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친 상간의 죄
[고린도 교회 내의 성적 부도덕]
성 경: [고전 5:1-8]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이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라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비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2)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물리치지 아니하였느냐
3)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4)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5)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
6) 너희의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7)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8)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
[고전 5:1]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이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라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비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 '음행'(πορνεία 포르네이아)이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다른 사람의 육욕을 위해 자신의 몸을 파는 행위를 뜻하지만, 보편적인 의미로는 불법적인 성행위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헬라어 본문에 의하면 '심지어'가 본문 초두에 나와 있는데 이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이미 벌어졌음을 시사한다.
바울은 본서에서 두 가지를 강조하고 있다.
(1) 그들 가운데 음행이 성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며,
(2) 이 추악한 음행을 그들 가운데 있는 모든 사람들이 널리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당시의 부도덕한 성행위가 보편화되지 않고 일부 사람들에게만 행해지는 제한된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에서 보다 심각한 문제는, 그러한 범죄가 교회로부터 정죄(定罪)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모두 자기들 속에 음행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으며 또한 바울에게까지 소식이 들릴 만큼 그 행위는 공공연한 것이었다.
한편 '들었다'는 '∼라는 소문이 들리더라'는 것이다.
이는 고린도 교회로부터 들었다는 것인지, 아니면 고린도 교회에 음행이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로부터 들었다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대체적으로 글로에의 집 식구들에 의해 전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Farrar)
(1:11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서 너희에게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뿐만 아니라 이것은 널리 퍼져 있는 사실이기에 여러 경로(소문)를 통해서 들었을 것으로 여겨진다.(Lenski)
▶ 이방인 중에라도 없는 것 - 유대인의 율법에는 이런 죄를 범한 자는 돌로 쳐 죽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레 18:8 너는 계모의 하체를 범치 말라 이는 네 아비의 하체니라;
신 22:30 사람이 그 아비의 후실을 취하여 아비의 하체를 드러내지 말지니라)
이러한 율법의 내용을 알고 있는 바울이 구태여 여기서 이방인과 비교한 것은 더 이상 재고의 가치도 필요없는 아주 경멸스런 행위로 취급하기 위함이다.
당시 고린도 지방은 성적 문란과 방종으로 소문난 곳이었으나, 바울은 그 이방인의 문란보다 더 큰 죄악이라고 규정 함로서 자신의 분노를 반영(反映)하고 있다.
한편 바울이 '이방인 중에라도 없는 것'이라고 말한 것은 이방인들은 이러한 범죄를 전혀 저지르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본절은 당시 이방인들 사이에서도 가장 치욕스러운 죄로 취급하는 추악한 행위임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Calvin).
▶ 그 아비의 이내를 취하였다 - 바울은 이 사건을 '간통'이나 '근친상간'이라는 말로 표현하지 않고 '그 아비의 아내를 취하였다'고 하여 음행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여기서 '그의 어머니'라고 표현하지 않고 '아비의 아내'라는 표현을 쓴 것으로 보아 그 음행이 최소한 '그의 어머니'(친모)와의 관계 속에서 빚어진 음행은 아닌 것 같다.(L. Morris).
사실 본문에는 그 여인의 정체가 무엇인지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그 대상이 '아비의 아내'였다는 점과 '아내'로 번역된 헬라어 '귀나이카'란 뜻으로 '계모'(메트뤼이아)라는 말과 거의 뜻을 같이 하기 때문에 '아내'는 아버지의 첩이거나 의붓 어머니일 수 있다.(Farrar, Calvin)
한편 '취하였다'는 이 음행 사건이 단회적이지 않고 지금도 지속적(持續的)인 반복 행위임을 시사한다. 따라서 여기서 '아비의 아내를 취하였다'는 말은 계모와의 관계에서 성적 부정이 계속 진행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고전 5:2]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물리치지 아니하였느냐
▶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 그들은 도대체 어떤 지식과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방인들도 정죄하는 음행을 저지르면서도 원통하게 생각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교만할 수 있었는가?
그들은 그리스도의 공동체 속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옛 이방인의 생활 습관을 미처 다 버리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에게 있어서 문제가 되는 것은 그 괴이한 악행 가운데서도 여전히 회개 할 줄 몰랐고 버젓이 그리스도인 이라는 명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F. W. Farrar).
그들은 음행 사건으로 인하여 적어도 수치스러워하며, 그들의 공동체 속에서 발생한 불미스러운 일들로 인하여 자신들을 되돌아보아 최소한 통한히 여기는 모습으로 주의 용서와 은혜를 구했어야 했다.
여기서 '통한히 여기지'는 '죽은 자로 인하여 애통한다'는 의미로 죄에 대한 신자들의 반응이 어떻게야 되는지를 나타낸다.
즉 그들은 자신들이 주장한 자유와 방종으로 인하여 죄악이 성행하게 되었다는 공동체적인 책임을 느껴야만 했다.
(6:12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아무에게든지 제재를 받지 아니하리라;
10:23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그러나 그들은 공동체적인 책임은 고사하고 오히려 자신들이 영의 사람이 됨으로 말미암아 모든 육체적 일들로부터 자유하게 되었다는 또 다른 교만과 거짓으로 더 큰 죄악을 범하고 있었다.
이처럼 형제의 죄악을 보고 애통할 수 있는 사랑을 잊어버린 교회가 분열과 분쟁을 격을 뿐만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추악한 성적 타락으로 인하여 고통당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바울은, 음행한 자에 대해 무관심 내지 방조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죄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만 가운데 있던 고린도 교인들을 크게 책망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1) 그리스도인들의 연대적(連帶的) 책임성과 지체 의식,
(2) 무관심과 교만은 이웃을 향한 사랑의 실천을 방해하는 범죄라는 점,
(3) 어떠한 죄악 가운데서도 회개의 은총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다.
(5절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
[고전 5:3]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 '떠나 있다'라는 표현은 그 의미가 매우 선명하다. 그는 지금 고린도 지방을 떠나 제3차 전도여행 중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함께 있다'는 '곁에 있다', '가까이 있다' 또는 '왔다'라는 뜻으로 공관 복음서에서 '왔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눅 11:6 내 벗이 여행 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 하면)
행 17:6에서는 '이르렀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는데,
(행 17:6 발견치 못하매 야손과 및 형제를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질러 가로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본절에서는 몸이 떨어져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영은 그들과 '함께 있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골 2:5 이는 내가 육신으로는 떠나 있으나 심령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의 규모와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 믿음의 굳은 것을 기쁘게 봄이라)
한편 '영'이라는 표현은 바울에게 있어서 주로 하나님의 영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으나,
(롬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고후 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갈 4:6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여기서는 바울 자신의 '영'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마음'(카르디아)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Farrar)
즉 멀리 떨어져 있는 교회와 영으로, 곧 마음으로 함께 있음을 의미한 것이다.
아울러 본절의 심각성을 생각할 때 바울이 영으로 그들과 함께 하여 문제를 해결하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심정이 강하게 암시되어 있다.
▶ 거기 있는 것 같이 이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 음행한 자들에 대한 바울의 태도는 매우 단호하다.
그들을 향한 심판이 이미 선고되었음을 강조한다.
한편 이러한 표현은 판결의 순간에 그들과 함께 실제로 있었던 것과 같은 확실성과 자신이 함께 한 심판의 권위가 다시 번복(飜覆)될 수 없다는 절대성을 강조하고 있다.
[고전 5:4]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
바울은 자신의 판단이 독단적이거나 판협된 것이 아님을 증거하고 그들이 스스로 모임을 갖고 자신들의 판단에 의하여 음행한 자들을 징계할 것을 촉구한다.
고린도 교인들은 자신들 속에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여야 하며 그곳에서 새로운 발전의 기회를 모색해야 한다.
바울은 '주 예수의 이름'으로 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그들에게 용기를 주고자 하였다.
여기서 '예수의 이름'과 '예수의 능력'은
(1) 일차적으로 분열된 그들을 하나로 모으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며,
(2) 이차적으로는 음행하는 자들을 추방할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주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한편 '너희가 함께 모여서'는 그 일들의 결정을 위한 단회적 모임을 시사하며, 이 회집이 그리스도인들만의 회집임을 시사한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에 예수의 이름과 능력(能力)이 함께 한다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그들의 판단 기준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음을 설명하고 음행한 자에 대한 징계가 정당하고 합법적임을 증거하며 나아가 교회의 징계는 인간의 힘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권위에 근거를 두고 있음을 밝힌 것이다.(Harris)
따라서 예수 안에서 자신의 영이 그들과 하나되어 이미 그가 판단한 것과 같은 판단을 내려줄 것을 바울은 기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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