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추억에는 바보가 없지요

거듭난 삶 2009. 5. 21.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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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억에는 바보가 없지요

 

영화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Driving, Miss Daisy.를 보셨습니까? 1989년도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영화입니다. 부잣집 유대인 노마님 데이지와 흑인 운전수 호크의 잔잔한 일상을 감동적으로 그린 영화인데 오랫동안 기억과 마음에 남을 만한 좋은 영화이지요.


그 영화 중반 즈음에 시골길을 달리다가 길옆에 차를 세워놓고 잠깐 쉬는 동안에 노마님 데이지는 그 곳을 다녀갔던 어린시절을 아이 같은 얼굴로 회상합니다. 그리고는 멋쩍은 표정으로 호크에게 말합니다.


“내가 좀 바보 같아 보이지요?” (Isn't that a silly thing to remember?)


그러자 호크가 대답합니다.


“추억에는 바보가 없지요.” (No sillier than what most folks remember.)


위에서 보는 대로 원문과 비교하여 보면 이 번역은 사실에 충실한 문자적 번역이라기보다는 의미 전달을 중요시한 의역 쪽으로 더 가까운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번역자에게 큰 박수를 보냅니다. ‘추억에는 바보가 없지요.’ 참으로 멋진 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기억들을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습니까? 많은 것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에는 어리석었던 추억, 바보 같이 행동했던 추억, 뭔가 잘 못하여 벌 받던 추억, 너무나 부끄러워서 지금까지 쉬쉬해왔던 추억, 그리고 못 말리게 울고 짜며 징징거렸던 추억도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에이 그 땐 참 바보 같았어.”라고 말은 하지만 그 말을 하고 있는 당신의 입술은 분명히 미소를 짓고 있을 것입니다. 후회가 막심한 어떤 일이라고 하여도 이미 그것들이 당신의 마음속에 아름다운 장면들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놀랍지 않습니까? 얼마나 다행입니까, 사고와 질병 따위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난 일상의 일들이 아름다움으로 승화되어있다고 하는 것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바보 같은 추억’은 없고, 또한 그래서 ‘추억에는 바보가 없습니다.’ 추억에는 오직 애틋함과 설렘과 즐거움으로의 아름다움뿐입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는 ‘추억을 먹고 산다’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즉, 나이가 든 사람들에게 추억이란 소중한 것 중에서도 앞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라는 말이지요. 그렇습니다. 추억은 지난 일들에 대한 기억이므로 나중에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아팠던 기억이나 가난했던 기억들도 뒷날에 바꿀 수 있는 것은 결코 없습니다.


그러한 점에서 볼 때에 ‘추억은 마음의 양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오래 전에 담그어 놓은 묵은지를 꺼내어 먹는 것과 같다고도 할 수도 있겠지요. 사람이 한 80평생을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것들이 많이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고 구하려고 하는 것의 대부분은 ‘몸’에 필요한 것들입니다. 먹을 것, 입을 것, 지낼 곳 등이 그것입니다.


물론, 그러한 것들은 꼭 필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몸이 사는 것’이 삶의 전부라고 생각지 않는 이들이 확신하는 것은, 먹고 입는 것보다는 마음의 평안이 더욱 소중한 것이며 이 평안이 없이는 아무리 금과 은과 산해진미를 쌓아 놓아도 불행한 삶의 시간만이 거듭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권면을 드리고 싶습니다. 육체에 필요한 것은 ‘일용할 것’으로 만족하고 쌓아 놓지 마십시오. 염려와 근심이 날마다 가중되어지고 후손들의 불화를 만들어내게 될 것입니다. 그보다는 어느날 갑자기 내 곁에 다가온 만년의 삶을 위해서 언제라도 다시 꺼내어 현재의 흐뭇함과 즐거움으로 누릴 수 있는 아름다운 일들을 추억으로 만들어 놓으십시오. 치아가 부실하여져서 세상의 기름진 것을 먹지 못하게 되었다고 하여도 마음의 즐거움이 가득한 사람은 ‘감사와 찬양의 날들’을 이어가게 됩니다.


나이 든 이들의 건강함은 ‘입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으로 되는 것입니다. 날마다 마음속에서 샘솟듯이 나올 것이 많은 사람은 그래서 행복한 것이지요. 어린 날의 꾸러기 추억들처럼 젊은 날의 선한 일들로 많은 추억들을 만들어서 부지런히 마음에 담아두어야 할 이유는 이것입니다.     


창고에 모아둔 것이 풍성한 사람들이 염려와 근심을 떠나지 못하는 것에 반하여 마음에 풍성한 것을 쌓아둔 사람들은 염려와 근심으로 허비하고 낭비할 시간들이 없습니다.


“추억에는 바보가 없습니다. 그러나 바보 같은 사람은 양식이 될 만한 추억을 만들지 못합니다.”


산골어부 김홍우 목사 09-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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