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거듭난 삶 2019. 3. 2.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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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의 구원

 

 

: [ 11:11-16]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뇨 그럴 없느니라 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12) 저희의 넘어짐이 세상의 부요함이 되며 저희의 실패가 이방인의 부요함이 되거든 하물며 저희의 충만함이리요

13)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14) 이는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케 하여 저희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15) 저희를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가운데서 사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

16)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 11:1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뇨 그럴 없느니라 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내가 말하노니 - 혹자는 이를 '내가 질문하노니'(I ask, RSV)라고 번역하고자 하는데(Meyer), 이는 다음 문장이 질문 형태이기 때문이다.

 

본문은 본절 뿐만 아니라 24절까지 이어지는 전체 논리를 염두에 것이다.

 

 

저희가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뇨 - 이것은 '그렇지 않다' 것을 강조하기 위한 의문형이다.

 

비록 이스라엘이 완악해지기는 했으나 절망적으로 버림을 받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실족하다' '미끄러지다' 뜻으로서 균형을 잡지 못하고 완전히 엎드러진 것을 말한다.

 

이는 이스라엘이 예수를 영접하지 않고 거절하는 완악(頑惡)하게 상태를 염두에 두고 이스라엘의 실수가 크다는 것에 집중하여 언급한 것이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는데 그것은 이들의 넘어짐 ,

복음을 거부하는 행동으로 말미암아 복음이 이방인에게 전파되도록 하는

계기가 되게 하려는 것이었다.

 

바울 당시에 실제로 이런 일은 얼마든지 목격될 있었다.

 

( 13:44-48 다음 안식일에는 성이 거의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

45) 유대인들이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의 말한 것을 변박하고 비방하거늘

46)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47) 주께서 이같이 우리를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48)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믿더라).

 

 

그럴 없느니라 - 여기서 보여 주는 단호한 거부의 대답은 비록 이스라엘이 실족했더라도(7-10) 그것이 도저히 일어설 없는 완전한 패망의 넘어짐은 아니라는 것이다(Murray).

 

이들이 메시야를 영접하지 않고 강퍅해졌으나 구원의 소망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것은 바울이 계속해서 확언하는 이스라엘의 장래 구원을 암시해 준다(Harrison).

 

 

저희의 넘어짐으로 - '저희의 넘어짐' '저희의 범죄' 가리키는 것으로(Meyer, Murray) 구주이신 예수를 거절한 것을 말한다.

 

이러한 거절로 인해 이방인에게 구원이 돌아갔다.

 

( 8:12 나라의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13:46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이방인 - 유대인을 제외한 세계 모든 민족들을 말한다.

이들은 그리스도 밖에 있던 자들로 약속에 대해 외인이요 구원에 대한 소망이 전혀 없었다.

 

( 2:12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바로 이런 자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 그의 백성이 되었다(Bruce).

따라서 이제 이스라엘과 이방인의 벽이 무너지고,

하나님의 구원이 이상 민족의 개념으로 제한되지 않음이 드러나게 되었다.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 '시기나게 한다' 것은 회개와 믿음을 일으키는 데에 가치있는 자극을 말한다(Murray).

 

이것은 이방인의 구원을 통해 유대인의 질투심을 유발시켜 회심할 기회를 주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다(Kasemann).

 

이러한 시기(猜忌) 인해 비록 괴로움이 있기는 해도 궁극적으로는

이스라엘이 그리스도께로 돌아오게 된다.

 

 

 

[ 11:12] 저희의 넘어짐이 세상의 부요함이 되며 저희의 실패가 이방인의 부요함이 되거든 하물며 저희의 충만함이리요

 

세상의 부요함 - 이스라엘이 복음을 거부하여 구원 경륜에서 벗어났지만,

이스라엘의 복음 거부는 오히려 세상 전체가 복음을 접할 있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도 바울이 흔히 사용한 '부요함'이란 말은 현재의 부한 상태나 종말론적 풍요를 의미한다.

 

(9:23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하리요;

 

4: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것을 채우시리라).

 

여기서의 '부요함' 이방인의 구원을 통하여 천국 백성의 수가 증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본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이방인의 은혜의 상태를 표현한 것이다(Godet).

 

 

저희의 실패 - '혀테마' 군사적 표현으로 '전투시에 넘어짐' 같은 의미이다.

여기서는 하나님의 왕국을 빼앗김으로 당한 커다란 실패(defeat) 말한다(Murray).

 

바울은 '넘어짐' '실패' '충만함' 대조시켜 이스라엘의 회심이

더욱 은혜를 베풀 것임을 보여준다(Harrison).

 

 

하물며 저희의 충만함이리요 - 충만함은 회심과 관련된 말로 남은 자와 대비되는 커다란 전체를 의미한다(Harrison).

 

또한 충만함이란 부분의 실패와 연결해 ,

숫자적으로 빈자리를 채운다는 개념(Godet)

구원을 완성하는 개념(Murray)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영적으로 회복되어,

구원받은 수가 충만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충만해진다는 것은 범죄와 대조를 이루어 불신앙과 범죄로 점철되었던

과거의 이스라엘이 이제는 그리스도를 믿고 의를 얻어 하나님 나라에

복귀하는 민족이 것을 의미한다.

 

결국 이것은 이스라엘이 넘어짐으로 이방인들이 부요케 것처럼

이스라엘이 충만하게 회복되면 인류의 부요함은 더욱 풍성해 것을 의미한다.

 

 

 

[ 11:13]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 '만큼'으로 번역된 '에프 호손' 일시적 제한의 의미가 아니라 자격(資格) 말한다.

 

자신의 신분이 이방인을 위한사도이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에고'('나는')라는 대명사 앞에 '에이미'('...이다') 두어 자신의 자격을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바울은 자기 인식을 명확히 가지고 자신이

마땅히 해야 임무를 파악하고 있었음을 있다.

 

그의 임무는 이방인의 사도로서 이방인을 충만케 뿐만 아니라,

 

(25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것이라)

 

이스라엘을 시기나게 하며,

 

(14 이는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케 하여 저희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충만케 하려는 하나님의 구속 경륜에 동참하는 것이었다.

 

(12-15 저희의 넘어짐이 세상의 부요함이 되며 저희의 실패가 이방인의 부요함이 되거든 하물며 저희의 충만함이리요

13)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14) 이는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케 하여 저희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15) 저희를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가운데서 사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로 자기의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는 이유는 그의 이방인에 대한 사역이 성공하면 할수록 이스라엘의 구원도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표현은 바울이 자신의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겨 이방인 구원에

최선을 다한 것을 말한다(Godet).

 

그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바울이 그의 사도직을 힘써 감당함으로써 이방인들의 구원이

유대인들을 시기나게 하여 몇몇 유대인들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게 하기 때문이다.

 

(14 이는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케 하여 저희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이렇게 자기의 직분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짐을 생각할 때에 더욱 영광스럽게 여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Barmby).

 

 

 

[ 11:14] 이는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케 하여 저희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골육 - 바울의 표현에는 따스함이 깃들어 있다(Harrison).

 

이러한 표현은 대개 혈통적인 형제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 29:14 라반이 가로되 너는 참으로 나의 골육이로다 하였더라 야곱이 한달을 그와 함께 거하더니;

 

9:2 청하노니 너희는 세겜 사람들의 귀에 말하라 여룹바알의 아들 칠십 인이 너희를 다스림과 사람이 너희를 다스림이 어느 것이 너희에게 나으냐 나는 너희의 골육지친임을 생각하라;

 

삼하 5:1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와 말하여 가로되 보소서 우리는 왕의 골육이니이다),

 

본절에서는 완악해진 이스라엘 가운데 구원이 보장되어 있는 '남은 ' 의미한다(Dunn). 바울은 비록 현재 상태로는 완악해 있으나,

장차 몇몇 이스라엘인이 구원에 동참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시기케 하여 - '시기' 흠정역(KJV)에는 '경쟁'(emulation)으로 번역되어 있고,

대상은 ' 백성'으로 이스라엘은 이방인의 충만함을 보고 질투심과 어울러 경쟁심을 느끼게 것이다.

 

(10:19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뇨 먼저 모세가 이르되 내가 백성 아닌 자로써 너희를 시기나게 하며 미련한 백성으로써 너희를 노엽게 하리라 하였고)

 

 

저희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 '얼마'라는 말속에서는 유대인들이 메시야를 십자가에 박음으로 실족했으나, 바울은 그들 중에 얼마라도 구원받기를 원했음을 있다.

 

 

 

[ 11:15] 저희를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가운데서 사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

 

저희를 버리는 - '버림' 대해 혹자는 12절의 실패와 연결해서 해석하며(Godet), 혹자는 하나님께서 추방한 것으로 이해하는데(Meyer, Murray, Shedd), 후자가 적합한 것으로 보인다.

 

'버리는' '받아들이는'(프로슬렘프시스) 대조가 되는 것으로

하나님의 호의와 축복으로부터 거절당함과 그의 나라에서 박탈된 것을 말한다.

 

 

세상의 화목 - 이는 하나님과 사람의 화목을 의미한다(Kasemann).

 

혹자는 세상의 화목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되게 하고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복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Lenski).

 

어쨌든 화목은 원수된 처지에서 예수의 공로로 친선의 교통을 얻게 것을 의미한다.

 

( 2: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과거에는 하나님의 거절을 받았지만 이제는 그의 총애를 받게 것이다(Murray).

 

 

죽은 가운데서 사는 - 구절은 어떤 뜻인지 확언하기가 다소 어려우나 유대인이 장차 회심하게 것을 부활에 비유하고 있는 것으로 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 이스라엘로 인해 이방인들의 구원에 활기를 띠게 것이다.

 

 

 

[ 11:16]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 처음 익은 곡식 가루는 떡덩이와 깊은 관계가 있음을 있다.

 

혹자는 '처음 익은 곡식' 이스라엘의 남은 자로 이해한다(Harrison).

그러나 오히려 이스라엘 민족의 대표성을 가진 족장이나 조상들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Murray).

 

반면에 '떡덩이' 회심한 이스라엘 민족을 뜻한다.

 

이러한 상징이 의미하는 바는 다음 가지로 요약할 있다.

 

(1) 대표성을 의미한다.

'처음 익은 곡식가루' 해당하는 헬라어 '아파르케' '최초의 '이라는 의미로 제사에 있어서 전체 덩이에서 일부를 떼어 내어서 하나님께 바친 것이다.

 

이것은 15:17-21 나오는 거제의 규례에서 것으로 떼어낸 부분이 원덩이를 대표한다는 개념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처음 익은 곡식인 이스라엘 민족을 대표한다.

 

( 15:17-2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18)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가 나의 인도하는 땅에 들어가거든

19) 땅의 양식을 먹을 때에 여호와께 거제를 드리되

20) 너희의 처음 익은 곡식 가루 떡을 거제로 타작 마당의 거제 같이 들어 드리라

21) 너희의 처음 익은 곡식 가루 떡을 대대에 여호와께 거제로 드릴지니라)

 

(2) 거룩성을 나타낸다.

열매가 전체 떡덩이를 거룩하게 한다는 것이다(Barmby).

 

결국 이스라엘과 믿는 자들을 대표하는 이스라엘의 족장들과 조상들이 거룩했으니

남은 그의 자손들도 거룩하다는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