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의 환심을 사는 압살롬
성 경: [삼하 15:1-6] 이 후에 압살롬이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말들을 준비하고 전배 오십 명을 세우니라
2) 압살롬이 일찍이 일어나 성문길 곁에 서서 어떤 사람이든지 송사가 있어 왕에게 재판을 청하러 올 때에 그 사람을 불러서 이르되 너는 어느 성 사람이냐 그 사람의 대답이 종은 이스라엘 아무 지파에 속하였나이다 하면
3) 압살롬이 저에게 이르기를 네 일이 옳고 바르다마는 네 송사 들을 사람을 왕께서 세우지 아니하셨다 하고
4) 또 이르기를 내가 이 땅에서 재판관이 되고 누구든지 송사나 재판할 일이 있어 내게로 오는 자에게 내가 공의 베풀기를 원하노라 하고
5) 사람이 가까이 와서 절하려 하면 압살롬이 손을 펴서 그 사람을 붙들고 입을 맞추니
6) 무릇 이스라엘 무리 중에 왕께 재판을 청하러 오는 자들에게 압살롬의 행함이 이 같아서 이스라엘 사람의 마음을 도적하니라.
[삼하 15:1] 이 후에 압살롬이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말들을 준비하고 전배 오십 명을 세우니라
▶ 이 후에 - 이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메아레이 켄'은
구약 성경 전체에서 모두 3회 등장하는데,
(3:28 그 뒤에 다윗이 그 일을 듣고 이르되, 넬의 아들 아브넬의 피에 대하여 나와 내 왕국은 주 앞에서 영원토록 무죄하니;
대하 32:23 많은 사람이 예물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와서 주께 드리고 또 선물을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드리므로 이후로부터 히스기야가 모든 민족들의 눈앞에 크게 되었더라),
이는 유사한 접속사 '아하레이 켄'과 구별된다.
즉, '아하레이 켄'은,
(1) 시간의 전후 관계를 이어 주는 시간적 접속사,
(2) 서로 다른 두 내용을 이어주는 단순 접속사로 사용된 반면,
(2:1 이 일 후에 다윗이 주께 여쭈어 이르되, 내가 유다의 도시들 가운데 하나로 올라가리이까? 하매 주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올라가라, 하시니 다윗이 이르되, 내가 어디로 가리이까? 하매 그분께서 이르시되, 헤브론으로 갈지니라, 하시니라;
10:1 이 일 후에 암몬 자손의 왕이 죽고 그의 아들 하눈이 그를 대신하여 통치하니라;
13:1 이 일 후에 이러한 일이 있었더라. 다윗의 아들 압살롬에게 아름다운 누이가 있었는데 그녀의 이름은 다말이더라. 다윗의 아들 암논이 그녀를 사랑하나;
15:1 이 일 후에 압살롬이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말들과 자기 앞에 달려갈 자 오십 명을 예비하니라;
대상 18:1 이제 이 일 후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을 쳐서 정복하고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가드와 그것의 고을들을 빼앗았으며;
19:1 이제 이 일 후에 암몬 자손의 왕 나하스가 죽고 그의 아들이 그를 대신하여 통치하니라;
대하 20:1 이 일 뒤에 또 모압 자손과 암몬 자손이 암몬 족속 외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와서 여호사밧을 치며 싸우려 하므로)
'메아레이 켄'은 오직 시간의 전후 관계를 이어 주는 시간적 접속사로만 사용되었다.
따라서 본장에 나오는 사건은 시간적으로
14:33의 사건 이후에 일어난 후속(後續) 사건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14:33 이에 요압이 왕께 나아가 왕께 고하매 왕이 압살롬을 부르니 그가 왕께 나아가 왕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매 왕이 압살롬과 입을 맞추니라)
▶ 병거와 말들을 준비하고 전배 오십 명 - 압살롬이 병거와 말들과
오십 명의 전배들을 갖춘 것은 반역을 일으키는 데 필요한
병기를 구비한 행위일 뿐 아니라, 아도니야의 경우처럼
차기 왕으로서의 위용을 백성들에게 나타내기 위함이었다.
(왕상 1:5 그때에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자신을 높이며 이르기를, 내가 왕이 되리라, 하고 자기를 위해 병거들과 기병들과 자기 앞에 달려갈 사람 오십 명을 예비하니라).
즉 이러한 병력의 배치는 흔히 이방의 왕들에게서 볼 수 있는 것인데
그들은 자신들의 강한 권세와 화려한 영화를 나타내기 위해
곧잘 이러한 수행원들을 거느렸던 것이다.
(삼상 8:11 이르되, 너희를 통치할 왕에 관한 규범이 이러하리라. 그가 너희 아들들을 취하여 그들을 자기와 자기의 병거들을 위해 지정하고 또 자기의 기병으로 삼으리니 몇 사람은 그의 병거들 앞에서 달려가리라).
따라서 압살롬의 이러한 행위는,
(1) 이방 왕들의 사치한 풍습을 따른 것이었고,
(2) 차기 이스라엘의 왕으로 자처한 반역적 행위였으며,
(3) 이스라엘 백성들의 관심을 자기에게 모으려는
계략이었다는 의미를 지닌다(The Interperter's Bible, Keil, Lange).
한편, 여기서 '전배'(前陪)는 히브리어로 '이쉬 라침'인데,
이는 '달려가는 사람', '경주자'란 뜻이다.
즉 '전배'란 당시 왕의 마차 앞에서 뛰어다니며 마차가 지나갈 길을
정비하고 왕을 경호하던 경호부대(警護部隊)를 가리킨다(Jamieson).
[삼하 15:2] 압살롬이 일찍이 일어나 성문길 곁에 서서 어떤 사람이든지 송사가 있어 왕에게 재판을 청하러 올 때에 그 사람을 불러서 이르되 너는 어느 성 사람이냐 그 사람의 대답이 종은 이스라엘 아무 지파에 속하였나이다 하면
? 일찌기 일어난 성문 길 곁에 서서 - 여기서 성문이란
왕궁의 문을 의미한다(Lange, The Interpreter's Bible, Pulpit Commentary).
구약 시대 당시 히브리 사회에서 마을의 성문은
장로들이 앉아서 재판하는 장소였다.
(창 23:10 에브론이 헷의 자손들 가운데 거하였는데 헷 족속 에브론이 헷의 자손들 곧 자기 도시의 문에 들어온 모든 자가 듣는 데서 아브라함에게 응답하여 이르되,
18 헷의 자손들 앞에서 즉 그의 도시의 문에 들어온 모든 사람 앞에서 아브라함의 소유로 확정되니라;
욥 29:7 그때에는 내가 도시를 가로질러 성문으로 나가기도 하며 내 자리를 거리에 마련하기도 하였느니라;
잠 24:7 지혜는 너무 높아서 어리석은 자가 감당하지 못하나니 그는 성문에서 자기 입을 열지 못하느니라;
31:23 그녀의 남편은 그 땅의 장로들 사이에 앉을 때에 성문 안에서 알려지느니라;
신 21:19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를 붙잡아서 자기 고장의 성문에 이르러 자기 도시의 장로들에게 나아가;
22:15 그 처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녀가 처녀임을 보여 주는 표들을 취하여 도시의 성문으로 장로들에게로 가지고 가서).
때문에 이러한 관례에 따라 이스라엘 왕은 자기의 성문,
곧 궁궐 문에 합법적인 재판관(裁判官)을 세워 재판을 여는 풍속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 재판관은 먼저 예루살렘 주민들을 재판하고
다음에 타 성읍의 소송 문제들을 재판하였는데,
그 재판 시간은 이른 아침이었다(de Vaux).
따라서 압살롬은 성문에서 열리는 왕의 재판을 전적으로 방해하기 위하여
아침 일찍 성문 길 곁에 섰던 것이다.
▶ 너는 어느 성 사람이냐 - 압살롬의 왕이 재판을 받으러 올라가는
사람들을 세워놓고 개인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장면이다.
백성들에 대한 압살롬의 이러한 친절은 자기를 왕으로 보이기 위해
거창하게 병력을 대치한 오만 불손한 행위와는 아주 대조적이다.
(1절 이 일 후에 압살롬이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말들과 자기 앞에 달려갈 자 오십 명을 예비하니라).
그렇지만 이 역시 그가 진심으로 백성을 사랑했기 때문에
취한 행위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백성들의 환심을 사려는
음흉한 행동이었음은 두말 할 나위없다.
(6절 왕께 재판을 청하러 오는 온 이스라엘에게 압살롬이 이런 식으로 행하여 이처럼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을 도둑질하니라).
[삼하 15:3] 압살롬이 저에게 이르기를 네 일이 옳고 바르다마는 네 송사 들을 사람을 왕께서 세우지 아니하셨다 하고
▶ 네 일이 옳고 바르다마는 - 재판도하기 이전에 사법적인 결정을
내려주고 있는 압살롬의 독단적 발언이다.
즉, 압살롬은 상대방에게 무조건 유리하게 말함으로써
그의 마음을 살 뿐만 아니라 상대방이 장차 다윗 왕에 대하여
불평할 수 있는 여지를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
▶ 네 송사 들을 사람을 왕께서 세우지 아니하셨다 - 압살롬이 다윗을,
백성들에 대한 자기의 기본 의무를 감당하지 않고
무책임하고 불의한 자로 매도(罵倒)하고 있는 구절이다.
한편 여기서 '송사 들을 사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쇼페트'는
사법적 처리만을 전문적으로 하는 재판관, 또는 사법 관리를 의미 한다.
이는 왕이 직접 임명한 자였기 때문에 왕적 권위로 재판할 수 있었고,
이 사람이 한번 결정하면 더 이상 상소할 수 없었다(de Vaux).
그런데 당시 다윗이 이러한 사람을 세운 것은 아마도 혼자서
모든 소송을 검토하고 재판하기에는 너무 벅찼으며,
또한 재판에는 전문적 지식이 필요하였기 때문일 것이다(Keil).
따라서 다윗이 이러한 사람을 세우지 않았다고 하는 압살롬의 거짓 증거는
다윗이 사법적 의무에 대해 방임하고 있는 것처럼
매도한 것임을 알 수 있다(Matthew Henry).
[삼하 15:4] 또 이르기를 내가 이 땅에서 재판관이 되고 누구든지 송사나 재판할 일이 있어 내게로 오는 자에게 내가 공의 베풀기를 원하노라 하고
▶ 내가 이 땅에서 재판관이 되고 - 이처럼 압살롬이 왕자라는 신분을 이용,
스스로 백성의 재판관으로 행세할 수 있었다는 것은
당시 이스라엘의 재판관 조직이 아직 체계화되지 못하였음을 시사해 준다.
사실 이스라엘에서 그 같은 조직이 전문화된 형태를 갖춘 것은
유다 왕 여호사밧 때의 일이다.
(대하 19:4-11 여호사밧이 예루살렘에 거하다가 다시 나가서 브엘세바에서부터 에브라임 산에 이르기까지 백성 가운데 두루 다니며 그들을 주 곧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니라.
5) 또 그가 유다의 성벽을 두른 모든 도시에 재판관들을 세우되 도시마다 그리하고
6) 재판관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행하는 바를 조심하라. 너희가 사람을 위해 재판하지 아니하고 주를 위해 하나니 너희가 재판할 때에 그분께서 너희와 함께 계시느니라.
7) 그런즉 이제 주의 두려움을 너희 위에 두고 조심하여 그 일을 행하라. 주 우리 하나님께는 불법도 없고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것도 없으며 뇌물을 받는 것도 없느니라, 하니라.
8)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되돌아올 때에 여호사밧이 또한 예루살렘에서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과 이스라엘의 아버지들의 우두머리들 중에서 사람들을 세워 주의 재판을 행하게 하며 분쟁들을 다루게 하고
9) 또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되, 너희는 주를 두려워하며 신실하고 완전한 마음으로 이와 같이 행할지니라.
10) 자기 도시에 거하고 있는 너희 형제들로부터 피와 피 사이에서 혹은 율법과 명령 및 법규와 법도 사이에서 무슨 사정이든지 너희에게 이르거든 너희는 그들에게 경고하여 그들이 주께 범법을 행하지 않게 하고 이로써 너희와 너희 형제들에게 진노가 임하지 않게 하라. 이것을 행하면 너희가 범법하지 아니하리라.
11) 보라, 주께 속한 모든 일에서는 수제사장 아마랴가 너희를 다스리고 왕에게 속한 모든 일을 위해서는 유다의 집 치리자 이스마엘의 아들 사바댜가 다스리며 또한 레위 사람들은 너희 앞에 관리들이 되리라. 용기 있게 행동하라. 주께서 선한 자들과 함께하실지로다, 하니라).
▶ 내게로 오는 자에게 - 여기서 '내게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알리'는
'내 위에'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말이 본절에서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하여서는
학자들마다 대체로 다음 두 가지를 피력하고 있다.
(1) '내 위로 나오는'이란 표현이 당시 재판 현장의 상황을
나타내 주는 말이란 견해이다. 즉, 당시 재판장은 자리에 앉아서 재판하였으며
백성들은 재판장 곁에 서서 재판을 받았다.
(출 18:13 다음 날 모세는 백성을 재판하기 위해 앉았고 백성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세의 곁에 섰으므로).
따라서 압살롬은 이러한 말을 사용함으로써 은연 중 백성들에게
재판을 베풀어 주겠다는 자기의 의도를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Keil).
(2) '내 위로 나온다'는 표현은 백성들이 자기들의 짐을
그에게 맡기는 것을 가리킨다는 견해이다(Lange).
따라서 압살롬은 여기서 백성들이 곤란한 문제를 자기에게 자져올 경우
자기가 맡아서 처리해 줄 것이라는 언질을 했다는 것이다.
이 두 견해 중 어느 것이 보다 정확한 것인지는 판단키 곤란하다.
그러나 양 견해 모두 압살롬이 백성들의 환심을 사려고
애쓰는 것을 나타내 주므로 그 어느 쪽을 택하여도 무방할 것이다.
[삼하 15:5] 사람이 가까이 와서 절하려 하면 압살롬이 손을 펴서 그 사람을 붙들고 입을 맞추니
▶ 입을 맞추니 - 본래 입을 맞추는 것은 반가움의 표시이며
진정한 화해의 표시이다. 그러나 압살롬은 여기서
백성들에게 자기를 선전하고 부각시키기 위해 이를 이용하고 있는 중이다.
(14:33 이에 요압이 왕께 나아가 왕께 고하매 왕이 압살롬을 부르니 그가 왕께 나아가 왕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매 왕이 압살롬과 입을 맞추니라).
[삼하 15:6] 무릇 이스라엘 무리 중에 왕께 재판을 청하러 오는 자들에게 압살롬의 행함이 이 같아서 이스라엘 사람의 마음을 도적하니라.
▶ 이스라엘 사람의 마음을 도적하니라 - 여기서 '도적하다'에 해당하는 '가납'은
특히 '남을 속여서 훔치는 것'을 가리킨다.
지금까지 압살롬은 백성에게 관심을 보이고,
(2절 압살롬이 일찍 일어나 성문 길 옆에 서서 어떤 사람이든지 분쟁거리가 있어 왕에게 재판을 청하러 올 때에 그 사람을 불러 이르되, 너는 어느 도시 출신이냐? 하여 그가 말하기를, 주의 종은 이스라엘 지파들 가운데 하나에 속하나이다, 하면),
현 정부의 무능을 비판하며,
(3절 압살롬이 그에게 이르기를, 보라, 네 일들이 선하고 바르다마는 네 말을 들을 사람을 왕께서 임명하지 아니하셨다, 하고),
약자를 동정하고,
(4절 또 압살롬이 이르기를, 내가 이 땅에서 재판관이 되어 청원이나 사정이 있는 사람이 다 내게로 올 때에 그에게 정의를 베풀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그들에게 애정을 보였다.
(5절 어떤 사람이라도 그에게 가까이 와서 경의를 표하려 하면 그가 자기 손을 내밀어 그 사람을 붙들고 그에게 입을 맞추니라).
그런데도 본서 저자가 이 모든 압살롬의 행위를 가리켜
'사람의 마음을 도적질 하였다'고 언급한 까닭은,
압살롬이 백성들에게 성실한 통치를 베풀어 신망(信望)받는
지도자가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기만하는 술책으로
인기를 얻었기 때문이다.
한편 성경은 압살롬과 같이 불의한 방법으로 기존 권세자에 대하여
항거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롬 13:1-2 모든 혼들은 더 높은 권력들에 복종할지니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은 권력이 없으며 이미 있는 권력들도 하나님께서 임명하셨느니라.
2) 그러므로 누구든지 권력에 거역하는 자는 하나님의 규례를 거역하나니 거역하는 자들은 스스로 정죄를 받으리라).
그러나 국민의 기본적 권리를 유린하는 정부에 대하여선
스스로를 지키며 또한 진리를 파수하기 위해 불의에 항거할 수 있다는 것이
곧 성경의 근본 가르침이기도 하다.
(벧전 2:13-14 너희는 주를 위해 사람의 모든 규례에 복종하되 왕에게는 최고 권위자에게 하듯 하고
14) 총독들에게는 악을 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잘 행하는 자를 칭찬하기 위해 그분께서 보내신 자들에게 하듯 하라).
그러므로 오늘날 그 어느 현장, 어느 집단에서든
인권이 유린되고 자유가 억압되며 생존권이 침해 당한다면,
그곳에서 크리스챤(Christian)은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시 58:1 오 회중들아, 너희가 참으로 의를 말하느냐?
오 너희 사람들의 아들들아, 너희가 올바르게 판단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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