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도

사도 바울은 모든 믿는 자들이 두 가지를 알기를 원했습니다

거듭난 삶 2023. 9. 16.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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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이기심 때문에 응답받지 못하는 기도 3

 

왜 우리 주위에 있는 형제들이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잘못된 행동만을 하는 것일까요?

 

아마 그 이유는 우리가 그들이 영적으로 성장하도록 기도하지 않고

그들의 잘못된 행동을 지적하기만 하고 비난하기만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른 형제들이 육신적이고 자신이 영적이라고 생각한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알려주신 것을 형제들에게도 알려주시고 여러분이 주님을 아는 만큼 다른 형제들도

주님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들의 영적 성장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우리가 왜 다른 형제 자매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지 아십니까?

 

왜냐하면 우리의 육신은 다른 형제를 위해 기도하기보다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을 즐기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영은 다른 형제를 위해 중보하기를 원하지만

우리의 육신은 다른 형제의 잘못을 지적하기를 원합니다.

 

너무나도 많은 경우에 우리는 영을 따르기보다 육신을 따라갑니다.

 

여러분과 제가 다른 형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함께 무릎을 꿇고

다른 형제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보다 훨씬 더 쉽습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믿는 자들이 두 가지를 알기를 원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부르심 소망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며,

둘째는 성도들 안에 있는 그분의 상속 유업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

아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이란 무엇일까요?

 

로마서 8장과 빌립보서 3장과 히브리서 5장을 보겠습니다.

 

구원받기 위해서라면 교회에 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구원을 유지하기 위해 교회에 다닐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영적으로 성장하고 많은 열매를 맺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역교회에 함께 모여 다른 형제 자매들과 교제를 나눠야 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다른 그리스도인이 없이는 결코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으로 성장한 사람인지 그렇지 못한 사람인지는

상관없습니다.

 

다른 형제자매들과 함께 지역교회로 모여 부딪히고 배우고 섬겨야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우리가 무엇이 부족한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자기와 친한 한 두 사람과만 교제를 나눈다면 결코 영적으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교회로 모여 다른 사람들과 함께해야만 사랑이 무엇인지,

용서가 무엇인지, 인내가 무엇인지, 오래 참음이 무엇인지,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한다는 게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르심의 소망이란 무엇입니까?

 

먼저 로마서 8장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 곧 그분의 목적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자

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그분께서는 자신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예정하사 자신의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게 하셨나니 이것은 그분이 많은 형제들 가운데서

처음 난 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8:28-29)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부름 받았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이 설교자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합니다.

저는 목사가 되라고 부르심을 받지 않았습니다.

찬양을 하라고 부르심을 받은 것도 아닙니다.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지도 않았습니다.

구두닦이가 되라고 부르심을 받은 것도 아닙니다.

 

저는 구원받아 거듭난 그리스도인으로서 저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내어드려

이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드러내기 위해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저의 부르심입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기 위해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을 여시어 에베소에 있는 믿는 사람들

도 자신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한가지 목적을 위해 주님께서 허락하신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때 그 일이 왜 일어났는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부자가 되게 하거나 성공하여

잘 나가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처럼 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지식과 지혜와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처럼 되게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간구했던 것도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빌립보서 3장을 보겠습니다.

 

형제들아, 나는 내가 이미 붙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다만 이 한 가지 일을

행하나니 곧 뒤에 있는 그것들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그것들에 도달하려고

나아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높은 부르심의 상을 받으려고

푯대를 향해 밀고 나아가노라.”(3:13-14)

 

바울이 하는 말은 자신이 경주를 하고 있는데 결승점을 통과하면 예수 그리스도처럼

변화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아갈 방향이 바로 이것이며

우리가 간구해야 할 것도 바로 이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인생의 목표로 삼아야 할 가장 큰 목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처럼 되는 것입니다.

 

이것에 비하면 다른 모든 일들은 작은 일이며 하찮은 일일 뿐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의 눈을 여시어 알게 하기를 원했습니다.

그것은 우리 교회의 규모가 커지는 것도 아니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며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사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바울이 간절히 바라던 것은 우리의 인생이

예수 그리스도의 인생과 같아지는 것이었습니다.

 

로마서에서는 우리가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병들었을 때 그가 낫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죽는 것이 하

나님의 뜻인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병을 통해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지고 병에서 나아 남은 인생을 온전히 하나님께 바쳐서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게 그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뜻인지 혹은 그가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게 하나님의 뜻인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합니다.

그에게 어떤 일이 생길지는 모르지만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닮아가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그저 자신들의 편안한

삶을 위해서만 기도합니다.

자신들의 육신을 기쁘게 해 줄 것을 위해 기도합니다.

복권에 당첨되게 해 주시고 방언을 할 수 있게 해 주시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이기적인 욕망을 채워주시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기도한 것은 성도들이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사는 게 아니었습니다.

성도들이 자신들의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었습니다.

 

성도들의 인생의 목적은 물질적인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처럼 되는 것입니다.

 

목표가 무엇인지 분명히 보게 된다면 한눈팔지 않게 될 것입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흔들리거나 낙담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일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우리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을

막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영적 성장을 위해 충분한 시간을 들여 기도하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5장을 보겠습니다.

 

그분께서는 친히 육체로 거하던 때에 자기를 사망으로부터 능히 구원하실 분에게

강렬한 부르짖음과 눈물로 기도와 간구를 드리셨고 또 친히 두려워하셨으므로

하나님께서 들으셨느니라.

그분께서 아들이실지라도 친히 고난받으신 일들로 말미암아 순종하기를 배우

사 완전하게 되셨으므로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원한 구원의

창시자가 되시고”(5:7-9)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이셨으며 인간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시기 전에는 인간의 굶주림의 고통이 무엇인지

체험적으로 알지는 못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시기 전에는 인간의 목마름이 무엇인지

체험적으로 알지는 못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시기 전에는 매를 맞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체험적으로 알지는 못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시기 전에는 자신의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한다는 게 무엇인지 체험적으로 알지는 못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심으로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좋은 환경을 통해 순종을 배우신 게 아니라 고난을 통해 배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순종을 배우심으로 완전하게 되셨습니다.

여기서 완전하다는 것은 죄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완전한 구원자가 되셨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고난과 순종으로 구속사역을 완수하여 완전한 구원자가 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고난으로부터 건져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고난을 주지 말아 달라고 기도합니다.

 

죽음이 없으면 부활도 없습니다.

십자가 없이는 영광도 없습니다.

고난이 없이는 영적 성장도 없습니다.

 

우리는 허들 경기를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믿는 사람들의 시선이 허들이 아니라 결승점에 가 있기를 원했습니다.

허들을 바라보고 달렸다가는 거기에 걸려 넘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승점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달려야만

장애물을 제대로 뛰어 넘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도생활은 우리가 결승점(예수 그리스도, 영적인 것)을 바라보는지

혹은 장애물(세상, 고난)을 바라보는지에 대한 증거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믿음의 경기를 완주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고난을 당할 때에도 계속해서 예수님을 바라보며 그것을 이겨낼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고난을 받을 것이고 어려운 때를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어려운 때와 고난으로 인해

경기를 포기하지 않도록 서로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