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좌에 계신 하나님과 그 영광
성 경: [계 4:1-2]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2) 내가 곧 성령에 감동하였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계 4: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 '이 일 후에'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 2,3장의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대한 계시가 종결된 바로 직후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Johnson).
(2) 장면의 변화를 나타내는 것으로 이는 새로운 환상의 전환을 나타내는
묵시 문학의 전형적인 표현이라고 주장한다(Morris, Beasley-Murray, Robertson).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또한 이 말은 본서에서 자주 등장하는 표현으로
(7:1 이것들 후에 내가 보니 네 천사가 땅의 네 모퉁이에 서서 땅의 네 바람을 붙잡아 바람이 땅에나 바다에나 어떤 나무에도 불지 못하게 하더라,
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보라,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 곧 모든 민족과 족속과 백성과 언어에서 나온 큰 무리가 흰 예복을 입고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왕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
15:5 그 뒤에 내가 바라보니, 보라, 하늘에 있는 증언의 성막의 성전이 열리고;
18:1 이 일들 후에 내가 보니 큰 권능을 가진 또 다른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데 그의 영광으로 인해 땅이 환해지더라;
19:1 이 일들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많은 사람들의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존귀와 권능이 주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내가 보았다' 혹은 '내가 들었다'와 연결되어 나타난다.
이는 환상을 통한 계시의 사실성과 현장성을 나타낸다.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본서에서 '하늘'은 12:12을 제외하고는 모두 단수로 사용되었다.
(3:12 이기는 자는 내가 내 하나님의 성전에서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다시는 나가지 아니하리라. 또 내가 내 하나님의 이름과 내 하나님의 도시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을 그 위에 기록하고 나의 새 이름을 그 위에 기록하리라;
6:13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강풍에 흔들려 설익은 무화과가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고;
12:7 하늘에 전쟁이 있었는데 미가엘과 그의 천사들이 용과 싸울 때에 용과 그의 천사들도 싸우나;
21:1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으니 이는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사라졌고 바다도 다시는 있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더라).
그 의미는 다양하나 본문의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스런 처소로 자신을 계시하시기 위한 곳을 의미한다(Morris).
한편 '열린 문'에 해당하는 헬라어 '뒤라 에네 오그메네'는 완료 분사형으로
문이 이미 열려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계시가 이미 준비되어 있었으며
환상을 통해 요한이 보게 될 것을 암시한다.
여기서 '문'은 본서에서 언급되는,
'하나님 나라의 문’
(3:8 내가 네 행위를 아노라. 보라,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니 아무도 그것을 닫지 못하리라. 네가 적은 힘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부인하지 아니하였도다)
또는 '마음의 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3:20 보라, 내가 문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함께 만찬을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으리라)
'계시의 문'을 나타낸다(Ladd, Mounce, Swtet).
따라서 본문의 '문'은 문 자체보다 천상의 광경을 보여 주기 위한 것과
계시를 전달받는 자가 분명하게 경험했음을 부각시키는
은유적인 표현으로 볼 수 있다.
(겔 1:1 이제 제삼십년 사월 곧 그 달 오일 내가 그발 강가에서 포로들 가운데 있을 때에 하늘들이 열리며 하나님의 환상들이 내게 보이니라;
마 3:16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똑바로 물 속에서 올라오실 때에, 보라, 하늘들이 그분께 열리며 또 하나님의 영께서 비둘기같이 내려와 자기 위에 내려앉는 것을 그분께서 보시더라;
막 1:10 곧 물 속에서 올라오실 때에 하늘들이 열리며 성령께서 비둘기같이 자기 위에 내려오시는 것을 보시더라;
요 1:51 또 그에게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후로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라;
행 7:56 이르되, 보라, 하늘들이 열리고 사람의 아들이 하나님의 오른편에 서 계신 것을 내가 보노라, 하매;
10:11 하늘이 열리며 마치 네 귀퉁이를 맨 큰 보자기 같은 그릇 하나가 자기에게 내려오는 것을 보았는데 그것이 땅으로 내려오더라).
▶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 본문은
1:10에서 들었던 음성을 요한이 다시 들었음을 나타낸다.
왜냐하면 '그 음성'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 포네'에 정관사 '헤'가 있어
이전에 언급된 것임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한편 여기서 '말씀하신 자'가 누구인가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 '그리스도'라고 주장한다(Charles,Stier).
(2) '천사'라고 주장한다(Bousset, Plummer).
두 가지 견해 중 전자가 타당하다.
▶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
'이리로 올라오라'는 마치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시내 산으로 올라오라는 명령과 흡사한 것으로
(출 19:24 주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가라, 너는 내려가서 아론과 함께 올라오고 제사장들과 백성이 돌파하여 주에게로 올라오지 못하게 하라. 그가 그들을 향해 돌격할까 염려하노라, 하시니라)
세대주의자들의 주장처럼 휴거의 상징이 아니라(Johnson, Ford, Walvoord)
환상 중에 더욱 분명한 계시를 전달받기 위해
계시 전달자가 초대 되었음을 시사한다 (Hughes).
(고후 12:2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알았는데 그 사람은 십사여 년 전에 셋째 하늘로 채여 올라갔느니라. (몸 안에 있었는지 내가 말할 수 없으며 몸 밖에 있었는지 내가 말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한편 '마땅히 될 일'은 요한에게 계속 보여줄 환상이
미래에 일어나지만 그 계시의 내용이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
확실히 약속임을 시사한다(Morris, Lenski, Hughes).
(1:19 네가 본 것들과 지금 있는 것들과 이후에 있을 것들을 기록할지니),
[계 4:2] 내가 곧 성령에 감동하였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 내가 곧 성령에 감동하였더니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유데오스 에게노멘 엔 프뉴마티'는 문자적으로
'즉시 성령 안에 있게 되었다'는 의미로
(1:10 내가 주의 날에 성령 안에 있을 때에 내 뒤에서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었는데)
천상으로 인도되어 새로워진 요한의 상태를 묘사한다(Moffatt, Plummer, Ford).
(겔 8:1-4 제육년 유월 곧 그 달 오일에 나는 내 집에 앉아 있고 유다의 장로들은 내 앞에 앉아 있었는데 주 하나님의 손이 거기서 내려와 내 위에 임하시니라.
2) 그때에 내가 보니, 보라, 불의 모양같이 생긴 것이 있더라. 그분의 허리 모양으로부터 아래에는 불이 있었고 그분의 허리로부터 위는 마치 광채의 모양 같고 호박색 같았는데
3) 그분께서 손의 형체를 내미사 내 머리털 타래로 나를 잡으시매 그 영께서 나를 들어 땅과 하늘 사이로 올리시고 하나님의 환상 속에서 나를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북쪽을 바라보는 안쪽 문의 입구에 이르시니라. 거기에는 질투의 형상 곧 질투를 일으키는 형상의 자리가 있더라.
4) 또, 보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영광이 거기 있었는데 그것은 내가 평야에서 본 그 환상과 같더라;
11:1 그 영께서 또 나를 들어 올리사 주의 집의 동쪽 문 곧 동쪽을 바라보는 문으로 데려오시니라. 보라, 그 문의 입구에 스물다섯 사람이 있었는데 내가 그 가운데서 백성의 통치자들인 앗술의 아들 야아사냐와 브나야의 아들 블라댜를 보니라),
이는 요한이 3장까지는 계시의 음성을 들었으나 이제는 직접 계시에 참여함으로
영감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보았음을 시사한다(Weiss, Swete).
(요 14:26 위로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님 그분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말하였든지 너희가 그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하시리라;
고후 12:2-3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알았는데 그 사람은 십사여 년 전에 셋째 하늘로 채여 올라갔느니라. (몸 안에 있었는지 내가 말할 수 없으며 몸 밖에 있었는지 내가 말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3) 내가 이러한 사람을 알았노니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내가 말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 '보좌'는
간혹 하나님께서 하늘을 보좌로 삼으신 것을 묘사하기도 하며,
(사 66:1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하늘은 나의 왕좌요, 땅은 나의 발받침이라. 너희가 나를 위해 짓는 집이 어디에 있느냐? 내가 안식할 처소가 어디에 있느냐?;
마 5:3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결코 맹세하지 말라. 하늘을 두고도 하지 말 것은 하늘이 하나님의 왕좌이기 때문이요;
23:22 또 하늘을 두고 맹세하는 자는 하나님의 왕좌와 그 위에 앉으신 분을 두고 맹세하느니라),
또한 하나님의 보좌가 천상 위에 있는 것으로 묘사되기도 하나,
(왕상 8: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보소서,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품지 못하겠거늘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집이오리이까?),
본문에서는 영광과 심판을 동반한 하나님의 위엄과 권세를 나타낸다.
(왕상 22:19 미가야가 이르되, 그런즉 왕은 주의 말씀을 들으소서. 내가 보니 주께서 자신의 왕좌에 앉으셨고 하늘의 모든 군대가 그분 옆으로 오른쪽과 왼쪽에 서 있었나이다;
사 6: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또 내가 보니 주께서 높이 들린 왕좌에 앉으셨는데 그분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고;
겔 1:26 그들의 머리들 위에 있던 궁창 위에 사파이어 돌 같은 모양의 왕좌의 모습이 있었고 그 왕좌의 모습 위에는 위로 그것 위에 사람의 모양을 닮은 모습이 있더라;
단 7:9 그 왕좌들이 무너져 내릴 때까지 내가 보매 옛적부터 계신 이가 앉아 계시는데 그분의 옷은 눈같이 희고 그분의 머리털은 순결한 양털 같으며 그분의 왕좌는 맹렬한 불꽃 같고 그분의 바퀴들은 타오르는 불 같더라).
한편 '보좌 위에 앉으신 이'는 하나님을 지칭한다.
왜냐하면 5절에서 성령에 대한 언급이 나타나고
다음 장에서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나타나
1장과 유사하게 삼위 하나님에 대한 진술의 구조를 이루기 때문이다.
(1:4-6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앞으로 오실 분과 그분의 왕좌 앞에 계신 일곱 영과
5) 또 신실한 증인이시요 죽은 자들 중에서 처음 나신 분이시며 땅의 왕들의 통치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우리를 사랑하사 자신의 피로 우리의 죄들로부터 우리를 씻으시고
6) 하나님 곧 자신의 아버지를 위해 우리를 왕과 제사장으로 삼으신 분께 즉 그분께 영광과 통치가 영원무궁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하나님께서는 보좌에 앉으심으로 자신의 무한한 권능과 권세,
그리고 통치하심이 완전한 것임을 나타내신다(Greijdanus, Lenski).
'요한계시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뇌성이 나고 보좌 앞에 일곱 등불 켠 것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0) | 2023.04.16 |
---|---|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 (0) | 2023.04.15 |
네 비참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 (0) | 2023.04.13 |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1) | 2023.04.12 |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1) | 2023.04.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