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engol 2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거듭난 삶 2022. 7. 4.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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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시와 외면을 당하는 메시야

 

성 경: [53:1-3]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53:1]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 '우리'에 대해서는

 

(1) '선지자 자신'(Calvin, Oehler, Stier),

(2) 52:15'열방들'(혹은 이방인들, G.W. Grogan),

(3) '이스라엘 백성, 특히 선지자를 포함한

이스라엘의 경건한 무리들'(Delitzsch, Leupold) 등으로 보는 견해들이 있으나

 

마지막 견해가 가장 나을 것으로 본다.

왜냐하면 이들 '우리'는 수난받는 메시야에 대해

완전히 오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표하며,

또 저들의 고백은 거의 회개에 가까운데,

이것은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 이후 새로운 깨달음을 믿은

유대인들의 심리 상태와 거의 유사하기 때문이다.

 

 

 

[53: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주 앞에서 - 여기 ''는 하나님으로 보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

''의 삶의 과정은

인간들 앞에서는 하찮은 것이었으나 여호와 하나님의

보호하심 속에 있었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벧전 2:4).

 

 

자라나기를(야알) - 문자적인 뜻은 '그가 자라나셨다',

과거 시제(완료형)로 되어 있다.

 

본 동사의 시제를 따른다면 본절이 나타내는 인물은

본서 저자 이사야의 과거 시대에서 찾아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하다.

 

모세, , 예레미야 등을 거론할 수 있지만

본장이 묘사하는 종과는 비교되 될 수 없다.

 

결국 이 종은 메시야이신 예수를 가리킴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저자가 과거로 시제를 적은 이유는

본서 저자가 미래를 내다볼 때

자신이 예언하는 메시지의 성취를 너무나도 명백히 보고 있었으므로

자신에게는 그 일이 이미 발생한 것처럼 확신있게 적었던 것이다.

 

바로 이것을 예언적 기술법 중의 하나인 '예언적 과거'라 부른다.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11:1)

연상케 하는 구절이며, 특히 '마른 땅'이란

구세주께서 이 땅에 오실 때 처해 있던 비천한 상황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53:3]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본절에서 저자는 ''의 비하(卑下)를 좀 더 상세히 묘사한다.

 

멸시를 받아서 - 여기에는 거절과 배척의 의미가 들어 있다.

그가 고난의 걸음이 시작하자 사람들은 그를 거절하고 배척 했다.

고난의 ''에 대한 태도 문제에 있어서

중립은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인간은 그의 구원을 즐거워하고 그를 높이거나,

아니면 그를 배척하고 멸시하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그에 대한 무관심 역시 그에 대한 적의를 품고 있는 것이다.

 

 

질고를 아는 - 문자적인 뜻은 '병을 잘 아는'이다.

그러나 이 구절을 그가 육체적으로 허약하여

이런 저런 질병에 계속 걸렸다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를 묘사하는 비유적 술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미 육체적 질병을 비유로 해서

유다의 죄악 상태를 드러낸 바 있다.

 

(1:5-6 너희가 어찌하여 더 많이 맞으려 하느냐? 너희가 더욱더 반역하려 하는도다.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기진하였으며

6) 발바닥에서부터 머리끝까지 그 안에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멍든 것과 곪은 종기뿐이거늘 그것들을 꿰매고 싸매고 향유를 발라 아픔을 달래지 못하였도다).

 

따라서 성취될 구원은 궁극적으로 죄로부터의 구원인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