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계시록의 중요한 서론적 글

거듭난 삶 2023. 3. 8.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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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리스도인들이 요한계시록을 해석함에 있어서

아주 많은 종류의 교리적 해석을 하는가

 

 

내가 여러 해 동안 종말론을 연구하면서 알게된 사실은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신학적으로 잘 정리된 마지막 때에 대한

연대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또 그것을 바라지도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 영역에 집중적인 관심을 기울이는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신학적 심리적 또는 교단적 이유에서 그렇게 한다.

이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것의 끝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지나친 관심을 보이지만

복음전도의 긴급성에 대하여는 놓치고 있다!

 

신자들이 종말론적(마지막 때) 사항과 관련하여

하나님께 영향을 미칠 수 없지만,

복음전파의 대위임에는 참여할 수 있다.

 

(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가르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침례를 주며

20)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보라, 내가 세상의 끝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아멘;

 

24:47 또 회개와 죄들의 사면이 그의 이름으로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민족들 가운데 선포되어야 하리니;

 

1:8 오직 성령님께서 너희에게 임하신 후에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땅의 맨 끝 지역까지 이르러 나를 위한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대부분의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을 것과

하나님의 약속이 마지막 때에 완성됨을 받아들인다.

 

이 일이 완성되는 시간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따르는 해석적 어려움은

성경에 있는 여러 개의 역설에 기인한다.

 

1. 구약 언약의 예언적 모델과

신약 언약의 사도적 모델 사이의 긴장.

 

2. 성경의 유일신론(모든 이에게 한 하나님)

이스라엘의 선택(특별한 한 민족) 사이의 긴장.

 

3. 성경에 있는 언약과 약속의 조건적인 면(“만일. . .그때에는”)

범죄한 인간의 구속을 위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신실하심 사이의 긴장.

 

4. 근동 문학의 장르와 현대 서구 문학적 모델 사이의 긴장.

 

5. 하나님의 왕국의 현재와 아직 미래사이의 긴장.

 

6.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에 대한 믿음과

어떤 일들이 반드시 먼저 일어나야 한다는 믿음 사이의 긴장.

 

이 긴장의 내용을 한 번에 하나씩 살펴보려고 한다.

 

 

처음 긴장(구약의 인종적 국가적 지역적 영역 대() 전 세계에 있는 모든 신자들)

 

구약의 선지자들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한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의 왕국이 다시 세워져, 그곳으로 지구 위의 모든 나라들이

다윗의 후손을 섬기고 찬양하려고 모일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하지만 예수님과 신약의 사도들은 이 일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구약이 영감받지 않은 책인가?

 

(5:17-19 내가 율법이나 대언자들의 글을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나는 폐하러 오지 아니하고 성취하러 왔노라.

18)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 점 일 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마침내 다 성취되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가장 작은 이 명령들 가운데 하나를 어기고 또 그와 같이 사람들을 가르치는 자는 하늘의 왕국에서 가장 작은 자라 불리되 누구든지 그것들을 행하고 가르치는 자 곧 그는 하늘의 왕국에서 큰 자라 불리리라)

 

신약의 저자들이 마지막 때에 일어날

중요한 사건들을 생략하고 있는 것인가?

 

세상의 끝에 관하여 알려 주는 여러 자료가 있다:

 

1. 구약의 예언서(이사야, 미가, 말라기)

2. 구약의 묵시적 글(참조, 37-39 ; 7-12 ; 스가랴)

3. 신구약 중간기의 정경이 아닌 유대의 묵시적 글(에녹 1 서의 경우 유다서에서 암시함)

4. 예수님 자신(참조, 24 ; 13 ; 21 )

5. 바울의 글(참조, 고전 15 ; 고후 5 ; 살전 4-5 ; 살후 2 )

6. 요한의 글(요한일서와 계시록)

 

이 자료들은 마지막 때와 관련된 사항(사건, 시간적 순서, 인물들)을 분명하게 제시하는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왜 그러한가?

그들은 다 영감을 받았는가(신구약 중간기에 속하는 유대인의 글을 제외하고는 그렇다)?

 

성령은 구약의 저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용어와 범위에서 진리를 그들에게 계시하셨다.

그러나 점진적인 계시를 통하여

성령께서 구약의 이러한 종말론적 개념을 세계적인 것으로 확장하셨다.

(“그리스도의 신비,” 참조, 2:11-3:13. 10:7 의 특별주제를 보라).

 

 

이와 관련을 가진 예를 여기서 일부 제시하려고 한다:

 

 

1. 구약에서 예루살렘 성은 하나님의 백성을 나타내는 은유적 표현으로 사용되었다(시온).

그러나 신약에서는 회개하고 믿는 자 모두를

하나님께서 받아주심을 제시하는 용어로 사용하였다.

(21-22 장에 있는 새 예루살렘).

 

문자적이고 물질적인 의미의 도시에서

하나님의 새 백성(믿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뜻하는 것으로

신학적으로 확장된 의미를 가지는 일이 창 3:15 에서 예시하듯이

범죄한 인간을 속량하시려는 하나님의 약속에서 보여졌다.

 

(3:15 내가 너와 여자 사이에 또 네 씨와 여자의 씨 사이에 적개심을 두리니 여자의 씨는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그때는 유대인도, 유대인의 수도(首都)도 전혀 없었던 시기였다.

 

아브라함을 부르신 경우에도,

 

(12:1-3 그런데 전에 주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 집에서 나와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부터 큰 민족을 만들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크게 하리니 네가 복이 되리라.

3) 너를 축복하는 자들에게는 내가 복을 주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를 내리리니 네 안에서 땅의 모든 가족들이 복을 받으리라, 하셨더라)

 

이방인이 포함되어 있었다.

 

(19:5 그러므로 이제 너희가 참으로 내 목소리에 순종하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내게 모든 백성들보다 뛰어난 특별한 보배가 되리니 이는 온 땅이 내 것이기 때문이라).

 

 

2. 구약에서 하나님의 백성의 원수들은 고대 근동에 있는 주변나라들이었는데,

신약에서는 그 개념이 믿지 않고 하나님께 대항하며

사탄의 조종을 받는 모든 자들로 확대되었다.

 

국지적 개념의 싸움이 전세계적이고 우주적인 싸움으로 바뀌었다(참조, 골로새서).

 

 

3. 구약에서 상당히 중요한 내용인

땅의 약속’(창세기에서 족장들에게 주신 약속들)

이제 전세계에 대한 내용이 되었다.

 

(12:7 주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므로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주께 거기서 제단을 쌓고;

 

13:15 네가 보는 모든 땅을 내가 너와 네 씨에게 영원히 주리라;

 

15:7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상속하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의 우르에서 데리고 나온 주니라, 하시매,

 

15 너는 평안히 네 조상들에게로 가겠고 또 충분히 나이 들어 묻힐 터이나;

 

17:8 내가 너와 네 뒤를 이을 네 씨에게 네가 나그네로 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의 모든 땅을 주어 영존하는 소유가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하시니라)

 

근동의 한 지역에 위치 하거나 혹은 배타적인 성격을 가진장소가 아닌

새 예루살렘이 재창조된 지구로 내려온다

 

* 참조 : (21-22 )

 

 

4. 구약의 예언적 요소가 확장됨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로서는 다음을 들 수 있다:

 

 

. 아브라함의 씨가 이제는 영적으로 할례받은 자들을 가리킨다.

 

(2:28-29 이는 겉으로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겉으로 육체에 행하는 할례가 그 할례가 아니기 때문이라.

29) 오직 속으로 유대인이 유대인이요 할례는 율법 자구 안에 있지 아니하고 영 안에 있는 마음의 할례니라. 이런 사람에 대한 칭찬은 사람들에게서 나지 아니하고 하나님에게서 나느니라)

 

 

. 언약백성이 이제는 이방인들을 포함한다

 

(9:24-26 에서 인용한 호 1:10; 2:23;

 

(9:24-26 이 긍휼의 그릇들은 우리니 곧 그분께서 유대인들 중에서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 중에서도 부르신 자들이니라.

25) 이것은 그분께서 호세아의 글에서도 이르시되, 내가 내 백성이 아니던 자들을 내 백성이라 부르며 사랑받지 못하던 그녀를 사랑받는 자라 부르리라.

26) 또 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곧 거기에서 그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이들이라 불리리라, 함과 같으니라

 

1:10 그러할지라도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다의 모래 같아서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으리니 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곧 거기에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하리라;

 

2:23 내가 나를 위하여 그녀를 땅에 심고 긍휼을 얻지 못하였던 그녀에게 긍휼을 베풀며 내 백성이 아니던 자들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고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니이다, 하리라)

 

또한 고후 6:16-18 에서 인용한 레 26:12; 29:45;

 

(고후 6:16-18)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들이 어찌 조화를 이루겠느냐? 너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니라.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고 그들 가운데 거닐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17) 주가 말하노라.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가운데서 나와 분리하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받아들여

18)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 아들딸이 되리라. 전능자 주가 말하노라, 하셨느니라

 

26:12 나는 너희 가운데서 걸으며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29:45 내가 또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 거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니)

 

 

2:14 에서 인용한 출 19:5; 14:2)

 

(2:14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으로부터 친히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정결하게 하사 선한 행위에 열심을 내는 백성 곧 자신을 위한 특별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5 그러므로 이제 너희가 참으로 내 목소리에 순종하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내게 모든 백성들보다 뛰어난 특별한 보배가 되리니 이는 온 땅이 내 것이기 때문이라;

 

14:2 너는 주 네 하나님께 거룩한 백성이니 주께서 땅 위의 모든 민족들 위로 너를 높여 자신에게 특별한 백성으로 택하셨느니라)

 

 

. 성전이 이제는 예수를

 

(26:61 이르되, 이자가 말하기를,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 만에 지을 수 있다, 하더라, 하니;

 

27:40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 만에 짓는 자여, 네 자신이나 구원하라.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고;

 

2:19-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성전을 헐라. 사흘 안에 내가 그것을 일으켜 세우리라, 하시니

20) 이에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을 짓는 데 사십육 년이 걸렸거늘 네가 그것을 사흘 안에 세우겠느냐? 하더라.

21) 그러나 그분께서는 성전인 자기 몸을 가리켜 말씀하셨더라)

 

또 예수를 통하여 지역교회와

 

(고전 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영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각 신자를 가리킨다

 

(고전 6:19 도대체 무슨 말이냐? 너희 몸이 너희가 하나님에게서 받은바 너희 안에 계신 성령님의 전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니)

 

 

. 이스라엘 또는 이스라엘을 지칭하는 구약의 특징적인 표현들 조차도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가리킨다

 

, “이스라엘,”

 

(9:6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효력을 상실한 것 같지 아니하니 이는 이스라엘에게서 난 자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6:16 이 규칙에 따라 걷는 모든 사람들에게 또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

 

, “제사장 나라,”

 

(벧전 2:5 너희도 살아 있는 돌들로서 영적 집으로 건축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받으실 영적 희생물을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었도다,

 

9-10 그러나 너희는 선정된 세대요 왕가의 제사장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특별한 백성이니 이것은 너희를 어둠에서 불러내어 자신의 놀라운 빛으로 들어가게 하신 분께 대한 찬양을 너희가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10) 너희가 지나간 때에는 백성이 아니었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긍휼을 얻지 못하였으나 이제는 긍휼을 얻었느니라;

 

1:6 하나님 곧 자신의 아버지를 위해 우리를 왕과 제사장으로 삼으신 분께 즉 그분께 영광과 통치가 영원무궁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예언의 모델(, D. 브렌트 샌디, 보습과 전정가위)이 성취되었고 확장되어

상당히 포괄적이 되었다.

 

예수님과 사도인 저자들은 구약의 예언서에서 제시한 것과 같은 방법으로

마지막 때를 제시하지 않았다(참조, 마틴 윈가덴, 예언에 나타난 왕국의 미래와 성취).

 

구약의 모델을 문자적이고 규범적으로 해석하려는 자들은

계시록을 상당히 유대적인 책으로 왜곡시키며,

예수님과 바울이 사용한 모호하면서도

따로 떨어져 있는 구에 자신들이 원하는 의미를 나타내도록 강요한다!

 

신약의 저자들은 구약의 예언을 무시하지 않았다.

그 예언들이 궁극적으로 우주적 의미를 갖는 것으로 제시한 것이다.

 

예수님과 바울은 조직적이고 논리적인 체계로 종말론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구원적이고 목회적인 목적을가졌다.

 

(고전 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는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을 넘치게 하라.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너희가 아느니라;

 

살전 4:18 그러므로 이 말씀들로 서로 위로하라).

 

한편, 신약 저자들 사이에도 긴장이 나타난다.

 

그들은 종말적 사건들을 체계적으로 분명히 제시하지 않는다.

여러 면에서 볼 때, 놀랍게도 계시록은 마지막 때를 묘사하기 위하여

예수님의 가르침 대신에(24 ; 13 ; 또는 바울의 글)

구약의 암시를 사용한다!

 

처음에 에스겔, 다니엘, 스가랴가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신구약 중간기(유대인의 묵시문학)에 발전된 문학적 장르를 계시록이 따르고 있다.

이것은 구약과 신약을 연결시키기 위하여 요한이 사용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오랜 기간에 걸쳐 하나님께 반역을 함과

인간을 속량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헌신하심을 드러낸다!

 

비록 계시록이 구약의 표현, 인물, 사건들을 암시함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을 1 세기 로마의 상황에 비추어 재해석하였음을 기억해야만 한다.

 

(1:7 보라, 그분께서 구름들과 함께 오시느니라. 모든 눈이 그분을 보겠고 그분을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의 모든 족속들이 그분으로 인하여 통곡하리니 참으로 그러하리로다. 아멘).

 

*밥 어틀리교수

동텍사스침례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