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거듭난 삶 2024. 7. 10.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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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와 부활

 

로마서 425:

 

예수의 우리 죄 때문에 넘겨주신바 되고, 또 우리들의 의 위해(의 인정 위해-‘의롭다하심을 얻게 하시려고가 아니다) 다시 살아 나셨다’(로마서 4:25, 일본어 역)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개정개역 한글)

 

 

바울이 남긴 말 중에 일언으로 그리스도교의 전부를 다 말한 것은 적지 않다.

 

로마서의 이 일절 같은 것은 확실히 그 하나이다.

잘 이 일절을 아는 자가(해득하는 자가) 그리스도교를 해득한 자라고 생각한다.

 

예수는 그 적인(敵人)의 손에 넘겨지고, 그들의 죽이는 바로 되었다. 그것은 명백한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그 자신의 죄로 인하여 이 굴욕을 맛보신 것은 아니다.

 

그는 우리들 위해, 전 인류 위해, 특히 우리들 그를 믿는 자 위해 그 쓴잔을 마신 것이다.

 

실로 그는 우리들의 허물()로 인하여 상하심을 받고,

우리들의 불의를 인하여 죽임(분쇄) 당하신 것이다(이사야서 53:5).

 

하나님은 예수로서(통하여) 우리들의 죄를 벌하시고, 그를 믿는 우리들을 의롭다하여,

또한 그 자신 의로우심의 길을 마련하신 것이다(로마서 3:26).

 

예수는 십자가에 올라가, 우리를 대신하여 벌 받으신 것이다.

그의 고통에 의해 우리들의 과거의 죄는 사함 받은 것이다.

 

이는 옛 복음이다.

 

현대(지금)의 목사, 신학자, 교회 신자들이 조소하는 바의 복음이다.

하지만 이 복음 없이 고뇌하는 양심은 치유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 스스로 징계를 받아 우리에게 평안을 주셨도다. 그가 채찍에 맞아 상함으로서 우리들은 치유되었도다’(이사야서 53:5).

 

내가 행할 수 있는 선행에 의해서가 아니다, 내 노력에 의한 심령의 청정에 의해서가 아니다.

 

예수가 내 죄 위해 벌 받으심에 의해, 나는 하나님 앞에 서서 깨끗함을 얻을 수 있고, 내 죄의 소멸을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이다.

 

나는 내 심령의 실험에 의해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 모든 죄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신다’(요한 제11:7)

사도 요한의 말을 문자대로 해석하여 주저하지 않는 것이다.

 

예수는 우리들의 죄로 인하여 적인에게 넘겨지고, 그 죽이는 바로 되셨다.

 

그러나 그것이 만사의 끝은 아니었다. 그는 죽음에 매어 있을 자는 아니었다.

그는 다시 살아나셨다. 하나님은 그를 다시 살아나게 하셨다.

 

그러나 우리들 위해 죽으신 그는 홀로 그 자신 위해서만 다시 살아나신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예수의 위덕을 가상하시어 그 한 분에게 부활의 은혜를 내려주신 것은 아니다.

 

예수의 죽음은 우리들 위해 있었던 것 같이, 그의 부활도 역시 우리들 위해서였다.

 

일본역 성서에 우리들 의롭다하심을 얻게 하시려고라고 있음은 확실히 오역이다.

 

원어의 그대로 우리의 의 위해 (의롭다 인정되기 위하여)’로 역해야 할 것이다.

 

예수는 우리들의 죄로 인하여 넘겨지고,

우리들의 의 위해(의롭다 인정된 증거로) 다시 살아나신 것이다.

 

하나님은 예수의 죽음으로서 우리들의 죄를 벌하시고, 그의 부활로서 우리를 의롭다 하신 것이다. 예수의 참사는 우리들의 죄의 증거이다.

 

그 같이, 그의 부활은 우리들의 의(이미 의롭게 된)의 증거이다.

 

우리들의 죄의 두려움을 보려하는가?

이것을 예수의 십자가에서 볼 것이다.

 

우리들의 의의 아름다움을 보려는가?

이것을 부활에 있어서 볼 것이다.

 

예수는 인류 특히 신자의 대표자이시다.

그러므로 그의 죽음이 대표적이고, 또 그의 부활도 대표적이었다.

 

하나님은 예수로서(예수 통하여) 인류를 벌하시고,

또 그로서(그에 있어서) 인류를 의롭다 하신 것이다.

 

예수의 죽음은 인류의 심판이다.

그의 부활은 인류의 창영(昌永)이다.

 

하나님은 이미 예수 안에서 인류의 죄를 사하시고, 그리고 입혀주신 것이다.

 

인류의 수형은 이미 그에게 있어서 그치고, 그들의 영광도 그에게 있어서 획득된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 편에서는 인류의 죄는 이미 전부 제거되고, 인류는 이미 영광을 옷 입혀진 것이다.

 

지금은 다만 인류가 하나님의 이 은혜의 배여에 응하느냐 아니냐, 그 문제가 남아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 문제의 해결이란, 지극히 용이한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가 신앙으로서 하나님의 이 배여에 응하여, 지금, 즉시에, 하나님께서 예수로써 인류에게 내려주신 모든 복지를 자기 것으로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인류는 지금은 이미 구원된 상태에 놓여 있을 뿐이다.

그리고 신자는 신앙으로써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하여 이 축하할(복스러운) 상태에 들어간 자이다.

 

예수에 있어서 인류의 구원은 이미 이룩된 것이다.

 

실로 구원은 인류가 자기 이상을 따라(추구하여) 마침내 도달할 수 있는 가경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예수께 있어서(예수를 통해) 내려주신 인류 기득의 특권이다.

 

내 죄의 사면은?

나는 이것을 예수의 십자가에 있어서 본다.

나는 날마다 세 번 자신을 반성하여 스스로 깨끗이 하려 하지 않는다.

나는 내 성결(정결)을 도덕의 이행에 있어서 구하지 않는다. 다만 예수의 십자가를 우러러본다. 거기서 내 죄는 제거되고, 나는 깨끗해진 것이다.

예수는 나 대신하여, 그 피로서 모든 죄에서 나를 깨끗이 하셨다’.

 

내 부활은?

이것 역시 이미 예수에 있어서 행해진 것이다.

나는 지금은 부활의 유무에 대하여 논전함의 필요는 없다.

나는 이미 예수에 있어서 다시 산 것이다.

 

하나님은 나를 의롭다 하신 까닭에 예수를 다시 살리신 것이다.

예수의 부활은 그 자기 한 분 위한 부활은 아니다.

인류 위한 부활인 것으로서, 모든 믿는 자의 부활이다.

 

인류가 죄를 범한 까닭에, 그 대표자이신 예수는 죽음에 넘겨졌던 것이다.

 

그리고 인류의 죄가 사유된 까닭에, 그 대표자이신 예수는 죽음의 매임에서 풀려나, 부활 승천하신 것이다.

 

인류에게 임해야 할 것은,

선악 모두 그 대표자이신 예수에게 임했던 것이다.

 

우리들은 인류의 운명을 예수의 전기에 있어서 읽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의 다시 사신 것을 보고, 인류의 죄, 특히 신자의 죄,

옳다, 내 죄가 이미 제거되고, 나는 이미 하나님의 아들인 자유로 예정된 자임을 아는 것이다.

 

예수는 우리들의 죄를 인하여 넘겨지고, 우리들의 의 위해 (의로 된 까닭에) 다시 살아나셨도다.’

 

이것이 복음이다.

 

사람에게 향하여 너희는 노력 분투하여 완전한 역에 달하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너희는 이미 구원되고, 이미 구속(救贖)되었으니,

믿고 그 구원과 구속을 자기 것으로 하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은 이미 구속된 시대에 있어서 생존하고 있는 것이다.

인생은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에 의해 이미 일변한 것이다.

 

구원은 인류가 이에 도달하기 전에 이미 일변한 것이다.

구원은 인류가 이에 도달하기 전에 하나님에게서 이미 인류에게 임한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의 선전자(전도자)는 예언자의 말로서 외치는 것이다.

 

너희 하나님의 말씀하시기를 위로하라, 너희는 내 백성을 위로하라 친밀히 예루살렘에게 말하고, 속삭여(정답게) 고하라 그 복역의 때가 이미 끝나고 그 허물(죄과), 이미 사해졌도다’(이사야서 40:1-2)라고

 

인류의 구원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의해 이미 성취된 것으로 보는 것이, 신약성서가 말하는 그리스도교이다.

 

이른바 현대인의 그리스도교가 그 이론이 훌륭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사람을 구원하는 힘(능력)이 없는 것은 이 단순한 진리를 알지 못하는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그리스도교란 무엇인가'라는 제목 아래, 지난여름, 기독교 청년회 하기학교에서 행한 강연의 초고이다)

 

*내촌감삼의 로마서 주석에서 발췌 및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