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흘린 발자취

A.D 600-1300년의 교회사 3

거듭난 삶 2023. 2. 21.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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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 600-1300년의 교회사 3

 

11. 여러 세기에 걸쳐 신약성경의 교훈 안에 들어온 많은 새로운 변화 중

그 몇 가지를 살펴보자.

 

아마 이러한 변화는 언제나 정식으로 공표되여 실시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이러한 변화 중 어떠한 것은 그 변화의 시점을 정확히 밝히기가 불가능할 것도 있다. 다시 말하자면 이는 가톨릭의 체계 전체와 비슷한 것으로써

갑작스런 변화라기 보다는 오랜기간에 걸쳐서

점진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옛날에는 어땠는지 몰라도 현재의 가톨릭(천주교)는 이미 신약의 교회가 아니다.

 

그것은 이미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순결한 기관이 아니라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새 법을 만들어 성경을 변경하기도 하고

삭제시키기도 하는 입법기관이 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

 

 

12. 이 당시 그들이 만든 새로운 교리 또는 공포한 법령 중 하나는

교회 밖에서는 구원이 없다는 것이었는데,

(물론 가톨릭은 그들 외에는 다른 교회가 없다고 선언하였기 때문에

여기서 교회란 가톨릭 교회를 말한다)

 

이는 곧 카톨릭 교인이 되든지 그렇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하든지,

두 가지 외에 다른 선택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13. 면죄부의 교리와 면죄부의 매매는

신약성경의 가르침에서 벗어난 또 하나의 전혀 새롭고,

카톨릭 내의 중요한 교리가 되었다.

 

그러나 이 새로운 가르침이 실제로 효력을 갖기 위해서는

아주 다른 또 하나의 새로운 가르침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였는데,

즉 어마어마한 신용 대부 증서를 어떻게 해서든지 만들어야 했던 것이다.

이것은 천국에서의 신용 대부증서이면서도

이 지상에서도 통용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그리하여 구원의 수단으로, 또는 필요할 때

신용 증서를 통해 대출될 수 있는 보충의 방법으로

선행에 의한 구원의 교리라 가르쳐졌다.

 

천국의 장부에 계산될 최초의 큰 액수는 물론 주 예수님의 선하신 공로였다.

그는 아무런 죄악이 없었으므로 그 자신을 위하여는 선행이 요구되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주님의 선행은 모두 이 증서에 간주될 수 있는 것이며

죄인을 위하여 자산이 되었다.

 

그리고 이에 가산하여 사도들이 행한 선행의 잔여액 전부와

(각자 자신들을 위하여 필요했던 것에 계산하여)

그 후에 생존한 모든 착한 사람들의 선행을 그 신용 대부 증서에 가산하여

그것을 굉장히 거대한 것으로 만들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 막대한 액수 전부가 교회에 위임되었고(그 유일한 교회에)

교회는 어떤 가련한 죄인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에는

그것을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으며

또한 천국으로부터 신용 대부가 필요하였던 각 사람들을 위하여

적당한 액수를 지불케 할 권한이 교회에 허용되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면죄부의 판매가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위하여 또는 그들의 친구를 위하여서도

그것을 살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 가격은 이미 범한 죄와 장차 범죄할지도 모르는 죄에

비례하여 각기 달랐으며 가톨릭교인 자신들이 이것을 인정하게 되자

때로는 지나치게 극단으로 흘러가게 되었던 것이다.

 

어떤 역사 서적과 백과사전에는 면죄부를 팔기 위하여

여러 가지 죄과에 가격이 붙기도 했다고 한다.

 

 

14. 면죄부 판매와 면죄부 교리가 완전한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다시 또 하나의 새로운 교리가 필요하게 되었던 것이다.

아니 절대적으로 필요하였다.

 

그 새로운 교리란 연옥”, 곧 지옥과 천국의 중간 지대라 불리는 곳인데,

모든 사람은 지옥에 빠지게 할 정도는 아닌,

작은 모든 죄를 깨끗이 씻어 버릴 때까지

이곳에 머물러 있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성도라 할지라도 연옥을 통과해야만 하고 불로써 정결함을 입을 때까지

그곳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만약 신용 대부 증서의 도움을 얻으면 괜찮겠지만,

그것은 다만 살아있는 사람들이 기도와 면죄부에

돈을 지불함으로써만 얻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면죄부의 판매가 시작되었고,

이렇게 성경에서 떨어져 나간 교회는 필연적으로

다른 또 하나의 분리를 가져오게 되었다.

 

 

15. 여기서 로마 가톨릭과 희랍 정교회의 차이점을

열거하여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국적으로 보면 희랍 정교회는 주로

희랍, 러시아, 불가리아, 세로비아 등을 포함한

슬라브 족속들이며 헬라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로마 가톨릭은 주로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남부 및 중앙아메리카, 멕시코 등을 포함하는

라틴 족속들이었다.

 

 

희랍 정교회는 침례를 받을 때

적수례(물을 뿌림)와 관수례물을 부음)를 거부하였으나,

로마 가톨릭은 성경의 근본 방법인 침수례를

변경할 권리를 주장하면서 전적으로 적수례(물 뿌림)를 행하게 되었다.

 

 

희랍정교회는 유아 성찬을 계속 실시하였고,

로마 가톨릭은 처음에는 그것을 구원 얻는 하나의 방법이라 가르쳤으나

결국 그것을 단념하고 말았다.

 

 

희랍정교회는 주의 만찬을 베풀 때에 평교인에게도 빵과 포도주를 주었으나

로마 가톨릭은 평교인에게는 빵을 주었고 포도주는 신부들이 마시었다.

 

 

희랍정교회는 사제들의 결혼을 허용하였으나

로마 가톨릭은 신부들의 결혼을 금지하였다.

 

 

희랍정교회는 교황의 무오설을 부인하였고

로마 가톨릭은 그 교리를 받아들여 더욱 강조하였다.

 

이상 말한 것은 적어도 이 두 파 사이에 서로 상반되는 중요한 점들이며,

이외의 다른 점에 있어서는

희랍 정교회와 로마 가톨릭은 같은 입장을 보인다.

 

 

16. 이제 강의는 바로 9세기까지의 교회사를 마치고 10세기의 교회사를 살펴보자.

도표를 보아주기 바란다.

 

 

바로 이 시기에 로마 가톨릭과 희랍정교회의 사이에 분열이 생겼다.

우리는 여러 세기가 지남에 따라

곧 다른 새로운 법과 교리가 등장하는 것과

또한 말할 수 없이 잔악했던 핍박들이 있었음을 볼 수 있을 있을 것이다.

(Schaff-Herzogg 백과사전, 11p,901).

 

 

17. 다시 잔악하게 박해받았던 사람들에 대해서 언급하고자 한다.

만약 암흑시대라 불리었던 1200년 동안에 5,000만 명의 사람들이

박해를 받아 죽었다고 한다면(역사는 확실히 이렇게 가르치고 있다)

 

이는 100년마다 평균 400만 명 이상의 비율로 죽은 셈인데,

이는 인간의 머리로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된다.

 

전에도 말한바와 같이 이 잔악한 핍박의 쇠망치는 순교의 피바다를 이루면서

폴리시안, 아놀디스트, 헨리시안, 페트로브루시안, 알비젠시스, 월덴스,

그리고 아나 밥티스트(재침례교도)의 사람들에게 가했졌다.

 

물론 박해의 잔악한 정도는 일정하지 않았으나,

우리는 이 이야기의 섬뜩한 부분은 뛰어넘기로 한다.

 

 

18. 물론 계속적인 것도 아니요 시종일관한 것도 아니지만,

이제 장구한 전 기독교 연합회의 시대가 출현하게 되었다.

 

오랜 세월에 걸쳐 많은 종교회의(공회)가 있었으나

이것은 전 교회 연합회의도 아니었고 제국 전역에 미친 것도 아니었다.

 

거의 모든 종교회의는 거의 전부가 어떤 국가의 법률이나 종교적(?) 법령을

제정 또는 수정하기 위한 입법기관이 되었던 것이며,

그 모든 것은 입법 과정에 있어서나 법 자체에 있어서

신약성경의 가르침과는 전혀 상반되는 것이었다.

 

곧 이교도의 정부와 교회가 결탁하여 국가교회화 한 것이었다.

따라서 교회는 성경적으로 되어가는 것과는 반대로

한층 더 이교화 되어 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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