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거듭난 삶 2019. 2. 1.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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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에의 확신

 

: [ 8:31-39] 그런즉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33)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없으리라.

 

 

 

[ 8:31] 그런즉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하리요 - ' ' 직접적으로는 28-30절까지 언급된 것을 지칭하지만,

 

(28-30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보다 포괄적으로는 3:21부터 지금까지 언급한 바와 같은 하나님의 구속 사역 전체를 지칭한다.

 

다만 28-30절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행하신 전체 구속 사역을 요약적으로 진술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를 두고 마귀와 변론할 다른 말보다도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1:9) 말했던 것을 유다가 언급한 적이 있다.

 

선악(善惡)간의 모든 일을 심판하시는 이는 하나님 분뿐이시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성도를 위하시면 무엇도 성도를 대적할 없다.

 

 

 

[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 구절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칠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 말했던 내용 ,

 

"네가 아들 독자라도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22:12),

" 아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22:16) 연상시킨다.

 

바울은 본서 4장에서 아브라함을 실례로 들어 이신칭의를 설명하였으나

거기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기사는 언급하지 않았다.

 

사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받음에 있어서 이삭을 제물로 바친 기사는

아브라함의 절대 순종하는 믿음을 보여주므로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을 사도 바울이 몰랐을 리가 없다.

그러면 이야기를 4장에서 언급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본서의 핵심 ()이라 있는 본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사건에 이야기를 적용시키려고 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Gifford, Sanday, Dunn).

 

그렇다면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죄인들에게 내어 주신 사실은

이삭을 번제물로 바친 기사와의 유비 관계에서 적절하게 음미할 있을 것이다.

 

이것을 측면에서 살펴볼 있다.

 

첫째는, 아브라함이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귀중한 독자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고 했던 것처럼 성부 하나님은 말로 형언할 없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죄인들을 위해 대속물이 되게 하셨다.

 

둘째는,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바칠 많은 고통과 고초가 따랐으나 하나님의 명령대로 어김없이 준행했듯이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독생자로 하여금 온갖 수난과 고초가 따르는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처절한 집행과정을 겪도록 그대로 허용하셨다.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관계 이상의 지극한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독생자를 대속물이 되게 하신 것이다.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 '만일 구원'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의 '우리 모든 사람' 26절에 기록된 '성령의 간구하심을 힘입은 자들'이요,

28절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며

29, 30절의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바에 의해 '선택된 '들을 가리킨다.

 

 

어찌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 여기서 '모든 ' 구원 자체도 있지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 28:18) , 모든 피조물도 포함될 있다.

 

심지어 천사도 성도를 위하여 '부리는 '으로서 활동하고 있다.

 

( 1:14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

 

독생자를 아끼지 않으신 하나님께서( 3:16) 성도를 위해 다른 무엇을 아끼겠는가!

 

그러므로 이것은 성도의 위치가 얼마나 존귀한가를 보여주는 표현이다.

 

 

 

[ 8:33]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 31절의 '대적하리요' '송사(訟事)하리요' 비슷한 의미를 지닌다.

 

다만 '송사하리요' 단어는 법정적(法定的) 술어로서 곧이어 언급되는 '칭의' 직접적으로 연관 지어진다.

 

사단이 여호와 앞에서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송사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사단을 거듭 책망하시면서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죄를 사하시고

아름다운 옷과 깨끗한 관을 씌우셨다.

 

( 3:1-5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섰고 사단은 그의 우편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2)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

3)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섰는지라

4)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자들에게 명하사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5) 내가 말하되 정한 관을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정한 관을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사자는 곁에 섰더라).

 

여호수아 자신이 깨끗했기에 송사를 면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재판장 되신 하나님께서 그를 의롭다고 선포하시고 그를 깨끗케 하셨기에

여호수아는 사단의 송사에도 불구하고 의인으로서 하나님 앞에 있었다.

 

이와 같은 상황이 성도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것이

본절에서 바울이 진술하고 있는 논지(論旨)이다.

 

 

 

[ 8: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정죄하리요 - 성도는 율법에서 해방되었기에 율법의 정죄에서도 해방되었다.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비록 죄의 법에서 사로잡혀 마음이 원하는 선을 행하지 못했을지라도

성도는 어느 누구에게도 정죄를 당하지 않는 신분을 지니고 있음을

바울은 본절에서 강조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 바울은 26절에서 성령께서 성도를 위해 간구하신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성령은 성도의 연약한 삶을 위해 간구하시지만 성자 그리스도는 정죄 받을 성도를 위해 변호하시고 탄원하신다.

 

비록 본절에 언급된 '간구하다'(엔튕카네이) 기도의 형식을 나타내지만,

본절에서 단어가 지닌 진정한 의미는 성도를 위한 그리스도의 변호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사실이 간과되어서는 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계시면서 자신이 성취한 구속 사역을 근거로

자기 백성 성도를 위해 하나님께 변호해 주신다.

 

 

 

[ 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본절은 바울 자신이 직접 경험했던 것을 나열하고 있다(Black).

고후 11:23-27에서 그는 자신이 경험한 것을 보다 세부적으로 진술했으나

 

(고후 11:23-27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죽을 뻔하였으니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맞았으며

25) 태장으로 맞고 돌로 맞고 파선하는데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26) 여러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본절에서는 경험을 요약하여 대표적인 용어를 선택하여 진술하고 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 질문은 앞에서 언급했던 질문들(31, 33, 34) 포괄한다.

 

(31 그런즉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3-34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어느 누구도 성도를 대적할 없으며, 송사할 없고 정죄할 없는 것은

근본적으로 그리스도께서 성도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그리고 구절의 질문은 39 하반절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연결된 대답으로 이어지고 있다.

 

(39 하반절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없으리라)

 

 

환난 - 이는 다음에 언급되고 있는 여섯 가지를 대표하며 '고난' 같은 표현이다.

 

(17-18 자녀이면 또한 후사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것이니라

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없도다)

 

곤고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스테노코리아' '행동이 제한된 상태' 가리킨다.

표현은 바울 자신이 옥에 갇힌 경험을 나타내고 있는 듯하다.

 

 

기근 - 이는 민족이나 지역적인 차원의 기근일 있으나, 본절이 바울 자신의 경험이라는 사실을 고려할 굶주리며 마시지 못한 경험을 나타내는 같다.

 

(고후 11:27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적신 - 이는 고후 11:27 '헐벗었음' 원어상 동일하다.

바울은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에게 드로아 가보의 집에 자기의 겉옷을 가져오라고 부탁할 만큼 항상 입을 것조차 변변치 않았다.

 

(딤후 4:13 네가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겉옷을 가지고 오고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것을 가져오라)

 

 

[ 8:36] 기록된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 본절은 44:22 인용문이다.

 

( 44:22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혹자는 바울이 인용문을 사용한 것을 안티오커스(Antiochus) 폭정하에 시달리던 백성들의 비참한 고난을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추론한다(Calin).

 

바울이 고후 4:11에서도 본절과 유사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고후 4:11 우리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바울 자신뿐 아니라 당시 성도들이 당하던 박해와 고난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반드시 안티오커스(Antiochus) 폭정에 의한 고난만으로 이해하기는 힘들다.

 

오히려 본절은 바울이 35절에서 언급한 여러 환난과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이해하는 편이 더욱 합리적이다.

 

 

 

[ 8:37] 그러나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 표현에 해당하는 헬라어 '휘페르니코멘' 신약성경 오직 여기서만 언급되고 있을 뿐이다.

 

이를 혹자는 '우리가 압도적인 승리를 얻고 있느니라'(We are winning an overwhelming victory)라고 풀이하기도 한다(Black).

 

그리고 렌스키(Lenski) 이와 비슷하게 '우리는 가장 혁혁(赫赫) 승리를 지속적으로 성취하고 있다'(We keep achiving the most brilliant victory) 해석한다.

 

바우어(Bauer) '휘페르니코멘' '정복하다' 동사의 강의형으로 '영광스러운 승리' 연관된 것으로 이해했다.

 

그리고 실제로 영역 성경 중에는 단어의 '정복'이라는 의미에 강조점을 두어 '우리는 정복자들 이상이다'(We are more than conquerors) 번역하고 있는 것도 있다(KJV, RSV, NIV).

 

아무튼 본절에서 바울은 성도들이 자기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또는 예수 그리스도) 말미암아 얻게 되는 승리를 강조하고 있다.

 

 

 

[ 8: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바울은 본절과 39 상반절에서 어떤 피조물도, 그리고 어떠한 상황과 여건도,

성도의 압도적인 승리를 방해할 없음을 진술하고 있다.

 

 

권세자들 - 이는 본래 바울 신학에서 천사의 부류에 속하지만,

 

( 1:21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주로 사단의 세력하에서 활동하는 악한 영들을 지칭한다.

 

( 2:2 때에 너희가 가운데서 행하여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리고 특히 바울은 본절에서 '사망' '생명',

'현재 ' '장래 ' 같이 서로 대조되는 어법을 구사하고 있으므로

본절의 '권세자들' 하나님의 부리시는 ()

천사와 대조되는 , 사단에 의해 조종되는 악한 영들을 의미한다.

 

 

능력 - 단어에 대해 혹자는 '폭풍, 천둥과 번개, 그리고 지진과 같은 자연의 '으로 해석한다(Lenski).

 

혹자는 '능력' '천사들'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Calvin).

 

아무튼 본절에서 '능력' '천사' 지칭하든지 '악의 세력' 지칭하든지

'신적(神的) 세력' 의미하는 것은 분명하다.

 

 

 

[ 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없으리라.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 앞에 언급된 아홉 가지 모두 '피조물'이라는 표현 속에 포함된다.

 

피조물 중에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구별할 없이

하나님의 손으로 창조된 모든 피조물을 언급하기 위해

바울은 아홉 가지의 단어를 나열했던 것이다.

 

 

우리를 우리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없으리라 - 구절은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35a)라는 질문에 대한 결론적인 대답이다.

 

그리고 대답은 37절의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진술에 따라 나오게 되는 필연적인 사실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은 성도의 견인(堅忍) 아니라 불가항력적인 은혜의 근원이다.

 

성도는 7:24 같은 비참한 상황에 처했을 ,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자신을 해방시켰다는 사실과,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함께 성도를 향하신 하나님의 지속적인 사랑을 깨닫게

참된 자유와 기쁨을 누릴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