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인구 조사 2
성 경: [삼하 24:5-9] 요단을 건너 갓 골짜기 가운데 성읍 아로엘 우편 곧 야셀 맞은편에 이르러 장막을 치고
6) 길르앗에 이르고 닷딤홋시 땅에 이르고 또 다냐안에 이르러서는 시돈으로 돌아서
7) 두로 견고한 성에 이르고 히위 사람과 가나안 사람의 모든 성읍에 이르고 유다 남편으로 나와서 브엘세바에 이르니라
8) 저희 무리가 국중을 두루 돌아 아홉 달 스무 날만에 예루살렘에 이르러
9) 요압이 인구 도수를 왕께 고하니 곧 이스라엘에서 칼을 빼는 담대한 자가 팔십만이요 유다 사람이 오십만이었더라.
[삼하 24:5] 요단을 건너 갓 골짜기 가운데 성읍 아로엘 우편 곧 야셀 맞은편에 이르러 장막을 치고
▶ 갓 골짜기 가운데 성읍 아로엘 - '아로엘'(Aroer)은
요단 동편에 있던 한 성읍으로서,
(신 2:36 아르논 강가의 아로엘과 그 강 옆에 있는 도시로부터 길르앗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점령하지 못할 정도로 강한 도시가 하나도 없었으며 주 우리 하나님께서 그 모든 땅을 우리에게 넘겨주셨느니라;
수 12:2 헤스본에 거하던 아모리 족속의 왕 시혼이라. 그가 아르논 강둑에 있는 아로엘과 강의 중간과 길르앗의 절반에서부터 암몬 자손의 경계인 얍복 강까지 다스렸으며),
원래는 르우벤 지파에 속했으나
그곳에 성(城)을 쌓은 자들은 갓 자손이었다.
(민 32:34 갓 자손은 디본과 아다롯과 아로엘과).
이곳은 사해(死海)에서 동쪽으로 약 22km 떨어진 곳이며,
아르논 강북쪽 해안에 위치해 있었다(Biblical Commentary).
한편 이곳은 국경 지대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요압은 여기서부터 인구 조사를 착수했던 것이다.
▶ 야셀 - 본래 길르앗에 있는 아모리 성읍이었으나,
후에 갓 족속의 정착지가 되었다.
(민 32:35 아드롯과 소반과 야셀과 욕브하와;
수 13:25 그들의 지경은 야셀과 길르앗의 모든 도시와 암몬 자손의 땅의 절반 즉 랍바 앞의 아로엘까지와).
또한 이곳은 아모리 지경과의 경계지가 되었고,
갓 지파가 레위 지파에게 준 네 성읍 중 하나였다.
(수 21:39 헤스본과 그것의 주변 지역과 야셀과 그것의 주변 지역이니 곧 네 도시더라).
▶ 장막을 치고 - 인구 조사는 큰 사업이었기 때문에 많은 무리들이 동원되었다.
따라서 요압은 이들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장막을
아로엘과 야셀 사이의 초원 지대에 건설하고,
이 장막을 인구 조사의 본부로 이용했던 것이다(Keil, Lange).
[삼하 24:6] 길르앗에 이르고 닷딤홋시 땅에 이르고 또 다냐안에 이르러서는 시돈으로 돌아서
▶ 길르앗 - '길르앗'(Gilead)은 인구 조사 본부가 설치되었던
아로엘과 야셀이 속해있는 지방으로서(신 3:10),
얍복 강 양편의 산악 지방을 일컫는다.
(창 31:21-48 이와 같이 야곱이 자기의 모든 소유를 가지고 도망하였으며 그가 일어나서 강을 건너고 길르앗 산을 향해 얼굴을 고정하니라.
22) 셋째 날 야곱이 도망했다는 소식이 라반에게 들리므로
23) 라반이 자기 형제들을 데리고 그의 뒤를 따라 이레 길을 가서 그들이 길르앗 산에서 그를 따라잡았더니
24) 밤에 하나님께서 꿈에 시리아 사람 라반에게 오사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조심하여 야곱에게 좋다 나쁘다 하지 말라, 하시니라.
25) 그때에 라반이 야곱을 따라잡으니라. 이제 야곱이 산에 장막을 쳤으므로 라반이 자기 형제들과 함께 길르앗 산에 장막을 치고
26) 야곱에게 이르되, 네가 내게 알리지 아니하고 내 딸들을 칼로 사로잡은 포로같이 몰래 끌고 갔으니 네가 행한 일이 도대체 무엇이냐?
27) 내가 희락과 노래와 작은북과 하프와 함께 너를 보냈겠거늘 어찌하여 네가 은밀히 도망하여 몰래 나를 떠나고 내게 고하지 아니하였느냐?
28) 또 내가 내 아들딸들에게 입 맞추지 못하게 하였느냐? 이제 네가 그리함으로 어리석게 행하였도다.
29) 너를 해칠 만한 능력이 내 손에 있으나 네 아버지의 하나님께서 어제 밤에 내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조심하여 야곱에게 좋다 나쁘다 하지 말라, 하셨느니라.
30) 이제 네가 네 아버지 집을 심히 사모하므로 가야 할지라도 어찌하여 내 신들을 훔쳤느냐? 하매
31) 야곱이 라반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이르기를, 외삼촌이 외삼촌의 딸들을 내게서 강제로 빼앗으리라, 하고 두려워하였나이다.
32) 외삼촌의 신들을 누구에게서 찾든지 그는 살지 못하리이다. 외삼촌은 우리 형제들 앞에서 외삼촌의 것이 내게 있는지 분별하시어 그것을 외삼촌에게로 취하소서, 하니 야곱은 라헬이 그것들을 도둑질한 줄을 알지 못하였더라.
33) 라반이 야곱의 장막에 들어가고 레아의 장막에 들어가며 두 여종의 장막에 들어갔으나 그것들을 찾지 못하고 레아의 장막에서 나와 라헬의 장막에 들어가니라.
34) 이제 라헬이 그 형상들을 가져다가 낙타의 안장 속에 넣고 그 위에 앉으니라. 라반이 장막을 모두 뒤졌으나 그것들을 발견하지 못하매
35) 라헬이 자기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게 여인들의 관례가 임하여 내가 내 주 앞에서 일어설 수 없사오니 내 주는 불쾌히 여기지 마소서, 하니라. 라반이 뒤졌으나 형상들을 찾지 못하니라.
36) 야곱이 노하여 라반을 나무라며 라반에게 응답하여 이르되, 내 범법이 무엇이니이까? 내 죄가 무엇이기에 외삼촌께서 이같이 분개하여 내 뒤를 따라오셨나이까?
37) 외삼촌께서 내 물건을 다 뒤지셨으나 외삼촌의 모든 집안 물건 중에서 무엇을 찾았나이까? 여기 나의 형제들과 외삼촌의 형제들 앞에 그것을 세워 두고 이로써 그들이 우리 둘 사이에 판단하게 하소서.
38) 내가 이 이십 년을 외삼촌과 함께하였거니와 외삼촌의 암양이나 암염소들이 낙태하지 아니하였고 또 외삼촌의 양 떼의 숫양을 내가 먹지 아니하였으며
39) 짐승에게 물려 찢긴 것은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지 아니하고 내가 그것의 손실을 담당하였으며 낮에 도둑을 맞았든지 밤에 도둑을 맞았든지 외삼촌께서 내 손에서 그것을 요구하셨나이다.
40) 내가 이와 같았으니 곧 낮에는 갈증이 밤에는 서리가 나를 쇠약하게 하고 내 눈에서 잠이 떠났나이다.
41) 내가 외삼촌의 집에서 이와 같이 이십 년을 지냈으니 곧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하여 십사 년 동안 또 외삼촌의 가축을 위하여 육 년 동안 외삼촌을 섬겼거니와 외삼촌께서 내 품값을 열 번이나 바꾸셨나이다.
42) 만일 내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이 두려워하는 분께서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였더라면 분명히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셨으리이다마는 하나님께서 내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보시고 어제 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
43) 라반이 야곱에게 응답하여 이르되, 이 딸들은 내 딸들이요, 이 아이들은 내 아이들이요, 이 가축은 내 가축이요, 네가 보는 것은 다 내 것이라. 이 날 내가 내 딸들이나 그들이 낳은 아이들에게 무슨 일을 할 수 있으랴?
44) 그러므로 너는 이제 오라. 우리 곧 너와 내가 언약을 맺어 그것이 너와 나 사이에 증거가 되게 하리라, 하매
45) 야곱이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46) 또 자기 형제들에게 말하여, 돌을 모으라, 하니 그들이 돌을 취하여 무더기를 만들매 그들이 거기서 무더기 곁에서 먹으니라.
47) 라반은 그 무더기를 여갈사하두다라 불렀으나 야곱은 그것을 갈르엣이라 불렀더라.
48) 라반이 말하기를, 이 날 이 무더기가 너와 나 사이에 증거가 되느니라, 하였으므로 그것의 이름을 갈르엣이라 하였으며).
이곳에는 갓과 르우벤과 므낫세 반 지파가 살았다.
▶ 닷딤홋시 - 이곳의 위치는 불분명하나 갈릴리 바다 동편인 것으로 보여진다.
왜냐하면 이들이 그곳에서 이스라엘 북단 '다냐안'으로 갔기 때문이다.
즉, 이곳은 길르앗에서 다냐안으로 가는 중간 지점인데,
이렇게 볼 때 닷딤홋시(TahtimHodshi) 땅은
갈릴리 바다 동편일 수 밖에 없다(Keil).
▶ 다냐안 - 이는 정확히 말해서 '단야안'이며,
곧 이스라엘 북단에 있는 '단'을 가리킨다.
(수 19:47 단 자손의 지경이 그들에게 너무 적게 뻗어나갔으므로 단 자손이 올라가 레셈과 싸워 그것을 빼앗되 칼날로 쳐서 그것을 소유하여 그 안에 거하며 자기들의 조상 단의 이름을 따라 레셈을 단이라 부르니라;
삿 18:29 이스라엘에게 태어난 자기들의 조상 단의 이름을 따라 그 도시의 이름을 단이라 하였으나 그 도시의 이름은 처음에 라이스더라).
이곳은 다메섹 남서쪽에 위치했으며 당시 다윗 왕조의 북쪽 경계지 였다.
한편, '야안'은 베니게의 신(神)의 이름으로,
이교적인 풍습에 의해 이 우상의 이름이 지명에 붙여진 듯하다(Bunsen).
▶ 시돈 - '시돈'(Sidon)은 사실상 다윗 왕국의 영토는 아니었으나,
다윗 왕국의 속국으로서 당시 군역(軍役)에 가담하고 있었다.
(Pulpit Commentary, The Interpreter's Bible).
한편 시돈성(城)은 베니게의 부요한 성읍이었으며,
단의 북서쪽 지중해 해안에 위치하였다.
(창 10:15 가나안은 자기의 맏아들 시돈과 헷을 낳고;
수 11:8 주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겨주셨으므로 이스라엘이 그들을 치고 큰 시돈과 미스레봇마임까지 추격하며 동쪽으로는 미스바 골짜기까지 추격하여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고 그들을 치니라;
19:28 헤브론과 르홉과 함몬과 가나를 지나 큰 시돈에까지 이르며).
[삼하 24:7] 두로 견고한 성에 이르고 히위 사람과 가나안 사람의 모든 성읍에 이르고 유다 남편으로 나와서 브엘세바에 이르니라
▶ 두로 견고한 성 - '두로'(Tyre) 역시 시돈과 마찬가지로 당시 다윗의 종속국이었다.
이곳은 시돈에서 남쪽으로 약 40km 지점이다.
(수 19:29 또 그 지경이 돌아서 라마와 견고한 도시 두로에 이르고 또 그 지경이 돌아서 호사에 이르며 그것이 나아가서 악십에 이르는 지경으로부터 바다에 이르느니라)
따라서 이스라엘 최북단까지 올라간 요압 일행은
시돈을 기점으로 하여 남쪽으로 선회했던 것이다.
▶ 히위 사람과 가나안 사람의 모든 성읍 - '히위 사람'(the Hivite)이나
'가나안 사람'(the Canaanit)은 모두 이스라엘 내에
거주하던 이방인들을 가리킨다.
비록 히위 사람들은 기브온 근처까지 내려와 살기도 하였지만
(수 11:19 기브온 거주민들인 히위 족속 외에는 이스라엘 자손과 화친한 도시가 하나도 없었으며 다른 도시들은 다 이스라엘 자손이 싸워 점령하였으니),
이들 이방인들은 주로 이스라엘의 북방 지역,
즉 납달리, 스불론, 잇사갈 지파의 땅에 공동 거주하였다.
따라서 이곳은 후에 '열방의 둘레'라는 뜻의
'갈릴리'로 불려지게 되었다(Pulpit Commentary, Lange).
한편 이들 이방인들 역시도 군역(軍役)을 감당해야 했으므로,
인구 조사에서 제외될 수 없었다.
▶ 브엘세바 - '브엘세바'(Beersheba)는 유다 네게브 지방의 한 성읍이었고,
남쪽 유다의 행정 중심지였다.
(대하 19:4 여호사밧이 예루살렘에 거하다가 다시 나가서 브엘세바에서부터 에브라임 산에 이르기까지 백성 가운데 두루 다니며 그들을 주 곧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니라).
그리고 이곳은 이스라엘 영토의 최남단(最南端)에 위치했다.
그러므로 성경 저자들은 이스라엘의 판도를 서술할 때
흔히 '단에서 브엘세바까지'라고 기술하였다.
(삿 20:1 그때에 온 이스라엘 자손이 나가고 그 회중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길르앗 땅과 더불어 한 사람같이 미스바에서 주께로 함께 모이니라;
삼상 3:20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주의 대언자로 세워진 줄을 알았더라;
삼하 3:10 그 맹세는 곧 왕국을 사울의 집으로부터 옮기고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과 유다 위에 다윗의 왕좌를 세우는 것이라, 하매).
[삼하 24:8] 저희 무리가 국중을 두루 돌아 아홉 달 스무 날만에 예루살렘에 이르러
▶ 아홉 달 스무 날 만에 예루살렘에 이르러 - 이 기간 동안에 펼친
요압의 인구 조사는 완전한 것이 아니었다.
즉 병행 구절인 대상 21:6에 보면,
요압이 '왕의 명령을 밉게 여겨’
레위 지파와 베냐민 지파는 조사하지 않은 사실이 밝혀져 있다.
그리고 대상 27:24에 의하면,
인구 조사를 채 끝내지 못했을 때 하나님의 진노가
이스라엘에게 임한 사실이 밝혀져 있다.
(대상 27:24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수를 세기 시작하였으나 끝내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 일로 인하여 진노가 이스라엘에게 임하였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그 수를 다윗 왕의 연대기 기록에 넣지 아니하였더라)
때문에 여기에 기록된 인구 조사 기간은 매우 긴 기간으로서,
요압은 다윗의 명령을 못 마땅하게 여긴 나머지
최선을 다하지 않고 소홀하게 했던 것으로 보여 진다(Keil, Fay).
[삼하 24:9] 요압이 인구 도수를 왕께 고하니 곧 이스라엘에서 칼을 빼는 담대한 자가 팔십만이요 유다 사람이 오십만이었더라.
▶ 이스라엘에서 칼을 빼는 담대한 자가 팔십만이요 유다 사람이 오십만이었더라 -
이 기록은 병행 구절인 대상 21:5의 기록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즉, 역대기에서는
이스라엘의 병력이 110만이요 유다의 병력은 47만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1) 혹자는 역대기의 기록이 이방인의 숫자를 포함시킨 것이기 때문에
더 많아졌다고 주장한다.(Schmid)
(2) 그리고 또 혹자는 역대기의 수효에는 베냐민 지파와 레위 지파의 수효까지
합산되었기 때문에 더 많아졌다고 주장한다(D. Kimchi).
(3) 그러나 우리는
'그 수효를 다윗 왕의 역대 지략에 기록하지 아니하였더라'(대상 27:24)는
말씀을 통해서 볼 때, 이 같은 차이는 그 수치가 구전(口傳)으로
내려왔기 때문에 생긴 것임을 알 수 있다(Keil, Lange, Smith, The Interpreter's Bible).
따라서 어느 기록이 더 신빙성 있는 것인지 우리는 결정할 수 없다.
그러므로 대략 이 두 기록의 중간쯤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아무튼 이스라엘의 병력이 130만이든 아니면 157만이든,
이 숫자는 출애굽 당시의 군사력(603,550명;민 2:32)에 비해
엄청나게 많은 숫자였다.
그러므로 다윗은 이 보고를 받고
자기의 국력을 확인하고는 크게 만족해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다윗은 어리석게도 이 모든 번영과 강성함이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된 것이며,
또한 많은 대군에도 불구하고 전쟁에서 하나님께서 힘이 되어 주시기 않는다면
패배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
▶ 칼을 빼는 담대한 자 - 모세 율법에 따르면,
(민 1:3 이스라엘 안에서 스무 살이 넘어 싸움에 나갈 수 있는 모든 자를 너와 아론은 그들의 군대대로 계수하고;
26:2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의 총수를 두루 그들의 조상들의 집에 따라 조사하되 이스라엘 안에서 스무 살이 넘어 능히 싸움에 나갈 수 있는 모든 자의 수를 조사하라, 하시니),
이스라엘 백성 중 싸움에 출전할 수 있는 자는 만 20세 이상의 성인 남자였다.
그런데 요압의 인구 조사 결과 이처럼 이스라엘 중에
전투 능력이 있는 장정들은 도합 130만 명이었다(대상 21:5의 기록에는 157만명).
이런 수치에 근거하여 통례상 군복무 가능 인구가
전체 인구의 1/4 가량이라고 본다면,
당시 다윗 통치하의 이스라엘 전체 인구는
500~600만 명가량으로 추산될 수 있다(Keil, F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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