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교사에 대한 경계
[요이1:7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거나 거부하는 자들은 곧 미혹하는 자이며 적그리스도들이다.
본절은 요일2:23,27과 4:1-3을 반영한다.
요일2:23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27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요일4:1-3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2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3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많이' 이는 수신자들이 속한 교회에서 진리를 따라 살아가는 자들은 극히 소수에 불과했으나 미혹하는 자를 따라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인하는 자들은 매우 많았음을 시사한다.
한편 '나왔나니'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1)미혹하는 자들이 자신들의 무리를 형성하기 위하여 교회에서 나왔다는 의미로 해석된다.(요일2:19 저희가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저희가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
(2)그리스도께서 하나님에게서 나와 세상에 들어오셨고(요17: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요20:21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요삼1:7 이는 저희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에게 아무 것도 받지 아니함이라)
같은 단어가 사용되는 것으로 보아 미혹하는 자들이 잘못된 자신들의 가르침을 전파하기 위하여 나왔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본절은 요일4:2(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을
반영한 것으로 미혹하는 자의 정체를 나타낸다. 미혹하는 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셨음을 부인하는 자들이다.
☞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이러한 이단자들은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자로서
(요일2:18 아이들아 이것이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이르겠다 함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줄 아노라, 22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뇨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뇨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26 너희를 미혹케 하는 자들에 관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교제를 회복한 그리스도인들을 파괴(破壞)시킨다.
(9절 지내쳐 그리스도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마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이 사람이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
[요이1:8 너희는 너희를 삼가 우리의 일한 것을 잃지 말고 오직 온전한 상을 얻으라]
☞ 너희는 너희를 삼가 우리의 일한 것을 잃지 말고 오직 온전한 상을 얻으라.
'우리의 일한 것을'에 대한 견해는 만약 수신자들이
미혹하는 자의 속임수에 넘어가 그리스도를 대적한다면 요한을 비롯한 많은 사도들이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 수고한 모든 것들이 수포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갈4:11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한편 '온전한 상'은 유대적인 표현으로
(룻2:12 여호와께서 네 행한 일을 보응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본절에서의 '온전한 상'은 그리스도인이 신실하게 행한 진리와 사랑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온전한 영생의 보상을 의미한다.
(벧전1: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요일4:14-16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거하노니
15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요이1:9 지내쳐 그리스도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마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이 사람이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
☞ 지내쳐 그리스도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마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이 사람이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
미혹하는 자와 적그리스도를 따라 행할 때 온전한 상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함을 강조한 앞 절에 이어 본절은 그리스도의 교훈에 거하지 않으면 하나님조차도 상실하게 됨을 나타낸다.
'지내쳐'는 진리를 넘어서 지나치게 나아간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미혹하는 자들이 스스로 믿음의 초보 상태를 벗어나 진보되고 성숙된 믿음을 소유하였다고 주장하는 잘못된 모습을 나타낸다.
한편 '그리스도의 교훈'에 대한 해석은 '그리스도에 관한 교훈'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가리키는 그리스도에 관한 교훈과 그리스도께서 명령하신 '서로 사랑하라'는 교훈은 결코 분리될 수 없으며
'그리스도의 교훈'은 믿음의 근본을 이루는 진리를 나타내며
'서로 사랑하라'는 진리에서 비롯된 믿음의 표현을 나타낸다.
[요이1:10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
☞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이 교훈'은 앞절에서 언급된 그리스도의 교훈을 가리키는 것으로 요한이 본서에서 특히 강조하는 '진리와 사랑'을 의미한다.
한편 본절의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는 명령은 요한의 교훈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왜냐하면 요한은 다른 사도와는 달리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특히 강조하며 나그네 된 자들을 환대해야 함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요삼1:5-8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이 신실한 일이니
6 저희가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거하였느니라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저희를 전송하면 가하리로다
7 이는 저희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에게 아무 것도 받지 아니함이라
8 이러므로 우리가 이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수고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나 본문의 '들이지도 말고'는 사적(私的)인 환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신약성경에서 '집'은 일반적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만났던 장소로서
(롬16:5 또 저의 교회에게도 문안하라 나의 사랑하는 에배네도에게 문안하라 저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익은 열매니라;
고전16:19 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및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
골4:15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과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에 문안하고)
미혹하는 자들을 '집으로 받아들이는 행위'는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미혹하는 자들을 공식적으로 환대하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요한은 교묘하게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고 거짓된 진리를 자랑하며 선전하는 자들을 강력하게 거절할 것을 권면한다.
[요이1:11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예하는 자임이니라]
☞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예하는 자임이니라.
본절은 미혹하는 자를 받아들이지도 말고 인사하지도 말라는 명령에 대한 이유이다. 미혹하는 자들과의 인사는 그들과의 만남의 시작이나 혹은 끝을 의미하는 것으로 미혹하는 자들과의 교제를 의미한다.
그들과의 교제는 그들이 저지르는 악한 일 즉, 교리적으로 그리스도께서 육체적으로 오심을 부인하는 죄와 윤리적으로 타인의 고난에 동참하는 사랑의 중요성을 부인하는 죄를 초래하게 된다.
이러한 행위에 참여하다가는 온전한 상을 상실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조차도 잃어버리고 영원한 파멸을 향하게 된다.
(마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고전 10:20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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