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engol 2

이러므로 여호와여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리이다

거듭난 삶 2021. 12. 10. 00:04
728x90

영존자 하나님

 

성 경: [삼하 22:47-51] 여호와는 생존하시니 나의 바위를 찬송하며 내 구원의 바위이신 하나님을 높일지로다

48) 이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보수하시고 민족들로 내게 복종케 하시며

49) 나를 원수들에게서 나오게 하시며 나를 대적하는 자 위에 나를 드시고 나를 강포한 자에게서 건지시는도다

50) 이러므로 여호와여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리이다

51) 여호와께서 그 왕에게 큰 구원을 주시며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인자를 베푸심이여 영원토록 다윗과 그 후손에게로다 하였더라

 

 

[삼하 22:47] 여호와는 생존하시니 나의 바위를 찬송하며 내 구원의 바위이신 하나님을 높일지로다

 

여호와는 생존하시니 - 이 구절로부터 마지막 절(51)까지는

이 시의 종결 부분으로, 다윗은 여기서 자신의 승리의 영광을

모두 살아계셔서 자신에게 힘과 용기와 도움을 주셨던

하나님께 돌리고 있다.

 

그 중 일부분인 이 구절은

하나님의 속성인 자존성(自存性)을 찬양하는 말이다.

 

, 다윗은 자신의 경험을 통하여 하나님은 살아계시다는 진리를 생생히 깨닫고,

여기서 '여호와는 살아계시도다!'라고 확신있게 찬송하고 있는 것이다.

 

(딤전 6:16 오직 그 분만이 불멸하시며, 어떤 사람도 접근할 수 없는 빛 가운데 거하시며,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도 없는 분이시니, 그 분께 영원한 존귀와 능력이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이처럼 하나님을 진실로 신뢰하는 자는 그 마지막에

'하나님은 살아계시도다!'라고 고백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한편, 혹자들은 이 말을 일종의 기원 형식으로 보고,

'여호와는 길이 사시옵소서'란 뜻으로 해석하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만세수(萬歲壽)'

 

(16:16 그때 다윗의 친구 아렉인 후새가 압살롬에게 나와 압살롬에게 말하기를 "왕 만세, 왕 만세." 하니;

 

삼상 10:24 사무엘이 모든 백성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주께서 택하신 그를 보느냐? 백성 가운데 그와 같은 자가 아무도 없느니라." 하니 모든 백성이 소리쳐 말하기를 "왕 만세." 하더라;

 

왕상 1:25 그가 오늘 내려가서 소들과 살진 송아지들과 양들을 많이 잡고, 왕의 모든 아들들과 군대 대장들과 제사장 아비아달을 청하였나이다. 보소서, 그들이 그의 앞에서 먹고 마시며 말하기를 '아도니야왕 만세.' 하였나이다,

 

39 제사장 사독이 성막에서 기름 뿔을 가져다가 솔로몬에게 기름을 부으니, 그들이 나팔을 불자 모든 백성이 말하기를 "솔로몬왕 만세." 하더라;

 

왕하 11:12 여호야다가 왕의 아들을 인도하여 내서 그에게 왕관을 씌우고 율법서를 주니라. 이에 그들이 그를 왕으로 삼고 그에게 기름 부은 후 박수를 치며 말하기를 "왕 만세." 하더라)

 

유한성(有限性)을 지닌 인간에게나 필요한 것일 뿐,

영원토록 스스로 살아계시는,

 

(3:14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곧 나니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이같이 말할지니 '나이신 분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하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에게는 전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이 말이 죽은 우상들과 비교해서 사용된 말이라고 볼 수도 없다.

 

다만 여기서 다윗은 역사의 현장에서,

특히 생과 사()가 교차되는 전쟁터에서

친히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역동적인 섭리의 역사를

장중한 감탄조로 '여호와는 살아 계시도다!'라고 찬양했던 것이다(F. R. Fay).

 

 

나의 바위를 찬송하며 내 구원의 바위이신 하나님 - 여기서 '바위'(추르)

3, 32절의 바위와 같은 단어이다.

 

(3 내 반석의 하나님, 그 분을 내가 신뢰하리라. 그는 나의 방패시요, 내 구원의 뿔이시며, 나의 높은 망대시요, 나의 피난처시요, 나의 구주시라. 주께서 나를 폭력으로부터 구원해 주시나이다,

 

32 주 외에 누가 하나님이시리요? 또 우리 하나님 외에 누가 반석이시리요?)

 

 

[삼하 22:48-49] 이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보수하시고 민족들로 내게 복종케 하시며

49) 나를 원수들에게서 나오게 하시며 나를 대적하는 자 위에 나를 드시고 나를 강포한 자에게서 건지시는도다

 

이 구절들은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진리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들이다.

그 증거란 바로 하나님께서 미천한 다윗을 들어

온 민족들의 머리로 삼으신 것과 다윗을 대적으로부터 보호하신 사실이었다.

 

그러한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가 여기서 거듭되는

다섯 개의 동사

 

(보수하시고,

복종케 하시며,

나오게 하시며,

드시고,

건지시는도다)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다.

 

이처럼 하나님은 그의 종들을 높이시고 그들이 위급할 때

강림하셔서 구체적으로 도움을 주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란 사실을

다윗은 여기서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민족들 - 여기서 민족들은 복수형이므로,

이스라엘 주변에 있던 모든 이방 족속들을 의미한다.

 

 

나를 원수들에게서 나오게 하시며 나를 대적하는 자 위에 나를 드시고 나를 강포한 자에게서 건지시는도다 - 다윗은 48절에서

모든 이방민족 가운데 자신을 높이 드사 으뜸이 되게하신 하나님을 찬송했다면,

49절에서 다윗은 모든 대적의 위협과 핍박에서 건져주신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여기서 다윗은 대적의 핍박을 연상할 때

사울의 끈질긴 추격과 박해를 염두에 두었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본 구절은 다윗이 사울의 핍박에서 간신히 벗어나는 상황과

일치하고 있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요,

 

또한 본 시의 표제어에서

'모든 대적'에 이어 '사울'의 이름이 언급되어 있기 때문이다.

 

(1절 주께서 다윗을 그의 모든 원수들의 손과 사울의 손에서 구해 내신 그 날에, 다윗이 이 노랫말을 주께 고하여).

 

그러나 여기서 원수와 대적하는 자와 강포한 자가

모두 복수로 표기되어 있다는 점은

'사울'을 비롯한 '모든 대적들'을 가리키고 있음에 이론의 여지가 없다.

(Lange, Pulpit Commentary).

 

 

 

[삼하 22:50] 이러므로 여호와여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리이다

 

이러므로 - 이는 하나님께 대한 다윗의 찬양과 감사가

결코 근거없는 맹목적인 것이 아니라,

앞에서 다윗이 생생하게 증거한 하나님의 구원 행위에 대한

마음의 보답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이처럼 성도의 찬양과 감사는 맹목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되며,

자기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대한

마땅한 응답으로서 이루어져야 한다.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리이다 - 다윗이 그의

찬양의 무대를 밝히고 있다.

그 무대는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이방의 모든 민족들 가운데서 였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이방 민족들 가운데도 생생히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 다윗에게 정복된 이방 민족들은

다윗과 함께 하신 하나님의 크신 능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으며,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이처럼 이방 민족들에게도 하나님의 행사가 널리 알려졌기 때문에,

이제 찬양이 이스라엘의 전유물일 수 없었고

온 민족가운데 선포되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다윗의 노래 속에서,

하나님은 온 민족 세계 열방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한편, 이런 맥락에서 후일 사도 바울은

구원의 보편성(민족과 혈통을 초월한다는 의미에서의 보편성)을 강조하는

문맥에서 본 구절을 인용하였다.

 

(15:9 이방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인하여 그 분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니, 기록된 바와 같이 "이로 인하여 내가 이방인들 가운데서 주께 자백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이다."라고 하였느니라).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리이다 - 다윗은 이미 자신의 찬양의 근거가

'생존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47절 주는 살아 계시오니, 내 반석을 송축하며 내 구원의 반석의 하나님을 드높일지어다).

 

사실 그분의 살아계심은 생명력 넘치는 그분의 속성을 반영한 것으로서,

아무런 희망이 없던 존재들에게

새 힘과 삶의 의미를 제공하기에 충분하다.

 

(딤전 6:16 오직 그 분만이 불멸하시며, 어떤 사람도 접근할 수 없는 빛 가운데 거하시며,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도 없는 분이시니, 그 분께 영원한 존귀와 능력이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그러므로 '생존하시는 하나님'과 더불어 생활하는 자에게는

결코 낙심이나 두려움이 있을 수 없다.

 

(28:5-6 천사가 대답하여 그 여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두려워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찾는 줄 내가 아노라.

6) 그 분은 여기에 계시지 않고 말씀하셨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주께서 누우셨던 자리를 보라;

 

17:31 이는 하나님께서 친히 선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의로 세상을 심판하실 한 날을 정해 놓으시고, 그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시어 모든 사람에게 믿음의 확신을 주셨음이라."고 하니라).

 

즉 그분의 살아계심은 곧 성도의 안전과 생명과 기쁨을 의미한다.

그런 측면에서 영존하시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우리의 입에서는

영원토록 감사와 찬양이 끊어질 수 없다.

 

(11:13-24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들의 사도이기에 나의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나니

14) 이는 아무쪼록 내가 나의 동족을 시기나게 하여 그들 가운데 얼마라도 구원하려 함이라.

15) 그들을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해가 된다면 그들을 받아들임은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나는 생명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16) 첫열매가 거룩하면 빵 덩어리도 거룩하고, 또 뿌리가 거룩하면 그 가지도 거룩하니라.

17) 그러나 만일 가지들 가운데 얼마가 꺾여지고 돌올리브 나무인 네가 그들 가운데 접붙여져서 올리브 나무의 뿌리와 기름진 것을 함께 받게 되었다면

18) 그 가지들에게 자랑하지 말라. 네가 자랑하여도 네가 뿌리를 지탱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지탱하는 것이니라.

19) 그러면 네가 말하기를 "가지들이 꺾인 것은 내가 접붙여지기 위한 것이라." 하리라.

20)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함으로 꺾여졌고 너는 믿음으로 섰느니라. 높아지려는 생각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21) 하나님께서 본래의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으니 너도 아끼지 아니하실까 주의하라.

22)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시니, 만일 네가 그 분의 선하심에 머물면 그 선하심이 너에게 있을 것이나 그렇지 아니하면 너도 꺾이리라.

23) 또 그들도 믿지 않는 가운데 계속 머물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받을 것이니라.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시 접붙이실 수 있기 때문이라.

24) 네가 본래의 돌올리브 나무에서 꺾여 본성을 거슬러 참올리브 나무에 접붙여졌는데, 하물며 본래의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본래의 올리브 나무에 얼마나 더 잘 접붙여지겠느냐?;

 

1:4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게 편지하노니,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앞으로 오실 분과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8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과 끝이라. , 곧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앞으로 오실 전능하신 분이 말하노라,

 

18 나는 살아 있는 자며, 죽은 자였으나 보라, 영원 무궁토록 살아 있노라. 아멘. 또한 내가 지옥과 사망의 열쇠들을 가졌노라).

 

 

 

[삼하 22:51] 여호와께서 그 왕에게 큰 구원을 주시며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인자를 베푸심이여 영원토록 다윗과 그 후손에게로다 하였더라.

 

여호와께서 그 왕에게 큰 구원을 주시며 - 여기서 '큰 구원을 주시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믹딜 예슈오트'를 문자 그대로 직역하면,

'큰 구원들'이다.

 

, 이 말은 여호와께서 다윗 왕에게 '큰 구원들'이 되셨다는 말이다.

 

여기서 '구원'의 복수 형태는

 

(1) 여호와께서 다윗 왕에게 베푸신 여러 번의 구원의 역사와

(2) 그 구원의 풍성함을 의미하는 말이다(Smith, Lange).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인자를 베푸심이여 - 여기서 '인자'(헤세드)

하나님께서 특별히 당신과 맺으신 언약에 근거하여

각종 호의와 친절과 선과 자비등을 상대방에게 아낌없이 베푸는 은혜를 가리킨다.

 

여기서는 이러한 '은혜'가 하나님의 지상 대리자

곧 신정(神政) 국가의 왕으로서 '기름부음 받은 자'(마쉬아흐)

다윗에게 1차적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궁극적으로 언약의 본질이자 핵()'메시야'(Messiah),

곧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타나고 완성된 모든 인장의 전조(前兆)였다.

 

이렇게 볼 때 결국 다윗의 찬양의 지향점은

오실 메시야에게로 향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1:3 이 복음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에 관한 것으로, 그는 육신으로는 다윗의 씨에서 나셨으며;

 

15:12 또 다시 이사야가 말하기를 "이새의 뿌리, 곧 이방인들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이방인들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고 하였느니라).

 

이것은

 

(1) 모든 구원과 인자의 완성자는 예수 그리스도 한 번 뿐이시며,

 

(4:12 그러므로 다른 이에게는 구원이 없나니, 이는 하늘 아래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다른 이름을 인간에게 주신 적이 없음이라."고 하더라;

 

15:11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는 것을 믿으며, 그들도 마찬가지니라."고 하더라),

 

(2) 우리의 찬양의 대상 역시 구원자 예수와 그분을 우리에게 보내신

하나님이어야 함을 시사해 준다.

 

(고후 1:3 하나님을 송축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영원토록 다윗과 그 후손에게로다 다윗 왕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구원자역사는 다윗 상대로 끝나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

다윗은 이러한 사실을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밝히 알았다.

 

, 다윗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의 자식을 세워 다윗의 나라를 견코케 할 것이며,

하나님께서 친히 그의 아버지가 될 것이라는

'다윗 언약'을 약속받았던 것이다.

 

(7:12-16 네 연수가 차서 네가 네 조상들과 함께 잠들 때, 내가 네 몸에서 나올 네 씨를 네 뒤에 세우고, 그의 왕국을 견고하게 하리라.

13)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한 집을 세울 것이요, 내가 그의 왕국의 보좌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14)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되리니, 만일 그가 죄악을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막대기로 그를 징책하고 사람의 자식의 채찍으로 징책하리라.

15) 그러나 내가 네 앞에서 제거한 사울로부터 나의 자비를 빼앗은 것과 같이, 그것이 그에게서 떠나지는 아니하리니

16) 네 집과 네 왕국이 네 앞에서 영원히 서리라. 네 보좌가 영원히 서리라.' 하라." 하시더라)

 

그런데 여기서 '후손'(제라-''란 뜻)

 

(1) 일차적으로는 다윗의 후계자 '솔로몬'을 가리키나

(2) 궁극적으로는 다윗 언약의 모든 것을 최종 이루시게 될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말이다.

 

결국 다윗은 이러한 하나님의 언약에 기초하여

이와 같은 구원과 감사의 찬송을 힘차게 노래할 수 있었던 것이다(Keil).

 

특히 이 찬송의 노래 중 '영원토록'이란 말 가운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께 속한 성도들인 우리들에게도

지금 구원의 역사를 베풀고 계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실로 당신의 언약을 신실히 이행하시는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는 분이시다.

 

(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