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거듭난 삶 2023. 4. 8.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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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델비아 교회

 

성 경: [3:7-9]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9) 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3: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 '빌라델비아'

사데 동남쪽 약 40km 지점에 위치한 고원 도시로 포도 생산지로 유명하였다.

그곳은 서머나와 루디아 왕국으로부터 동방으로 가기 위해

제일 먼저 들러야 하는 도시로 '동방의 관문'이라 일컬어지기도 했다.

 

농업과 상업이 발달하여 경제적으로 상당한 부를 누렸으나 지진이 잦아 피해가 많았다.

또한 많은 신전과 종교적 행사가 있어 A.D.5세기에는 '작은 아테네'로 불렸다.

 

그러나 빌라델비아는 이교 신전과 종교 행사가 많고

2,3장에 나타난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가 위치한 지역 중

가장 짧은 역사를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B. C. 159-138)

아시아가 이슬람 교도들에 의해 짓밟힐 때 유일한 기독교의 보루(堡壘)로서

신앙적인 면에서 가장 칭찬을 받은 지역이다(Lenski, Johnson).

 

한편 빌라델비아 교회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으며

단지 암미아(Ammia)라는 여선지자가 이 교회를 관할하면서(A.D. 100-160)

큰 부흥을 이룬 듯하다.

 

이 교회의 성장으로 흩어진 유대인들이 개종하는 역사도 있었으나

반면에 교회를 가장 반대하는 자들 역시 유대인들이었다.

 

 

거룩하고 진실하사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 하기오스, 호 알레디노스'

문자적으로 '거룩한 자, 진실한 자'를 의미한다.

 

'호 하기오스'는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에 대한 칭호로 사용되었으나

 

(1:4 , 죄 많은 민족이요, 불법을 짊어진 백성이요, 악을 행하는 자들의 씨요, 부패시키는 자식들이로다. 그들이 주를 버리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의 분노를 일으키며 뒤로 갔도다;

 

5:19 그들은 이르기를, 그분께서 서둘러 자신의 일을 속히 이루사 우리가 그것을 보게 하고 또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의 계획이 가까이 임하게 하사 우리가 그것을 알게 할 것이라! 하는도다,

 

24 그러므로 불이 지푸라기를 삼키는 것 같이, 불꽃이 겨를 태우는 것 같이 그들의 뿌리가 썩고 그들의 꽃이 먼지처럼 날리리니 그들이 만군의 주의 법을 버리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멸시하였도다;

 

10:17 이스라엘의 빛은 불이 되며 그의 거룩하신 이는 불꽃이 되리라. 그것이 하루 사이에 그의 가시와 찔레를 태우고 삼키며,

 

20 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과 야곱의 집에서 도피한 자들이 다시는 자기들을 친 자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주 곧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진리 안에서 의지하리니;

 

12:6 시온의 거주민아, 너는 소리 높여 외치라. 네 한가운데 계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는 위대하시도다, 하리로다;

 

51:5 이스라엘과 유다의 땅이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대적한 죄로 가득할지라도 그들이 자기 하나님 만군의 주에게 버림을 받지 아니하였느니라;

 

39:7 이와 같이 내가 내 거룩한 이름을 내 백성 이스라엘의 한가운데서 알리며 그들이 다시는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아니하게 하리니 내가 주 곧 이스라엘에 있는 거룩한 자인 줄을 이교도들이 알리라;

 

11:9 내가 내 맹렬한 분노를 집행하지 아니하며 돌아와서 에브라임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나는 하나님이요, 사람이 아니니라. 나는 네 한가운데 있는 거룩한 자니 내가 그 도시로 들어가지 아니하리라;

 

3:3 하나님께서 데만에서 오시며 거룩하신 이께서 바란 산에서 오셨도다. 셀라. 그분의 영광이 하늘들을 덮으며 그분의 찬양이 땅에 가득하도다)

 

신약성경에서는 그리스도에게 적용되어 그의 신성과 메시야성을 나타내고 있다.

 

(1:24 이르되, 나사렛 예수님이여, 우리를 홀로 두소서.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오셨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신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시니이다, 하매;

 

6:39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뜻은 이것이니 곧 그분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 중에서 내가 하나도 잃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그것을 다시 일으키는 것이니라;

 

2:27 이는 주께서 내 혼을 지옥에 남겨 두지 아니하시고 주의 거룩한 자가 썩음을 보지 아니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니이다;

 

13:35 그러므로 그가 또한 다른 시편에서 이르되, 주께서 주의 거룩한 자가 썩음을 보지 아니하게 하시리이다, 하나니;

 

7:26 그분께서는 저 대제사장들과 같이 먼저 자기의 죄들로 인하여 날마다 희생물을 드리고 그 다음에 백성의 죄들로 인하여 희생물을 드릴 필요가 없으시니 이는 그분께서 친히 자신을 드리실 때에 이 일을 단 한 번에 행하셨기 때문이라)

 

또한 '호 알레디노스'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1) 온전하며 충성된 자 - 그리스도께서는 온전한 충성으로 메시야적 직무를 수행하신

완전한 분이심을 시사한다(Hort)

 

(2) 진실한 자 - 이것은 구약에서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칭호로 사용되었으나

 

(65:16 이러므로 땅에서 자기를 축복하는 자는 진리의 하나님 안에서 자기를 축복하며 땅에서 맹세하는 자는 진리의 하나님을 두고 맹세하리니 이는 이전의 고난들이 잊혔고 내 눈에 숨겨졌기 때문이라)

 

본절에서는 그리스도에게 적용되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참된 메시야로서 약속을 반드시 성취하는 분이시므로

예수의 메시야성을 부정하는 유대인들의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언급되었다(Mounce, Ladd).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 본문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모습은 사22:15-25을 반영한다.

 

(22:15-25 주 만군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너는 가서 국고를 맡은 이 사람 셉나 곧 그 집을 감독하는 자에게 이르러 말하기를,

16) 네가 여기에 무슨 소유가 있느냐? 여기에 누가 있기에 높은 곳에 자기를 위하여 돌무덤을 파고 또 자기를 위하여 바위 속에 처소를 파내는 자같이 네가 너를 위하여 여기에 돌무덤을 팠느냐?

17) 보라, 주가 너를 단단히 포로로 사로잡아 데려가고 반드시 너를 덮되

18) 참으로 너를 공같이 맹렬히 돌리며 큰 지역으로 던지리니 거기서 네가 죽고 거기서 네 영광의 병거들이 네 주인의 집의 수치가 되리로다.

19) 내가 너를 네 위치에서 쫓아내며 그가 너를 네 지위에서 끌어내리리라.

20) 그 날에 내가 힐기야의 아들 내 종 엘리아김을 불러

21) 네 옷을 그에게 입히며 네 띠를 띠워 그를 강하게 하고 네 정권을 그의 손에 맡기리니 그가 예루살렘 거주민들과 유다의 집에 아버지가 되리라.

22) 내가 또 다윗의 집 열쇠를 그의 어깨 위에 두리니 그런즉 그가 열면 아무도 닫지 못하고 그가 닫으면 아무도 열지 못하리라.

23) 내가 그를 단단한 곳에 박힌 못같이 견고하게 하리니 그가 자기 아버지 집에 영화로운 왕좌가 될 것이요,

24) 그들이 그의 아버지 집의 모든 영광을 그 위에 걸어 두리니 곧 후손과 자손이요, 모든 작은 그릇 즉 잔으로부터 큰 병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그릇이니라.

25)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그 날에 단단한 곳에 견고하게 박힌 못이 빠지고 부러져 떨어지므로 거기 걸린 짐이 떨어져 나가리라. 주가 그것을 말하였느니라, 하라)

 

 

이사야서에서 국고를 맡고 있는 셉나 대신에 엘리야김이

다윗의 집 열쇠를 맡아 다윗의 집 전체를 관리하는 권세를 행할 수 있게 되었다.

 

본문에서 '다윗의 열쇠'는 다윗의 집,

즉 하나님 나라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로서 하나님 나라의 특성인

영생의 수여권을 시사한다(Ladd, Beasley Murray).

 

엘리야김이 다윗의 집을 관리하는 열쇠를 소유한 바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다스리고 관리하는 열쇠를 소유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자와 들어갈 수 없는 자를 결정하신다(Johnson).

 

한편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

'다윗의 열쇠를 가진 이'에 대한 해석으로 당시 빌라델비아의 정황을 반영한다.

 

당시 빌라델비아에 많이 거주하였던 유대인들은

오직 자신들만이 다윗의 나라를 유업으로 물려 받았다고 주장하였다.

그러한 상황 속에 살던 빌라델비아 교인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다윗의 열쇠를 가진이'라고 계시한 것은

유대인들이 주장하는 선민 의식에 대한 반론이며,

그리스도 자신이 천국의 주권을 가진 메시야이심을 강조함으로

빌라델비아 교인들을 위로하신 것이다.

 

(1:18 나는 살아 있는 자라. 전에 죽었으나, 보라, 내가 영원무궁토록 살아 있노라. 아멘. 또한 내가 지옥과 사망의 열쇠들을 가지고 있노라;

 

28:1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능이 내게 주어졌느니라;

 

1:22 또 모든 것을 그분의 발아래 두시며 그분을 모든 것 위에 머리가 되게 하사 교회를 위해 주셨느니라;

 

3:6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집을 다스리는 아들로서 신실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기쁨을 끝까지 굳게 붙들면 우리가 그분의 집이니라).

 

 

 

[3: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

 

'열린 문'에 대한 해석은 세 가지이다.

 

(1) 남북으로 로마와 소아시아의 수도 에베소를 연결하는 빌라델비아의 지리적위치 때문에 이를 '선교의 문'으로 해석한다(Ramsay, Swete, Alford, Clarke, Charles, Holtzmann).

 

(2) '그리스도의 문'이나, '기도나 순교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집접 나아가는 길'로 해석한다(Kiddle, Moffatt).

 

(3) 천국으로 들어가는 '구원의 문'으로 해석한다(Ladd, Zahn, Rist, Beckwith).

 

이 가운데서 세번째의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왜냐하면 12절과 본서의 종말론적(終末論的) 성격으로 볼 때

그리스도께서 열어주신 구원의 문을 닫을 사람이 없는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 본문은 그리스도께서 빌라델비아 교인들을 칭찬하신 내용이다.

 

'적은 능력'에 해당하는 헬라어 '미크란 에케이스 뒤나민'

'능력이 거의 없다'는 의미로 그 지역에서 빌라델비아 교인들의

신분이나 지위 등의 외적 능력이 변변치 못함을 나타낸다.

 

한편 '지키며'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이 에테레사스'

반의적인 강조 표현으로 문자적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켰다'를 의미한다.

이는 빌라델비아 교인들이 유대인들이 가하는 시련과 온갖 유혹 가운데서도

 

(9절 보라, 사탄의 회당에 속한 자들 곧 스스로 유대인이라 하나 유대인이 아니고 거짓말을 하는 자들이 있는데, 보라, 내가 그들이 와서 네 발 앞에 경배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한 줄을 알게 하리라)

 

진리의 편에 굳게 서서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살았음을 시사한다.

 

 

 

[3:9] 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하는 자들 중에서 -

 

빌라델비아 교회가 처한 문제는 외적인 황제 숭배나 핍박같은 것도 아니었고

부도덕하게 혼합주의로 이끌어 가는

이세벨주의나 니골라당 같은 내적 문제도 아니었다.

 

그들이 처한 위기는

예수의 메시야되심을 부정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을 핍박하는

유대인들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그들은 혈통적인 면에서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고,

자신들만이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였다고 주장하나

예수의 메시야성을 부정함으로 사단을 추종하는 자들,

'사단의 회'가 되었다.

 

그들은 진정한 유대인이 혈통과 같은 외적인 요소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이루어지는 이면적(裏面的)인 것임을 망각하였다.

 

(2:28-29 이는 겉으로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겉으로 육체에 행하는 할례가 그 할례가 아니기 때문이라.

29) 오직 속으로 유대인이 유대인이요 할례는 율법 자구 안에 있지 아니하고 영 안에 있는 마음의 할례니라. 이런 사람에 대한 칭찬은 사람들에게서 나지 아니하고 하나님에게서 나느니라).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

 

유대인들은 본래 이방인들이 자신들에게 찾아와 굴복한다고 믿고 있다.

 

(45:14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이집트의 수고한 것과 이디오피아의 장사한 것과 키가 큰 스바 사람들의 장사한 것이 네게로 넘어와 네 것이 될 것이요, 그들이 네 뒤를 따르리라. 그들이 사슬에 묶여 넘어와 네게 엎드리며 간구하여 이르기를, 분명히 하나님께서 네 안에 계시고 그분 외에는 하나님이 없다, 하리라;

 

60:14 또 너를 괴롭게 한 자들의 아들들도 몸을 굽혀 네게 나아오며 너를 멸시한 자들이 다 네 발바닥 앞에 엎드리고 너를 일컬어 주의 도시 곧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의 시온이라 하리라).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본문에서 유대인들이 생각하고 믿는 바와는 반대로

유대인들이 내면적인 유대인이 된 그리스도인들에게 찾아와

굴복할 것이라고 선언하신다.

 

이것에 대해서 혹자는 유대인들의 회심이라고 해석하나(Ladd)

 

*참고 : (9-11)

 

문맥상 본문은 예수의 메시야되심을 부인하는 '사단의 회'

유대인들을 그리스도께서 심판하심을 나타낸다(Johnson, Mounce).

 

그리스도께서는 예수의 메시야성을 부인한 혈통적 유대인들을

징계하시고 심판하셔서, 이면적이고 영적인 유대인들인 그리스도인들에게

굴복케 하심으로 메시야이신 당신께서 그리스도인들을 사랑하고 계심을 드러내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