련된 사람이 고통 더 잘 견뎌

거듭난 삶 2018. 9. 15. 17:52
728x90

인간이 느끼는 한계는 뇌가 만들어낸 허상일 뿐

조선일보

 

·  김태훈 출판전문기자

입력 2018.09.15 03:00


육상 선수 출신 물리학 박사, 인간 지구력 실험 결과 책에 담아
신체적으로 타고난 사람보다 훈련된 사람이 고통 더 잘 견뎌

 

설명: 인듀어

인듀어

알렉스 허친슨 지음|서유라 옮김
다산초당|504쪽|19800

2017 5 6일 이탈리아의 한 경기장에서 인간으로선 돌파가 불가능하다는 '마라톤 2시간 벽 깨기'에 도전하는 실험이 실시됐다.

 스포츠용품 회사 나이키가 마련한 이 프로젝트의 이름은 '브레이킹2'.

 나이키는 세계 정상급 육상 선수들과 함께 연구팀을 꾸려 2년 동안 최적의 훈련과 식이요법·관련 용품을 제공했다.

 인간 지구력의 궁극적 한계에 도전한 이 실험은 케냐의 엘리우드 킵초게가 2시간 0 25초로 결승선을 통과하며 끝났다.

 간발의 차이로 목표 달성에 실패한 킵초게는 미소 지었다. "이제 인류가 단축해야 할 기록은 딱 25초밖에 남지 않았네요."

 

정말 25초만 남았을까. 이 책을 다 읽은 뒤 독자가 마주할 팩트는 '인간 능력에 한계는 분명히 있겠지만 어디가 그 한계인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국가대표 육상 선수 출신으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따고 스포츠 저널리스트로 활동 중인 저자는 바다와 산, 극지(極地)에서 인간 한계에 도전한 역사적 사례들과 자신이 10년에 걸쳐 세계를 돌며 접한 인간 지구력 실험의 다양한 결과를 책에 담았다.

지구력을 얼마나 발휘할 수 있는가에 대해선 두 개의 상반된 관점이 존재한다.

 하나는 몸을 기계로 보는 견해로, 타고난 신체 기능이 버티는 수준을 결정한다는 주장이다. 폐활량 큰 사람이 당연히 물속에서 오래 숨을 참는다.

하지만 여러 실험 결과가 이 견해를 반박한다. 몸이 산소를 원하는 지점과 죽지 않기 위해 산소가 필요해지는 지점은 다르다. 과학자들은 숨 쉬고 싶은 욕구를 느끼는 지점은 대개 비슷하지만 참는 능력은 저마다 다르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기록 경신의 트로피는 숨을 더 오래 참는 자의 몫이다.

 지구력 대결의 결과는 놀라웠다. 일반 공기가 아닌 '순수 산소'의 도움을 받은 다이버 알레시스 세구라는 머리를 물속에 박고 무려 24 3초를 버텼다. 심장이 터지는 고통을 더 오래 참는 이가 잠수 신기록을 세운다. '모든 게 마음먹기 나름'이란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다.

설명: 케냐 마라토너 엘리우드 킵초게가 2016 리우올림픽 남자 마라톤 결승선을 맨 먼저 통과한 뒤 고통스러운 듯 찡그린 표정을 짓고 있다. 케냐 마라토너 엘리우드 킵초게가 2016 리우올림픽 남자 마라톤 결승선을 맨 먼저 통과한 뒤 고통스러운 듯 찡그린 표정을 짓고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그런데 새로운 연구 결과가 나타나 또 다른 주장을 편다. 인간의 뇌에는 '생명 스위치'가 있는데, 이 스위치는 인간을 극한 상황에서 더 버티게도 하고 마지막 위험에서 탈출하게도 한다.

 이 스위치 덕에 해녀가 물에 들어가면 산소를 가득 머금은 적혈구가 비장에 쌓여 질식 상태를 견디게 하고, 맥박을 3분의 1로 떨어뜨려 산소 요구량을 줄인다. 동시에 죽음에 이르지 않도록 고개를 물 밖에 내놓으라는 경고 신호도 보낸다.

훈련이 인간을 개조하는 사례들도 흥미롭다. 장거리 기록에 도전하는 육상 선수가 받는 훈련은 대부분 고통의 형태로 다가오는, '더 이상 버티지 말라'는 경고를 무시하도록 뇌의 대응 태세를 바꾸는 데 중점을 둔다.

 감각이 없어질 때까지 얼음물 속에 손 담그는 훈련을 한 사이클 선수는 근육이 타는 고통을 더 잘 견디며 페달을 밟는다.

 유능한 코치는 선수가 마지막 땀 한 방울까지 쏟아낸 뒤 뻗었을 때 '한 번 더!'를 외치는 자다. 그런 훈련을 경험한 선수는 자신이 생각보다 더 큰 능력을 지녔다는 믿음을 갖고 경기에 나선다.

100
여 년 전 남극 정복에 나섰던 섀클턴은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지금 돌아가지 않으면 영영 돌아갈 방법이 없다'며 포기하고 목숨을 건졌다.

 반면 한 세기 뒤 같은 탐험로를 따라갔던 워슬리는 체중이 23㎏이나 감소한 악조건을 견디며 남극점을 향해 매일 16시간씩 스키를 타다가 쓰러졌다.

 그가 귀환 3일 만에 숨지자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지구력의 한계를 탐험하는 여정에서 워슬리는 자신이 한계를 초월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 걸까"라고 썼다.

 하지만 그의 지구력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소진시킨 것은 언제든 누르면 헬기를 보내주는 '구조 버튼'이었다. 다행히도 섀클턴에겐 그 버튼이 없었다.

워슬리가 될까 봐 두려워할 건 없다.

 인간은 지구력의 한계에 도달하기 훨씬 전에 뇌가 위험을 감지하고 보내는 "여기서 멈추라"는 경고에 굴복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떤 경기에서든 싸워야 할 적은 '내 두뇌의 잘 정비된 보호 메커니즘'이다.

 그 적과 싸워 이기려면 '인간의 한계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라고 믿고자 하는 의지라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가 살아가며 마주치는 대부분의 한계는 뇌가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니까. (원제: Endure)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9/15/201809150007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