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욕망의 성지로 변한 '홍대 앞'

거듭난 삶 2011. 8. 14.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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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성지로 변한 '홍대 앞'…예술과 문화 '실종'

  • 뉴시스

 

입력 : 2011.08.14

 
"홍대만의 독특한 문화를 만든 예술가들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욕망이라는 괴물이 가득 채웠어요."

1980년대부터 예술가들의 작업실이 하나둘 생기고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이 몰리면서 인디문화 등 홍대만의 독특하고 실험적인 문화를 꽃피우던 홍대 앞.

'예술의 거리', '문화 해방구'라는 명성까지 얻었던 홍대 앞에는 최근 터줏대감 노릇을 하며 '홍대 문화'를 일궈낸 예술인들이 떠나면서 문화와 예술은 실종된 반면 각종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2000년대 클럽 문화가 활성화되면서 홍대 앞은 유동인구가 많아지고 덩달아 상권이 커지면서 상업화의 물결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돼버렸다. 이로 인해 유명하지 않아도 아무런 제약 없이 누구든 무대에 오를 수 있는 자유가 사라지고 자기만의 독특한 예술 작업에 몰두하는 예술가들이 점점 외곽으로 쫓겨나고 있다. 홍대 앞에서만 유일하게 느낄 수 있는 홍대 문화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쓰나미'급으로 밀려드는 상업화 때문에 사라지는 홍대 앞 문화를 지키고 예술가들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높은 임대료 때문에…' 가난한 예술인들 홍대서 쫓겨나

홍대 앞의 정확한 지명은 서울 마포구 서교동. '홍대'라는 말로 더 많이 불리는 이곳에 최근 홍대만의 특유한 문화를 일군 예술인들을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하루가 멀다 하고 치솟는 임대료 탓에 홍대 문화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예술가들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이 지역을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하는 신진 예술인과 예전부터 터를 잡고 활동한 중견 예술인들에게도 이제 홍대 앞 임대료는 감당하기 벅찬 수준까지 올랐다.

홍대 앞에서 15년째 부동산을 운영하고 있는 최동렬(55)씨는 "몇 년 전까지 해도 주차장 골목의 5평짜리 가건물은 월세 50만~60만원 정도였는데 지금은 위치에 따라서 최고 500만원이 넘는 곳도 있다"며 "유동인구가 많아지고 상권이 발달하다 보니 자본을 앞세운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들어오면서 땅값도 많이 상승했다"고 말했다.

최씨는 "가난한 예술가들이 젊음과 열정만 믿고 홍대 앞에 둥지를 틀었던 시대는 사실상 끝났다"며 "예전에는 작은 작업실이라도 얻기 위해 젊은 예술인들이 발품을 팔고 다녔는데 지금은 뚝 끊겼다"고 덧붙였다.

생존경쟁에 내몰린 예술인들은 목숨보다 아낀다는 작업실을 떠나 문래동과 상수동 등 변두리로 밀려났다.

홍대 앞 예술의 거리에서 월세 80만원(보증금 1000만원) 지하 작업실을 얻어 10년 넘게 작품 활동을 하던 판화가 박모(43)씨는 최근 작업실을 상수동으로 옮겨야 했다.

박씨는 지난 4월부터 건물주가 월세를 200만원까지 올려달라고 요구해 새 작업실을 찾아 한 달 넘게 발품을 팔았지만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결국 박씨는 월세를 감당하기 힘들어 홍대 앞 중심가를 떠나 상수동 주택가 세탁소 옆에 새 둥지를 틀었다.

박씨는 "홍대 앞이 거대 자본으로 인한 상업화로 예술인들을 밀어내고 욕망만 가득한 곳으로 변질되고 있다"며 "홍대 문화를 만든 것은 가난한 예술인들인데 치솟는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어 모두 떠나버린다면 홍대 앞에는 과연 무엇이 남을지 의문"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전문가들은 홍대만의 독특한 문화를 발전시키 위해 무엇보다 문화를 생산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서강대학교 사회학과 전상진 교수는 "문화를 창출하고 전파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사이에 소통을 통해 발전한다"며 "문화 생산과 전파에 중요한 한 축 담당하고 있는 예술인들이 홍대 외곽 주변부로 밀려나는 현상을 방치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정부나 지자체가 문화적 다양성과 지속성을 바탕으로 발전시키니 위해서는 홍대만의 독특하고 살아있는 문화도 일종의 문화 유산이라고 인지해야 한다"며 "임대료 상승제한을 적용해 터무니없이 오른 임대료를 낮춰 예술인들의 창작 활동을 보장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예술인들이 빠져나가 상업화만 남은 홍대 앞에는 홍대 문화를 일군 주역들은 생존경쟁에 내몰려 갈 곳을 잃고 헤매고 있다.

◇클럽, 돈 안되는 인디밴드는 사라지고 '부비부비'만 남아

"인디밴드들이 마음껏 공연할 수 있는 라이브 클럽이 없어지면 홍대 문화도 사라지는 겁니다."

지난 12일 오후 8시 홍대 앞 라이브 공연을 하는 A클럽. 10평 남짓한 공연장에는 4~5명이 공연을 즐기고 있었다. 이날 클럽에 들어온 유료관객은 고작 6명에 불과했다. 이날 공연을 한 인디밴드 멤버들 숫자보다 적었다.

A클럽을 운영하고 있는 고윤경(38·여)씨는 "하루 수입이 7만원에 불과해 전기세 내기도 벅찬데 임대료까치 치솟아 더 이상 운영하기 힘들다"며 "예전 홍대에는 음악과 공연 문화가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지금은 춤을 추는 클럽 중심으로 이동하다보니 클럽 문화가 선정적이고 노골적으로 변질됐다"고 토로했다.

음악 공연 외에도 시낭송회 등 다양한 문화 행사가 열리는 클럽들은 이미 심각한 경영난을 겪어 임대료가 저렴한 상수동이나 문래동 등으로 이사했거나 아예 문을 닫은 경우가 허다하다고 했다.

실제 홍대 일대에서 라이브 음악 공연을 하거나 시낭송회 등을 하는 클럽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라이브 클럽에서 공연을 하는 이효연(26·여)씨는 "라이브 클럽이 점점 사라져 음악 공연을 하는 밴드들이 홍대에서 설 자리가 없다"며 "조만간 '부비부비'를 하는 댄스 클럽 외에 다른 클럽들은 전부 사라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같은 시각 춤을 출수 있는 유명 댄스 클럽 앞에는 입장들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자정 전까지 무료입장 이벤트를 벌이는 클럽들을 중심으로 길게 늘어선 줄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클럽 안으로 들어서자 시끄러운 음악소리에 맞춰 춤을 추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였다. 특히 남녀가 밀착해 몸을 비비는 이른바 '부비부비'를 하는 커플(?)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대학생 서모(27)씨는 "과거에는 인디밴드 공연 등을 하는 클럽을 중심으로 문화가 형성됐는데 지금은 그런 클럽들을 찾기 힘들 정도로 많이 없어졌다"며 "주말에 댄스 클럽 앞에서 길게 늘어선 줄을 볼 때마다 홍대 클럽만의 독창적인 문화가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01년부터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 홍대 앞 주요 클럽들을 티켓 한 장으로 출입할 수 있는 '클럽데이(Club Day·클럽을 즐기는 날)'가 지난 2월 중단됐다.

클럽데이 수익을 모아 공평하게 배분하는 시스템이었지만 대형 댄스 클럽과의 수익금 배분 문제와 상업화 논란 때문이다.

하지만 4개월 만에 클럽데이가 다시 재개됐다. 새로 시작된 클럽데이는 댄스 클럽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라이브 클럽들은 참여하지 않는다.

라이브 공연 클럽이 참여하지 않다보니 홍대 클럽 문화의 다양성이 파괴되고 점점 유흥 문화로 변질되고 있다.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라이브 클럽들은 문을 닫아야 할지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라이브 클럽을 운영중인 이모(44)씨는 "댄스 클럽 문화도 일종의 홍대 문화라고 볼 수 있지만 홍대 클럽 문화의 가장 큰 특징은 음악과 공연 등 다채로운 문화가 공생하는 것"이라며 "유흥 문화쪽으로만 치우치다 보면 결국 홍대를 찾는 사람들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며 고개를 떨궜다.

라이브 클럽들은 클럽데이와 별도로 지난달부터 매월 마지막 주 일요일마다 새로운 프로그램을 신설해 인디밴드와 실력파 밴드 위주로 공연을 펼치고 있다.

이미 상업화 밀린 라이브 클럽들이 음악과 공연 등 다양한 예술장르가 어우러졌던 홍대만의 독창적 클럽 문화를 다시 회복할지 아직은 미지수다.

◇낮과 밤이 다른 홍대 놀이터

젊음과 인디밴드 문화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홍대 놀이터. 단촐한 음향장비와 기타 하나만으로도 가난한 인디밴드들의 공연이 펼쳐지고 프리마켓과 같은 독특한 행사들이 수시로 열리는 홍대를 대표하는 곳이다.

불볕 더위가 기승을 부린 지난 10일 오후 5시 홍대 놀이터에는 더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열띤 문화 공연들이 펼쳐졌다.

대학생 최성원(22)씨와 김주원(24)씨는 놀이터 가운데서 빠른 비트음악에 맞춰 현란한 '요요' 묘기를 선보였고 다른 한 곳에서는 이름 없는 인디밴드의 공연과 헌옷이나 생활용품 같은 중고물품을 현장에서 사고 파는 벼룩시장도 열렸다.

놀이터에는 공연을 구경하기 위해 친구들과 놀러온 고등학생과 사진기를 들고 나온 가족들, 뛰노는 아이들로 활기가 넘쳤다. 또 다정하게 손을 붙잡고 공연을 즐기는 연인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이들은 공연이 끝나자 박수갈채를 쏟아내며 환호했다.

공연을 마친 황정운(23)씨는 "홍대에서 라이브 클럽들이 많이 사라져 자유롭게 공연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 홍대 놀이터"라며 "관객들과 허물없이 소통할 수 있는 놀이터에서 자주 공연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공연을 지켜본 시민들은 홍대 놀이터에 대해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자유롭게 예술과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곳이라고 평가했다.

대학생 박영주(24·여)씨는 "수시로 공연이 열리고 자유롭게 공연을 접할 수 있어 자주 찾는다"며 "이미 상업화에 물들어버린 홍대에서 홍대만의 독특하고 창의적인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유일한 해방구"라고 말했다.

회사원 최성희(36·여)씨는 "비싼 돈을 들이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공연을 즐기다 보면 감성이 풍부해지고 스트레스도 모두 없어진다"며 "이곳에 올때 마다 예술과 문화가 결코 멀리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하지만 해가 뉘엿뉘엿 지자 사정이 달라졌다. 홍대 놀이터를 포함해 홍대 일대는 어느덧 젊은이들로 가득찼다.

미니스커트 수준을 넘어 허벅지가 훤히 드러나 보기 민망할 정도로 짧은 치마를 입거나 몸에 꽉 끼는 과감한 의상을 입은 젊은 여성들이 댄스 클럽 앞을 서성이며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또 홍대 앞 길거리에는 성매매를 암시하는 듯한 자극적인 내용의 문구가 새겨진 수백여장의 음란 전단지가 나부끼고 있었다. 또 유흥업소가 밀집한 골목 안쪽에는 종업원들이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전단지를 나눠 주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자정이 넘어갈 무렵 홍대 놀이터 주변에는 맥주병과 먹다 남은 음식들이 뒤엉켜 악취를 풍기고 있었다. 또 맥주 캔을 들고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춤을 추는 외국인들과 몸을 가눌수 없을 만큼 술에 취해 길바닥에 주저 앉은 여성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특히 주위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지나친 애정행각을 행각을 벌이는 남녀들도 많았다. 좁은 골목길에서 요란한 굉음을 내며 내달리는 오토바이족까지 등장하자 홍대 놀이터 주변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돌변했다.

문화와 예술이 실종된 채 아수라장으로 돌변한 이곳을 찾은 시민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홍대 놀이터 앞에서 악세사리 노점을 운영하는 김모(37)씨는 "술에 취한 여성부터 길거리 한복판에서 움이 하루가 멀다하고 일어나는 곳이 홍대"라며 "문화가 사라지고 욕망만 남은 홍대 앞에서는 매일밤 전쟁아닌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말했다.

회사원 이정하(28·여)씨는 "밤만 되면 걸어다니가 무서울 정도로 변해 버린 홍대는 다시 찾고 싶지 않다"며 "술에 비틀거리는 사람들도 많고 싸움도 쉽게 목격할 수 있는 홍대 앞에 과연 문화와 예술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씁쓸해 했다.

불야성을 이루던 홍대 앞. 새벽 5시를 넘어 환경미화원들이 청소를 시작하고서야 지난밤 아수라장의 흔적을 지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