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와 사랑 안에 거하라”
요한 3서 1절-3절 : 인사말
[요삼1:1 장로는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나의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
☞ 장로는 사랑하는 가이오...편지하노라.
사도 요한의 세번째 편지는 매우 개인적인 것으로 수신자 가이오에 대한 깊은 애정과 관심이 글 전반에서 발견된다.
이 편지는 바울이 빌레몬에게 보냈던 것과 성격상 유사하다.
요한은 본절에서 자신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장로'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
'장로'는 사제나 감독처럼, 일정지역에서 영향있는 지도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직임을 나타내는 듯하다.
한편 수신자인 '가이오'는 당시에 흔한 이름이었으며 그 뜻은 '기쁨', '환희'이다.
가이오라는 이름은 세 사람에게서 발견된다.
(1)바울이 침례를 주고, 후에 데살로니가의 첫 감독이 되었다고 전해지는 고린도의 가이오.
(롬16:23 나와 온 교회 식주인 가이오도 너희에게 문안하고 이 성의 재무 에라스도와 형제 구아도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고전1:14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주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
(2)바울의 동역자로 데살로니가와 아리스다고 그리고 에베소에서 고난을 같이 한 마게도냐의 가이오.
(행19:29 온 성이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잡아가지고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들어 가는지라)
(3)바울의 마지막 선교 여행에서 그리스로부터 마게도냐를 지나 드로아까지 동행한 더베의 가이오.
(행20:4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라)
4세기 경의 사도적 관행(Apostolical Constitutions)에 보면(vii. 46. 9). 이 세번째 가이오가 나중에 사도요한에 의해서 버가모의 첫 감독으로 임명되어진 것으로 보아 이 가이오가 본서의 수신자인 듯하다.
☞ 곧 나의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나의'는 1인칭 대명사로 흔히 생략되기 쉬우나 본절에서는 강조되어 표현되고 있다. 이는 가이오에 대한 요한의 개인적인 사랑이 돈독함을 시사한다.
'참으로'는 문자적으로 '진리 안에서'라는 의미로 가이오에 대한 요한의 사랑이 '진리 안에서' 혹은 '진리로' 행하는 사랑임을 시사한다.
[요삼1: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 사랑하는 자여...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요한은 관습적인 기원의 양식을 통해서 다시 한번 가이오를 향한 그의 개인적이고도 따뜻한 마음을 전한다.
'잘 되고'는 '좋은 길로 인도됨', '좋은 여행을 함'이란 의미를 가지나 은유적으로는 '번영하다', '성공하다'의 뜻을 가진다. 요한은 가이오의 만사가 그렇게 번영하기를 간절히 기원하고 있다.
한편 '강건하기를' 누가의 경우 튼튼하고 정상적인 사람을 묘사할 때 사용했고
(눅5:31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자에게라야 쓸데 있나니;
7:10 보내었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보매 종이 이미 강건하여졌더라;
15:27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그의 건강한 몸을 다시 맞아 들이게 됨을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바울의 경우에는 건전한 가르침에 사용했다.
(딤전1:10 음행하는 자며 남색하는 자며 사람을 탈취하는 자며 거짓말하는자며 거짓 맹세하는 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리는 자를 위함이니;
6:3-4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치 아니 하면
4 저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 네 영혼이 잘 됨같이
'영혼'은 그리스도 안에서 얻게 된 영적인 생명을 가리킨다.
(요10: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요일3: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요한이 가이오의 영적인 상태와 육신적인 상태를 비교하여 육신의 형통함과 강건함을 기원하는 것으로 보아 가이오의 영적 상태는 염려할 상태가 아니었던 듯하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들의 영적인 상태와 육신의 형통함이나 강건함은 한 편으로 치우칠 문제가 아니라 균형(均衡)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요삼1:3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
본문은 초대 교회들 사이에 2세기까지 활발히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그리스도인들의 왕래에 대해 암시하고 있다.
이것은 사회 환경의 변화나 여러 모양의 압력과 핍박으로 인한 불가피한 왕래 뿐만 아니라 서로의 격려를 통해 신앙을 굳게 세우게 하기 위한 능동적인 왕래를 내포한다.
'형제들'은 그리스도인 목회자를 지칭하기도 하며
(요일3:14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초대교회 성도들을 가리키기도 했다.
(살전1:4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
2:1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 가운데 들어감이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아나니,
14 형제들아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은 자 되었으니 저희가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너희도 너희 나라 사람들에게 동일한 것을 받았느니라)
본절은 선교 사역을 위해 여행하면서 교회에 문제가 있을 경우 특별히 방문하기도 하던 사역자인 듯하다.
☞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형제들이 요한에게 가이오에 대하여 전하여 준 것은 가이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것이었다. 가이오가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을 요한이 크게 기뻐한 것은 당시 가이오가 진정한 복음인 진리를 반대하는 거짓 교사들의 온갖 위협에도 불구하고 의연하게 복음을 지킬 뿐만 아니라 복음 안에서 행하였기 때문이다.
가이오가 하나님의 진리인 복음을 고수하며 그 안에서 행한 행위는 '사랑'으로 표현되었다.
(6절 저희가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거하였느니라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저희를 전송하면 가하리로다)
이러한 진리에 대한 고백과 고수 그리고 사랑의 표현은 상호 보완적인 것으로 그리스도인들이 갖추어야 할 성품이다.
(요이1:1 장로는 택하심을 입은 부녀와 그의 자녀에게 편지하노니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요 나 뿐 아니라 진리를 아는 모든 자도 그리하는 것은,
3-4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있으리라
4 너의 자녀 중에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에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 )
한편 '행한다'는 현재 시상으로, 가이오가 항상 진리 안에서, 진리와 더불어 사랑을 표현하면서 살고 있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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