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얻는 구원
성 경: [롬 10:5-7]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6)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7) 혹 누가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롬 10:5]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 모세가 기록하되 - 레 18:5에서 인용된 것으로 모세의 말이 인용된 것은 모세가 유대인의 율법을 세운 자였기 때문이다.
(레 18:5 너희는 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인하여 살리라 나는 여호와니라)
여기에서 모세는 율법을 지킴으로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사상은 '사람이 준행하면 그로 인하여 삶을 얻을 하나님의 율례'라는 표현을 통하여 구약 여러 부분에 걸쳐 나타나고 있으며,
(느 9:29 다시 주의 율법을 복종하게 하시려고 경계하셨으나 저희가 교만히 행하여 사람이 준행하면 그 가운데서 삶을 얻는 주의 계명을 듣지 아니하며 주의 규례를 범하여 고집하는 어깨를 내어밀며 목을 굳게 하여 듣지 아니하였나이다;
겔 20:11 사람이 준행하면 그로 인하여 삶을 얻을 내 율례를 주며 내 규례를 알게 하였고,
13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광야에서 내게 패역하여 사람이 준행하면 그로 인하여 삶을 얻을 나의 율례를 준행치 아니하며 나의 규례를 멸시하였고 나의 안식일을 크게 더럽혔으므로 내가 이르기를 내가 내 분노를 광야에서 그들의 위에 쏟아 멸하리라 하였으나,
21 그러나 그 자손이 내게 패역하여 사람이 준행하면 그로 인하여 삶을 얻을 나의 율례를 좇지 아니하며 나의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였고 나의 안식일을 더럽혔는지라 이에 내가 이르기를 내가 광야에서 내 분을 그들의 위에 쏟으며 내 노를 그들에게 이루리라 하였으나)
또한 신약에 넘어와서도 그 사상을 계승되고 있다.
(7:10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마 19:17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눅 10: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갈 3:12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라 이를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하지만 문제는 누가 과연 이 율법을 완전히 지킬 수 있느냐 하는 데에 있다.
연약한 인생 중에서는 어느 누구도 율법을 완전히 지킬 수 없다.
(3:9-18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10)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13)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18) 저희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오직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만이 자신의 생애와 죽음을 통하여 율법의 요구를 완전히 이루시고,
(8:3-4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자기를 믿는 자에게 구원을 보장해 주신 유일한 분이시다.
(히 5:8-9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9)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 - '율법에서 난 의'는 율법을 행함으로써 얻는 의이다.
이는 9:31, 32에 나오는 '행위에서 나온 의의 법'을 말한다.
(9:31-32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율법은 행함을 요구하며 죄를 알게 하기 위한 방편으로, 나아가 하나님의 은혜로운 판결을 받는 길이었다.
(레 18:5 너희는 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인하여 살리라 나는 여호와니라;
겔 20:11 사람이 준행하면 그로 인하여 삶을 얻을 내 율례를 주며 내 규례를 알게 하였고,
13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광야에서 내게 패역하여 사람이 준행하면 그로 인하여 삶을 얻을 나의 율례를 준행치 아니하며 나의 규례를 멸시하였고 나의 안식일을 크게 더럽혔으므로 내가 이르기를 내가 내 분노를 광야에서 그들의 위에 쏟아 멸하리라 하였으나,
21 그러나 그 자손이 내게 패역하여 사람이 준행하면 그로 인하여 삶을 얻을 나의 율례를 좇지 아니하며 나의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였고 나의 안식일을 더럽혔는지라 이에 내가 이르기를 내가 광야에서 내 분을 그들의 위에 쏟으며 내 노를 그들에게 이루리라 하였으나;
눅 10: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따라서, 율법을 완전히 지키며 행할 것을 언급한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죄성(罪性)은 율법을 완전히 수행할 수 없다.
결국 이스라엘은 의의 법을 좇아 갔지만 법이 요구하는데 까지는 이르지 못하였다.
(9:31 의의 법을 좇아간 이스라엘은 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유대교의 구원 교리에 따르면,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려면 율법이 구체적으로 성취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렇게 율법을 성취하여 그 공로로 말미암아 구원이 보장되고, 하나님으로부터 죄의 용서를 받게 된다고 보았다(Strack-Billerbeck).
그러나 율법은 한계를 가지고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법에 대한 약속을 하셨고,
(렘 31:3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오순절의 성령 보내심으로 성취되었다.
(욜 2:28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따라서 이제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방편은 믿음이고, 믿음으로 구원이 보장되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죽으심과 부활로 모든 율법의 요구를 이루시고 믿는 자들의 의가 되셨기 때문이다.
[롬 10:6]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 본 구절은 앞절(5절)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와 대조를 이루어 상대적으로 강조되어 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의(righteousness)가 나타났음은 바울의 종말론적(eschatological)이며 기독론적(christological)인 가르침의 기본 구조이다(Ridderbos).
그리스도의 죽음은 종말론적 측면에서 하나님의 심판이며 의롭다하는 판결의 표시이다.
옛 시대(old aeon)와 옛 사람이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심판을 받았고 생명에 이르게 하는 새 창조가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어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를 의롭게 했다.
▶ 이같이 말하되 - '믿음에서 난 의'를 의인화시켰다.
이런 수사법은 바울 당시 철학적 연설을 할 때 종종 쓰였다.
의인화 용법으로써 5절의 '율법으로 말미암은 의'와 대조하여 '믿음에서 난 의'를 생생하게 표현한 것이다.
▶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 본 구절은 70인역(LXX)의 신 30:12에서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신 30:12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꼬 할 것이 아니요)
본 구절은 구약적 문맥에 비추어 보면 율법을 행함으로써 하나님의 의롭다하심을 얻으려고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하늘에 오르는 것은,
(1) 사람으로서 불가능할 뿐 아니라,
(2) 이런 교만한 생각은 그리스도의 승천하심을 믿지 않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바울은 본 구절을 통해 율법으로 의를 구하려는 자들의 교만함과 그들의 망상을 지적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근본 핵심은 버리고, 자신들의 유전과 행위를 통해 하늘, 즉 의에 이르려는 것은 불가능하다.
▶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 '하지 말라'의 헬라어 '메 에이페스'는 '말하지 말라'는 의미이다.
'믿음을 통한 의'는 율법을 통해 의를 이룰 수 없음을 알고 있다.
▶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 이미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여 승천하셨고 이것이 역사 속에서 실제로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이를 부인하였다.
이는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를 인정치 않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성육신을 통해 그들 중에 오셔서 생명을 주셨지만 그들은 이 사실을 믿지 않았다.
[롬 10:7] 혹 누가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 누가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 '음부'는 6절의 '하늘'(우라논)과 그 높고 깊음에서 대조를 이룬다.
음부의 헬라어 '아뵤소스'는 히브리어 '테홈'대신 사용된 말이다.
'테홈'은 '물들의 깊음'이나,
(창 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바다의 깊음'을 표현하는 데에도 사용되었다.
(시 107:26 저희가 하늘에 올랐다가 깊은 곳에 내리니 그 위험을 인하여 그 영혼이 녹는도다)
본문의 의미는 죽은 자들이 있는 곳인 '땅의 깊은 곳',
(시 71:20 우리에게 많고 심한 고난을 보이신 주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시며 땅 깊은 곳에서 다시 이끌어 올리시리이다),
즉 히브리어 표현으로는 '스올'(Sheol)을 의미한다. (Murray, Hodge, Cranfield).
(시 139:8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암 9:2 저희가 파고 음부로 들어갈지라도 내 손이 거기서 취하여 낼 것이요 하늘로 올라갈지라도 내가 거기서 취하여 내리울 것이며)
음부에 내려가는 것은 인간으로서 불가능한 일이며 그리스도께서 신자들을 살리기 위해 당하신 죽음을 믿지 않는 것으로 이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무효(無效)로 하는 것이며 부인하는 것이다.
▶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다 - '모셔 올리는'의 헬라어 '아나가게인'은 부활을 언급할 때 쓰인다.
(히 13:20 양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이스라엘 중에 이스라엘인들의 메시야로 오신 예수를 믿지 않은 그들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사실을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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