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촌감삼의 로마서 제8장 주석
로마서 8장 1-3절
‘이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정죄되는 일 없다’
‘이러므로’ 그리스도는 우리 위해 죽으셨으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율법의 모든 요구를 채우셨으매.
그는 사람으로서 이 세상에 태어난 자 중에 다만 한 분,
완전무흠한 생애를 보내셨으매……
‘이러므로’는 전 7장 전체의 뜻을 받아 말한다.
제1장에서 시작하여 제7장으로 끝난 입론의 결국은
마침내 여기에 이르지 않을 수 없다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 그에게 자신을 맡긴 자.
자기는 죽고 그리스도 그 안에서 사는 자.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이미 그는, 사는 것 아니라,
그리스도 그 안에서 사는 자(갈라디아서 2:20).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 가운데 자기를 담그는 것이다.
그로써 심령적 공기로 하고, 그 가운데 동하여, 생을 보존하는 일이다.
‘정죄되는 일 없다’ 죄를 정함 받는 일 없다.
죄인으로서 취급되는 일 없다.
‘그 불법을 사함 받고, 그 죄를 가리워진, 복된 자’(로마서 4:7)로 될 것이다.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죄 없는 자로 된다.
의식도 수양도 자선도 전도도,
그로 하여금 그러한 행복한 자 되기에 족하지 못하다.
(2 ‘그것은 생명의 영의 법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와 죽음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하셨기 때문이다’)
‘생명의 영’ 성령이시다.
성령, 일명 이것을 생명의 영이라고 한다.
그것은 이는 생명을 제공하는 영, 또는 생명의 근원이신 영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거룩하게 됨도 이 영에 의하는 것이다.
그가 죄 없는 자로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것도 이 영에 의하는 것이다.
성령은 성결의 영이다.
* 참조 (베드로전서 1: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그러므로 구원의 동력이다.
‘법’ 법칙이다.
천칙이라는 것과 같다.
성령도 또한 어떤 법칙에 따라 일(역사)하시는 것이다.
그가 우리 안에 임하심은,
바람이 임의로 불고,
사람이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을 모름 같다지만,
그래도 그는 어떤 일정한 법칙에 의하지 않고서는 사람의 마음에 임하지 않는 것이다.
법칙은 속박이라고 하여 전연 이것을 배척할 것 아니다.
법칙에,
푸는 것과 매는 (속박하는) 것이 있다.
그리고 생명의 영의 법칙은 우리를 죄의 결박에서 풀어 놓기 위한 법칙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은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일)하신다.
그(그리스도)를 떠나서 일(역사)하시지 않는다.
이는 앞서 말한 성령활동의 법칙의 하나이다.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은사를 입을 수 있다.
그리스도 이외에 성령의 강림 있는 일 없다.
이른 바 시인의 인스피레이숀이라 하여,
천연을 통하여 또는 사람을 통하여 신사상에 접하는 일 같은 것은,
이는 그리스도 신자상에 접하는 일 같은 것은,
이는 그리스도 신자가 성령의 강림이라 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죄와 죽음의 법’ 죄와 죽음을 선고하는 법.
즉 율법이다.
사도 바울의 경우에 있어서는 특히 모세의 율법이다.
살인하지 말라, 살인하는 자는 심판 받게 될 것이라는 것 같은 것이다.
공포로서 사람을 제재하는 법이다. 형벌이 수반하는 명령이다.
사람으로 하여금 전율케 하는 것, 그 아래 굴종케 하는 것이다.
즉 노예근성을 양성하는 법이다.
‘우리를 해방하시기 때문이다’ 법을 푸는 것은 법이다.
생명의 법은 죽음의 법을 풀고,
의의 법은 죄의 법을 제한다.
법에 의하지 않고서 법을 제거할 수 없다.
자유는 법칙의 철거가 아니라, 그 혁신이다.
생명의 영의 법으로서만, 능히 징벌의 법을 무용하게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법으로서만,
능히 법문으로서 하는 모든 검속적 도덕을 폐할 수 있는 것이다.
(3 ‘대저 율법은 육으로 말미암아 약해져, 그 하지 못하는 바를 하나님은 하셨도다. 즉 자기의 아들을 죄의 육의 형상으로 죄 위해 보내시고, 그 육에 있어서 죄를 벌하셨도다)
‘율법은 육에 의해 약해져’ 율법은 육을 통하여 일(역사)하는 것이므로 약하다.
그 벌이란, 육에 가하는 벌(罰)이다.
그 상(賞)이란, 육에 주는 상이다.
율법은 육의 제한에 지나지 않는다.
육을 경유치 않고서 율법은 그 효력을 사람에게 미칠 수 없다.
율법은 육을 거쳐 임하는 것이므로,
영에 미치는 그 효력은 아주 미약하다.
특히 약한 육에 의해 일(역사)하는 것인 까닭에, 더욱 미약하다.
율법은 신성하지만 힘(능력) 있는 것이 아니다.
‘그 하지 못하는 바……’
그 약하고 불가능한 바를.
즉, 그것이, 사람의 영에 달할 수 없는 바를.
죄를 근저에 있어서 멸할 수 없는 바를.
신생명을 제공할 수 없는 바를…….
율법은 일종의 강박이다.
심령을 밖에서 억제하려는 것이다.
율법은 아무리 완전하대도,
영과 마음을 개조할 수 없는 것이다.
율법은 미력하다.
이에 더하는데 제왕의 위엄으로서 한 대도,
국민의 세론으로서 한 대도,
율법은 율법으로서 힘(능력) 있는 것 아니다.
율법에 심령(내)을 성화함의 능력 없다.
법률, 법령, 칙령, 법문 등,
그 이름은 다르지만 그 실은 하나이다.
즉 위력으로서 선행을 강요하는 것이다.
세상에 만약 율법 이외의 사람을 성화할 길이 없을 것인가,
세상은 압제와 위선이 가득 찬 곳이기에 이르리라.
하지만 하나님은 율법이상의 것을 세상에 주셨다.
즉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서 율법의 모든 요구를 채우는 길을 예비하셨다.
이것을 일컬어 그리스도의 복음이라고 한다.
‘그(자기) 아들을’
그리스도를,
‘죄의 육의 형상으로’ 죄로 말미암아 역사(일)하는 육의 형상(모습)으로.
죄 있는 육체의 형상으로가 아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에게 죄 없기 때문이다.
또 다만 육의 형상(모습)으로가 아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육은 오인의 육과 그 질에 있어서 아무 다른 바 없기 때문이다.
죄의 육이란,
오인의 육체처럼 죄에 감연하기 쉬운 육이다.
모든 일에 있어서,
우리들처럼 유혹(시험)된 육이다.
(히브리서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는 다만 우리들처럼 죄를 범하지 않았을 뿐.
‘형상’(모습) 그리스도 현현의 상태이다.
* 참조 : (빌립보서 2:6-8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죄 위해’ 우리들의 죄의 대속으로서.
우리들의 죄를 속량하기 위해, (히브리서 10장 6, 8절에, 같은 원어를 속죄의 제물로 역한 것 있음을 참조하라).
(히브리서 10장 6 번제와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8절 위에 말씀하시기를 주께서는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는 원하지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은,
그를 죄제의 제물로 하시 렴 에서라고.
속죄는 신약성서의 근본적 교의임을 알 것이다.
‘그 육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육에 있어서.
‘죄를 벌하셨도다’ 우리의 죄를 사형에 처하셨다.
죄를 범하지 않은 자의 육에 우리 죄인이 받아야 할 벌을 가하여,
우리의 죄를 무해한 것으로 되게 하셨다.
그 어떻게 해서 인지는 우리들이 다 알 수 없는 바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 그러함은 우리들의 실험하는 바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에 의해,
우리들 그를 믿는 자에 있어서는 죄는 힘없는 것으로 되었다.
이에 의해, 우리는 죄와 그 값인 죽음에서 면하게 되었다.
* 내촌감삼의 로마서 8장 주석을 옮겨옴.
* (롬 8:1-3)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개정개역, 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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