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engol 2

그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로다

거듭난 삶 2022. 5. 7.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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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야 왕국의 영광과 환희 2

 

성 경: [35:8-10] 거기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바 되리니 깨끗지 못한 자는 지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된 것이라 우매한 행인은 그 길을 범치 못할 것이며

9) 거기는 사자가 없고 사나운 짐승이 그리로 올라가지 아니하므로 그것을 만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얻은 자만 그리로 행할 것이며

10) 여호와의 속량함을 얻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로다.

 

 

 

[35:8] 거기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바 되리니 깨끗지 못한 자는 지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된 것이라 우매한 행인은 그 길을 범치 못할 것이며

 

거기 대로가 있어 - 8-10절은 하나님께 구속받은 자들이

'시온으로 돌아오는'(10)대로에 대해서 말한다.

 

본디 길을 찾을 수 있는 '공공도로'(마슬룰)가 놓여 진다는 것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이적적인 일인데,

이 일은 사막이

낙원으로 변함과 동시에 이루어질 것이다.

 

본문은 '통행 가능과 불가능'이란 측면에서 34:10과 예리한 대조를 이룬다.

 

(34:10 또 그것이 밤에나 낮에나 꺼지지 아니하고 그것의 연기는 영원히 올라가리니 대대로 그것이 피폐하게 되어 그것을 지나가는 자가 영원무궁토록 없으리라)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바 되리니 깨끗지 못한 자는 지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된 것이라 -

 

'그 길''거룩한 길'인 것은

그것이 여호와의 거룩한 목적을 위해서 사용되어질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그 길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거룩함을 덧입는 성도들이라는 데 기인한 것이다.

 

그 길은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해서만 있게 될 것이다.

 

그럴진데 '깨끗하지 못한 자' 곧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과 또 이스라엘 자녀 중에서 구속받지 못한 자들은 그 길을 지나지 못한다.

 

 

우매한 행인은 그 길을 범치 못할 것이며 -

본문은 전혀 다른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1) 그 길이 너무도 정확하기 때문에

심지어 '바보'(에윌림)라도

실수함 없이 갈 수 있다(KJV, E. Young, Alexander, Delizsch, Leupold).

 

(2) 하나님의 진리를 고의적으로 거부하는 사람(바보)

그 길을 결코 가지 못한다.

이 경우, 그 의미는 '깨끗하지 못한 자는 지나지 못한다'는 말과 같게 될 것이다(Oswalt).

 

 

 

[35:9-10] 거기는 사자가 없고 사나운 짐승이 그리로 올라가지 아니하므로 그것을 만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얻은 자만 그리로 행할 것이며

10) 여호와의 속량함을 얻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로다.

 

여호와의 속량함을 얻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

 

여호와의 '속량함을 얻은 자들' (페두예)

전절의 '구속함을 얻은 자'(게울림)에 평행하는 말로서 동의어이다.

 

'되사다', '구속하다', '친족의 권리를 행사하다'는 뜻을 가진 '가알' 동사는

법정 용어로서 친족에 대해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의무를 이행하는 일과 연관된 말이다.

 

(25:25 만일 네 형제가 가난하게 되어 자기 소유 중 얼마를 팔았는데 그의 친족이 와서 그것을 무르려거든 그는 자기 형제가 판 것을 무를 것이요,

 

32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위 사람들의 도시들과 그들이 소유한 도시들의 집들은 레위 사람들이 언제든지 무를 수 있느니라,

 

48 팔린 뒤에 그를 다시 속량할 수 있나니 그의 형제들 가운데 하나가 그를 속량하거나;

 

35:19 피를 복수하는 자가 그 살인자를 직접 죽일지니 그가 그를 만나거든 죽일지니라;

 

4:4 내가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거주민들 앞에서 그것을 사라고 말하여 네게 알려 주려고 생각하였노라. 네가 그것을 무르려면 무르려니와 네가 무르지 아니하려거든 내게 고하여 내가 알게 하라. 너 외에는 그것을 무를 자가 없으며 너 다음은 나니라, 하매 그가 이르되, 내가 그것을 무르리라, 하니,

 

6 그 친족이 이르되, 나는 내 상속 재산에 손해가 있을까 염려하여 나를 위해 그것을 무를 수 없나니 나의 무를 권리를 네가 취하라. 나는 그것을 무를 수 없노라, 하니라).

 

이 말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의 학정 밑에서

구속하신 행위와 관련하여 자신을 '고엘'로서 소개하신 이래,

깊은 종교적 의미를 획득하게 되었다.

 

(43:1 그러나, 오 야곱아, 너를 창조한 주가 이제 이같이 말하노라. 오 이스라엘아, 너를 지은 이가 말하노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고 내가 너를 네 이름으로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니라;

 

48:20 너희는 바빌론에서 나와 갈대아 사람들로부터 피하고 노래 소리로 밝히 알려 이 일을 말해 주며 땅 끝에까지 말하여 이르기를, 주께서 자신의 종 야곱을 구속하셨다, 하라;

 

6:6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주니라. 내가 이집트 사람들의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내며 내가 그들의 속박에서 너희를 자유롭게 하고 내가 뻗은 팔과 큰 심판들로 너희를 구속하리라;

 

15:13 주께서 구속하신 백성을 주께서 주의 긍휼로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안내하사 주의 거룩한 처소에 이르게 하셨나이다;

 

74:2 주께서 옛적에 사신 주의 회중과 주께서 구속하신 주의 상속 막대기를 기억하시오며 주께서 거하시던 이 시온 산도 기억하소서;

 

106:10 그들을 미워한 자의 손에서 그들을 구원하시며 원수의 손에서 그들을 구속하셨고).

 

'구속하다'(가알)는 낱말은

바벨론에서의 귀환이란느 소망스러운 주제를 다루고 있는

본서의 후반부에서 집중적으로 나온다.

 

(41:14 너 벌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주 네 구속자,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가 말하노라;

 

43:14 너희의 구속자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 곧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너희를 위해 바빌론에 사람을 보내어 배에서 부르짖는 그들의 귀족들과 갈대아 사람들을 끌어내렸느니라;

 

60:16 네가 또한 이방인들의 젖을 빨며 왕들의 젖가슴을 빨고 또 나 주가 네 구원자요, 네 구속자요, 야곱의 능하신 이인 줄 알리라;

 

63:16 틀림없이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니이다. 비록 아브라함은 우리를 알지 못하고 이스라엘은 우리를 인정하지 아니한다 할지라도, 오 주여,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요, 우리의 구속자시니 주의 이름은 영원부터 있나이다).

 

'속량하다', '몸값을 지불하고 풀어주다'는 뜻을 가진 '파다' 동사 역시

초태생의 구별과 연관된 법정 용어였으나,

 

(13:13 너는 나귀의 첫 새끼는 다 어린양으로 대속할 것이요, 그것을 대속하지 아니하려면 그것의 목을 꺾을 것이며 네 자손들 가운데 사람에게서 처음 난 자는 다 대속할지니라,

 

15 그때에 파라오가 우리를 가게 하려 하지 아니하매 주께서 이집트 땅의 처음 난 것은 사람에게서 처음 난 자든지 짐승에게서 처음 난 것이든지 다 죽이셨으므로 수컷으로서 태를 여는 것은 다 내가 주께 희생물로 드리되 내 자손들 가운데 처음 난 자는 다 대속하나니),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해방시키신

하나님의 행위를 묘사하는 말로 전용(轉用)되었다.

 

(특히 신 7:8 다만 주께서 너희를 사랑하셨으므로 또 너희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시므로 주께서 자신의 강한 손으로 너희를 데리고 나오시고 너희를 노예들의 집에서 이집트 왕 파라오의 손에서 구속하셨나니;

 

9:26 그런 까닭에 주께 기도하여 이르되, 오 주 하나님이여, 주께서 주의 크신 위엄으로 구속하시고 강한 손으로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오신 주의 백성 곧 주의 상속 백성을 멸하지 마옵소서).

 

'구속하다''속량하다', 이 두 말은

31:11에서도 같이 나오는데

거기에서도 시온의 주제가 '속량받고 구속함을 얻는 자들'

결합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J.Watts).

 

(31:12 그러므로 그들이 와서 시온의 높은 곳에서 노래하고 밀과 포도즙과 기름과 양 떼와 소 떼의 어린것들로 인하여 주의 선하심 속으로 함께 흘러가리라. 또한 그들의 혼은 물 댄 동산 같으리니 그들이 다시는 슬퍼하지 아니하리로다, 할지어다)

 

 

시온에 이르러 - 하나님의 성이 있는 시온은

이 대로의 최종 도착지일 뿐 아니라 모든 성도의 삶의 목적이기도 하다.

그곳에만 하나님의 백성이 갈망하는

참된 안식이 있으며 사라지지 않는 기쁨이 있다.

 

(Gill)은 말한다 :

 

"묘사된 '대로''밑에 있는 시온' 즉 교회로 향할 뿐 아니라

'위에 있는 시온' 즉 천국으로도 향한다.

 

이 길을 걷는 모든 구속된 성도는 그곳에 도달할 것이다.

죽음의 순간에 그들의 영혼은 그 주인인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그리고 부활의 순간에 그들의 육체는 흙무덤에서 돌아와

마침내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마주서게 될 것이다."

 

 

그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 이는 그 얼굴이 항상 희락이 넘칠 것을 가리키니,

즉 시온에 이르는 성도의 마음이 이와 같을 것을 일컫는 말이다.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로다 -

 

현대의 대부분의 학자들은 본문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

 

'기쁨과 즐거움이 그들을 따라잡고, 슬픔과 탄식이 달아날 것이다'.

 

(원문, 28:2 네가 주 네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너를 따라잡으리니;

 

23:6 내 평생에 선하심과 긍휼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주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그럴진데 시온의 백성들,

곧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속량 받고 구속함을 입은 성도들의 삶은 얼마나 복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