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도

욥은 자신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기를 원했습니다

거듭난 삶 2023. 9. 11.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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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는 기도 2

 

욥은 자신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사람들이 제대로 받아들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간격이 너무나도 크기 때문에 서로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욥은 중재자를 원했습니다.

욥이 원한 중재자는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는 존재여야 했습니다.

그러려면 그 중재자는 하나님과 같은 분이어야 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중재자는 인간도 이해할 수 있는 존재여야 했습니다.

 

그러려면 그 중재자는 인간과 같은 분이어야 했습니다.

욥은 하나님과 인간을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중재자가 나타나서

하늘과 땅 사이를 이어 주기 원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대변해 주고 서로 대화를 나누고

진정한 교제를 나눌 수 있게 되기를 원했습니다.

 

우리는 동물과 온전한 교제를 나눌 수 없습니다.

아무리 동물과 가까이 지낸다 해도 완전한 의사소통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저 제한적이고 기본적인 의사소통만 가능할 뿐입니다.

 

저는 개와 대화를 나눌 수 없습니다.

저는 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개도 저와 대화를 나눌 수 없습니다.

개도 인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개와 인간은 서로의 존재는 인식할 수 있지만 완전한 의사소통을 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과 인간도 서로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지만

완전한 의사소통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디모데전서 3:16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논쟁의 여지가 없이 하나님의 성품의 신비는 위대하도다.

하나님께서 육체 안에 나타나시고 성령 안에서 의롭게 되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이방인들에게 선포되시고 세상에서 믿기시고

영광 속으로 올려져서 영접을 받으셨느니라.”

 

이 구절이 말씀하고 있는 게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욥과 같은 인간을 살펴보셨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보시니 인간이 하나님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인간과 교제를 나눌 수 있는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도 볼 수 없었던 하나님을 누구나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과 함께 거하시고 사람들이 먹는 것처럼 먹으시고

사람들이 마시는 것처럼 마시시고 사람들이 자는 것처럼 주무시고

사람들이 주리는 것처럼 주리시고 사람들이 매 맞는 것처럼 매 맞으시고

사람들이 욕먹는 것처럼 모독을 당하시고

사람들이 친구를 사귀는 것처럼 친구를 사귀시고

사람들이 죽는 것처럼 죽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원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하나님과 진정한 교제를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인간의 몸으로 오셨기 때문에 인간과 교제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하나님이셨기 때문에

인간은 그분을 통해서 하나님과 교제를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리아는 단순히 인간이었습니다.

그녀는 인류에 속한 인간이었습니다.

마리아는 한 번도 하나님이었던 적이 없으며

지금도 하나님이 아니며 앞으로도 결코 하나님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같은 인간의 입장을 이해 할 수는 있었지만

하나님의 입장을 이해 할 수는 없었습니다.

 

마리아는 인간의 손을 잡을 수는 있었지만

하나님의 손을 잡을 수는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의 손을 잡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같은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의 손을 잡을 수는 없습니다.

 

디모데전서 2장을 보겠습니다.

 

한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한 중재자가 계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라.”(딤전 2:5)

 

성경에 의하면 한 하나님께서 계십니다.

그리고 한 중재자가 계십니다.

이 중재자는 하나님과 인간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십니다.

 

이 중재자는 바로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입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것을 자세히 보십시오.

 

성경은 한 중재자가 계시니 곧 하나님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라.”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잘 들어보세요.

하나님께서는 마리아의 태안에 인간의 육체를 하나 준비하셨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0:5에서는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나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거룩한 것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1:35).

 

마리아의 태 속에서 하나님이 생성되고 있었던 게 아닙니다.

마리아의 태 속에서 만들어지고 있던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들어가 거하실 육체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육체 안에 들어와서 사셨던 것입니다.

 

그 몸 안에서 하나님은 시장에 가셨고,

그 몸 안에서 하나님은 목수 일을 하셨으며,

그 몸 안에서 하나님은 뱃머리에 기대어 주무셨고,

그 몸 안에서 하나님은 최후의 만찬을 하셨으며,

그 몸 안에서 하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삼일 밤과 삼일 낮이 지나고 나서 죽었던 그 몸은 다시 살아났습니다.

40일 후에는 하나님께서 그 몸을 입으신 채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아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그 몸을 입고

아버지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 계십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 계신 분은 분명히

아들 하나님이시지만 인간의 몸을 입고 계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으며

여전히 인간의 몸을 입고 계신 인간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육체로 부활하신 것이 아니라

단지 영으로만 부활하셨다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지금도 인간의 몸을 입고 계시다는

놀라운 진리를 몽땅 제거해 버린 것입니다.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을 이어주는 유일한 중보자이십니다.

 

과거에만 중보자이신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도 중보자이십니다.

과거에만 인간의 몸을 입고 계셨던 것이 아니라

지금도 인간의 몸을 입고 계시기 때문에

인간을 위해 중보 해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디모데전서 2:5을 보겠습니다.

 

한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한 중재자가 계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라.”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은 인간과 하나님을 연결해 주는

유일한 중보자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하나님과 인간을 연결해 주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몇 명의 사람을 하나님과 연결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예수님께서는 몇 명의 사람이 하나님과 교제를 나눌 수 있게 하실 수 있으실까요?

 

계속해서 6절을 보겠습니다.

 

그분께서 정하신 때에 증언을 받기 위해 모든 사람을 위한 대속물로 자신을 주셨느니라.”

 

유일한 중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몇 명이나 하나님과 교제를 나눌 수 있는지 아십니까?

 

모든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을 위한 대속물로 자신을 주셨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를 나눌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남자나 여자나 소년이나 소녀라 할지라도,

오늘 이곳에 모인 그 누구라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자신을 만든 창조자와 개인적인 관계를 맺고

친밀한 교제를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기 위해 신학교를 나와야 하거나

수도원에 들어가야 하거나 신비한 체험을 해야 하는 게 아닙니다.

 

누구든지 원하면 하나님과

개인적인 친밀한 교제를 나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의 피로 자신의 죄를 씻고

하나님과 교제를 나눌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신 지 거의 이천 년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에서 무엇을 하고 계실까요?

 

우리를 위해 저택을 준비하고 계실 것입니다.

또 믿는 자들에게 상급을 주기 위해 모든 것을 녹화하고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영광 중에 계신

우리의 구원자께서 하시는 핵심적인 일은 따로 있습니다.

 

히브리서 7장을 보겠습니다.

 

율법은 아무것도 완전하게 하지 못하였으나 주께서 더 나은 소망을 가져오심은

완전하게 하였으므로 우리가 이 소망을 힘입어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느니라.

또한 그분께서는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지 아니하셨으니

(그 제사장들은 맹세 없이 되었으나 이분은 자기에게 말씀하신 분을 힘입어

맹세로 되셨느니라. , 주께서 맹세하셨고 또 뜻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계통에 따른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그런 것으로 말미암아 예수님께서는 더 나은 상속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그들이 참으로 다수의 제사장이었던 것은 죽음으로 인해

그들이 항상 있지 못하였기 때문이로되

이 사람은 항상 계시므로

변할 수 없는 제사장 직분을 소유하시느니라.”(7:19-24)

 

율법의 체계 아래에서는 제사장이 있었습니다.

제사장은 일시적으로 하나님과 인간을 연결해 주는 일을 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께 제물을 가져오면 제사장은 그것을 받아서

제물을 가져온 사람을 대신해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은 일 년에 단 한 번만 지성소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대제사장을 제외한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과 직접 대면하지 못하고

지성소 밖에 있어야 했습니다.

 

종교적이고 독실하고 신실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율법 체계 아래서는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교제를 나눌 방법이 없었습니다.

 

왜 대제사장이 계속 바뀌었는지 아십니까?

 

그들은 수명에 한계가 있는 인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이 죽으면 다른사람이 그 자리를 이어받았습니다.

대제사장이 죽으면 사람들은 그를 땅에 묻었고 땅에 묻힌 그 대제사장의 몸은

계속 땅 속에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경은 지난 이천 년 동안 신약교회의 대제사장은 단 한 분밖에 없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는 수많은 대제사장이 있었지만

왜 교회에는 이천 년 동안 단 한 분의 대제사장만 있었는지 아십니까?

 

왜냐하면 우리의 대제사장은 죽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은 영원히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또 다른 제사장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25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그분께서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해 중보 하심을 보건대

그분은 또한 자기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오는자들을 끝까지 구원하실 수 있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살아계십니다. 영원토록 살아계십니다.

따라서 믿음으로 그분 앞에 나아오는 사람을 위해 중보해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