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한국 전자회사에 사실상 완패 선언
“올 7∼9월 일본 톱 9개 전자회사 영업이익 다 합해도 삼성전자 절반 수준” 충격파
10월 30일 소니 및 파나소닉 경영실적 발표 기자회견장은 온통 충격의 도가니 같았다. 일본 소니의 오네다 노부유키(大根田伸行) 최고재무책임자(CFO·부사장)와 파나소닉(옛 마쓰시타)의 오쓰보 후미오(大坪文雄) 사장은 회초리라도 들 것 같은 기자들의 힐난성 질문에 식은땀을 흘리며 대답해야 했다.
이런 분위기는 다음 날 일본 언론을 통해 일제히 이례적인 기사로 쏟아져 나왔다. 일본 업체들의 실적 분석을 간략하게 소개한 일본 언론들은 일제히 한·일 양국 전기·전자업체의 실적을 노골적으로 비교해 보도한 것이다. 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2개 면에 걸쳐 심층 분석 기사를 다뤘다.
이 신문은 “삼성전자의 7∼9월 영업이익이 약 3260억 엔(약 4조2300억원)으로 같은 기간 소니·파나소닉·히타치 등 일본 대형 9개사의 영업이익 합계(1519억엔)의 두 배 이상 된다”고 전했다.
본 언론들은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경이로운 실적에 주목했다. 평소 자국의 전기·전자업체가 세계 최고라는 논조를 유지해 온 일본 언론이지만 일본 업체들의 부진과 한국의 양대 강자 삼성전자·LG전자의 성공 요인을 덮어놓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전기·전자 입국(立國)’을 내걸어온 일본으로선 자존심도 체면도 내던진 분석기사였다.
전기·전자는 일본이 패망 이후 잿더미에서 맨주먹으로 일어나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재기할 수 있는 원동력이자 자부심을 상징하는 산업 아니었던가?
들은 애써 삼성전자·LG전자의 과거를 떠올리고 싶어하지 않는 듯했다. 이들 한국의 전자회사가 처음 이 사업에 진출할 때 일본 도쿄의 전자제품 판매상가 밀집지역인 아키하바라(秋葉原)를 맴돌며 노하우를 익히고 일본 전자회사 퇴임 기술자를 초청해 기술발전을 일구는 초석으로 삼지 않았던가?
그러나 올 7~9월에 일본 주요 전기·전자업체의 영업이익을 다 합쳐도 삼성전자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는 현실 앞에 일본 재계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너무 커진 격차 앞에 충격에 휩싸인 것이다.
일본의 한국 전자기업에 대한 패배 선언
일본 업체들은 완패를 인정했다. 소니의 오네다 부사장은 “소니가 (삼성전자에) 패한 근본적 원인이 제품의 경쟁력에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파나소닉의 오쓰보 사장도 “(삼성전자와의) 글로벌 경쟁에서 차이가 있었다”고 말했다.
아사히(朝日)신문은 일본 재계의 이 같은 분위기를 ‘(한국 업체에 대한) 사실상의 패배 선언’이라고 전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마라톤에 비유해 “삼성전자의 뒷모습이 크게 멀어졌다”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일본 언론들은 작심한 듯 일본 업체들이 한국 업체에 크게 뒤진 원인과 배경을 해부했다.
이 신문은 “일본 업체들은 경기침체 때 투자를 줄이는 데 급급했지만 삼성전자는 오히려 불황기를 이용해 적극적인 투자에 나선 뒤 경기 회복기에 대량생산에 나서면서 시장 지배력을 강화했다”고 보도했다. 불황기에는 설비 가격도 내리기 때문에 경기 회복기에 대비해 거액이 투입되는 반도체와 액정 투자의 적기라는 분석이다.
이런 전략적 투자가 가능한 배경에 대해 이 신문은 “강력한 경영 리더십을 발휘한 이건희 전 회장의 존재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전문경영인들이 흉내낼 수 없는 오너 경영인의 담력이 최고 수익의 원동력이 됐다”고 덧붙였다. 글로벌 경영을 향한 열의도 일본 전자업체들과 삼성 간의 우열을 가른 요인으로 꼽혔다.
삼성은 협소한 국내 시장에서 벗어나 모든 상품의 타깃을 글로벌 시장으로 설정하지만 일본 업체들은 내수시장에 안주해 와 대응이 늦다는 것이다.
아사히신문은 삼성·LG 등 한국 전자업체가 지난해 말 적자를 기록했지만 올 들어 원화 약세에 힘입어 유럽은 물론 중국·인도·중남미 등 다양한 시장에 경쟁력 있는 상품을 신속하게 내놓아 매출을 늘렸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일본 업체가 실지를 회복하기 위해선 해외시장 개척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01 일본 당혹감의 실체
- 유리한 환경을 활용하지 못하는 일본 전자회사에 질타 쏟아져
일본 업체들은 7~9월 실적이 전 분기(4~6월)보다는 회복세를 보였다는 점에 대해 크게 안도감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삼성전자·LG전자의 실적이 알려지면서 분위기는 급랭했다. 정작 일본 업체들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것은 일본은 거대한 내수시장을 껴안고도 실적을 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 무렵 일본에선 지난해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최악의 상황에서 빠져나오게 됐다는 얘기들이 나돌았다. 일본 정부는 세계 불황이 몰아닥치자 경기부양책의 핵심 수단으로 친환경 상품을 중심으로 가전제품 구입 보조금을 대규모로 지원해 왔다.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CO2) 배출량 감축이 일본 정부의 핵심 정책으로 추진되면서 도입된 올 4월부터 에코(ECO·환경) 포인트 제도를 통해서다. 고화질 액정TV는 물론 냉장고·에어컨 등도 전력을 사용하는 전기·전자제품은 모두 포인트 환급 대상 상품으로 선정됐다.
이에 힘입어 일본의 9개 대형 전기·전자업체들은 7~9월에 소니를 제외한 8개사가 영업이익 흑자 전환을 기록했다. 전 분기(4~6월)에 미쓰비시전기를 제외한 8개사가 적자를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큰 폭의 실적 개선을 달성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 업체들의 실적 앞에서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글로벌 경쟁체제가 가속화하는 상황에서 한국의 경쟁업체들이 압도적인 실적을 거둠에 따라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에는 먹구름이 끼었기 때문이다. 내수 침체도 고민거리다. 일본은 국내총생산(GDP)에서 내수 비중이 65%에 달하는 거대한 내수시장을 갖고 있다. 내수가 조금만 살아나면 매출이 크게 늘어나기 때문에 영업 실적을 크게 끌어올릴 수 있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를 비켜나갔다. 소니의 액정TV 판매 대수는 당초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고, 파나소닉은 4~9월 TV 출하가 전년에 비해 50% 늘어났지만 가격 하락에 직면해야 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파나소닉의 TV 부문은 오히려 적자가 지속됐다”고 전했다. 다만 반도체·액정패널·전지 등 부품·소재는 수요가 크게 늘어나면서 실적 개선에 도움이 됐다.
그러나 완제품 소비는 여전히 살아나지 않고 있다. 소니·파나소닉과 함께 일본 최대의 전기·전자업체인 히타치제작소의 미요시 다카시(三好崇司) 부사장은 “최종 소비재는 여전히 상황이 어렵다”고 털어놨다.
02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 마른 수건 또 짜는 구조조정으로 버텨
세계 경제는 회복 조짐을 보이면서 출구전략까지 조심스럽게 논의되고 있다. 호주는 세계 동시 불황 이후 주요국 가운데는 유일하게 두 차례 연속 정책금리를 올리면서 출구전략에 나서는 자신감을 보여줬을 정도다. 금융 불안의 진원지인 미국·유럽연합(EU)조차도 불안한 국면이 이어지면서도 출구전략을 저울질하고 있다.
경기 부양을 위해 과도하게 풀린 유동성이 자칫 경기회복 단계에서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려는 조치다. 그러나 일본은 1990년 이후 지속되는 ‘잃어버린 시절’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2002~2007년 지표상으로 경기회복세를 보였지만 대기업·중소기업, 도시·지방, 부유층·서민의 양극화가 극심해지면서 내수 기반이 크게 붕괴됐다.
가메이 시즈카 우정개혁상 겸 금융상은 “중소기업들은 극심한 경기침체에 시달리면서 자금난까지 가중되고 있다”며 중소기업 대출금의 지불유예(모라토리엄) 정책을 도입했다. 시중은행·지방은행들에 자율적으로 지불유예 대상을 선정하라고 했지만 금융청이 지원 실적 등을 점검하고 있기 때문에 상당수 중소기업들이 혜택을 받고 있다.
감원과 투자 축소의 반복적 선택
일본의 경제 상황이 이처럼 악화돼 있고 회복될 조짐을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일본의 대기업들은 사람을 줄이고, 설비투자는 미루고, 일반 경비는 줄이는 등 허리띠를 졸라매는 경영을 하고 있다. 일본 전기·전자업체 매출액 규모로 7위 수준의 미쓰비시전기는 핵심 사업인 산업기기 부문이 적자를 냈고, 매출액 1위의 히타치제작소도 자동차용 부품·소재의 수요가 줄면서 전력·산업 부문의 매출액이 58억 엔의 적자를 기록했다.
그만큼 일본 기업들이 설비투자를 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소니·파나소닉·도시바 등 대형 기업은 이미 수천~1만 명 수준의 감원을 진행하고 있다. 간신히 적자를 면하는 상황에서 경영을 개선하기 위해 금세 실적이 나타나는 인력 감원과 투자 축소를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소니는 7~9월에 영업적자를 기록했지만 구조조정 비용을 감안하면 실질적으로는 소폭의 흑자를 기록했다. 9개사 전체적으로 상반기(회계연도 기준·4~9월)의 고정비·경비의 삭감 효과를 계산하면 1조2000억 엔(약 15조6000억원)에 이른다. 사람으로 치면 심하게 다이어트를 해 군살을 확 빼놓은 것이다.
경기만 살아나면 일본 업체들이 일거에 삼성전자·LG전자를 뛰어넘는 실적을 거둘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이런 흐름을 겨냥해 일본 업체들은 졸라맨 허리띠를 더욱 졸라매고 있다. 소니의 하워드 스트링거 최고경영자(CEO)는 “8개의 공장을 폐쇄하고, 1만6000명을 감원하면서 올 회계연도에 5000억 엔(약 6조5000억원)의 비용을 줄일 것”이라고 밝혔다.
소니는 이미 3300억 엔의 비용을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파나소닉도 지난해 9월부터 2만9155명을 감원하는 등 비용 절감 노력을 통해 4~9월에만 2093억 엔을 절감했지만 구조조정을 한층 강화한다고 밝혔다.
03 일본의 앞날 여전히 깜깜
- 군살 빼고도 체력은 부실…환율도 불리하게 돌아가
일본 전기·전자업체들이 과감하게 군살을 뺐지만 체력이 함께 회복된 것은 아니다. 9개 대형업체의 실적이 4~9월에는 상당 폭 개선됐지만 올 한 해 전체 실적은 여전히 초라할 가능성이 크다. 연간 실적을 지난해보다 개선시킬 것으로 전망되는 회사는 3개사 정도에 그칠 전망이다.
NEC(일본전기)의 야노 가오루(矢野薰) 사장은 “10월부터는 경기회복세가 둔화되고 있어 내년 1월 이후는 상황이 상당히 어려워질 것 같다”고 말했다. 크리스마스 판촉전이 크게 불붙을 가능성도 작아 하반기에 실적을 크게 끌어올리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면서 일본 업체들은 구조조정을 한층 강화한다는 전략을 세워두고 있다.
활발한 경기 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자 일단 살아남고 보자는 계산이다. 일본의 전기·전자업체에서 매출액 3, 4위 수준을 다투는 도시바는 기타큐슈 공장의 생산라인을 폐쇄하는 등 반도체 부문의 구조조정을 가속화할 예정이다. 연간 3300억 엔으로 추진했던 고정비 삭감액을 30% 늘어난 4000억 엔으로 크게 확대하기 위한 조치다.
이 회사의 무라오카 도미오(村岡富美雄) 부사장은 “일시적으로 실적이 호전됐지만 회복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불투명하다”며 “모든 비용을 다시 한번 철저히 점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도시바는 7~9월에 일본 전기·전자업체 가운데는 두 번째로 많은 402억 엔의 영업이익을 냈다.
엔 강세도 일본 업체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일본 업체들은 한국 업체들이 7~9월에 대규모 영업이익을 거둔 배경에는 뛰어난 ‘실력’ 외에 환율이 작용했다고 보고 싶어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삼성전자의 이 기간 영업이익은 전 분기 대비 2.9배 늘어났다. 연결실적을 발표하고 있는 지난해 1~3월 이후 사상 최대 규모다. LG전자의 영업이익도 전년 동기에 비해 2배에 달한다. 한국 업체들이 이렇게 탁월한 성적표를 낸 데는 실력 이외에 아무래도 환율이 작용했다고 믿고 싶은 것이다.
실력인가, 아닌가 논란도
한국 기업들이 환율 덕을 본 것은 어느 정도 작용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때로는 ‘운도 실력’이라는 점을 일본 업체들은 받아들여야 한다. 환율은 인위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일본 기업들은 그동안 ‘메이드 인 재팬’이라는 프리미엄을 누려왔다. 환율이 불리하게 됐다고 환율 타령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오히려 일본 업체들은 엔화 강세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1990년 국제 금융시장을 쥐락펴락하며 ‘미스터 엔’으로 불렸던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와세다대 교수는 “원자재를 수입해 완제품을 해외에 내다 파는 일본으로선 엔 강세가 오히려 유리하다”고 말했다. 자원 수입국은 강한 통화가치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올 들어 달러당 90~100엔을 오가던 엔화 환율은 최근 다시 90엔을 오르내리면 강세를 띠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본 업체들이 넘어야 할 또 하나의 과제인 환율 조건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에서 정작 넘어야 할 산은 삼성전자·LG전자의 ‘실력’이라는 것을 모르는 경영인들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 소비자 삼성 등 한국 제품 여전히 외면
권토중래 노리는 일본 기업
일본 도쿄의 왕궁과 긴자 사이에 자리잡은 유라쿠초는 ‘도쿄의 맨해튼’으로 불린다. 대형 부동산회사들의 경쟁적인 개발로 고급 빌딩과 명품 브랜드 판매점이 즐비하게 늘어서면서 새로운 번화가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이곳에 자리잡은 대형 전기·전자제품 양판점 ‘비크카메라’에는 최첨단 제품들로 가득 차 있다. 휴대전화와 TV는 물론 카메라와 냉장고 등 가전제품이 진열대를 가득 메우고 있다. 음향기기·컴퓨터·전자사전 등도 빠른 속도로 신제품 경쟁을 벌인다. 그러나 이들 상품 가운데 삼성전자와 LG전자를 발견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들 한국 업체에 의하면 일부 제품이 이곳에서도 판매되고 있다. 제품력을 인정받으면서 입소문을 들은 실속파들의 구입 행렬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 제품이 눈에 확 띄는 곳에 진열돼 있지 않은 것은 현실이다. 한국으로 치면 하이마트에 해당하는 대형 양판점에서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일본 전국 어디에 가도 한국 제품을 찾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비크카메라의 상징처럼 된 종이백에도 한국 제품의 로고는 보이지 않는다. 세계적인 대형 메이커지만 일본 기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작아도 일본의 전기·전자업체는 브랜드 로고가 빼곡히 박혀 있다. 삼성전자·LG전자가 세계적인 브랜드라고는 해도 일본에서는 대접받지 못하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이런 벽을 넘지 못하고 2007년 10월 완제품을 파는 B2C 시장에서 물어났다. 일제가 최고라는 믿는 일본의 애국주의에 따른 비관세 장벽의 벽 앞에 전략을 수정한 것이다. 산케이(産經)신문은 당시 어처구니없게 “싸구려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일본 시장의 이런 특수한 분위기가 삼성전자의 일본 마케팅 방향을 바꾼 배경 중 하나다. 삼성전자는 일본에서는 B2B(기업 간 거래)에 주력하기로 했다. 일본에서의 이런 방향 수정은 전략적인 선택으로 보인다. 완제품 시장에서 일본 업체들과의 과도한 경쟁을 피하는 대신 B2B 시장에서는 공생관계로 파이를 키우자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미 일본 업체들은 삼성전자·LG전자의 큰 고객이다. 삼성전자 내부 관계자는 “소니가 힘을 다시 발휘하는 것은 오히려 삼성전자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현재 삼성전자와 소니는 충남 아산시 탕정에서 합작법인을 통해 S-LCD(액정디스플레이)를 함께 생산하는 등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 삼성전자와 소니는 지난해 LCD 패널 생산 능력을 높이기 위해 S-LCD 공장의 생산능력 증강 방안에도 합의했다. 증설 라인은 매달 5만~6만 개의 대형 액정 패널을 만들어 내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이처럼 이미 수평 분업과 협력이 확산되면서 삼성전자는 일본 시장에 굳이 완제품을 팔아 경쟁업체들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다만 거부감이 적은 휴대전화는 완제품을 적극적으로 내다팔고 있다. 일본에서는 휴대전화를 이동통신회사가 판매 주체가 돼 단말기 제조사는 종속적인 관계에 있는 것도 이런 마케팅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 이 시장에서는 LG전자와 팬택도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다. 삼성전자·LG전자는 일본 기업의 저력도 잘 알고 있다. 지금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경기 회복 등 여건만 개선되면 얼마든지 권토중래할 수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일본 기업의 견제를 한몸에 받고 있는 삼성전자로선 일본 기업의 체력 회복은 언제든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 원동력은 역시 세계적인 기술력이다. 더구나 절차탁마를 거듭해 온 일본 업체들은 오랫동안 삼성전자의 약점도 파악해 왔기 때문에 언제든 때만 오면 삼성전자를 앞지른다는 야망에 불타고 있다. 삼성전자의 강점인 마케팅 전략은 이미 상당히 파악된 것으로 보인다. 샤프는 고가의 일본 사양 휴대전화의 기능을 줄여서 저가 상품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중국·동남아시아에서 머지않아 한바탕 시장 쟁탈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한국은 ‘가마우지 경제’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대량의 부품을 일본에서 조달하고 있다. 국내 부품소재 산업이 자생적인 기반을 갖추지 못하면 한국 경제의 약점이 되는 것은 물론 삼성전자의 기반도 취약할 수밖에 없다. |
김동호 중앙일보 도쿄특파원·dongh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