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거듭난 삶 2019. 2. 28.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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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남은 2

 

 

: [ 11:4-6] 저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뇨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5)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6) 만일 은혜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 11:4] 저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뇨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대답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크레마티스모스' 하나님의 신탁을 의미하는 말로서 대답의 계시적인 특성과 권위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바알에게 당시 페니키아인들에게 '바알' 태양을 상징하는 남신(男神)으로,

아스다롯(Astarte) () 상징하는 여신(女神)으로 간주되었다.

 

그런데 본절에서 바알에게 여성 정관사를 쓰고 있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70인역에는 바알이란 이름에 남성과 여성을 병용해서 쓰고 있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70인역에는 바알이란 이름에 남성과 여성을 병용해서 쓰고 있다.

그러므로 바알이 양성체(兩性體)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바알신' 아니라 단지 '바알상' 여성으로 간주했다고 있다.

이유는 우상이라고 하는 것이 물질 외에는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바울은 바로 그것을 강조하기 위해 여성 정관사를 바알 앞에 붙이고 있는 같다.

 

 

칠천 - 숫자는 여자와 아이 외에도 그러하다는 의미로 이해되어야 것이다.

 

 

'7' 완전수를 의미하는 것이므로,

 

( 25:37 등잔 일곱을 만들어 위에 두어 앞을 비추게 하며)

 

7천이란 숫자는 영원 전부터 구원을 얻기로 선택된 엘리야 시대의 모든 성도들이

완전한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 보호 받고 있었음을 상징한다.

 

 

 

[ 11:5]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남은 - 바울은 엘리야 시대의 상황을 자신의 시대에 적용시키면서 그때에 남은 칠천명이 있었던 것같이 자신의 시대에도 '남은 ' 있다고 하는 결론을 도출(導出)하고 있다.

 

바울 주장의 요지는 아무리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 불신과 배교가 만연했다하더라도 '남은 '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사랑하셔서 택했다고 하는 것이다.

 

'남은 '사상은 성경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데,

먼저 창세기에 살펴보면,

 

노아의 때에 소수의 택함 받은 자만이 구원을 받았다.

 

( 6:1-8 사람이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4) 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

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롯의 때에도 그러했다.

 

( 19:29 하나님이 들의 성들을 멸하실 롯의 거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더라;

 

17:28-29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29)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오듯하여 저희를 멸하였느니라).

 

이사야 시대에는 그루터기와 같은 남은 자들이 있었다.

 

( 6:13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삼키운바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같이 거룩한 씨가 땅의 그루터기니라;

 

10:32 날에 그가 놉에서 쉬고 시온 예루살렘 산을 향하여 손을 흔들리로다).

 

외에도 구원은 선택된 남은 자들의 것이라는 사상이 구약 여러 구절에서 발견된다.

 

( 1:9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었으리로다;

 

11:11 날에 주께서 다시 손을 펴사 남은 백성을 앗수르와 애굽과 바드로스와 구스와 엘람과 시날과 하맛과 바다 섬들에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

 

16 그의 남아 있는 백성을 위하여 앗수르에서부터 돌아오는 대로가 있게 하시되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과 같게 하시리라;

 

23:3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었으리로다;

 

31:7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야곱을 위하여 기뻐 노래하며 만국의 머리 자를 위하여 외쳐 전파하며 찬양하며 이르기를 여호와여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구원하소서 하라;

 

2:32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중에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5:15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공의를 세울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요셉의 남은 자를 긍휼히 여기시리라;

 

2:12 야곱아 내가 정녕히 너희 무리를 모으며 내가 정녕히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모으고 그들을 처소에 두기를 보스라 양떼 같게 하며 초장의 양떼 같게 하리니 그들의 인수가 많으므로 소리가 크게 들릴 것이며;

 

4:5-7 만민이 각각 자기의 신의 이름을 빙자하여 행하되 오직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빙자하여 영원히 행하리로다

6)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날에는 내가 저는 자를 모으며 쫓겨난 자와 내가 환난 받게한 자를 모아

7) 저는 자로 남은 백성이 되게 하며 멀리 쫓겨났던 자로 강한 나라가 되게 하고 여호와가 시온 산에서 이제부터 영원까지 그들을 치리하리라 하셨나니;

 

7:18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을 사유하시며 기업의 남은 자의 허물을 넘기시며 인애를 기뻐하심으로 노를 항상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3:13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악을 행치 아니하며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며 입에 궤휼한 혀가 없으며 먹으며 누우나 놀라게 자가 없으리라).

 

특별히 이사야의 아들 스알야숩은 이름 자체가 '남은 자가 돌아오리라' 뜻으로서 구약의 남은 사상을 대변해 준다.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 '은혜로 택하심'(the election of grace, KJV)이라는 용어는 히브리어의 관용구로서 값없이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뜻한다.

 

이것은 인간의 어떠한 행위나 결정보다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가 선행한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 11:6] 만일 은혜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은혜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 '남은 '(remnant)로서의 특전을 누리는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이지 자신들의 행위로써 것이 아니다.

 

본절에서 바울이 이러한 사실을 밝히고 있는 이유는 당시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남은 사상을 오해하여 율법주의로 돌아가려는 경향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 1:6-9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8) 그러나 우리나 하늘로부터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3:1-5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박히신 것이 너희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2)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4)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5)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되지 못하느니라 - 만일 인간편에서 행위가 하나님의 '택하심' 영향을 미치게 된다면 그것은 은혜가 없다.

 

사실상 율법적 행위를 근거로 구원을 얻는다고 하는 것은

() 복음적인 사상이 아닐 없다.

 

'되지 못하느니라' 해당하는 헬라어 '우케티 기네타이' '더이상... 되지 않는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율법적 행위로 구원을 얻는다면 그것은 은혜가 '되지 못한다'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는 무조건적(unconditional)이다.

무조건적인 은혜를 사람들이 믿음으로써 은혜에 응답할

택하심을 받을 있었으며 바로 그러한 자들이 본장 5절에서 나오는

남은 자들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를 스스로 거부하고 받아들이지 않을 때에는

민족적으로 버림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바울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히 떨어져 나갔는가 하는 질문을 던졌다.

 

(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그럴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자요 베냐민 지파라).

 

그후 이스라엘 가운데 소수가 하나님의 은총을 입어 택하심을 받았다고 말함으로써 질문을 부정(否定)으로 답했다.

 

(2-4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저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송사하되

3) 주여 저희가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4) 저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뇨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그리고 교회의 ()으로서 이스라엘 가운데 소수의 '남은 ' 있음을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