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마 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물체도 빛과 열을 받으면 형체가 변화합니다. 고체가 강한 열을 받으면 액체가 되고, 액체가 기체로 변화합니다.
기독교 신자는 그리스도의 빛과 열을 받아 중생(重生)하여 완전히 변화해야 합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성령을 받음을 의미합니다. 베드로는 오순절에 성령 충만 받아 겁쟁이 베드로가 하루 설교에 3,000-5,000명씩 회개케 하는 설교를 함으로 능력있는 자로 변화하였고 재판관 앞에서도 증거하기를
"육을 죽이는 자들이여 너희의 말을 들어야 하는가 생각해 보라"(행 4:19)고 담대히 외치는 베드로가 되기까지 변화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우리는 내 자체가 그리스도의 빛으로 중생(거듭남)하고 변화하여 능력있는 새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그 가운데서 다른 사람들에게 빛이 됨으로 변화케 해야 합니다. 내 자신이 먼저 거듭나지 않고서는 다른 사람을 변화시킬 수가 없습니다.
숯은 자체 그대로 두면 아무런 빛과 열이 나지 않습니다. 불이 붙어서 붉게 탈 때 다른 숯에도 불을 붙일 수가 있는 것과 같습니다.
1. 빛은 길 안내의 사명이 있습니다.
부두에 가면 등대가 있습니다. 배를 인도하기 위한 것입니다. 비행장에는 활주로에 등불이 직선으로 보입니다. 비행기가 안전하게 착륙케 하기 위함입니다.
이처럼 기독교인은 많은 사람을 생명의 길로 안내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빛을 반사하는 세상의 빛입니다.
모세가 빛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만을 앙모할 때에 하나님을 만난 그의 얼굴에 빛이 있었던 것처럼 주님의 빛이 우리에게 비칠 때에 우리의 생활에는 자연히 빛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작은 빛으로서 이 사회에 빛의 사명과 밝고 따뜻하고 변화시키는 능력, 그리고 길, 안내의 사명을 다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2. 빛은 가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둠이 깊을수록 빛은 더욱 명료하게 자신을 나타냅니다. 아무리 칠흑 같은 어둠이 빛을 삼키려 해도 빛은 어둠에 함몰되지 아니합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의 신앙은 그 무엇으로도 방해할 수 없습니다. 결코 숨기거나 가리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승천 이후 오순절에 교회가 탄생되면서부터 초대 기독교는 엄청난 박해와 시련에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사도들은 투옥되거나 순교를 당하였고, 성도들도 뿔뿔이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이제 기독교는 역사에서 사라지려는 위기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기독교는 강한 생명력을 지닌 종교입니다. 수많은 종교가 역사 속에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하였지만 기독교는 그 신앙과 함께 도도히 오늘까지 흘러 왔습니다.
정치와 권력으로도 어찌할 수 없었고, 군대를 통한 무력으로도 신앙을 잠재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기독교가 결코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빛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세상의 빛인 우리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시대가 어두울수록 빛이 그리워지듯, 말세가 가까워질수록 그리스도의 참된 빛을 모든 사람에게 비추는 성도들이 필요합니다.
오늘 세상은 문화적으로는 밝으나 영적으로는 어두운 세상입니다.
"미련한 마음들이 어두워졌고"(롬 1:21),
"저의 총명이 어두워졌고"(엡 4:18),
"세상을 흑암의 권세"(골 1:13)라 말하였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하였고"(요일 5:19)
이렇듯 세상은 사람들의 마음이 어둡고 어둠의 권세가 세력을 펴고 있기 때문에 영적으로 어두운 세상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고, 그리스도를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고, 양심이 밝은 사람보다 무딘 사람이 더 많고, 선보다 죄악이 많은 세상입니다.
머리의 지식은 늘어가지만 도의는 더욱 떨어지고, 과학은 발달하는데 미신은 더 풍성하고, 환경은 변했는데 인간성은 변화가 없는 세상입니다. 이와 같이 어두운 세상에서 작은 빛이나마 빛을 비추어 어두움을 다소나마 물리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어두움을 물리칠 수가 있는가?
(1) 빛의 열매를 맺는 생활로써 물리칠 수 있습니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엡 5:9)고 했습니다.
(2) 복음의 진리, 빛되신 예수를 전해 줌으로써 물리칠 수 있습니다.
(3) 성령의 열매 맺는 생활로써 물리칠 수 있습니다.
사랑 희락 화평 인내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갈 5:22) 등의 생활을 함으로 물리칠 수 있습니다.
3. 성도는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합니다.
빛은 어두움을 밝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던 태초의 상태를 하나님께서는 빛을 창조하심으로 밝고 광명한 세계로 바꾸셨습니다.
빛은 여러 가지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태양이나 달과 별들도 빛을 냅니다. 가로등이나 등불 그리고 날아다니는 반딧불도 제각기 빛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본문의 빛은 이러한 빛들이 아닙니다.
그것은 빛 자체이신 예수님의 모습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는 말씀은 성도로 하여금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함을 말씀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은 철저하게도 남을 위한 이타적인 삶이었습니다. 마치 한 자루의 양초가 어둠을 밝히려 자신의 몸을 녹여 빛을 발하듯 예수님께서는 거대한 어둠의 세력과 맞서 자신의 몸 전체를 불꽃처럼 사르신 분이십니다. 그가 비추인 빛은 어둠의 세력을 몰아냈으며, 이 땅에 편만하게 골고루 펴졌으며, 오늘 우리들의 마음까지도 강렬하게 비추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빛을 발하는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는 곳마다 어둠과 거짓이 물러가고, 따스한 주님의 사랑이 피어 오르며, 참된 사랑이 넘쳐야 하겠습니다.
소금이 소극적 사명이라면 빛은 적극적인 사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빛은 인간의 생활과 서로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빛이 없다면 지구 전체가 생존이 불가능합니다. 빛 없이는 초목도 자랄 수 없습니다. 빛 없이는 짐승과 벌레까지 기식할 수가 없습니다.
빛이 이렇게 세상에 꼭 있어야 하는 것처럼 신자는 세상에 꼭 있어야 할 존재입니다. (요 8:12)에서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운데 행치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하셨으니 신자의 빛은 예수에게서 온 빛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증하고 신중해야 합니다. 나는 나만이 아니요 주님의 빛을 소유한 나인 것을 생각할 때 함부로 행동하고 함부로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정신을 차리고 살아야겠고 빛의 사명이 무엇인가를 새삼 상고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요구하시고 명하신 세상의 빛의 사명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4. 빛이 미치는 역할이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팔레스틴의 가옥은 작고 둥근 창문 하나만 있어서 대단히 어두웠습니다. 등잔은 깊은 접시 모양의 그릇으로 그 안에 기름을 붓고 심지를 담아 두었습니다. 평상시에는 등잔을 거친 나뭇가지와 별반 다를 바 없는 등잔대에 얹어 두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외출할 때는 안전을 위해서 등잔불을 등잔대에서 내려 흙으로 만든 말 위에 두었습니다.
등잔불의 본래적인 직능은 사물을 보도록 비취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독교를 등잔에 비유한 것은 곧 기독교의 복음 그리고 성도들의 행실을 사람에게 보이는 목적을 갖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의 신앙은 이 사회에 등잔으로서 모든 사람에게 밝히 나타나야 되는 것입니다.
1) 양심의 빛
검은 밤중과 같이 어둡고 더러워진 양심에 무엇으로도 비취일 수가 없으나, 성도들의 의롭고 정직하고 착한 행실을 보고 양심의 부끄러움과 가책을 느끼며 올바른 양심 생활을 할 수 있게 할 것입니다.
도적질하던 사람이 회개하고, 도적한 것을 가져다가 돌려 주며, 눈물을 머금고 자복할 때, 물건 주인도 감동을 받아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왔다는 예는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2) 생활의 빛
캄캄한 죄악 길에 목자 없는 양 같이 갈 바를 알지 못하는 인생들이 누구를 본받고 따라야 할지 알지 못하고 방황하며 헤매는 때에 기독교인들이 저렇게 살아야겠다는 모범이 되고 생활의 표본(標本)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믿는 사람은 사랑 많고, 인정스럽고, 친절하고, 정직하며, 믿는 사람은 태도가 온유하고, 겸손하며, 덕이 있고, 말이 진실하고, 유순하며, 화평하여, 언제나 기쁨과 즐거운 맘과 굳은 신념(信念)과 큰 소망 가운데 살며, 부모에게 효성 있고, 형제간에 우애하고, 부부간에 애정이 있어, 가정의 천국을 이루어 보는 이마다 부러워하며, 본받을 만한 생활의 빛이 되는 것입니다.
3) 문명의 빛
성도가 세상의 빛이 되는 것은 영계와 윤리·도덕적 생활의 빛만 될 뿐 아니라, 문명의 빛이 되는 것입니다. 금일 세계의 모든 문명과 과학의 발달과 기계의 그 많은 발명품들이 믿음이 신실한 다수의 기독교인들의 손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정도 입니다.
만약 당신이 그리스도인 이라면 모든 문화 운동의 선구자가 되어야 하겠으며, 맑은 맘을 가지고 밝은 말을 하고 밝은 생활을 함으로, 성도는 그 가정, 그 단체, 그 사회의 빛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5. 빛은 인도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밤에 차를 타고 가노라면 도로 옆에는 반사경들이 붙어 있습니다. 옆에 있는 그 반사경들이 반사의 빛을 반사해 줌으로 바르고 안전한 길로 운행하도록 지시해 줍니다. 높은 산봉의 등대는 비행기 길을 인도하고 고도의 등대는 뱃길을 인도해 줍니다.
그와 같이 그리스도인은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특히 사망의 길·어둠의 길로 달리는 사람을 광명한 길· 의의 길· 생명의 길· 천국의 길로 인도하는 역할을 잘 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 가족 중에 생명의 길로 가지 못하는 사람이 있으면 인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곁길· 빗나간 길· 위험한 길로 가는 많은 사람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역할을 잘 해야 할 것입니다.
세상에는 자기 혼자서는 일어날 수 없을 만큼 도덕적 힘과 용기를 결핍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한 사람이 일어서서 이끌어 가면 그들도 쉽게 따를 수 있습니다. 그들이 의지할 수 있을 만큼 강한 어떤 힘 있는 사람이 있을 경우에는 그들은 곧 어떤 일이라도 하게 될 것입니다.
약한 형제가 지탱할 수 있고, 솔선해서 용기가 부족한 자들이 따를 수 있도록 강하게 일어서는 것이 믿는 사람의 역할입니다. 세상은 이끌어 주는 사람들이 자기들 스스로 감히 할 수 없는 일을 누군가가 솔선해서 행하고, 태도를 명확히 해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같은 역할을 하라고 주님은 당신에게 ‘세상의 빛’이 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1) 심지와 같은 존재입니다.
등불에 심지가 있어야 되는 것 같이 성도들에게는 신앙의 심지가 있어야 하는 바, 의지가 박약하고 심주(心柱)가 견고치 못한 사람에게 옳은 성령의 불이 붙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고로 꾸준한 성경공부와 묵상과 되새김 등의 훈련을 통해서 항상 견고한 심지, 즉 빛을 점화 시킬 수 있는 역할을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2) 기름과 같은 것입니다.
등불에 기름이 필요한 것과 같이 성도에게 성령의 기름이 필요한 바 성령의 기름이 끊어지면 미련한 다섯 처녀 같이 불은 꺼지고(마 25:1) 빛은 사라져 신랑을 만나지 못할 것이니 꺼지는 등불도 끄지 아니하시는 기름의 근원 되신 주님께 성령의 기름 보급을 받아서 기름이 없는 자에게 나누어 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3) 등피와 같은 것입니다.
등피가 맑고 깨끗해야 빛이 밝게 나타나는 것 같이 성도의 생활이 맑고 깨끗해야 그 선한 행실을 통하여 주의 빛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래서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의 착한 행실이라(계 19:8) 하고 본문에는 "착한 행실로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하셨습니다.
우리도 마음과 행실을 깨끗케 함으로 빛을 비취게 할 것입니다.
6. 빛은 경고의 역할을 합니다.
빛은 종종 앞에 위험이 있을 때 우리들에게 중지하라고 경고하는 일에 사용합니다. 이웃에게 필요한 경고를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의무입니다. 충고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상처를 주지 않고 유익을 주는 경고를 하기란 아주 힘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로서 이는 저버릴 수 없는 중대한 의무입니다.
성도들의 충고와 경고는 인간 영혼을 살리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 일을 위해 우리는 부르심을 입은 자들인 것입니다.
성도들은 이 세상 사람들에게 위기와 심판에 대한 위험 경고 신호를 때때로 보내야 합니다. 의로운 발언이나 진실한 충언이나 애국 애족을 바탕으로 건설적인 발언을 하고 위험 경고 신호를 하여, 깨우치는 역할을 하며 사는 것이 빛 같은 인생으로 사는 것입니다.
2,000년 전에 빛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빛은 생명의 빛이요, 진리의 빛이요, 구원의 빛이요, 도덕적인 빛이요, 지혜의 빛이요, 지식의 빛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심으로 죄악과 절망과 슬픔과 괴로움으로 말미암아 어둡던 세상은 환하게 밝아진 것입니다.
그 후 예수님 앞에 나와 예수님을 믿고 따르던 사도들과 제자들과 모든 성도들이 예수님의 빛을 받아 반사의 빛을 세상에 비춰 왔습니다.
우리도 이같은 예수의 빛을 받아 반사해서 비춰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빛을 받고도 빛을 비추지 않으면 온전한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7. 빛을 행하므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할 것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십니다.
"만방의 족속들아 영광과 권능을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여호와께 돌릴지어다"(대상 16:28).
성도의 일거수 일투족은 하나님의 영광과 관계가 있습니다. 성도의 착한 행실은 세상 사람들로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그의 선하심을 인정하도록 하여 줍니다.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벧전 2:12)
오늘날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그 역할을 제대로 담당하지를 못해서 세상으로 지탄을 받는 시대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사단이 역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란 이름을 내세우고 기독교 무슨 단체란 명칭으로, 아무게 유명한 목사가 어떻고 저러코.…
거기에는 가짜이거나 사단의 속임수에 넘어간 거짓 그리스도인들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보이는 성도이어야 합니다.
성도 각자는 자신의 행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영광을 취하신다는 사실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빛으로서의 사명을 다하여 하나님께 크게 영광을 돌리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결론
(요 1:5)에 "빛이 어두움에 비추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고 했습니다. 즉 주님은 이 세상 백성들을 사랑하시사 진리의 영으로 예수께서 빛으로 이 땅에 오시었건만 그를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이여! 예수님께서 이 땅에 빛으로 오신 참 뜻을 바로 깨닫고, 그를 바로 믿고, 그가 원하시는 것 즉, 빛과 진리의 복음을 이 어두운 세상에 많이 전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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