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활동하는 작가 이창래는 더 이상 미국 출판계의 이방인이 아니다. 첫 번째 소설 『영원한 이방인(Native Speaker·1995)』으로 미국 문단의 주요 6개 상을 휩쓴 후 『제스처 라이프(A Gesture Life·1999)』 『어로프트(Aloft·2004)』 등 내놓는 작품마다 찬사를 받고 있다.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쓴 최근 소설 『항복자(The Surrendered·2010)』 역시 페이퍼백(보급용판)이 발간될 정도로 호평을 받고 있다. 모국을 ‘심상 속에 지고 뜨는 내면의 달’ 같은 존재라고 말하는 이창래씨를 만났다.
LA중앙일보 유이나 문화전문기자
●『항복자』에 대한 호평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작가로서는 어떤 평가를 하십니까?
"자신의 작품에 만족해하는 작가는 없을 겁니다. 저 역시 책이 출판된 후에는 늘 아쉬움이 있지요. 이 책에도 미진함이 없지 않았지만 오래전부터 써보고 싶었던 한국전쟁을 소재로 작품을 만들어냈다는 만족감은 느끼고 있습니다.”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가 ‘보편적 삶에 완벽하게 접근해 주인공의 아픔과 기억, 치유를 공유하게 한다’고 평하고 있습니다. 실제 이야기에 근거해서일까요?
“그렇다고 봅니다. 바로 제 부모님의 아픔과 치유가 담겨 있으니까요. 한국전쟁의 참상을 저는 아버님한테 전해 들었습니다. 평양이 고향인 아버님은 남한으로의 피란길에서 2명의 형제를 잃으셨습니다. 여동생은 폐렴으로 사망했고 남동생은 피란 열차 지붕 위에서 떨어져 세상을 떠났지요. 아버님은 한국전쟁 이야기를 하실 때마다 늘 형제 잃은 아픔을 되뇌셨고, 저는 아버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국전쟁의 참상과 이로 인한 한인들의 상처를 느끼곤 했습니다. 『항복자』의 첫 부분을 아버님의 형제 잃은 추억으로 쓴 것은 바로 이 소설 탄생의 배경 설명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항복자』는 집필 기간이 6년 정도 걸리셨지요. 특별한 이유라도?
“이유라기보다는 워낙 방대한 내용에 주요 인물이 3명이나 돼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 다른 소설에는 늘 주인공이 한 명이었어요. 그 인물 주변으로 이야기가 펼쳐지기 때문에 이번 작품처럼 복잡하지 않았고 글 쓰는 시간도 훨씬 짧았지요. 한국전쟁은 한국인의 관점에서뿐 아니라 세계적 시각으로 볼 때도 결코 쉽게 이해되지 않는 역사적 사건입니다. 이데올로기와 정치관의 변질, 가족 간의 생이별 등 삶의 근원을 뒤흔드는 엄청난 역사적 사건이었지요. 이런 배경을 깔고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다 보니 훌쩍 6년이 지났던 겁니다. 저자로서도 원래 의도했던 것보다 너무 시간이 걸리는 바람에 출판사에 미안했습니다. 이제 페이퍼백이 나왔으니 책이 잘 팔려 출판사에 대한 미안함을 갚았으면 해요.”
●『항복자』의 배경은 1950년대부터 80년대까지입니다. 현재로 이야기를 끌고 오지 않은 이유가 있나요?
“현재까지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면 주역들이 너무 나이가 많아요. 이들이 가장 심오하게 생을 받아들이고 사고하는 나이에 맞추려다 보니 80년대로 정해졌습니다.”
●탈북자 문제가 심각한데요.
“북한에서 자유를 잃은 채 굶주리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어서 빨리 그 지옥 같은 세계에서 모두 빠져나오기를 바랍니다. 아마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되기를 기원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한국인이면서 60년 동안을 감옥보다 더 암울한 독재체제 아래 핍박받아온 북한 사람들은 당연히 남한 국민들이 누리고 있는 자유를 되찾아야 할 권리가 있지요. 어떠한 방법을 취하든 탈북자는 보호돼야 합니다. 한국도 미국 정부도 이들이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와 생존권을 부여받을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해야 합니다. 이 세상 어떤 곳에서든 인권은 무엇보다 소중하고 귀한 것입니다.”
●통일이 된다면 언제쯤 될까요?
“어서 빨리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솔직히 이른 시일 내에 통일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요즘 중동 민주화 시위에 견주어 북한의 체제 붕괴가 논의되고 있는데 전문가들은 이도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분석하잖습니까. 안타까운 일이지요. 만약 이른 시일 내에 통일이 된다 해도 역시 엄청난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겠지요. 그래도 정책적 면이 아니라 인본적 차원에서 통일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것이 아닐까 하고 기대합니다.”
●출판된 소설 중에 가장 마음에 와 닿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아이들이 누가 제일 예쁘냐고 물으면 어머님들은 대답하시지요. 다섯 손가락 깨물어 봐라. 특별히 더 아픈 손가락 있더냐. 작품을 대하는 제 느낌도 그렇습니다. 작품 하나 하나를 쓸 때마다 모두 특별하게 교류합니다. 감정의 농도가 아니라 색이 다를 뿐이지요. 그러나 작가들은 대부분 첫 작품에 각별한 느낌이 있을 겁니다. 저도 그렇고요. 모든 사람에게 첫사랑이 특별하듯이.”
●다음 작품으로 구상하고 있는 주제가 있으신가요?
“다음에는 이런 소설을 써 보자고 계획한 적은 없습니다. 그저 계절이 돌아오듯이 자연스럽게 제 마음에 주제가 떠오르면 그때 스토리를 쓰기 시작하지요. 소설은 끝없는 가능성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저의 경우도 계획은 오히려 스토리를 방해합니다. 그저 불현듯 다가오는 심상을 잡는 것이 저에게는 작가로서 누릴 수 있는 엄청난 환희입니다.”
●주로 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내용을 쓰셨지요.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은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저의 아이덴티티는 늘 글의 풍부한 자원이 되었습니다. 솔직히 어린 시절에는 이민자 가정의 아이로서 부끄러움도 느꼈겠지요. 그러나 이런 감정조차 저에게는 작가로 키워준 동력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남들보다 자아에 대해 좀 더 고민했을 테고 좀 더 많은 성찰이 있지 않았을까요. 깊이 생각한다는 것만큼 작가에게 훌륭한 영양제는 없을 겁니다.”
●작가를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조언을 하신다면.
“많이 읽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분야에 제한을 두지 말고 폭넓게 많이 읽어야 합니다. 또한 습작도 빼놓을 수 없이 중요하겠지요. 책을 읽을 때는 내용을 이해하려 애쓰기 전에 작가도 되고 책 속 인물로 변신도 하면서 스스로 스토리와 상황에 직접 빠져들어 느껴야 합니다. 책에 대한 탐욕과 쓰고자 하는 열정 없는 작가가 과연 가능할까요.”
●잘 쓰여진 글의 기준은 뭔가요?
“사실과 진실을 쓴 글입니다. 소설은 상상과 허구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 역시 세상에 존재하는 사실과 진실에서 벗어나면 좋은 글이라고 할 수 없지요. 글에 진심이 담겨 있어야 독자들도 작가와의 감정적 교류가 가능합니다.”
『항복자』에 쏟아진 찬사
뉴욕 타임스 “눈 뗄 수가 없다”
워싱턴 포스트 “전쟁 교훈 그 이상의 것”
“전쟁의 공포와 생존의 슬픔을 그린 소설이다. 조용하고,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필치로 이를 그려냈다.” 뉴욕 타임스는 지난해 3월 이창래씨의 신작 소설 『항복자』를 이렇게 평가했다. 이 신문뿐 아니라 책이 발간되자마자 주류 언론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서평을 쏟아냈다. 미국 문학계에서 이창래 작가의 존재감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계기였다.
뉴욕 타임스에서 문학 평론가 테렌스 레퍼티는 『항복자』가 전작들과 달리 1인칭 화자가 아닌 3인칭 전지적 작가시점에서 스토리를 전개, 생생한 캐릭터들을 대거 창조해낼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씨에겐 1인칭 작법이 더 어울린다. 하지만 이번에 과감한 모험을 통해 등장인물들이 겪는 운명과 도전의 영역을 확장했다.” 그는 이씨의 끈기에도 찬사를 보냈다. “소설가가 끈덕진 투지로 500쪽에 가까운 아름답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쓰는 건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씨는 인내로 그걸 이뤘다.” 뉴욕 타임스는 2000년에도 이씨를 미국 문단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로 선정하기도 했다.
워싱턴 포스트 역시 같은 해 3월 “소설을 통해 독자들은 전쟁이 주는 교훈을 넘어, 등장인물들의 삶을 공유하는 경험을 맛보게 될 것”이라고 평했다. 다만 단점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야기 전개의 흐름을 끊는 멜로 드라마적 에피소드와 모호한 구성이 그렇다는 것이다.
뉴요커 잡지는 ‘극도로 잘 쓰인 책’(extremely well written)이라는 최상의 찬사를 붙여 줄거리와 함께 비평을 자세히 소개하기도 했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도 “작품을 통해 독자들은 등장인물의 갈망과 슬픔을 느낄 수 있다”면서 “죽음이 스며든 작품이지만 소설의 매 페이지는 숨 막히게 살아 있다”고 표현했다.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 전승희 연구원은 인천문화재단의 ‘플랫폼’(2010년 5·6월호) 기고를 통해 “소설이 미국 대중의 주목을 받는 건 미 주류사회가 지난 60년간 한국전쟁을 ‘잊혀진 전쟁’으로만 기억한 점을 고려할 때 참으로 반가운 일”이라며 “미국 사회가 마침내 한국전쟁의 참 의미를 대면하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김준술 기자
이창래
재미교포 작가. 서울에서 태어나 세 살 때 의사인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했다. 예일대와 오리건대 대학원을 졸업한 뒤 1995년 데뷔작 『영원한 이방인』으로 미국 문단에 등단했다. 사설탐정으로 한국계 시의원을 감시하는 임무를 맡은 젊은 뉴요커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으로 헤밍웨이재단상·펜문학상·미국도서상 등을 수상했다. 이어 일제시대 위안부 문제를 다룬 소설 『제스처 라이프』로 아니스펠트-울프상과 아시아·아메리카문학상을 받았다. 한국인 위안부를 도우려다 실패한 일본 군의관이 주인공이다. 월스트리트에서 증권분석가로 일하기도 했던 그는 오리건대 교수로 재직했으며, 2002년 7월부터 미국 동부의 명문 프린스턴대 인문학 및 창작과정 교수로 일하고 있다.
LA중앙일보 유이나 문화전문기자
●『항복자』에 대한 호평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작가로서는 어떤 평가를 하십니까?
"자신의 작품에 만족해하는 작가는 없을 겁니다. 저 역시 책이 출판된 후에는 늘 아쉬움이 있지요. 이 책에도 미진함이 없지 않았지만 오래전부터 써보고 싶었던 한국전쟁을 소재로 작품을 만들어냈다는 만족감은 느끼고 있습니다.”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가 ‘보편적 삶에 완벽하게 접근해 주인공의 아픔과 기억, 치유를 공유하게 한다’고 평하고 있습니다. 실제 이야기에 근거해서일까요?
“그렇다고 봅니다. 바로 제 부모님의 아픔과 치유가 담겨 있으니까요. 한국전쟁의 참상을 저는 아버님한테 전해 들었습니다. 평양이 고향인 아버님은 남한으로의 피란길에서 2명의 형제를 잃으셨습니다. 여동생은 폐렴으로 사망했고 남동생은 피란 열차 지붕 위에서 떨어져 세상을 떠났지요. 아버님은 한국전쟁 이야기를 하실 때마다 늘 형제 잃은 아픔을 되뇌셨고, 저는 아버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국전쟁의 참상과 이로 인한 한인들의 상처를 느끼곤 했습니다. 『항복자』의 첫 부분을 아버님의 형제 잃은 추억으로 쓴 것은 바로 이 소설 탄생의 배경 설명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항복자』는 집필 기간이 6년 정도 걸리셨지요. 특별한 이유라도?
“이유라기보다는 워낙 방대한 내용에 주요 인물이 3명이나 돼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 다른 소설에는 늘 주인공이 한 명이었어요. 그 인물 주변으로 이야기가 펼쳐지기 때문에 이번 작품처럼 복잡하지 않았고 글 쓰는 시간도 훨씬 짧았지요. 한국전쟁은 한국인의 관점에서뿐 아니라 세계적 시각으로 볼 때도 결코 쉽게 이해되지 않는 역사적 사건입니다. 이데올로기와 정치관의 변질, 가족 간의 생이별 등 삶의 근원을 뒤흔드는 엄청난 역사적 사건이었지요. 이런 배경을 깔고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다 보니 훌쩍 6년이 지났던 겁니다. 저자로서도 원래 의도했던 것보다 너무 시간이 걸리는 바람에 출판사에 미안했습니다. 이제 페이퍼백이 나왔으니 책이 잘 팔려 출판사에 대한 미안함을 갚았으면 해요.”
●『항복자』의 배경은 1950년대부터 80년대까지입니다. 현재로 이야기를 끌고 오지 않은 이유가 있나요?
“현재까지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면 주역들이 너무 나이가 많아요. 이들이 가장 심오하게 생을 받아들이고 사고하는 나이에 맞추려다 보니 80년대로 정해졌습니다.”
●탈북자 문제가 심각한데요.
“북한에서 자유를 잃은 채 굶주리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어서 빨리 그 지옥 같은 세계에서 모두 빠져나오기를 바랍니다. 아마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되기를 기원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한국인이면서 60년 동안을 감옥보다 더 암울한 독재체제 아래 핍박받아온 북한 사람들은 당연히 남한 국민들이 누리고 있는 자유를 되찾아야 할 권리가 있지요. 어떠한 방법을 취하든 탈북자는 보호돼야 합니다. 한국도 미국 정부도 이들이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와 생존권을 부여받을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해야 합니다. 이 세상 어떤 곳에서든 인권은 무엇보다 소중하고 귀한 것입니다.”
●통일이 된다면 언제쯤 될까요?
“어서 빨리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솔직히 이른 시일 내에 통일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요즘 중동 민주화 시위에 견주어 북한의 체제 붕괴가 논의되고 있는데 전문가들은 이도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분석하잖습니까. 안타까운 일이지요. 만약 이른 시일 내에 통일이 된다 해도 역시 엄청난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겠지요. 그래도 정책적 면이 아니라 인본적 차원에서 통일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것이 아닐까 하고 기대합니다.”
●출판된 소설 중에 가장 마음에 와 닿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아이들이 누가 제일 예쁘냐고 물으면 어머님들은 대답하시지요. 다섯 손가락 깨물어 봐라. 특별히 더 아픈 손가락 있더냐. 작품을 대하는 제 느낌도 그렇습니다. 작품 하나 하나를 쓸 때마다 모두 특별하게 교류합니다. 감정의 농도가 아니라 색이 다를 뿐이지요. 그러나 작가들은 대부분 첫 작품에 각별한 느낌이 있을 겁니다. 저도 그렇고요. 모든 사람에게 첫사랑이 특별하듯이.”
●다음 작품으로 구상하고 있는 주제가 있으신가요?
“다음에는 이런 소설을 써 보자고 계획한 적은 없습니다. 그저 계절이 돌아오듯이 자연스럽게 제 마음에 주제가 떠오르면 그때 스토리를 쓰기 시작하지요. 소설은 끝없는 가능성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저의 경우도 계획은 오히려 스토리를 방해합니다. 그저 불현듯 다가오는 심상을 잡는 것이 저에게는 작가로서 누릴 수 있는 엄청난 환희입니다.”
●주로 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내용을 쓰셨지요.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은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저의 아이덴티티는 늘 글의 풍부한 자원이 되었습니다. 솔직히 어린 시절에는 이민자 가정의 아이로서 부끄러움도 느꼈겠지요. 그러나 이런 감정조차 저에게는 작가로 키워준 동력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남들보다 자아에 대해 좀 더 고민했을 테고 좀 더 많은 성찰이 있지 않았을까요. 깊이 생각한다는 것만큼 작가에게 훌륭한 영양제는 없을 겁니다.”
●작가를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조언을 하신다면.
“많이 읽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분야에 제한을 두지 말고 폭넓게 많이 읽어야 합니다. 또한 습작도 빼놓을 수 없이 중요하겠지요. 책을 읽을 때는 내용을 이해하려 애쓰기 전에 작가도 되고 책 속 인물로 변신도 하면서 스스로 스토리와 상황에 직접 빠져들어 느껴야 합니다. 책에 대한 탐욕과 쓰고자 하는 열정 없는 작가가 과연 가능할까요.”
●잘 쓰여진 글의 기준은 뭔가요?
“사실과 진실을 쓴 글입니다. 소설은 상상과 허구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 역시 세상에 존재하는 사실과 진실에서 벗어나면 좋은 글이라고 할 수 없지요. 글에 진심이 담겨 있어야 독자들도 작가와의 감정적 교류가 가능합니다.”
『항복자』에 쏟아진 찬사
뉴욕 타임스 “눈 뗄 수가 없다”
워싱턴 포스트 “전쟁 교훈 그 이상의 것”
“전쟁의 공포와 생존의 슬픔을 그린 소설이다. 조용하고,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필치로 이를 그려냈다.” 뉴욕 타임스는 지난해 3월 이창래씨의 신작 소설 『항복자』를 이렇게 평가했다. 이 신문뿐 아니라 책이 발간되자마자 주류 언론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서평을 쏟아냈다. 미국 문학계에서 이창래 작가의 존재감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계기였다.
뉴욕 타임스에서 문학 평론가 테렌스 레퍼티는 『항복자』가 전작들과 달리 1인칭 화자가 아닌 3인칭 전지적 작가시점에서 스토리를 전개, 생생한 캐릭터들을 대거 창조해낼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씨에겐 1인칭 작법이 더 어울린다. 하지만 이번에 과감한 모험을 통해 등장인물들이 겪는 운명과 도전의 영역을 확장했다.” 그는 이씨의 끈기에도 찬사를 보냈다. “소설가가 끈덕진 투지로 500쪽에 가까운 아름답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쓰는 건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씨는 인내로 그걸 이뤘다.” 뉴욕 타임스는 2000년에도 이씨를 미국 문단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로 선정하기도 했다.
워싱턴 포스트 역시 같은 해 3월 “소설을 통해 독자들은 전쟁이 주는 교훈을 넘어, 등장인물들의 삶을 공유하는 경험을 맛보게 될 것”이라고 평했다. 다만 단점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야기 전개의 흐름을 끊는 멜로 드라마적 에피소드와 모호한 구성이 그렇다는 것이다.
뉴요커 잡지는 ‘극도로 잘 쓰인 책’(extremely well written)이라는 최상의 찬사를 붙여 줄거리와 함께 비평을 자세히 소개하기도 했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도 “작품을 통해 독자들은 등장인물의 갈망과 슬픔을 느낄 수 있다”면서 “죽음이 스며든 작품이지만 소설의 매 페이지는 숨 막히게 살아 있다”고 표현했다.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 전승희 연구원은 인천문화재단의 ‘플랫폼’(2010년 5·6월호) 기고를 통해 “소설이 미국 대중의 주목을 받는 건 미 주류사회가 지난 60년간 한국전쟁을 ‘잊혀진 전쟁’으로만 기억한 점을 고려할 때 참으로 반가운 일”이라며 “미국 사회가 마침내 한국전쟁의 참 의미를 대면하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김준술 기자
이창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