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기야의 감사 노래 3
성 경: [사 38:17-22]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주께서 나의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나의 모든 죄는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
18) 음부가 주께 사례하지 못하며 사망이 주를 찬양하지 못하며 구덩이에 들어간 자가 주의 신실을 바라지 못하되
19) 오직 산 자 곧 산 자는 오늘날 내가 하는 것과 같이 주께 감사하며 주의 신실을 아비가 그 자녀에게 알게 하리이다
20)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니 우리가 종신토록 여호와의 전에서 수금으로 나의 노래를 노래하리로다
21) 이사야는 이르기를 한 뭉치 무화과를 취하여 종처에 붙이면 왕이 나으리라 하였었고
22) 히스기야도 말하기를 내가 여호와의 전에 올라갈 징조가 무엇이뇨 하였었더라.
[사 38:17]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주께서 나의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나의 모든 죄는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
▶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
죽음에서 벗어난 후,
히스기야는 자신의 이전 고통을 돌아보면서
그것이 자기에게 가져다준 영적인 유익을 노래한다.
히스기야는 그가 주께로부터 받은 생명과 건강의 축복을
'평안'(혹은 '온전함', ,솰롬)이란 한 단어로 요약하여 말한다.
진실로 깨닫는 자에게는 고통조차도 그를 연단하고,
완성시키려는 하나님의 은혜가 된다.
* 참조 ; (롬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 곧 그분의 목적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 주께서 나의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나의 모든 죄는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 -
'사랑하사'에 해당하는 '하솨크'는
내적으로 확고하게 결합된 사랑을 의미한다.
또 '멸망'의 히브리어 '벧리'는 '허무', '부정'을 뜻하는 말이나,
여기서는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으로부터 떠나
멸망의 형벌을 받는다'는 의미로 취한다.
그리고 '등 뒤에 던지다'라는 말은
'주께서 사라지게 하다', '망각하다',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 참조 : (느 9:26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순종하지 아니하고 주를 거역하며 주의 율법을 등 뒤에 두고 그들을 주께로 돌아오게 하려고 그들에게 증언한 주의 대언자들을 죽여 큰 격노를 일으켰나이다).
반대로 주께서 무언가를 기억하실 때는
그 대상을 그의 얼굴 앞에, 눈앞에 놓으신다고 표현된다.
(시 90:8 주께서 우리의 불법들을 주 앞에 두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들을 주의 얼굴빛 가운데 두셨나니;
109:15 그것들이 계속해서 주 앞에 있게 하사 친히 그들에 대한 기억을 땅에서 끊으소서;
렘 16:17 내 눈이 그들의 모든 길 위에 있으므로 그들이 내 얼굴을 떠나 숨지 못하며 그들의 불법이 내 눈에 숨겨지지 못하느니라;
호 7:2 내가 그들의 사악함을 모두 기억하고 있음을 그들이 마음속으로 깊이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 이제 그들의 행위들이 그들을 에워쌌으며 그것들이 내 얼굴 앞에 있도다).
결국 하반절은 히스기야가 자신에게 선고된 죽음의 재난을
그가 지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로서 이해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Alexander)
* 참조 : (시 103:3-4 그분께서 네 모든 불법을 용서하시고 네 모든 질병을 고치시며
4) 네 생명을 멸망에서 구속하시고 인자하심과 친절한 긍휼로 네게 관을 씌우시며).
[사 38:18] 음부가 주께 사례하지 못하며 사망이 주를 찬양하지 못하며 구덩이에 들어간 자가 주의 신실을 바라지 못하되 -
본절과 19절은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는 가능성과 관련하여,
'죽음'과 '생명'을 대조시킨다.
'죽은 자는 하나님을 찬미하지 못한다'는
구약적 인식에 관하여는
(욥 10:21-22 내가 돌아오지 못할 곳 즉 어둠과 사망의 그늘진 땅으로 가기 전에 그리하소서.
22) 어둠의 땅은 어둠 그 자체와 같으며 사망의 그늘진 땅은 어떤 질서도 없고 빛도 어둠 같으니이다, 하니라;
시 6:5 죽음 속에서는 주를 기억할 수 없사오니 누가 무덤 속에서 주께 감사하리이까?;
30:9 내가 구덩이로 내려갈 때에 내 피에 무슨 유익이 있으리이까? 흙이 주를 찬양하겠나이까? 그것이 주의 진리를 밝히 드러내겠나이까?;
88:10-12 주께서 죽은 자들에게 이적들을 보이시겠나이까? 죽은 자들이 일어나 주를 찬양하리이까? 셀라.
11) 주의 인자하심이 무덤 속에서 밝히 드러나리이까? 주의 신실하심이 파멸 속에서 밝히 드러나리이까?
12) 주의 이적들이 어둠 속에서 알려지리이까? 주의 의가 망각의 땅에서 알려지리이까?;
115:17 죽은 자들은 주를 찬양하지 못하며 적막한 곳으로 내려가는 자도 다 그러하도다).
특히 본절과 관련하여,
사후(死後) 세계에 대한 이러한 비관적인 생각은
히스기야가 죽음을 하나님의 진노와 형벌의 결과로
파악하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Calvin).
[사 38:19] 오직 산 자 곧 산 자는 오늘날 내가 하는 것과 같이 주께 감사하며 주의 신실을 아비가 그 자녀에게 알게 하리이다 -
'산 자 곧 산 자'(하하)는 강의적 반복이다(11절 참조).
죽음을 선고받은 자의 슬픔의 '어제'와,
죽음에서 벗어난 자 곧 산 자의 찬미의 '오늘'이 대조되고 있다(Lange).
'주의 신실을 아비가 자녀에게 알게 한다'는 말은
일반적인 의미로 이해된다.
(출 12:24-27 너희는 이것을 너와 네 아들들에게 규례로 삼아 영원토록 지킬 것이요,
25) 이후에 주께서 약속하신 대로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실 땅에 너희가 들어갈 때에 이 예식을 지킬 것이니라.
26) 이후에 너희 자녀들이 너희에게 이르기를, 이 예식이 무엇을 뜻하나이까? 하면
27) 너희는 이르기를, 그것은 주의 유월절 희생물이니라. 그분께서 이집트 사람들을 치실 때에 이집트에 있던 이스라엘 자손의 집을 넘어가사 우리의 집을 건져 주셨느니라, 하라, 하매 백성이 머리 숙여 경배하니라;
신 6:7 그것들을 네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네가 네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걸어갈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그것들을 말할 것이며).
왜냐하면 이 당시 히스기야는 아직 자녀가 없었기 때문이다(Alexander).
[사 38:20]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니 우리가 종신토록 여호와의 전에서 수금으로 나의 노래를 노래하리로다 -
히스기야의 시편은
그가 자신의 동료 예배자들에게
자기와 더불어 찬미할 것을 권유하는 말로 끝난다.
찬미의 주제는 '여호와의 구원'이며,
그 방법은 '악기를 사용하여 노래하는 것'이며,
그 장소는 '여호와의 전'이다.
아마도 히스기야는 성전에서 드리는 공적인 예배를 염두에 둔 듯하다.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니'는
'여호와'라는 고유 명사와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라는 부정사로 이루어진
불완전한 문장이다.
가장 무난한 독법은, 부정사에 임박한 미래적 의미가 내포된 것으로 생각하고
본문을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실 것이다'로 읽는 것이다(Oswalt).
[사 38:21] 이사야는 이르기를 한 뭉치 무화과를 취하여 종처에 붙이면 왕이 나으리라 하였었고 -
앞에서 언급하지 못했던 사항들을 이사야 선지자는 부언(附言)하니,
그중 첫째가 치료약에 관한 것이다.
선지자는 왕에게 무화과 열매를 찧어 만든 찜질약을
종처 부위에 바르도록 처방하였다.
무화과나무는, 델리취(Delitzsch)에 의하면,
종기를 빨리 곪게 하여 고름을 터뜨리는 효능이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무화과나무는 오히려 종기에 해로울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Grotius).
이들의 말에 따르면,
무화과나무가 상처에 해로운데도 붙이게 한 것은,
히스기야의 질병이 오직 여호와의 권능에 의해서만
기적적으로 치유될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여호와의 치료를 매개 물질 없이 이루어지는
초자연적인 역사에만 국한시킬 필요는 없다.
모든 치유 행위는 여호와께 속한다.
그는 때때로 병을 직접 치유하시나,
또 다른 경우에는 매개 물질을 이용하여 간접적으로 치유하기도 한다(Oswalt).
[사 38:22] 히스기야도 말하기를 내가 여호와의 전에 올라갈 징조가 무엇이뇨 하였었더라 -
선지자의 처방 다음에 징조를 구하는 히스기야의 요청이 이어진다.
(왕하 20:7-8 이사야가 이르되, 무화과 한 덩이를 가져오라, 하매 그들이 그것을 가져다가 종기에 놓으니 그가 회복되니라.
8)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주께서 나를 낫게 하사 내가 셋째 날에 주의 집에 올라가게 하실 표적이 무엇이리이까? 하니).
'여호와의 전에 올라간다'는 말은,
예배드리기 위하여 혹은 여호와를 찬미하기 위해 성전에 올라간다는 말이다.
이사야는 히스기야에게
'네가 삼일 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갈 것'이라고 약속하였다.
(왕하 20:5 돌아가서 내 백성의 대장 히스기야에게 말하기를, 주 곧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보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셋째 날에 주의 집에 올라가리라).
이에 히스기야는 그 약속을 확증할 수 있는 징조를 요구했으며,
여호와께서는
해의 그림자가 뒤로 10도 물러가는 이적으로 응답해 주신 것이다.
(8절 보라, 내가 아하스의 해시계에서 내려간 각도들의 그림자를 다시 뒤로 십 도 물러가게 하리라, 하라, 하시니 이에 해가 자기가 내려간 각도대로 십 도 만큼 되돌아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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