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간의 온역 재앙
성 경: [삼하 24:15-17] 이에 여호와께서 그 아침부터 정하신 때까지 온역을 이스라엘에게 내리시니 단부터 브엘세바까지 백성의 죽은 자가 칠만 인이라
16) 천사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그 손을 들어 멸하려 하더니 여호와께서 이 재앙 내림을 뉘우치사 백성을 멸하는 천사에게 이르시되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 하시니 때에 여호와의 사자가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 곁에 있는지라
17) 다윗이 백성을 치는 천사를 보고 곧 여호와께 아뢰어 가로되 나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삽거니와 이 양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컨대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비의 집을 치소서 하니라.
[삼하 24:15] 이에 여호와께서 그 아침부터 정하신 때까지 온역을 이스라엘에게 내리시니 단부터 브엘세바까지 백성의 죽은 자가 칠만 인이라
▶ 그 아침부터 정하신 때까지 - '그 아침'이란 갓 선지자가
다윗 왕을 방문한 그 날 아침을 가리킨다.
그러나 '정하신 때'는 염병이 시작된 날로부터 3일을 의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16절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재앙의 시간을
단축시키셨음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히브리 원어상 이 말에는 관사가 붙어 있지 않다.
따라서 이때는 하나님께서 본래 작정하셨던
바로 '그 때'(만 3일)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여기서 '정하신 때'(에트 모에드)란
하나님께서 재앙을 맞이하는 다윗의 신앙적 태도를 보시고
그 재앙의 기간을 단축한 그 마지막 때를 의미하는 것이다(Lange).
▶ 단부터 브엘세바까지 - 이스라엘 전역을 통칭하여 가리키는 관용적 표현이다.
(삿 20:1 그때에 온 이스라엘 자손이 나가고 그 회중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길르앗 땅과 더불어 한 사람같이 미스바에서 주께로 함께 모이니라;
삼상 3:20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주의 대언자로 세워진 줄을 알았더라).
▶ 죽은 자가 칠만 인이라 - 짧은 기간에 이토록 많은 자가 죽었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진노의 무서운 실상을 생생히 보여 주는 것이다.
즉 이스라엘의 범죄(1절)에 진노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무서운 온역(전염병) 재앙이 맹렬하고도
급속히 이스라엘 전역을 내리 덮은 것이다.
(1절 다시 주의 분노가 이스라엘을 향해 타오르매 그분께서 그들을 치시려고 다윗을 움직이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수를 세라, 하고 말하게 하시니라)
이로써 다윗과 이스라엘은 큰 병력의 손실을 보고 말았다.
이처럼 하나님은 자기의 힘을 의지하는 자의 그 힘을
현저히 약화시키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여기서 똑똑히 발견하게 된다.
[삼하 24:16] 천사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그 손을 들어 멸하려 하더니 여호와께서 이 재앙 내림을 뉘우치사 백성을 멸하는 천사에게 이르시되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 하시니 때에 여호와의 사자가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 곁에 있는지라
▶ 천사 - 이 천사는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실행하는
'멸하는 천사'를 가리키는데,
(출 12:23 주께서 두루 지나가시며 이집트 사람들을 치실 때에 문의 인방과 양 옆 기둥의 피를 보시면 주께서 그 문을 넘어가시고 파멸시키는 자가 너희 집에 들어가 너희를 치지 못하게 하시리라)
온역 재앙시 이 천사는 다윗에게 가견적(可見的)으로 나타났다.
(17절 다윗이 백성을 친 천사를 보고 주께 아뢰어 이르되, 보소서, 나는 죄를 짓고 악하게 행하였사오나 이 양들 곧 그들은 무슨 일을 하였나이까? 원하건대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 집을 치소서, 하니라).
대상 21:16에서도 다윗이 천지(天地) 사이에 서 있는 천사를 본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대상 21:16 다윗이 눈을 들어 보매 주의 천사가 땅과 하늘 사이에 섰고 칼을 빼어 손에 들고 예루살렘을 향해 내밀었으므로 그때에 다윗과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얼굴을 대고 엎드리니라)
이처럼 천사가 가견적 모습으로 나타나 백성을 쳤다는 사실은
이 온역(溫疫) 재앙이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심판임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다(Keil, Smith).
? 여호와께서 이 재앙 내림을 뉘우치사 - 여기서 '뉘우치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함'은 '뜻을 돌이키다'는 뜻으로서,
(창 6:6 주께서 땅 위에 사람을 만드신 것으로 인해 슬퍼하시며 또 그것으로 인해 마음에 근심하시고;
출 32:14 주께서 자신의 백성에게 내리려 하던 그 재앙에서 뜻을 돌이키시니라;
삿 2:18 주께서 그들을 위해 재판관들을 일으키실 때에 주께서 그 재판관과 함께하셨고 그 재판관이 사는 모든 날 동안 그들을 그들의 원수들의 손에서 건지셨으니 이는 그들을 학대하고 괴롭게 하는 자들로 인하여 그들이 신음하였으므로 주께서 뜻을 돌이키셨기 때문이더라;
시 106:45 그들을 위하여 자신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자신의 풍성한 긍휼에 따라 뜻을 돌이키시며),
이는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뜻을 거두셨다는 의미의 말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돌이키심은
일차적으로는 다윗의 진실한 기도를 들으셨기 때문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다윗과 그 백성을 사랑하신 긍휼과 자비의 성품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말은 결코 하나님의 가변적(可變的) 속성을 반영하는 말은 아니다.
하나님은 그 속성상 전지전능하신 분으로서 불변성(不變性)을 지닌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유로우시며 초월적인 품격을 지니신 분으로서,
당신의 목적을 수행하실 때 인간과 더불어 섭리하시기를 기뻐하신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대응 여부에 따라 그 섭리의 방식을 다양하게 하실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을 의인화(擬人化)시켜
신인동형동성론(神人同形同性論, Anthropomorphism)적으로 묘사할 때,
그것이 마치 하나님의 가변성 품성인양 비쳐질 뿐이다.
▶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 - 여부스인(the Jebusite)은
예루살렘 성의 원주민이다.
(5:6-8 왕과 그의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땅의 거주민들인 여부스 족속에게 나아가매 그들이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눈먼 자와 다리 저는 자를 없애지 아니하면 여기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니라. 그들은 다윗이 여기로 들어오지 못할 줄로 생각하였더라.
7)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시온의 요새를 빼앗았는데 그것이 곧 다윗의 도시니라.
8) 그 날에 다윗이 이르기를, 누구든지 도랑에 올라가 여부스 족속을 치고 다윗의 혼이 미워하는 자 곧 다리 저는 자와 눈먼 자를 치는 자는 우두머리와 대장이 되리라, 하였으므로 그들이 이르기를, 눈먼 자와 다리 저는 자는 집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더라).
그리고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은 모리아 산 곧,
예루살렘 동북편 언덕에 위치해 있었다.
(대하 3:1 그때에 솔로몬이 예루살렘의 모리아 산에 주의 집을 건축하기 시작하였는데 이곳은 전에 주께서 그의 아버지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족속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다윗이 예비한 곳이더라).
그런데 타작 마당은 추수한 곡물의 겨나 지푸라기 등을
바람에 날려 보내기 위해 일반적으로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Smith).
결국 이곳은 얼마 후 솔로몬 성전의 터가 된다.
(대하 3:1 그때에 솔로몬이 예루살렘의 모리아 산에 주의 집을 건축하기 시작하였는데 이곳은 전에 주께서 그의 아버지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족속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다윗이 예비한 곳이더라).
한편 역대상에는 '아라우나'의 이름이 '오르난'으로 기록되어 있다.
(대상 21:15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멸하시려고 한 천사를 그곳에 보내셨는데 그가 멸할 때에 주께서 보시고 그 재앙에서 뜻을 돌이키사 백성을 멸한 천사에게 이르시되, 족하다. 이제 네 손을 멈추라, 하시거늘 그때에 주의 천사가 여부스 족속 오르난의 타작마당 옆에 섰더라,
18 그때에 주의 천사가 갓에게 명령하여 다윗에게 이르기를 다윗은 올라가 여부스 족속 오르난의 타작마당에서 주께 제단을 쌓으라고 하시므로,
20-23 이제 오르난이 밀을 타작하다가 몸을 돌이켜서 천사를 보고 자기와 함께한 네 아들과 함께 숨었더라.
21) 다윗이 오르난에게 나아가매 오르난이 바라보다가 다윗을 보고 타작마당에서 나아가 얼굴을 땅에 대고 다윗에게 절하니라.
22) 그때에 다윗이 오르난에게 이르되, 이 타작마당이 있는 곳을 내게 넘기라. 내가 그 안에서 주께 제단을 쌓으리니 너는 충분한 값을 받고 그것을 내게 넘길지니라. 그리하면 재앙이 백성에게서 떠나고 그치리라, 하매
23) 오르난이 다윗에게 이르되, 왕은 그것을 취하소서. 내 주 왕은 왕의 눈에 좋은 것을 행하소서. 보소서, 내가 또한 소들은 번제 헌물로 타작하는 기구는 나무로 밀은 음식 헌물로 삼으시도록 왕에게 드리나니 곧 내가 그것을 다 드리나이다, 하매).
여기서 '아라우나'는 여부스식 표기이며,
'오르난'은 히브리식 표기이다(Keil, Ewald, Lange).
그런데 70인역(LXX)에는 일괄적으로 '오르나'로 표기되어 있다.
[삼하 24:17] 다윗이 백성을 치는 천사를 보고 곧 여호와께 아뢰어 가로되 나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삽거니와 이 양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컨대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비의 집을 치소서 하니라.
▶ 나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삽거니와 이 양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컨대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비의 집을 치소서 - 다윗의 진정한 회개의 기도이다.
히브리어에서 인칭은 동사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 보편적인 형태인데,
여기서 다윗은 인칭 대명사 '아노키'를 두번 반복하여 사용함으로써
자신이 범죄의 주범임을 거듭 강조하였다.
즉 다윗은 여기서 오직 자기만이 형벌을 받아 마땅한 자라고 고백하면서,
일체 다른 사람들에게 죄를 전가시키지 않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진정한 회개의 참 모습을 볼 수 있다.
즉 참된 회개란,
(1) 자신의 죄악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차원을 넘어,
그 범죄로 말미암은 결과에 대해서까지 달게 책임지려는 마음 자세를 갖는 것이며,
(2) 타인의 허물과 죄악까지도 자신의 것으로 여기고
통회하는, 긍휼과 자비의 마음 자세를 갖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한편, 병행 구절인 대상 21:16을 보면,
다윗은 '굵은 베를 입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기도하였다.
이는 다윗이 일국의 왕이라는 처지에 결코 연연치 않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최대한의 겸손과 회개의 모습을 보여드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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