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흘린 발자취

A.D 1400~1600년의 교회사

거듭난 삶 2023. 2. 23.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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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 A.D 1400~1600년의 교회사

 

 

 

1. 다음의 3세기 동안 즉 15, 16,17세기는

세계 역사상 가장 다사다난(多事多難)하였던 시기였으며

특히 교회 역사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였다.

 

가톨릭 교회(로마와 희랍파 둘 다)의 내부에서는

일종의 종교개혁을 모색하는

혁명이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었다.

 

오랜 세월을 두고 잠잠하고 있었던 정의의 양심들은 드디어 각성되었고

순수한 종교개혁의 요구는 바로 13세기에 또는 그보다 조금 먼저부터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역사는 그것을 분명하게 증명하고 있다.

 

 

2. 조금 전 시대로 돌아가 보기로 하자.

신약성경의 가르침에서 아주 분리되었으며 기이하고 잔악한 많은 법령과

말할 수 없이 부패된 도덕적 상태, 그리고 그 손과 옷이 수백만의 순교자들의

뜨거운 피로써 물들어 있었던 가톨릭은 많은 가톨릭 신자 자신들의 증오와

심각한 배척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조직이나 법령 그리고 교리나 의식을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었는데,

이러한 가톨릭 안에서도 가장 용감하고 뛰어나고 영적인 몇몇 신부들과 지도자들은

한 사람씩 가톨릭의 가장 그릇된 교리와 법령을 개혁하고 돌이켜 최소한

신약의 뚜렷한 가르침에 접근시켜 보려고 시도했던 열렬한 사람들이 있었다.

 

몇몇 저명한 실례를 들어 보기로 하자.

어느 곳에서 어느 정도의 그리고 개혁의 봉화가 일어났는가 하는 것에 대하여

주의할 뿐만 아니라 또한 그 개혁의 지도자들에게도 주의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한 지도자들은 모두 가톨릭의 사제들이나 또는 어떤 종류의

직분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악한 세대 속에서도 약간의 선()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당시에는 신약의 교리가 곡해되지 아니하고

그 본래의 순결함을 보존되고 있었던 것은 거의 하나도 없었다.

 

이제는 몇몇 개혁자들과 그들이 활동하였던 곳에 대하여 주의하여 보기로 하자.

 

 

3. 주목할 만한 것은 이 위대한 종교개혁 시대에 앞선 여러 세기 동안에도

가톨릭의 이단적인 교리에 항거했던 수많은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열렬히 성경이 말씀하시는 대로 실행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들은 참된 믿음과 신앙을 지키기 위해 많은 피를 흘렸다.

 

이제 우리는 이 유명한 시대 즉 종교개혁에 대하여 간단하게 살펴보겠다.

 

 

4. 1320년에서 1384년까지 영국에서는

온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킬 만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존 위클리프"였다.

그는 가톨릭 교회의 내부에서 참된 개혁을 단행하여 보려는 용기를 가지고 있었던

용감한 사람들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는 종교개혁의 새벽별이라는 이름으로 칭해지고 있으며

진실하고 뜻있는 생애를 보냈던 사람이었다.

 

존 위클리프의 전기를 쓰려면 실로 여러 권의 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가톨릭의 지도자들에게서 온갖 미움을 받았었고

언제나 그의 목숨을 엿보는 사람들로 인하여 피해 다녀야 했으며

결국 중풍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러나 그에 대한 케톨릭의 증오는 너무나 극단적이어서 몇 해 후에

그의 위골을 파내어 불사르고 그 재는 바다에 뿌려 버리게 하였다.

 

 

 

5. 존 위클리프의 뒤를 이어 멀리 보헤미아에서 한 저명한 인물

"존 후스"(1373~1415)가 라는 나왔다.

 

그의 마음은 영국의 새벽별 위클리프의 찬란한 빛에 감화되어

개혁에 앞장서게 되었던 것이다.

그의 생애는 용감하고도 다사다난하였으나 애석하게도 짧은 일생이었다.

그는 참된 개혁에 호의를 가지고 있었던 가톨릭 교인들의 심금(心琴)을 움직이게 하는 대신 공포와 증오 그리고 반대 또한 불러 일으켰으며 그 결과로 그는 화형(火刑)을 당하게 되었다.

 

그 자신의 국민들에게 죽임을 당한 순교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주님을 사랑하였고 그의 국민들을 사랑하였으며, 그들이 선량하여지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는 카톨릭에 의해 죽어간 수백만의 사람중 하나가 되었다.

 

 

 

6. 보헤미아의 존 후스 다음에는 이탈리아에서 놀라운 설교자

"사보나롤라"(1452~1498)가 나타났다.

 

존 후스가 화형을 당한 것은 1415년이며 사보나롤라가 탄생한 것은 이보다 37년 후였다.

후스와 마찬가지로 그는 경건한 가톨릭 교인이었으나

자기 국민들(이탈리아 사람들)의 지도자들 역시 보헤미아의 지도자들과 같이

모든 개혁에 반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의 설교는 많은 사람들의 양심을 각성시켰고 상당한 수의 제자들을 얻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교권제도 안에서의 참된 개혁을 한다는 것은

그 조직체의 상부층을 완전히 무너뜨려 버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그러므로 사보나롤라도 후스처럼 죽음을 면치 못하게 되었고 결국 화형을 당하게 되었다.

그 당시의 모든 설교자들 중에서도 사보나롤라는 가장 뛰어난 존재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싸운 상대는 막강하고 거대한 조직체였으며

또한 그 단체도 존속하기 위해서는 개혁 운동자들과 싸울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사보나롤라는 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7. 물론 이 시대에 있었던 개혁자들의 이름을 열거함에 있어서도

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다 들지 못하게 되었고 가장 현저하게 역사상에 나타난

사람들의 이름만을 살펴보기로 한다.

 

황금의 혀를 가지고 있었던 이탈리아의 웅변가의 뒤를 이어

스위스에서 한 사람이 나타났다.

 

그는 쯔빙글리로 사보나롤라가 죽기 전에 탄생하였고

그는 1484년에서 1531년까지 살았다.

 

이제 종교개혁의 정신은 온 세상에 충만하기 시작하였으며 그 불길은 점점 빨라지면서

급속도로 확대되어 걷잡기가 매우 어렵게 되어 버렸다.

쯔빙글리로 말미암아 일어난 이 불길은 다른 또 하나의 불길이 일어나기 까지

약간 시들어 갔으나 남아 있는 다른 모든 것보다 참된 것이었으며

독일에서 폭발되었던 것이다.

쯔빙글리는 전쟁 중 죽었다.

 

 

8. "마틴 루터"15,16세기의 모든 개혁자들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사람이었으며,

1483년에서 1546년까지 살았었고 그 연대로 비추어 보아

쯔빙글리와 거의 도일한 시대의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쯔빙글리보다 1년 먼저 나서 15년간이나 더 오래 살았다.

아마 역사가 진술하는 이상으로 더욱더 위대한 선배들이

그에 앞서서 험난한 길을 평탄케 만들어 주었을 것이다.

 

따라서 그는 선배들이 당하였던 험악한 경험에서 배웠고,

그후 자기 자신이 당하였던 경험을 통하여 가톨릭 내부에서의

순수한 개혁은 전혀 불가능하다는 것을 더욱 철저히 알게 되었다.

 

너무나 많은 개혁이 필요하였던 것이다.

한 가지는 다른 또 하나의 개혁을 요구하였고

그것은 또 다른 개혁을 요구하게 되어 끝이 없었다.

 

 

9. 결국 마틴 루터는 가톨릭의 지도자들과 여러 가지 어려운 싸움을 겪은 후

멜랑히톤과 그 외의 독일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1530년경에

전혀 새로운 교회로서의 조직체, 즉 루터교회라고 부르는 단체를

창설하게 되었는데 그 후 이것은 독일교회가 되었다.

 

이것이 바로 로마에서 직접 갈라져 나온 최초의 조직체였으며

가톨릭 모교회(가톨릭교회는 스스로를 이렇게 불렀다)에 대한

모든 관계를 거부하고 존속해 왔다.

 

 

10. 이제 초기의 루터교회 다음에 일어난 영국교회에 관한 것을 잠시 뒤로하고

대륙의 종교개혁을 먼저 살펴보기로 하자.

 

1509년에서 1546년 사이에는

또 하나의 위대한 종교개혁자인 프랑스 사람 "존 칼빈"이 있었다.

그는 당시 스위스에 거주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그는 뛰어한 사람이었고 30년 동안은 루터와 같은 시대에 살고 있었으며

쯔빙글리가 죽었을 때 그는 22세였다.

 

칼빈은 장로교회의 창설자라고 불리고 있는다.

어떤 역사가 중에는 쯔빙글리가 그 창설자라고도하지만

역시 믿을 만한 증거에 의하면 아무래도 칼빈이 그 창설자라고 생각된다.

 

루터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쯔빙글리의 활동이

칼빈의 개혁을 대단히 용이하게 만들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조차 없다.

그리하여 1541년 루터가 루터교회를 설립한지 꼭 11년 만에

장로교회가 창설되었다.

 

장로교회 역시 루터교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개혁에 동참한 사제,

또는 적어도 직분을 맡고 있었던 사람들에 의하여 지도되었다.

 

이들 여섯 사람 - 위클리프, 후스 , 사보나 롤라, 쯔빙글리, 루터 및 칼빈 등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위대한 종교개혁의 지도자들은

가톨릭이 근본부터 뒤흔들릴 만한 타격을 가했던 것이다.

 

 

11. 1560년 스위스의 제네바에서 칼빈이 처음으로 장로교회를 조직한지 19년 만에

칼빈의 제자 존 녹스는 스코틀랜드에서 최초의 장로교회를 설립하였고,

그 후 32년이 지난 1592년에는 장로교회가 스코틀랜드의 국교가 되었다.

 

 

12. 종교개혁에 요구되는 이 모든 어려운 사정이 벌어지고 있었을 때

그 개혁자들에게 끊임없이 귀중한 원조를 제공하여 준 것은 다름 아닌

아나- 밥티스트(재 침례교도)였다.

 

여러가지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던 이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험악한 운명에서 벗어나 그들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길을 찾고자

그들의 피난처에서 나와 개혁자들과 함께 용감히 싸웠다.

그러나 그들의 기대는 처참한 실망으로 끝나 버리고 말았으며,

오히려 자기들을 핍박하는 또 다른 적을 갖게 된 것이다.

 

루터교회나 장로교회 둘 다 모교회’(母敎會)인 가톨릭의 많은 악습을

그냥 계승하였었데, 그중 하나가 국가 교회였다.

 

이 두 교파는 곳 국교가 되었고, 그들은 다 모교회(母敎會)보다는 조금 덜하다 할지라도

곧 핍박을 일삼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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