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화는 저자가 독일 바이에른의 한 멤버십 클럽 입구에서 '당한' 일이다. 독일 태생으로 60대 후반인 저자는 클럽 지배인으로부터 매몰차게 쫓겨났다. 그가 흑인 분장을 했기 때문이었다. 이게 다가 아니다. 저자는 '손님'으로 곤돌라를 탔다가 웨이터 취급을 당했고, 아파트를 구하러 갔다가 별별 핑계 끝에 거절당했다. 등산 모임, 캠핑장, 축구경기장, 주말농장, 애완견 훈련캠프, 그 어디서도 사람 대접을 받지 못했다. 법적 제재 때문에 에둘러 차별하던 사람들도 술 한 잔 마시면 '까만 사람' '검둥이' '초콜릿(흑인을 비하하는 은어)'이라며 대놓고 반말하며 폭력으로 위협했다.
저자 귄터 발라프(68)는 독일의 '암행취재 전문' 언론인이다. 1960년대 초 철강회사 광부로 위장취업해 첫 작품 '우리는 당신이 필요하다'를 낸 이후 알코올중독자, 노숙자, 터키 출신 이주노동자로 위장해 특별한 체험을 한 후 기사와 책, 영화를 통해 전달하고 있다. 2007년부터 2년여에 걸쳐 암행취재한 후 이 책에서 다룬 대상은 일곱 가지이다. 아프리카 출신 흑인, 노숙자, 전화 판매 콜센터 직원, 대형마트에 납품하는 빵공장 노동자, 스타벅스 커피점 판매원 등이다. 저자가 이들 업종에 위장취업한 이유는 세계화의 화려한 그늘 뒤에서 상대적으로 더욱 암담한 삶을 이어가는 계층의 실상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 프로네시스 제공
저자가 들이미는 '몰래카메라'를 지켜보노라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엄동설한에 길바닥의 침낭에서 잠을 청하는 노숙자 생활을 하던 저자는 30년 만에 만난 노숙자 부자(父子) 이야기를 전한다. 네 살 때 아버지의 실직으로 온 가족이 흩어지며 고아원에서 자란 34세 아들 미샤와 53세 아버지 헬무트가 공원에서 함께 노숙하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연히 자신들이 부자간임을 알게 됐고, 이후 같이 노숙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방적으로 전화를 걸어 물건이나 복권을 판매하는 콜센터 직원도 세상의 비정함을 느끼게 한다. 전화를 거는 저자의 등 뒤에는 '코치'가 복권을 강매하도록 강요한다. 심지어 정부 보조금으로 겨우 살아가는 최저생계의 사람들이 전화를 받았을 때조차도 "고객님도 이제는 인생의 밝은 면을 보실 때가 되셨잖아요! 카리브해에 한 번 가보고 싶은 생각 없으세요?"라고 유혹하라고 가르친다. "양심은 집에 놓고 오라"는 것이 코치들의 직업관이다. 대형마트가 정한 파격적인 가격에 맞춰 납품하느라 빵공장은 직원을 쥐어짠다. 이 공장의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만든 빵을 집에 가져가지 않는다. 제조 공정의 불결함을 잘 알기 때문이다.
저자는 위장취업을 위해 마라톤과 철인3종 경기로 몸을 만든다. 그런 다음 위장취업 현장에서 폭행 위협을 당하고, 달아오른 빵 기계에 화상(火傷)을 입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그가 보여주는 것은 '종이 한 장 차이' 저편의 세상이다. 편견, 무관심, 무신경, 눈앞의 이익으로 포장된 '멋진 신세계' 이면의 세상이다. 저자는 후기에서 "나는 더 나은 세상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그것을 위해 싸우는 용기를 보여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힘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용기있는 사람들의 수는 여전히 너무 적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